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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명의 서화 〈高麗〉, CCR의 앨범 《그린 리버(Green River)》

⊙ 우석 최규명의 탄생 100주년展… 一字書, 大字書 통한 ‘질삽’의 美學
⊙ 《Green River》… 중독성 강한 비틀스 코드를 주렁주렁 매단 비명 같은 사운드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2019-07-11 오후 5:55:00

 
〈고려(高麗)〉, 188×243cm, 캔버스에 아크릴, 1990년대 중반 제작.
 
우석(又石) 최규명(崔圭明·1919~ 1999)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서예·전각 특별전이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렸다. 6월 7일부터 한 달간 관객을 맞는다. 우석의 서(書)를 보노라면 ‘서예가 과연 미술인가’라는 의구심을 떨치게 한다. 그의 글씨는 미술의 한 영역을 넘어 새로운 장르에 가깝다. 조형(이미지)과 내용(텍스트)을 함축한 일자서(一字書), 대자서(大字書)를 통해 질삽(疾澁·매끄러운 획과 까칠한 획)의 미학(美學)에 다가서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동아시아의 글씨는 필획(筆劃) 자체가 선(線·line)이 아니라 입체(立體·stroke)다. 추상(抽象) 언어에 가깝고 작가의 무의식 세계까지 닿아 있다.
  
우석의 작품 〈고려(高麗)〉를 보자. 상형문자 같은 느낌을 준다. ‘여(麗)’의 원형이랄 수 있는 ‘사슴 록(鹿)’과 ‘높을 고(高)’가 연결돼 마치 사슴이 네 발로 선 듯하다.
우석 최규명의 생전 모습이다.
그 연결이 자연스러워 어떤 기운의 흐름이 전달된다. 글의 하체가 튼실하다고 할까. 하체만 보면 사슴이 아니라 사자라고 해도 믿겠다. 그 밑에 고딕체로 적힌 영문 ‘KOREA’도 자연스럽다. 〈고려〉의 글씨 속에는 현재 남북이 처한 분단이나 이념의 갈등 같은 아귀적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 된 미래의 ‘코리아’처럼 역동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서예계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한시(漢詩)에는 소년 천재가 있어도 서예에는 천재가 없다”는 말이 있다. “농사꾼처럼 부지런히 전·예·해·행·초서의 5체를 매일 써야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서예야말로 가장 정직한 예술이다”라고 말한다. 
  
최규명은 황해도 개성이 고향이다. 그의 아버지 석전(石田) 최치훈(崔致勳)은 당대 한학자인 정인보(鄭寅普)·변영로(卞榮魯)·김석준(金錫俊) 등과 동학한 인물이다. 우석은 개성 상인의 후예답게 성실·근면·절제로 정비소, 양조장, 극장사업, 농약공장 등의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했다. 그러나 경영 이외의 시간을 서예나 전각 활동에 쏟아부었다. 언론에 관심이 많아 해방 직후 《비판신문》을 창간하고, 1960년대 초에는 《고미술 시보》를 창간해 덕수궁 돌담을 허물어 철책으로 만드는 문화적 무지를 지적하기도 했다.
  
  
산(山)은 무쇠 작대기, 무지개(虹)는 통일의 다리
 
〈산(山)〉, 63×125cm, 지본수묵, 1990년대 중반 제작.
이번에는 우석의 〈산〉을 오래 바라보았다. 높고 고고하면서도 빽빽한 숲을 연상케 한다. 음양(陰陽)으로 치면 온통 양 기운으로 가득하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저 산속에 들면 아무도 범접 못할 것 같다. 산이 요지부동의 무쇠 작대기 같다고 할까. 저 산처럼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의 〈산〉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다. 산이 너무 높아 보인다. 여백이 없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석은 피안의 세계를 그리려 한 것일까.
  
〈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산중수복의무로(山重水複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풀이하면 산과 물이 첩첩하여 길이 없는가 했는데, 산골 속에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또 하나의 마을이 있더라는 뜻이다. 아무리 산이 높고 골이 깊어도 사람은 똬리를 틀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산홍산(山虹山)〉, 700×100cm, 광목에 아크릴, 1980년대 중반 제작.
〈산홍산(山虹山)〉의 첫 느낌은 장난스럽다. 두 산 가운데 ‘홍’자는 ‘무지개 홍(虹)’이다.
  
우선 두 산은 봉분 같기도 하고 밥공기를 엎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세 골짜기로 나뉜, 엎딘 산은 융통성이 없이 보인다. 삐쭉한 것이 화난 모습일까. 둥근 봉우리도 제각각이어서 산만하다. 이 양쪽 산에 무지개가 이어져 있다.
  
무지개는 두 겹이다. 튼실하다. 붓의 박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문인화(文人畵)에서 느끼는 부드럽고 경쾌하며 섬세하고 정교한 아름다움과 정반대다. 〈산홍산〉은 거칠고 질박하며 대담하고 단순한 서화다. 여기서 두 산은 남북한을 상징하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가리킨다. 남북통일을 열망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5년간 타오른 혜성
 
미국 남부 로큰롤의 맥을 잇는 밴드 CCR.
혜성같이 나타나 사라져버린 밴드가 있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CCR)’이라는 이름이 별난 밴드다. 이 미스터리 밴드는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5년 동안 강렬하게 불타올랐다가 사라져버렸다. 현재 CCR의 보컬을 맡았던 존 포거티는 솔로로 활동 중이다. 드럼(더그 클리퍼드)과 베이스(스투 쿡)를 치던 다른 멤버들은 R만 다른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비지티드(Revisited)’로 활동 중이다. 리듬 기타를 치던 존 포거티의 친형 톰 포거티는 동생과 등진 채 살아가다가 사망했다.
  
CCR로 훨훨 날던 이들은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추락했지만 지금도 저공 비행 중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존 포거티는 한때 동료였던 클리포드와 쿡에게 “함부로 CCR이란 이름을 쓰지 말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 결과는 모르겠다.)
  
1960년대 말로 돌아가 보자. 이들은 미국 남부 목화농장의 맥주 파티에나 어울릴 듯한 거칠고 흥겨운 로큰롤로 무장한 채 갑자기 등장했다.
  
이상한 울림을 기계적으로 장착한 와와 페달이나 ‘약쟁이 노래’ 같은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거부한 채, 지미 헨드릭스가 튀어나올 것 같은 낡은 기타 케이스를 들고서 중독성 같은 비틀스 코드를 주렁주렁 매단 멜로디로 비명 같은 사운드를 뿜어낸 이들이 CCR이었다.
 
1969년에 나온 CCR의 앨범 《그린 리버(Green River)》
1969년에 나온 앨범 《그린 리버(Green River)》는 러닝타임이 29분20초밖에 안 된다. 짧지만 여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첫 곡인 ‘그린 리버’는 향수 예찬 곡이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take me back down where cool water flow)’고 응석을 부리더니 초록 강을 이렇게 묘사한다.
  
‘맨발의 소녀들이 달빛을 받아 춤을 추고 황소개구리가 나를 부르는 곳, (어린 시절 매달아 놓은) 내 밧줄이 아직도 나무에 매달려 있을까 궁금해지는 곳….’
  
다섯 번째 곡 ‘배드 문 라이징(Bad Moon Rising)’은 이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곡이다. 1969년 빌보드 핫(Hot) 100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고, UK 싱글차트에서 3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이 곡은 존 포거티가 영화 〈악마와 다니엘 웹스터(The Devil and Daniel Webster)〉(1941)를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장르는 판타지 괴기물로, 그래서인지 노랫말이 좀 무시무시하지만 신나고 흥겹다.
  
‘나쁜 달이 떠오르는 걸 봤어.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 지진과 번개 치는 걸 봤어. 오늘 일진이 사나울 것 같아. 오늘 밤엔 싸돌아다니지 마. 글쎄 네 목숨 가져갈 것 같으니까. 나쁜 달이 떠 있거든.’
  
  
끈적끈적하게 빠져드는 블루스가 CCR 사운드
CCR이 해체된 후 일부 멤버가 ‘유사 CCR’을 결성해 활동 중이다.
여기서 잠깐, 이 노래를 탄생케 한 영화 〈악마와…〉의 스토리가 궁금하다. 주인공(야베스 스톤)은 농부인데, 오랫 동안 나쁜 운 때문인지 고생하다 어느 날 괴로움에 지쳐 이렇게 중얼거린다. ‘약간의 돈과 괜찮은 땅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내놓을 텐데…’ 하고. 악마가 그 말을 듣고 7년간 부와 좋은 땅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물론 그 후엔 영혼은 악마의 것이 된다.
  
스톤은 농담처럼 악마의 제안에 응하는데 정말이지 엄청난 수확을 하게 되고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점점 자신이 인색한 스크루지 영감처럼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면서 악마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으려고 악마와 일전을 치른다.
  
여섯 번째 곡 ‘로디(Lodi)’는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은 이의 쓸쓸한 감정이 담겨 있는데 리듬은 전혀 슬프지 않다.
  
‘달러를 벌기 위해 노래를 불렀죠. 내가 노래를 부르고 연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항상 취해 있었죠. 당신도 아시죠? 내가 다음 행 기차를 타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리란 것을. 오, 주여, 로다이로 돌아갑니다.’
  
CCR은 앨범 《코스모스 팩토리(Cosmo’s Factory)》(1970)로 더 높이 비상하지만 1972년 10월 해체되고 만다.
  
CCR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군더더기 없는 비트를 2분30초짜리 한 곡에 집어넣은 명료함과 단순함이 아닐까. 그들 노래에는 비틀스에서 느끼는 달콤한 상업성을 느낄 수 없다. 미국산 뚝배기 장맛이다. 혹자는 이들의 음악을 미국 남부 지방의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음악이라 하여 스왐프 블루스(swamp blues)라고 부른다. 스왐프는 ‘늪’을 가리킨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끈적끈적하게 빠져드는 블루스 음악이 바로 CCR 사운드의 마법이다.
등록일 : 2019-07-11 오후 5:55:00   |  수정일 : 2019-07-1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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