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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같은 가짜’ 출현으로 전통적 도굴은 사라져

⊙ 본격적 도굴의 기원은 일제 앞잡이
⊙ 과거 권력의 비호가 있었기에 도굴 가능
⊙ 시효가 없어 언젠가 처벌받는 문화재 범죄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2019-07-05 11:03

▲ 양평 대평리 고분군 내부의 도굴갱. / photo by 뉴시스
도굴(盜掘)은 흔히 무덤 혹은 사적지(史跡地)에 묻힌 문화재를 몰래 파내는 도둑질을 지칭한다. 
  
1990년대까지는 신문에 종종 문화재 도굴 사건이 기사화되었다.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경기도 강화경찰서는 26일 학술탐사반으로 속이고, 금속탐지기로 고려청자 등 매장문화재를 도굴해온 혐의로 이○○(52)·최○○(61) 피의자를 구속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 24일 낮 12시쯤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야산에서 일본제 고성능 금속탐지기로 유물이 묻혀 있는 곳을 찾아 고려청자 대접 6점 호리병 1점 기름병 1점 술잔 4점 등 고려청자 12점과 고려말기 엽전 30개 등 유물 42점을 도굴했다고 말했다.〉(1990년 9월27일자 《조선일보》)
  
언론에 보도된 경우는 적발되어 법 처벌을 받은 경우다. 안타깝게도 누가 언제 도굴했는지 실체도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 결과 요즈음 문화재 발굴 기사를 보면, 기사 마지막에 이미 도굴되어 중요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는 부연 설명이 첨가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보도된 가야 부부묘 발굴이 그 예다. 6월 4일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삼한문화재연구원은 거제-마산3 국도건설 현장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1329번지 일원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부부묘를 포함해 4~6세기 가야 무덤 670여 기와 유물 1만여 점을 찾았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단은 “유구는 모두 도굴돼 토기, 철기 대부분이 도굴을 위해 뚫은 구멍인 도굴갱에서 출토됐다”고 설명했다. 도굴꾼들이 훔쳐 가다가 남긴 유물만 간신히 찾아낸 것이다.
  
이런 문화재 발굴 기사를 접하다 보면 ‘과거 도굴꾼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요즈음도 도굴이 성행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도굴 방식의 진화
 
사적 제87호 ‘익산 쌍릉’ 발굴 현장. 사진은 대왕릉 석실 내부에 도굴을 위해 뚫은 구멍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5월 말 전통문화재 장인의 작업실을 찾았다. 무형문화재로 40년 동안 문화재 복원 한 우물만 판 장인이다. 그에게 물었다.
  
― 요즈음도 도굴이 있나요.
  
“세상이 변했잖아요. 방법이 진화했죠.”
  
― 밤에 무덤을 파러 가는 도굴꾼들이 아직도 있나요.
  
“힘들게 밤에 무덤을 왜 파요. (돈 벌려면) 다른 방법도 많은데….”
  
기자의 호기심은 ‘다른 방법’에 쏠렸다. 계속되는 질문에 장인은 자신에게 온 문자메시지 하나를 보여줬다. 문자메시지는 불상 사진 한 장과 이런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형님, 이거 고려 불상 맞나요?”
  
스마트폰을 서서히 내리며, 장인은 자신의 답변을 보여줬다. 그가 보낸 답문은 이렇다.
  
“그거 내가 만들었어.”
  
2000년대에 만든 작품이 1000년을 뛰어넘어 고려시대 작품으로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는 우습지만 웃기 힘든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두 줄 문자메시지에 녹아 있었다.
  
힘들게 밤에 무덤을 파헤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진짜보다 더욱 진짜 같은 가짜 문화재의 출현 때문이다.
  
진짜 같은 가짜의 출현은 도굴 수법의 진화를 가져왔다. 장인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했다.
   
〈아주 오래전 사찰이 있던 지역의 땅을 구입한다. 가짜 유물들을 몰래 묻어놓는다. 시간이 지난 후 우연을 가장해 문화재를 발굴한다.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져, 문화재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갑자기 영화 〈황제를 위하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승부 조작에 연루된 후 모든 것을 잃게 된 이환(이민기 분)이 부산 최대 규모의 조직, 황제 캐피탈의 대표 상하(박성웅 분)의 신뢰를 얻게 되는 장면이다. 다른 조직원이 실수로 고가의 도자기를 깨트리는 실수를 저지르자, 이환은 보스에게 해결책을 은밀하게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대사는 없고,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이 나온다. 뉴스 속보로 발굴 현장이 화면에 잡히고, 문화재가 발굴되었다는 리포트가 등장한다. 깨진 도자기를 발굴현장에 묻어버린 것이다. 사기꾼들의 세계를 나름의 고증을 통해 재현한 장면으로 보인다.
  
이렇듯 그럴듯하게 가짜를 만들면 되는데, 굳이 도굴까지 할 필요 없다는 것이 장인의 설명이었다. 다만 진화된 도굴 수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과연 기술적으로 가능할까. 장인에게 물었다.
  
―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가짜를 만들 수 있나요.
  
“가능하죠. 불상의 경우 거의 구분하지 못해요.”
  
― 금속 표면에 시간의 흔적이 남을 텐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아요. 금속과 돌은 연도 측정이 되지 않아요.”
  
― 전문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면,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엄연히 다릅니다. 장인이 그 시대의 혼을 담아 만든 것이 진품이라면,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것이 가짜입니다. 당연히 가짜는 가치가 없는 것이죠.”
  
다만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보충 설명도 이어졌다. 요약하면 이렇다.
  
“혼자서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 쉽지 않아요. 복원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들어야 진품과 구분이 어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남을 속이기 위한 가짜를 만들 때면 혼자 몰래 만들겠죠. 그러니 작품의 완성도가 낮아요. 진짜 실력이 있는 명장이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정도 실력이 있다면 굳이 가짜를 만들 이유가 없죠.”
  
   
고려시대 측우기 해프닝
 
2009년 8월 전북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매장 문화재 도굴 판매 일당을 검거한 후에 공개한 문화재들.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청자와 백자들이 포함됐다. 사진=뉴시스
문화재 도굴이 성행한 것은 일본에서 한국 문화재 수집에 열을 올린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한국 문화재는 일본에서 비싼 값에 팔린다. 
  
일본의 한국 문화재 수집 열기에 대해 전통 문화재 업계 원로는 “과거 일본 ‘나까마’(중간 상인의 속칭)들이 서울에 와서 (문화재를 구입하려고) 아예 살다시피 했다”며 우리 문화재 구입 수요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굴 혹은 문화재 절도 후 이를 일본에 가져가 팔면 적발이 쉽지 않다. 특히 도굴의 경우 신고하는 사람도 없다. 과거 문화재 도굴 사건이 많았던 중요한 이유다. 도굴도 문제지만, 한번 해외로 나간 문화재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문제가 더 크다.  
  
다만 어느 순간 굳이 도굴을 하지 않고, 가짜를 만들어 일본에 가져다 팔아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추측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1987년 2월 17일 ‘세계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측우기 발견’을 알리는 뉴스가 공중파 방송을 탔다. 뉴스 내용은 이러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세종시대의 측우기보다 200여 년 정도 앞선 고려시대의 측우기가 발견됐습니다.
  
소장자는 이 측우기를 교도의 한 일본인으로부터 1년여가 넘는 교섭 끝에 일본 고서 6점과 바꿔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중략) 현재 세계 최초의 측우기는 세종 1442년의 것으로 세계적으로 공인되어 있으나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실물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문가들은 고려 때에도 측우기가 제작됐을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보고 이번에 발견된 측우기가 국제적인 공인을 받게 된다면 세계 최초의 원통형 측우기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측우기의 역사를 200년 이상 앞당길 것으로 기대되던 당시 발견은 곧 ‘가짜 소동’으로 일단락됐다. 현대 한국에서 만들어져 일본에 팔린 작품이 고려시대 고미술품으로 둔갑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해프닝이었다.  
  
해당 측우기를 만드는 데 관여했던 주물 장인 A씨는 당시 상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A씨를 만나 당시 상황을 물었다.
  
―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뉴스를 보고 있는데, 우리가 만든 물건이 나오더라고요. 고려시대 물건이라기에 어이가 없었어요.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이라고요.”
  
― 방송국의 반응은.
  
“장난하지 말라고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 측우기는 왜 만든 건가요.
  
“우산꽂이로 만들었죠.”
  
1980년대부터 오래된 문화재처럼 보이게 만드는 앤티크(antique) 기술이 좋아져, 가짜 문화재가 해외로 많이 팔려나가게 되었다는 보충 설명도 이어졌다.
  
이렇듯 우산꽂이를 고려시대 측우기라고 속인 사건은 도굴이나 절도보다는 가짜로 돈을 버는 꾼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나름 사기 방식이 진화한 것이다.
  
   
도굴의 역사
 
2015년 2월 서울 마포경찰서는 가짜 통일신라 금동불상 등 7점을 진품인 양 속여 판매하려던 일당을 구속했다. 사진은 가짜 금동여래좌상 등 압수품들. 사진=뉴시스
세상 모든 일은 나름의 사연과 역사가 있다. 도굴도 역사적 맥락이 있다. 도굴의 기원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문화재 장인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기자 양반, 밤에 몰래 사찰에 가서 불상 한번 훔쳐 봐.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십만명이 절을 한 부처님 상을 한번 들어 봐.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이 몽롱해져. 웬만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려. 하물며 밤에 무덤을 몰래 파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바로 이런 이유에서 “파본 놈들만 할 수 있는 것이 도굴이다”고 했다. 도굴은 대대손손 비밀리에 수법이 내려왔다는 보충 설명도 있었다.
  
평생 문화재 수집에 힘써온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자신도 문화재를 꾸준히 수집하고, 현재는 박물관을 운영 중인 B씨는 전통 문화재 시장의 비화(祕話)에 정통한 것으로 유명하다. 6월 말 서울에서 만난 B씨는 도굴의 기원을 ‘일제 앞잡이’에서 찾는다.
  
― 도굴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일제시대 본격적인 도굴이 시작된 것이죠. 일본 사람은 직접 나서지 않았고, 돈 주고 살 터이니 가져오라고 일제 앞잡이에게 시킨 것이죠. 고분 도굴은 그때 이미 다 끝났다고 봐야죠. 자기들끼리 은밀하게 수법을 전수해왔어요. 그 후손들이 지금은 가짜 유물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 도굴에 필요한 지식은 무엇인가요.
  
“무덤에 대한 지식과 지형 특성을 잘 알아야 돼요. 쇠막대기를 찔렀을 때 느껴지는 감각도 중요한 지식이죠.”
  
― 해방 이후에는 어떠했나요.
  
“1970~1980년대까지 한국 문화재를 구입하려는 일본 사람들이 넘쳐났어요. 해외로 가져가면 가격이 30배 이상 나가니, 밀반출이 계속된 것이죠.” 
  
― 해외 밀반출 경로는 어떠했나요.
  
“부산 중앙동 여객부두를 통해 일본으로 문화재가 많이 나갔어요. 관광객뿐 아니라 승무원을 통해서도 유출되었죠.”
  
무덤 도굴의 경우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봉분(封墳)을 뚫고 들어가는 데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땅을 파고 들어간 다음에는 어린아이 등 몸집이 작은 사람을 들여보내 유물을 빼내게 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B씨는 구체적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했는데, 상당한 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잘못 파고 들어가면 땅이 무너져 그대로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도굴의 결탁
  
도굴범은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다. 과거 문화재 범죄가 많았던 것은 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재 도굴과 도둑이 많았던 것은 시대적 배경에 있다. B씨의 설명이다. 
  
“과거 1990년대까지 문화재를 권력자에게 팔면 사실 문제될 것이 없었어요. 경찰·검찰이 권세가의 집을 수색할 수 없으니, 처벌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죠. 진품이라는 확신만 생기면 돈은 얼마든지 주고 살려는 사람들이 많았죠.”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렇다면 도굴은 이제 완전히 없어진 것인가. B씨는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그는 공공기관과의 커넥션을 주장했다.  
  
“문화재 등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개발하기 힘든 곳에 갑자기 건축허가가 나는 경우가 있어요. 발굴조사를 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냥 천막 치고 뚝딱(발굴조사를 생략) 해버리죠. 공공기관과 커넥션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죠. 문화재를 도굴하는 것도 문제지만, 현장을 완전히 쓸어 담아 훼손시키는 것이 더 문제예요. 과거처럼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도 문제지만,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도굴도 문제예요.” 
  
주인이 있는 문화재를 그냥 훔칠 경우 필연적으로 피해자가 생기고, 피해자는 신고를 한다. 도굴의 경우 신고할 사람이 없다. 몰래 팔 경우 사는 사람이 침묵하면 세상에 범죄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굴 사건이 꼬리가 잡힌 것은 내부의 돈 문제가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B씨는 꾼들의 내분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팔아먹고 자기들끼리 입을 닫으면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결국은 돈 문제인데, 필연적으로 도굴범들끼리 돈 문제로 싸우게 되어 있어요. 자기들끼리 고소·고발하게 되면서 수사를 받고, 법의 처벌을 받게 되죠.”
  
   
사실상 시효 없는 문화재 범죄
 
1999년 대구 달성군 성산고분 발굴 현장. 당시 도굴범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소주병이 발견되었다. 사진=조선DB
자기들끼리의 싸움뿐 아니라 정비된 문화재 관련 법률도 문화재 범죄를 막고 있다. 더 이상 문화재를 훔치기 힘들어진 이유로 강화된 법률의 영향이 크다.
  
일단 문화재 범죄의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언뜻 문화재를 훔치고 10년 정도 숨어 있다가 시장에 내놓으면 될 것 같지만 그 역시 불가능하다. 2002년부터 훔치거나 도굴한 문화재를 은닉하는 자도 처벌받게 법이 강화됐다. 실질적으로 시효도 없다.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은닉죄의 공소시효는 은닉 시점이 아니라 은닉 상태가 끝나는 순간 시작되기 때문이다. 숨겨놓았다가 팔려고 내놓는 순간부터 시효가 시작되기에, 공소시효는 사실상 없는 것과 같다.  
  
이렇게 법이 강화되자, “도굴된 문화재인 줄 모르고 구입했다”고 주장하며 법을 피해나가는 경우가 생겼다. 2007년에는 아예 ‘선의취득 배제 조항’이 신설돼, 설령 훔치거나 도굴된 문화재인 줄 모르고 구입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훔친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그렇게 주장한 경우가 최근에 있었다.
  
지난 5월 29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만국전도(萬國全圖)〉와 고서적을 숨겨온 A씨(50)와 양녕대군 친필 목판 등을 몰래 보관한 B씨(70)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지정 문화재 은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도난 문화재인지 몰랐고, 잘 모르는 사람이나 거래 뒤 사망한 사람을 통해 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몰랐다 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도난 문화재는 문화재청 인터넷 사이트에 모두 등재되어 있어, 이를 확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도굴꾼들은 천벌을 받을까
  
흔히 ‘천벌(天罰)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굴꾼들은 천벌을 받았을까. 사실 오랜 기간 문화재를 제작하고 수집한 전문가들은 누가 도굴범인지 알고 있다. 이들이 가져온 물건을 감정도 하고 교류도 한다. 취재를 마치면서 문화재 관계자들에게 과거에 알던 도굴범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알아봐 달라고 했다. 도굴범들의 근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는데 답변은 둘로 갈렸다.
  
우선 역시 끝이 좋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연락해보니 다 죽었어요. 당연한 것이죠. 사람이 부끄럼 없이 살아야죠. 설령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감옥에 다녀오면 떳떳하죠. 죗값을 치렀으니까요.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사니 잘살 수 없는 것이죠. 천벌받는 것이죠.”
  
반면에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역에서 유명했던 도굴꾼에게 연락해보니 잘살고 있더라고요. 자식까지 문화재 관련 일을 하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지역 유지 소리 들으며 지내는 것을 보니 답답합니다.”⊙
등록일 : 2019-07-05 11:03   |  수정일 : 2019-07-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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