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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석화가 전하는 ‘정미소’의 마지막 실험무대

글 | 선수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6-07 10:25

▲ 사진=조선DB.
인터뷰 하는 두 시간이 마치 한 편의 연극 같았다. 배우 윤석화의 인생은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각본이었다. 담담하게 독백을 풀어내다가 눈시울이 붉어지고, 거침없이 웃음을 쏟아내다가 절제된 분노를 토하기도 했다.

윤석화의 연기 인생 44년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극장 정미(美)소를 폐관하기로 결정하고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했다. 17년 동안 스스로에게, 동료들에게 ‘무대’라는 공간을 열어준 이곳을 내려놓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 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정미소의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정미소는 2002년 배우 윤석화가 건축가 장운규와 함께 낡은 건물을 사들여 조성한 192석의 설치극장이다. ‘쌀이 육체를 키우듯 예술이 영혼을 살찌우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미로 직접 이름 붙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대가 부족한 건 마찬가지. 윤석화는 연극인들이 좋은 작품을 마음껏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정미소는 결국 경영난을 이기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소극장을 운영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늘 적자에 시달렸지만 17년 동안 견뎠다. 돌아보면 부족한 것도 많았고 때로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현실도 있었다. 그렇지만 진실되고 진정한 땀을 흘리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손을 내밀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

그동안 정미소를 거쳐간 작품이 109편. 상업성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는 공연계에서 정미소는 다양한 실험성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했다. 좋은 연극이라면 대관료도 거의 받지 않고 운영했고 연극인들은 무대에 대한 갈증을 마음껏 해소할 수 있었다. 윤석화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작품성이었기 때문이다.

정미소 덕분에 실력파 연극인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연극계의 대표배우 박정자와 무명배우 이종혁이 ‘19 그리고 80’에서 호흡을 맞췄고 연출가 한태숙은 ‘서안화차’로 주목받았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배두나는 ‘선데이서울’로 연기의 폭을 넓혔고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연 박해수와 뮤지컬 무대를 휘어잡는 전미도가 ‘사춘기’를 통해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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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문을 연 설치극장 정미소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공연은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윤석화는 관객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하는 작품으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택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12살 딸에게 여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전하고 싶은 교훈을 다섯 곡의 노래에 담은 1인극이다. 1992년 산울림소극장에서 초연한 그때, 윤석화는 10개월 연속 열연을 펼치며 산소호흡기를 달고 강행했었다.

윤석화 개인적으로는 아픔이 크게 묻어있는 작품이다. 2013년 공연을 앞두고 남편의 사업 관련 문제로 무산된 적이 있다. 그럼에도 굳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택한 이유는 유난히 관객들과 울고 웃으며 교감한 기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미소의 마지막을 그 감동으로 남기고자 한다. 1992년 산울림소극장에서 처음 관객을 만났던 30대 미혼 배우는 이제 꼭 12살 딸을 둔 엄마가 됐다. 감정은 진해지고 울림은 더 커질 수밖에.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엄마가 딸에게 이야기하며 스스로 치유되고 성찰되는 과정을 그렸다. 예전에도 이 작품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딸을 키워보니 절절하게 와 닿더라. 짐작하고 공부했던 부분이 이제는 그냥 느껴진달까. 관객분들은 그저 마음만 열고 보면 된다.”

연기 인생 44년의 배태랑 배우 윤석화도 공연을 앞둔 긴장감이 역력하다. 어떤 날은 자신감에 부풀었다가, 또 다른 날은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됐다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서 엄마 윤석화는 다시 무대에 오른다. 훗날 딸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작품 속 교훈이 아닌 엄마의 삶 자체에서 메시지를 전달받을지 모른다.

정미소의 마지막 공연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상연된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뮤지컬 ‘시카고’, ‘빌리엘리어트’ 등의 김태훈 감독이 맡았다. 작곡은 최재광 음악감독이 살렸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열리는 바자회 또한 놓쳐서는 안 될 재미다. 수익금은 전액 연극인 복지를 위해 쓰여진다.
 
 
등록일 : 2019-06-07 10:25   |  수정일 : 2019-06-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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