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산과 문화인류학ㅣ에티오피아 커피]고산 기후+비옥한 토양의 야생 아라비카 원산지

글 | 오영훈 기획위원 2019-05-31 09:21

본문이미지
야생 아라비카 커피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사진 포레스트 킴 스타.

카파 지역서 발달한 전통커피 문화… 최근 기후변화와 산림 파괴로 위기 맞아
에티오피아는 지리적으로 ‘천혜의 요새’다. 아프리카 대륙 동쪽 끄트머리, 홍해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으며 고산지대가 국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접근이 까다롭고 신비하기만 한 은둔의 왕국이었다. 혼돈의 19세기에도 주변국 에리트레아·소말리아·지부티·수단·케냐가 모두 유럽 열강의 속국으로 전락할 때 에티오피아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를 두고 ‘아프리카의 티베트’라고도 하는 이유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적도 근방의 고산지대 기후와 비옥한 토양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커피의 원조 품종인 아라비카 커피가 잘 자란다. 재밌는 것은 케냐·콜롬비아·브라질·베트남 등 주요 커피 생산국은 수출을 위해 커피를 재배하는 반면, 에티오피아는 커피 생산량 절반 이상을 자국민이 소비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야생커피를 채취하고 마시는 풍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연이은 산림 파괴로 인해 유구한 에티오피아의 커피 전통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러한 에티오피아의 전통 커피 문화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본다. 
 
본문이미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한 커피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미지 틸 스텔마허.
 
야생커피의 발견
 
인류 역사상 커피를 처음 맛본 이는 아마도 에티오피아 남서부 산악지대의 목동이었을 듯싶다. 상상해 보자. 늘 하던 대로 소를 치고 있던 한 목동은 평소와 달리 소들이 유난히 힘찬 것을 발견한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목동의 눈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들어온다. 맛을 본다. 밥을 굶어도 힘이 솟고 고된 여행길에도 안성맞춤인 열매다. 세계 첫 커피 시음의 순간이다.

처음에는 생 열매를 씹어 과육을 먹고 씨는 뱉었다. 점차 끓여 마시기 시작했다. 손이 많이 가는 열매보다는 긁어모아 말리면 그만인 잎부터 끓여보았다. 향이 은근했다. 지금도 현지에서는 커피나무 잎을 구워 달이는 ‘커피차’가 인기다. 

이처럼 커피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것은 에티오피아의 음식 문화에 따른다. 예로부터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수많은 열매와 약초에 의존해 살았다. 현재도 몸이 아프면 대개 약초를 이용한다. 약초의 약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조법들이 커피 열매를 말리고 굽고 갈아 마시는 관행을 촉발시킨 것이다.

야생커피는 그늘이 있어야 너무 크지 않게 잘 자란다. 넓은 잎을 가진 나무 사이가 최적이다. 야생 커피나무는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 정해진 주인도 없다. 대개 수명은 100년. 보통 1ha(3,025평)당 야생커피 400~450kg을 채취한다. 타지와 비교하면 너무 적다. 남미의 경우 농장식으로 재배해 1ha당 1톤씩 수확한다.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서는 동일 면적에서 15kg밖에 못 거두기도 한다. 그것도 해마다 들쑥날쑥하다.

야생커피 수확량이 너무 적지 않나 싶어도 이게 최선이다.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리면 나무가 약해진다. 열매를 맺을 에너지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쓴다. 숲이 건강할수록 커피 잎은 넓어지고, 나무는 천천히 자라고, 열매도 적게 달린다. 커피나무 하나하나가 제각각이다. 에티오피아 야생커피의 다양성은 세계 유일하다.

옥수수나 다양한 과실나무와 함께 커피를 심는 커피밭 재배도 많다. 에티오피아 전체 생산량의 반은 된다. 숲 가장자리 부근에서 나무를 엉성하게 베어내고 커피를 심는 ‘반숲 원예’도 한다. 에티오피아 야생커피 자생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영농법이다. 
 
본문이미지
큰 나무 그늘 아래 자라는 커피나무. 사진 제네비브 미숑.

전통방식 야생커피 채취 고수
에티오피아의 주 커피 자생지는 남서부 카파Kaffa 지역이다. 경기도와 비슷한 면적에 85만 인구가 흩어져 사는 시골이다. 해발 900~3,500m의 고산지대로, 18~22℃의 온도에서 잘 자라는 야생커피는 해발 1,300~1,800m에서 왕성하게 자란다. 연강수량은 1,500~2,500mm로 서울의 곱절에 가깝다.

카파의 만키라Mankira 숲은 커피가 최초로 난 곳으로 꼽는다. 카파주 수도 봉가Bonga에서 2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주민 700여 명이 만키라 숲 주변 마을 네 개에 나뉘어 살고 있다.

야생커피 채취는 건기에 들어서는 10월 말에 시작한다. 구획을 나눠 마을 이장이 ‘숲 사용권’을 분배한다. 수확지가 멀면 빵인 코초, 삶은 콩, 양배추 따위 간식을 싸들고 간다. 빠지지 않는 것은 ‘제베나’, 망태기에 담은 에티오피아 전통 커피 주전자다. 깊은 숲이라면 며칠, 길게는 한 달 정도 숲 움막에서 기거하면서 커피를 따고 말리며 지낼 때도 있다. 수확 중에 들소, 뱀, 퓨마를 만나기도 한다.

일꾼을 고용하기도 한다. 품삯은 채취량의 10분의 1로 주거나, 1kg당 1비르(약 50원) 정도 준다. 이동거리가 멀면 1kg당 1비르씩을 더 주기도 한다. 반나절에 한 바구니(약 5kg), 부지런한 이는 두 바구니를 채취한다. 즉 하루 일당이 1,000원인 셈이다. 우거진 수풀 사이를 기고 올라 쏘다녀야 하는 고된 일의 값어치다.

채취 방법은 간단하다. 커피나무마다 다니며 열매를 한 주먹에 말아 쥐고 죽 잡아 뽑는다. 짙은 다홍색으로 푹 익은 열매가 최고 상품이다. 언제 이곳을 다시 올지 모르니 남겨둘 바에야 다 딴다. 아직 노랗게 덜 익었든 푸르게 설익었든 가리지 않는다. 어차피 비가 몰아쳐 떨어지거나, 비비·원숭이·새·다람쥐 등의 동물이 따먹는다. 이들이 씨를 퍼뜨려 숲에 커피나무가 끊이지 않는다. 개중에 벼슬이 멋진 흰뺨관모새, 은뺨코뿔새는 씨를 아주 멀리까지 퍼뜨린다. 그래서 야생커피는 에티오피아 공용어 암하라 말로 ‘새가 전했다’는 뜻의 ‘우프 제라시’로 불린다.

집집마다 커피 말리는 평상이 서너 개씩 있다. 간간이 소나기가 쏟아지니 날씨를 예의주시하며 말려야 한다. 커피가 다 마르기까지 1~2주 정도 걸린다. 봉가 읍내 방앗간에 나가면 말린 커피의 껍질을 기계로 벗긴다. 집에서는 일일이 막자사발에 넣고 손으로 이겨 벗겨낸다. 커피 열매 6kg을 말리면 1kg이 된다. 마른 껍질을 벗겨내면 800g 정도로 줄어든다. 이를 구우면 다시 20% 정도 중량이 줄어든다. 열매와 커피 가루는 9:1의 비율이다.
 
본문이미지
에티오피아 시골 마을의 일상적인 커피 시간. 사진 BBC.

인정 많은 전통 커피 의례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끓여 대접하는 것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다. 하루에 서너 번은 끓인다. 먼저 말린 커피를 철판 위에 올린다. 깨진 콩, 돌조각 따위를 차근차근 골라낸다. 물로 살짝 씻고서 천천히 굽기 시작한다. 구수한 냄새가 연기를 타고 은은하게 퍼진다. 연기를 부쳐대면 향을 맡은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둥글게 자리를 잡는다. 먼저 구운 콩을 코앞에 들이밀어 향을 맡게 한다. “아!” 하고 감탄사와 찬사를 섞어 감사를 표하는 게 예의다.

이어 제베나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그리고 구운 커피를 막자사발에 곱게 빻아 주전자에 넣는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구운 옥수수나 보리를 돌린다. 이윽고 주전자의 커피가 끓으면 불에서 내려놓는다. 제베나에는 체가 따로 없다. 고운 커피 가루가 가라앉도록 기다려야 한다. 여성은 커피를 컵에 따라 돌린다. 보통 세 번까지 따라 마신다.

전통 의례에 따르면 오감을 다 사용해 커피를 마셔야 한다. 

1. 시각 - 주변 환경과 풀밭, 준비하는 여성의 우아한 손놀림. 
2. 후각 - 갓 구운 커피의 향과 곱게 간 커피의 향, 주변에 풍성한 꽃향기. 
3. 청각 - 사각사각하고 커피를 갈아 내는 소리. 
4. 촉각 - 커피의 온기. 에티오피아 전통 잔에는 손잡이가 없어 손바닥으로 말아 쥐어야 한다.  
5. 미각 - 커피의 맛.
이 모든 과정에 30분에서 한 시간, 혹은 그 이상도 소요된다. 
 
본문이미지
채취한 야생커피를 마을로 나르고 있다. 사진 제프 쾰러.

이 지역에서는 하루에 커피 서너 잔은 기본이다. 촌사람은 8~9컵까지도 마신다고 한다. 동네 어느 집이든 커피 냄새에 발길을 멈추고 들어가 커피 한 잔 청해 마시기 때문이다. 어느 만남이든 커피는 빠지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말로 ‘수다떨기’를 ‘부나 떼뚜’라 한다. ‘커피 한 잔’이란 뜻이다. 반대로 커피 혼자 마시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금이나 버터, 꿀을 타 마시기도 한다. 맷돌로 곱게 빻은 가루에 야생 꿀을 섞어 주먹만 한 크기의 환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막을 가로지를 때 이 환만 지참해도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행자의 필수품이었다. 커피믹스의 원조인 셈이다.

하루 중 커피를 처음 마실 때는 땅의 신 ‘콜로’에게 바치는 작은 의식을 치른다. 문설주나 집안 기둥에 대고 커피를 조금 훑어 버린다. 

왜 땅의 신일까? 에티오피아 전설에 따르면, 하늘 신이 땅으로 내려왔다가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하늘 신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자 하늘 신을 너무 좋아하는 땅의 신이 같이 솟구쳐 올라 지금의 에티오피아 산악지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산에는 신이 깃들어 있고, 산에서 자란 커피는 신의 선물인 셈이다. 에티오피아 주민들이 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는 이유다.
 
본문이미지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에서 말린 커피를 씻고 있다. 사진 블루 보틀 커피.

숲과 함께 야생커피 사라질까
 
에티오피아는 참으로 가난하다. 같은 커피 수출국인 남미와 비교해도 에티오피아 커피농가가 훨씬 더 열악하다. 하루 일당이 휘발유 1리터 값이다. 전기는커녕 깨끗한 식수도 사치품이다. 전체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커피는 그야말로 효자 산업이다. 2014년에 8억8,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아프리카 부족문화에서는 가축이 곧 재산이다. 카파 지방에서 가축을 늘리는 길은 커피를 많이 파는 방법밖에 없다. 주말마다 열리는 시장에 커피를 내다 팔면 250g 한 되에 150원 정도 벌 수 있다. 만키라 숲의 우프 제라시는 상上품이다. 한 되에 500원까지 받는다.

오늘날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의 대규모 커피 농장들은 단일 품종 경작으로 수확량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작방식은 전염병에 극히 취약하다. 남미 12개국 모두 커피는 수출비중의 1~2위를 다투는 품목이지만 최근 들어 모두 무시무시한 커피녹병에 큰 피해를 입었다. 커피녹병은 2004년 콜롬비아의 커피산업 40%, 2013년에는 엘살바도르의 74%, 과테말라의 70%, 온두라스의 25%만큼의 손해를 각각 입혔다. 1845년 아일랜드 감자역병으로 100만 인구가 북미로 이주한 것처럼 오늘날 커피녹병을 빼고 미국으로 향하는 난민문제를 논하기 어렵다.

중간상인의 이득을 최대한 줄이고 농부들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공정무역’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공정무역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숲을 파괴하며 단일 품종에 높은 생산량을 가진 커피 농장을 지어 대고 있기 때문이다.

카파 지방에는 ‘숲 없는 카파엔 아무도 못 산다’는 속담이 있다. 100년 전 국토의 30%였던 숲이 이제는 4%로 줄었다. 급격한 인구증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도 크다. 마을 이장이 정해 주는 숲 이용권 제도도 힘을 잃었고, 그렇다고 국가가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학자들은 행정공백과 세계화의 시장경쟁 속에 숲이 사라지고, 풍부한 야생커피의 종 다양성이 줄어들며, 전통문화로 결속된 마을공동체가 파괴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루마다 서로 맛이 다를 만큼 치열했던 에티오피아 야생커피의 생존경쟁은 뉴욕과 파리와 모스크바와 서울의 소비자 입맛에 좌우되게 됐다. 

설상가상 기후변화로 가뭄과 폭우도 잦아져 야생커피 자생지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야생커피를 채취하며 가난해도 인정과 품위를 지켰던 마을들도 점차 쇠락하고 있다. 이제 야생커피는 에티오피아 전체 커피 생산량의 5%에 지나지 않는다. 
등록일 : 2019-05-31 09:21   |  수정일 : 2019-05-30 18:30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