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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무해한 사람, 배우 김무열

김무열은 쌍꺼풀 없는 눈에 우뚝한 코를 가졌다. 전체적인 인상은 순한데, 고개의 각도를 틀거나 숙이면 날렵한 옆선이 드러나 전혀 다른 인상이 된다. 흡사 백지 같아서 그림을 그리면 얼마든지 새로운 풍경이 나올 것 같은 얼굴이다. 그가 연기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혼자서 작품의 인상 전체를 장악하기보다, 작품 안을 부유하면서 인물이 처한 국면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누구와 붙어도 위화감 없이, 어느 장르에 가져다놔도 어색함 없이 제 몫을 해낸다.

글 | 유슬기 톱클래스 기자   사진제공 | ㈜키위미디어그룹 2019-05-29 09:53

그는 올해 한 살 어린 배우 윤승아와 결혼 5주년을 맞았다. 두 사람의 일상다반사는 SNS나 V로그에 기록된다. 팔로어를 늘려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매일 함께 교환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만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작은 일상의 조각 속에서도 그는 퍽 잘 녹아든다. 기꺼이 아내를 돋보이게 해준다. 흑백으로 찍힌 두 사람의 사진을 보다가 알았다. 김무열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그리고 작품을 살리는 배우다. 5월에 개봉한 영화 〈악인전〉을 함께한 배우 마동석은 김무열을 두고 “물 같은 배우다. 자기 역할을 챙기면서도 상대 배우를 맞춰주는 영리하고 좋은 배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처럼 스며들어 작품의 물성을 바꾼다.

한 달 만에 15kg 찌워


〈악인전〉은 개봉 전부터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대됐다는 소식으로 화제가 됐다. 그전에는 〈범죄도시〉를 만든 제작진과 마동석이 다시 의기투합했다는 이야기로 눈길을 모았다. 영화에는 두 명의 악인이 나온다. 폭력조직의 보스 마동석과 연쇄살인마 김성규다. 두 사람은 이미 〈범죄도시〉에서 형사와 깡패로 맞붙은 바 있다. 〈악인전〉의 김무열은 이원태 감독이 선택한 새로운 카드다. 이 두 악인 사이에서 정의라는 ‘달달한 것’을 구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이자 ‘나쁜 놈들의 전쟁’에 끼어든 미친놈이다. 그러나 김무열은 이 고래들의 싸움에서 순순히 등이 터지는 새우가 아니다. 그는 악의 힘으로 악의 힘을 제압하려는 형사이자 책사다. 마동석과 몸싸움을 하는 동시에 연쇄살인마와 수싸움을 해야 한다.

“영화를 앞두고 한 달 만에 15㎏을 찌웠습니다. 동석이 형과 함께 화면에 담길 때 적어도 밀린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기보다는, 밤에 국밥 먹고 경찰서에서 짜장면 먹고 여기저기 막싸움에 몸을 굴리면서 다져진 몸이라는 느낌을 줘야 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찌웠죠.”

치킨이라면 환장하던 그가 이젠 치킨 냄새도 맡기 싫을 정도로 폭식을 겸했다. ‘찌우는 게 빼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다. “30㎏ 정도는 빼거나 찌워도 티도 안 난다”는 마동석은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PT처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동석 형과는 인연이 10년 정도 됐어요. 임필성 감독님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을 때 조연이던 동석이 형을 처음 봤어요. 그 후로도 형이 작품에 나올 때마다 ‘나 저 형 알아’ 하면서 마음으로는 늘 응원했죠. 이렇게 주연이 돼서 만나니 감개무량해요. 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블리’예요. 작품 생각밖에 안 하고,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고요.”

김무열의 다른 별명은 ‘고생 전문 배우’다. 쉬운 영화라는 게 있을 리 없지만, 그가 맡은 배역은 난도가 높았다. 〈연평해전〉이나 〈대립군〉에서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비극을 겪었고, 〈개들의 전쟁〉이나 〈머니백〉에서는 꼬이고 꼬인 상황의 역설을 온몸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최근작인 〈인랑〉과 〈기억의 밤〉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인물을 맡아 회색지대를 살아냈다.

“배우는 기본적으로 기술직이라고 생각해요. 작품과 관객 사이에 선 인물이잖아요. 얼마나 기본기가 있느냐, 얼마나 인물과 싱크로율이 높으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녹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그가 배우로서 내공을 쌓은 건 무대에서다. 안양예고와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를 나온 그는 2002년 뮤지컬 〈짱따〉를 시작으로 ‘포스트 조승우’라 불리며 무대를 휩쓸었다. 2007년에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신인상을, 2009년에는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가 ‘기술직’이며 끝없이 연마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그때 굳어졌다.

고생 전문 배우의 연마술


“전에는 작품을 받으면 먼저 도서관에 갔어요. 관련된 책들을 다 찾아다가 쌓아두고 읽었죠. 지금은 워낙 인터넷이나 유튜브가 잘돼 있어서 웬만한 자료는 다 나오더라고요. 이번엔 형사 역할을 맡으면서 한국 영화에 나온 형사들을 아주 오래된 영화부터 최근 영화까지 찾아봤어요. 선배들이 연기한 형사들의 습관이나 옷차림, 신발 모양새까지 관찰했죠.”

형사의 외양이 아니라 형사의 공기를 알고 싶어 실제 형사들도 만나봤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충청도 형사를 만나 그들의 분위기를 읽었다.

“평소엔 똑같아요. 그냥 우리 주변 아저씨 같아요. 그런데 사건 이야기나 범인 이야기를 하면 눈빛이 달라져요. 거리에 걷는 사람들만 봐도 다 범인 같고, 꿈에서도 범인 잡는 꿈을 꾼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정말 범인을 잡아서 경찰서에 끌고 들어와 ‘잡았슈~’ 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요.”

김무열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현장에 있을 때다. 남들이야 ‘고생 전문’이라고 하지만, 본인으로서는 ‘좋아서 하는 고생’이다. 특히 이번 〈악인전〉 현장은 남달랐다. 적어도 이틀은 걸릴 것이라 예상되던 신들도 반나절이면 끝났다. 호흡이 좋았다.

“처음에는 살인마 K 역할이 저에게 들어왔어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간이 좀 흘러서 형사 정태석 역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형사 역할 역시 도전해보고 싶어서 좋다고 했어요. 나중에 K 역할을 김성규 배우가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됐다 싶었죠. 성규는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캐스팅 소식을 듣고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만나면 그는 이미 K였어요. 손톱을 온통 물어뜯어서 손톱이 안 보일 정도였죠. 상대가 그렇게 몰입해 있으면, 저도 그냥 작품에 젖어들어요.”

함께한 모두와 행복하고 싶다

형사 정태석은 가죽 잠바를 입고 한 시절을 살았다. 지금은 가죽이라면 만지기도 싫을 정도로 한 몸으로 살았다. “현장에서 고생했던 모두와 함께 칸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김무열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그의 아내는 칸영화제 초청 소식을 SNS에 올리며 ‘가문의 영광’이라고 적었다. 영화제가 끝나면 그는 아내와 함께 유럽의 구석구석을 쉬엄쉬엄 돌아볼 생각이다. 집에 있는 강아지들도 함께 데려가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이다. 김무열에게는 늘 ‘함께한 모두와 행복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물처럼 젖어들고, 물처럼 휘몰아쳤다가, 물처럼 잔잔해지는 무해한 남자. 그의 연마가 ‘장인’의 바다에 이르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길 기대해본다.
등록일 : 2019-05-29 09:53   |  수정일 : 2019-05-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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