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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장광효 “화려함 더 빛내는 법은, 심플!”

누구에게나 흐르는 시간이 디자이너 장광효에게선 멈추곤 한다. 그의 표현대로 “옷 속에서 지낼 때”다. 옷을 만들 때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벅차고 행복해서다. 옷을 처음 만진 그날부터 40여 년, 장광효의 디자이너 인생은 여전히 청춘이다.

글 | 이근하 여성조선 기자 2019-05-20 10:16

무슨 옷을 입고 나타날지 은근히 기대감이 들었다. 정작 마주하고 감탄한 건 군더더기 없는 맵시였다. 예순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뱃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는 어떤 옷차림을 해도 꼭 들어맞을 것 같다. 꾸준한 일상을 보내는 덕이란다.

“적게 먹고 푹 자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요.”

관리 비결을 묻는 질문에 뻔한 대답이건만 속내를 들으니 다르게 다가왔다.

“습관이란 게 참 중요해요. 요즘 연예인들 마약이니 뭐니 하지만 그것도 다 습관 때문이지. 처음부터 안 할 수 있는 건데 말이야. 이 생활을 오래하려면 애초에 습관을 잘 들여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 같아요. ‘습관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10대, 20대예요. 비주얼 나이라도 속여야지.(웃음)”

‘디자이너 장광효’를 오래 지키고픈 그다.

국내 남성복 선구자
장광효는 국내 1호 남성복 디자이너다. ‘남성복’ 개념조차 확실하지 않던 시절, 그가 연 브랜드 카루소는 남성복의 시초가 됐다. 남성복은 곧 장광효. 조용필, 소방차, 서태지 등 당대 내로라하는 남자 스타 중 그의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없다. 최근엔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잠시 비쳤을 뿐인데 밤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만큼 화제성도 여전하다.

디자이너를 만나려니 옷 고르기가 부담스럽던데요. 옷을 하는 사람이니까. 근데 나이 드니까 달라요. 젊을 땐 옷을 많이 봤는데 그 비중이 줄더라고요. 옷을 덜 보고 그 사람의 이미지나 내면을 본달까.

‘디자이너 장광효’는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어제 퇴근할 때 직원이 “내일 촬영도 있고 하니까 신경 써서 입고 오라”는 거예요. 근데 너무 신경 써서 입으면 안 어울리거든요. 편하게 입고 왔어요. 이거 다 오래된 옷! 청재킷은 15년 됐고 카디건은 6년, 바지는 5년. 신발만 최근에 산 거네요.

아침마다 의상을 직접 고르시나요? 특별한 일이 있으면 전날 밤에 골라둬요. 그래도 결국 입던 옷만 입지만.(웃음)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입는 게 하루를, 인생을 즐겁게 하더라고요. 다양하고 예쁘게 입는 습관이 필요하긴 하죠.

옷을 만들고 입히는 직업이라 본인 결점 가리는 코디는 누구보다 잘하겠어요. 내가 비율은 나쁘지 않은데 키가 작아서 흐릿하거나 난해한 색은 피해요. 선명한 색을 입어요. 언젠가 여행지에서 저를 알아본 사람들이 “실제론 키가 작네요?”라고 하길래 “원래 작아요. 제가 코디를 잘해서 커 보이는 거예요” 하면서 웃은 기억이 나요.

‘카루소’는 올해 32년 됐는데, 실제 옷을 만든 시간은 더 길죠? 카루소 전에 학교생활, 직장생활 포함해서 40년 넘게 옷을 했죠. 엊그제 같아요. 타임머신 타고 금방 어디 다녀온 것 같은데…. 요즘엔 가끔 겁이 나요. 앞으로 시간은 그보다 짧을 텐데 눈 감을 때 ‘잘살았구나, 열심히 살았구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40년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만큼 초반에 만든 옷도 생생한가요? 기억해요. 캠브리지, 양복을 잘 만드는 회사를 다녔어요. 어떤 디자이너는 학교, 학원을 졸업하고 남성복을 하거나 캐주얼을 하다 남성복을 하는데, 저는 양복을 잘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다 남성복을 했기 때문에 패턴, 실루엣, 원단 등 양복에 관한 한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자부해요.

남성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옷인가요? 말 그대로 여성복의 반대 옷인데 거기에 전통도 있어야 하고, 격도 있어야 하는 옷. 예쁜 걸 넘어서 옷 자체에 책임감, 남성성이 묻어나는 게 남성복이라고 생각해요. 실루엣이 어쩌고 핏이 어쩌고 하는 건 일차원적 이야기고요. 남자가 입는 옷의 의미까지 헤아리면서 만들어야 완전한 남성복이죠. 제 쇼를 보고 남성복 디자이너가 됐다고 말하는 애들이 80~90%예요. 제가 한창 매스컴에 나올 때 그 친구들은 중고등학생이었으니까 ‘희망과 꿈을 실어준 장본인’이라고 자부해요.

왜 하필 남성복인가요? 당시 남성복을 개척하는 선배가 아무도 없어서 나라도 해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이었던 것 같아요. 배운 대로 남성 정장만 해볼까도 고민했는데, 외국에서 봐온 무궁무진한 디자인 중에서 그것만 하자니 나태하게 느껴졌어요. ‘최초’라는 큰 산을 헤쳐서 우리나라 남자들을 이탈리아, 프랑스 남자처럼 바꿔봐야겠다 했어요. 양복을 계속하면서 젠더 룩도 해보고, 아방가르드한 것도 해보고, 디테일한 것도 해보고. 안 해본 게 없어요. 심지어 남자한테 드레스도 입히고 하이힐도 신겨서 무대에 세운 적도 있어요. 외국엔 이런 패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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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를 꽃피우다
눈이 늘 충혈돼 있다. 짧은 거리를 움직이더라도 그 잠깐 동안 스치는 모든 사람을 관찰해서다. 덕분에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그는 눈 끝에서 한 번, 손끝에서 또 한 번 스타를 만들었다.

차승원, 유지태, 강동원… 웬만한 모델 출신 스타는 다 발굴했죠? 대한민국 모델 출신 연예인이라면 거의 백프로.(웃음) 현빈도 고등학생 때 제가 찾아냈고. 이종석은 중학교 2학년 때. 메인 모델 한 명이 쇼 리허설에 늦었는데 딱 종석이가 보이는 거예요. 아는 형 찾으러 왔다며 무대 뒤에서 서성이고 있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워킹 가르쳐서 다음 날 바로 무대에 세웠어요. 까맣게 잊고 살다가 종석이가 토크쇼에서 말하는 걸 듣고 기억났어요. 어느 날은 고개를 숙이고 매장 앞을 내다보는데 지나는 남자애가 눈에 확 들어와요. 몸이 조각이더라고요. “너 모델 하면 좋겠다!” 그렇게 4일을 가르쳐서 모델을 시켰죠. 그게 유지태예요.

눈에 드는 조건이 있나요? 저만큼 남자를 많이 ‘벗겨보고’ 무대에 세운 디자이너는 없잖아요. 아! 벗겼다는 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요.(웃음) 세워보니까 신인이어야 옷이 살아요. 일단 키가 크면 시선이 가고, 그다음엔 얼굴을 봐요. 보디라인과 얼굴이 괜찮으면 가슴이 뛰기 시작해. 내 눈은 걸으면서도 바쁘게 움직여요.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도 많겠어요. 쇼를 할 때마다 1000명을 봐요. 진짜 음악 틀고 런웨이처럼 해놓고 걸어보라 해요. 적으면 3명, 많으면 10명을 뽑아요. 새 얼굴 찾아내려고 엄청 집중해요. 그러니까 눈이 항상 빨갛지. 찾아내면 얼마나 희열이 느껴지는지 몰라요. 찾아서 무대에 세우고 톱모델 되면 졸업시키고. 모델 수명이 길지 않으니까 너 이제 모델 그만하고 배우 하라고 보내요.

뽑는 대로 스타가 되던가요? 에이! 다 안타를 친 건 아니고 한 해에 톱 두세 명 나오면 대성공이에요. 저는 모델을 쇼할 때만 부르지 않아요. 자주 만나서 조언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 한다’ ‘습관이 너의 인생을 만든다’ ‘마음을 항상 청결하게 해야 한다’ 등. 그땐 바로 이해 못 하기도 하는데 좋은 영향은 받게 돼 있어요.
 
예술가 부부의 시너지
장광효의 쇼는 ‘들을거리’마저 장광효답다. 그만의 색이 확실하거니와 길지 않는 시간임에도 여러 감정을 오가게 한다. 음악을 하는 아내를 둔 영향이 크다. 그의 아내는 “빛날 때를 아는 사람, 현명한 여자”다.
 
포털사이트에서 ‘장광효’를 검색하면 ‘장광효 아내’가 연관검색어예요.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가 봐요. 그렇더라고요. 근데 인터넷엔 맞는 정보도 있고, 틀린 정보도 있고. 정년퇴임까지 2년 남은 지방 국립대 음대 교수예요. 주말 부부죠.

매일 보긴 어렵겠어요. 매주 금요일에 올라와서 화요일 새벽에 내려가요. 주말 부부라서 사이가 더 좋아요. 어떤 사람은 안 볼 때 딴짓할 수도 있다는데 나는 아냐, 더 조심하게 돼요. 아내가 없으니까 더욱 집에만 있어요. 집이 사무실 바로 앞이라서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하고 오후 6시면 바로 집으로 가요. 저녁 약속 거의 없어요. 안 잡아요. 아내가 서울에 오면 별장이나 리조트에 온 것처럼 해주고 싶어서 미리 청소하고 이불도 개두고. 고생하고 오는 거니까….

아내 얘기가 나오니까 목소리에 힘이 생기네요. 그런가요?(웃음) 동갑인데 훨씬 깊은 사람, 정말 지혜로운 여자예요. 그에 비하면 저는 즉흥적이고 애나 다름없어요. 디자이너 남편이 뭐 얼마나 좋겠어요. 때 되면 쇼 연다고 하지, 바쁘다고 하지, 돈 없다고 하지. 제가 돈 필요하다고 말하면 잔소리를 하다가도 “통장번호 불러!”라고 해요. 제대로 멋 낼 줄도 알아요. 평소엔 깔끔하고 담백한 모습인데 무대에 설 땐 드레스 딱 입고 아주 화려해요. 뭘 입혀도 다 소화하더라고요.

예술 하는 사람끼리 영감을 주고받기도 할 것 같은데요. 제 쇼의 음악은 다른 쇼와 달라요. 오늘 오전에도 아는 분이 “선생님 쇼 음악은 다른 디자이너와 비교할 수 없어요. 정말 감동적이에요”라고 한걸요. 아내가 클래식을 하니까 소리 없이 오고 간 영향이 있을 거고, 쇼 음악을 고를 때도 남다르겠죠. 좋은 음악 레퍼토리는 흥얼거릴 정도로 섭렵했어요. 음악 때문에 제 쇼에 오는 분도 있어요.

패션 디자이너는 밤을 좋아하고 누구보다 화려할 것 같은데 편견이란 생각이 드네요. 아녜요. 화려해요.(웃음) 여기 작업실 봐요. 엄청 화려하잖아. 집은 더 화려해요, 궁전 같아. 근데 그 화려함을 더 빛나게 하려면 내가 심플해야 해요. 음… 화려하되 건강하고 건전한 삶? 삶이 성실하고 인간적이어야 옷도 그렇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 잘살아야죠.

디자이너로서 지난 삶은 어떤가요. 만족하시나요? 충분히. 만족 안 하면 어쩔 거야. 최선을 다했는데.(웃음) 창작하는 시간은 늘 행복해요. 40년 넘게 시간이 흐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시간만큼은 타임머신 타고 스톱한 것 같아요. 나이를 안 먹어요!
등록일 : 2019-05-20 10:16   |  수정일 : 2019-05-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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