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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주인공, 서울숲 신촌살롱 원부연 대표

존 레논은 말했다. 즐겁게 낭비한 시간은 낭비한 시간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때 그 동아리 토굴은 일종의 ‘살롱’이었다. 동아리방을 열면 언제든 사람이 있었고,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던 이들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에 대해, 연극에 대해, 또 사회와 삶에 대해서….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동이 터오는 날도 있었고,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노래를 함께 부르는 날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연극 동아리 ‘토굴’ 이야기다. 이들이 모이면 지금도 그렇다.

글 | 유슬기 톱클래스 기자 2019-05-01 10:49

토굴 출신의 독립술집 운영자 원부연, 영화 프로듀서 김성우, 스타트업 마케터 김선민, 연극 연출가 전진모 등이 모여 살롱을 열었다. 문화와 사람이 모이는 공간, 서울 성수동에 있지만 이름은 ‘신촌살롱’이다.

“기존에 여러 살롱이 있지만, 신촌살롱이 다른 점은 특별한 멤버십이 없다는 거예요. 다른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점이죠. 회비나 수강료가 있으면 그 자체가 허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직 취향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모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죠.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알고 싶고, 듣고 싶고, 취향을 발견해가는 걸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요.”

 

네 명의 대표는 요일별로 돌아가며 살롱을 지킨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치열하게 토론하고 조율한다. 마치 대학교 시절 조모임을 하듯이 진지한 과정이다. 조율과 토론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거나 상대에게 설득당하는 데도 익숙하다. 원부연 대표는 신촌살롱을 통해 퀄리티 있는 기획과 제대로 된 문화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극장은 주인공이 정해져 있는 공간이라면, 살롱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것들을 주목하려고 해요. 〈영화포스터 B컷 전〉은 영화 포스터로 채택되지 못한 포스터를 모아 보여준 기획입니다. 이 전시의 다른 이름은 ‘Behind But Best’.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것들을 지지한다는 의미였죠. 현재 진행 중인 〈최소의 의자전〉은 여자 목수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자리입니다. 작가와 관객이 허물없이 만나는 공간이자, 친밀성을 높이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으샤으샤'의 힘

〈최소의 의자전〉에 참여한 여자 목수들과 그들의 작품.
원부연 대표는 이미 여러 곳의 독립술집을 운영한 바 있다. 광고 기획자로 10년을 일한 뒤, 취향이 있는 술집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원부술집’, 위스키에 집중한 ‘모어댄 위스키’, 하루키를 좋아하는 취향을 담은 ‘하루키 술집’ 등을 기획했다. 실험적인 술집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팝업술집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경험은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등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취향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면에서는 술집과 살롱이 공통점이 있어요. 다만, 살롱은 콘텐츠를 좀 더 제대로 보여주려고 만든 공간이죠. 잘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공간이 되길 바랐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아쉬웠던 것은 ‘소셜’의 끈이 끊어진 느낌이었어요. 살롱을 통해 그런 ‘소셜’의 ‘으으’한 힘을 다시 느끼고 있죠.”

원부연 대표가 회사를 그만둔 뒤 느낀 건 ‘클라이언트의 브랜드가 아닌, 나만의 브랜드를 위해 일하는 기쁨과 희열’이었다. 회사가 보장해주던 안전지대는 사라졌지만, 덕분에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의 힘을 알게 됐다. 최근 살롱을 찾는 이들의 수요가 많아진 데는 ‘52시간 근무제’의 역할이 컸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회사와 동떨어진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은 이들이 이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 싶어 했다. 내 삶의 주인이자 주인공이 나임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 사람들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살롱을 찾았다.

“술을 먹거나 쇼핑을 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취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멍석을 깔아주는 과정이 필요해요. 살롱이 그 역할을 하는 거죠.”

기획하는 이들의 고민은 이른바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를 잘하는 것이다. 진입 장벽을 낮추고, 누구나 뛰어들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뒤 자신들은 살짝 뒤로 빠지는 게 좋은 기획의 묘다.

“가치에 소비하고, 가치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를 같이 찾아가는 게 살롱의 역할이죠.”

〈최소의 의자전〉은 매거진 《우드플래닛》에서 남자 목수들과 진행했던 ‘최소의 의자’ 아이템을 여자 목수들과 전시로 발전시킨 형태다. 이들은 각각의 목수들에게 ‘최소’라는 개념을 주고 이를 작품으로 어떻게 구현해내는지에 주목했다. 아홉 명의 여자 목수는 전직 건축사, 패션 디자이너, 무용가 등 자신의 일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구 제작을 같이하고 있다. 목공이라는 작업으로 연결된 취향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야기는 곧 《여자목수》라는 책으로 출판될 예정인데, 이번 전시는 일종의 애피타이저다.


인사이트의 선순환

신촌살롱에서 진행한 〈영화 포스터 B컷 전〉. © 원부연
그는 광고 일을 하면서 ‘마음을 읽는 힘’을 배웠다. 이는 그가 연 독립술집에 반영됐다. 독립술집에서 만난 깊은 취향의 사람들은 다음 걸음을 내딛는 데 인사이트가 됐다. 타고난 모험 정신과 탐험 기질에 인생에서 만난 각각의 여정이 연결돼 그의 삶에서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사업이 가장 어려운 점은 데이터가 없다는 거예요. 경험치를 쌓으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직접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술집도, 살롱도 기획자의 경험치가 쌓이는 만큼 다른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들의 경험치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경험과 비례한다. ‘신촌살롱’은 루트임팩트와 함께 진행 중이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을 발굴해서 육성, 지원하는 단체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본업만큼 치열하게 취향을 찾아가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을 통해 얻는 인사이트가 있고요. 자신의 삶에서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꿔가는 체인지 메이커들이 많아요.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주인공만 주인공이 아닌, 누구나 주인공인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심 한가운데,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 ‘서울숲’에 건조한 도시인들의 삶에 한 줄기 활기를 불어넣어줄 살롱이 문을 열었다. 북적일수록 울창해질 이곳은, 즐겁게 낭비한 시간은 낭비한 시간이 아님을 알려주는 비밀의 숲이다.
등록일 : 2019-05-01 10:49   |  수정일 : 2019-05-0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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