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감독의 발견 <미성년> 김윤석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감독 김윤석은 그만큼 신중하고 섬세했다. 불륜을 소재로 여자 넷의 이야기를 담았다. 각 여성 캐릭터의 설정에 빈틈이 없어 ‘남자가 만든 게 맞나’ 싶다. 그에게 장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들어보니 입이 딱 벌어진다. <미성년>을 두고 김윤석은 “굉장히 나를 닮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글 | 임언영 여성조선 기자 2019-04-24 09:43

소재는 불륜이다. 평온하던 일상을 뒤흔든 사건을 마주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 미성년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미성년의 눈으로 성년인 어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영화의 커다란 줄기다. 성년과 미성년 그리고 중년이라는 키워드가 숨어 있다.

# 5년 만에 탄생한 첫 영화
섬세하고 촘촘한 블랙코미디

김윤석은 영화 작업을 하는 내내 “괜찮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 장면은 이래서, 저 장면은 저래서 손을 봐야 할 것 같더란다. 편집기사가 “자기 검열이 심하십니다”라면서 만류할 때가 많았다. 그만큼 모든 작업에 공을 들였다. 배우 출신 감독인지라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주는 에너지가 남다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주연 배우인 염정아는 “원 포인트 연기 레슨을 해줄 정도로 세심하고 섬세한 감독이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언론시사회 끝나고 “당이 떨어졌다”고 했다. 뭐가 안 들어가더라.(웃음) 신인 감독으로 데뷔하는 게 아니라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찔러 질문하시는데 답을 못 하면 안 되니까. 감독인 나는 설명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감독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먼저 듣고 싶다.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연극을 오래하고 연출 경험도 있기 때문에 낯선 작업은 아니다. 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황해> 촬영할 때 하정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다. “형이 먼저 하세요” “네가 먼저 해라” 이야기하다가 정우가 <롤러코스터>를 먼저 개봉했다.

‘감독 선배’ 하정우가 조언도 하던가?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하더라.(웃음)

첫 연출작이라 공을 많이 들였을 것 같다. 어떤 점에 유념해서 만들었나? 만들겠다고 준비 시작하고 5년 만에 영화가 나왔다. 내가 카메라를 알면 얼마나 알며, 장르적인 쾌감이나 개성에 대해서는 또 얼마나 자신 있겠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와 사람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드라마와 배우들 연기만 가지고 가보자 생각했다.

실제로 드라마에 충실한 작품이다. 블랙코미디 요소도 있고. 감정 소모가 심한 영화다.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악당) 같은 악역보다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한 캐릭터를 넣은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너무 어둡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캐릭터에 집중해야 할 때 분노의 파장이 크면 감정이 오염되는 느낌이 들어서 톤을 조절했다. ‘웃픈’ 상황을 많이 집어넣었다.

배우 출신 감독이라는 장점이 발휘된 지점은? 네 배우의 얼굴이다. 우리 중년 여배우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보여주고 싶었다. 외국 중견 배우들 보면 너무 잘하잖나.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우리도 잘할 수 있는데 왜 저런 장면을 안 주지?’라는 생각을 했다. <미성년>에서는 오로지 배우들의 내면에 들어가 승부를 걸도록 장면 구성에 애를 썼다. 내가 배우 출신이라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주연 배우인 염정아가 현장에서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준 섬세한 감독이라고 하더라. 이 역시 배우 출신 감독의 힘 아닌가. 다들 선수들이다. 가만히 놔두면 집중하시는 분들이다. 감독으로서 해줄 것은 동료 배우로 다가가는 것이다. 의미가 바뀌지 않는 한 대사를 바꾸라고 했다. 현장에서 충분히 상의했고, 내가 놓치는 것이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대화할 때 밑천을 드러내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배우들이 센스가 좋은 사람들이다.

연출할 때 참고한 작품이 있는지? 영화가 아닌 연극이다.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작품으로, 유진 오닐의 자전적 이야기다. 2005년 공연에서 막내아들 역할을 했다. 주진모 선배, 예수정 배우와 함께 출연한 3시간 40분짜리 작품이다. <미성년> 작업을 하면서 그 작품을 다시 읽었다. 캐릭터마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참고했다. 빠져나갈 곳이 없을 때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모습을 담고 싶었다.
 
 
본문이미지

# 어른 같은 아이들
아이 같은 어른들

영화에는 어른 같은 아이들, 아이 같은 어른들이 등장한다. 두 명의 엄마와 두 명의 딸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 선 인물이 김윤석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감독 겸 배우로 출연했다. 눈에 띄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네 명의 여자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배우 출신 감독의 철저한 계산이 만든 결과다.

감독뿐 아니라 주인공인 대원 역을 맡았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짠하고 재미있는 캐릭터인데 비중이 많지 않다.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원이라는 한 인물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익명성을 띠길 바랐다. 그래서 이름도 대원이다. 집단을 만드는 구성원을 대원이라고 부르지 않나. 대원이 할 수 있는 대사는 “미안하다” 말고는 없다. 대원을 전면에 놓으면 불륜 드라마의 전형을 닮아갈 수밖에 없어서 밖으로 빼버렸다.

여성 캐릭터가 모두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놀랐다. 도전이고 공부였다.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함께 작업한 작가가 여성이고, 우리 집사람, 아이들이 여성이라서 도움이 됐다. 주인공인 염정아 씨가 혼자 통장을 꺼내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남편인 대원 명의로 된 집문서도 등장한다. 그 장면을 편집하면서 들어낼까 생각했는데, 아내가 절대로 들어내지 말라고 조언했다. 여자로서 현실적인 느낌이 확 오는 것이라더라. 아이 돌반지를 물끄러미 보는 장면, 가슴에 모유가 배어나오는 장면은 내가 직접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들이다.

염정아, 김소진 배우를 캐스팅한 배경은? 주어진 상황에서 분노를 삭이고, 참고, 그러면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에 두 명의 배우가 적역이었다.

얼마 전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화제로 염정아의 인기가 치솟았다. 주연 배우의 인기를 지켜보는 감독의 마음은 어땠나? ‘땡큐’ 아닌가?(웃음) 마음 한쪽에서는 ‘내 걸로 포텐을 터트려야 하는데’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스카이캐슬>에 나온 (김)혜윤이도 오디션을 통해 <미성년>에 나왔는데, 분량이 적어서 어떡하나 했다.(웃음) 영화는 드라마보다 훨씬 먼저 찍어서 아무 관계가 없다. 사실 한창 후반 작업할 때라 <스카이캐슬>을 제대로 못 봤다.

신인 배우 두 명은 4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뽑았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다. 신선한 얼굴이 필요해서 처음부터 신인 오디션으로 뽑을 생각이었다. 500명이 지원했는데, 연기자로서 자질이 좋은 분이 많았다. 서툴지만 뭔가를 흉내 내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뽑았다. 지문처럼, 자기 목소리를 서툴지만 내뱉으면 그것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기 목소리가 된다. 그렇게 김혜준, 박세진 배우를 뽑았다. 크랭크인 한 달 반 전부터 모여 연습을 했다. 연습 끝나고 밥 먹고, 맥주도 한 잔 마시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관계를 허물었다. 42회 차를 두 달 만에 찍어야 해서 신인 배우들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성년>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이다. 서른 번 결말을 고쳤다. 다양한 버전을 고민하다가 신인 감독일 때 아니면 못 하겠다 싶어서 “그래!” 하고 지금의 장면을 넣었다. 중학교 2학년생인 막내딸에게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봤다. “뜨악했어. 근데 그건 내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답 중 하나야”라고 대답하더라.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손익분기점을 넘겨야 데뷔작이 은퇴작이 안 된다.(웃음) 용감하고 과감한 영화다.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네 명의 배우들 모습이 너무너무 자랑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는 그 사람들 표정에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뛰어난 배우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등록일 : 2019-04-24 09:43   |  수정일 : 2019-04-23 17:25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SNS 로그인
  • 페이스북 로그인
  • 카톡 로그인
  • 조선미디어 통합회원 로그인
  • pub 로그인
댓글을 입력해주세요.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