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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소리 내어 읽어 드릴게요

시인 김현

정기 낭독회, 시 처방전, 북 DJ. 조금은 생경하게 느껴지는 누군가의 일들을 나열해본다.
기존의 형태를 살짝 비틀어 새로운 개념의 콘텐츠를 제 옷처럼 걸친 이는, 시인 김현이다.
그가 이끄는 이 새로운 일들의 기반은 책이다. 책으로부터 기인한 낯섦이다.
그는 문학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을 통해 이용자들의 사연을 받아 시를 처방하고, 수요일 밤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한데 모인 이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스스로를 악기 삼아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글들을 음성으로 연주한다.
시인의 이 같은 활약은 좁게는 ‘시’라는 장르에, 넓게는 ‘책’이라는 물성의 사물에 사람들을 가 닿게 한다.
왕성하게 신작을 발표하면서도 이 근사한 딜리버리 서비스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맙게도.

글 | 염은영 에디터   사진 | 정치호 작가 2019-04-11 09:36

‘김현 시인의 바쁨’은 책 좀 읽는다는 분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죠. 지난 겨울에 출간된 시 처방전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가 증거지요. 그 많은 사연에 시 처방전을 직접 쓰셨다니요.

“시를 고르고 처방전을 쓰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한 번도 싫었던 적은 없었어요. 아쉬운 마음이 더 컸죠. 시요일을 통해 접수된 사연들이 많으면 한 달에 200여 편, 적을 때도 100여 편이었거든요. 제가 쓴 글은 20편밖에 되지 않으니, 극소수의 분들께만 시 처방을 해드린 셈이죠. 선정되지 않은 사연 중에는 아직까지도 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들도 여러 편이에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잠시 미뤄놓은 사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책이 시리즈처럼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얼마나 귀해요, 그분들의 이야기가요.”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에 시인의 시는 없었어요. 사연을 읽으면서 시인의 시가 떠오르는 것들도 더러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 시는 작가의 말에 살짝 넣었어요. 이 책이 사연, 처방전과 처방시로 이뤄져 있잖아요. 그래서 작가의 말도 동일한 느낌이 나면 좋겠다 싶었어요. 개개의 사연마다 제 시를 떠올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다른 시인들의 좋은 시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좋은 시와 시인들이 정말 많거든요.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분들을 이 기회에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할까요. 특히 여성 시인들의 시를 부러 찾아 넣었죠.”

좁게는 시, 넓게는 책 전달자로서 활약이 눈에 띕니다. 북 DJ와 정기 낭독회를 4개월째 꾸준히 진행하고 있지요.

“시켜서 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에요. 정말 좋아서, 저라는 시인에게 부여된 일 같아서 신나게 하고 있어요. 저는 낭독하는 일이 너무 너무 좋아요.(웃음) 눈으로 글을 보는 것과 소리 내어 읽는 것은 정말로 다른 맛이 있어요. 글의 해석을 다르게도 하죠. 서울국제작가축제에 갔을 때, 제가 좋게 읽었던 번역 시를 저자가 실제로 낭독하는 걸 봤어요. 희곡처럼 쓰인 시였는데, 저는 시에 등장하는 여왕이 굉장히 카리스마 넘치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읽었거든요. 근데 시인은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거예요. 귀엽고 발랄하게요. 읽어서 가능한 해석도 있지만, 소리 내야 가능한 해석도 있는 것 같아요. 그 다름을 체험하는 일이 낭독의 재미일 거예요.(웃음)”

시인은 새로운 일에 자신을 맡기는 데 주저함이 없으시죠. 앞서 언급한 활약 외에도, 새로운 글을 쓰는 데도 열심이십니다. 최근엔 소설을 발표하셨어요.

“해방촌 문학서점 고요서사에서 ‘세상에 발표한 적 없는 소설을 배달한다’는 콘셉트의 ‘시작하는 낭독회’를 시작했어요. 서점을 배경으로 한 작가들의 신작을 발표하는 것인데, 저는 두 번째 작가로 참여했지요. 시 외에 다른 글을 쓸 때는 나름의 룰이 있어요. 같은 방식의 글을 쓰지 말자는 것이에요. 앞서 발표한 산문집들도 각각 다른 점들이 미미한 듯 명확해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어떤 직위를 부여받으면 그 일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잖아요. 이를테면, 시인은 시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든가 하는. 특정한 이름으로 한 사람을 제한하죠. 저는 시인이지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시도, 소설도 왕왕 쓰던 사람이었어요. 전방위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가능성이 제한된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시인의 소설집이 나올 수도 있겠어요.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요. 큐큐 출판사의 두 번째 퀴어 소설 앤솔로지에 참여하게 됐고, 페미니즘앤솔로지에도 소설 한 편을 발표할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소설집으로 묶어 낼 날도 오겠죠. 지금으로서는 그저 새로이 주어진 작업들을 의미 있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야 더 다양한 글쓰기 작업들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희곡도 꼭 쓰고 싶거든요.”



예전에 영화(단편영화 〈영화적인 삶 1/2〉)도 발표하셨죠. 영화에 다시 도전하실 것 같은 뉘앙스입니다.

“그럼요. 너무너무 하고 싶어요, 영화.(웃음) 가끔 캐스팅을 위해 배우 정보를 얻는 사이트에 들어가곤 해요. 머릿속 시나리오를 떠올리면서 가상 캐스팅을 하려고요.(좌중 폭소) 해보면 너무 재밌고, 좋고, 혼자 엄청 디테일한 설정을 부여하면서 현장에서 어떻게 디렉팅하면 좋을지까지 상상해요.”

올해로 등단 10년을 맞았고, 그 시기를 축하하기라도 하듯 시집 번역 출간 제안을 받으셨죠.

“한국 문학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영문 웹진 〈나빌레라〉에 《글로리홀》과 《입술을 열면》에수록된 시를 포함해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어요. 그 시들을 우연히 본 ‘시걸북스Seagull Books’로부터 시집 번역 출간을 제안받았고요. 시걸북스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퀴어 문학시리즈 ‘프라이드리스트Pride List’ 중 한 권으로 첫 시집 《글로리홀》이 소개될 예정이라고 해서 정말 기뻤어요. 시집 전체가 번역되는 일도 드무니까요. 늘 꿈꿔오던 일이 벌어진 거죠.”

시인의 일을 꾸준히 해왔기에 누릴 수 있는 경사라고 믿습니다. 오랫동안 적을 둔 분야에서 의무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의무나 역할보다는 시나 문학을 가지고 동료들과 뭘 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를 종종 생각해보는 것 같아요.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원고료를 주지 않는 잡지 청탁은 거절해도 된다는 것 정도예요. 바라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 장의 변화를 고민하는 동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거예요, 그 속에 저도 포함되고요.”

가장 먼저 만나게 될 신작은 무엇인가요?

“산문집이 될 것 같아요. 〈시사인〉,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묶어서 봄날의 책을 통해 출간할 예정이에요. 늦어도 가을엔 새로운 책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된다면 인물 논픽션 ‘이 사람’ 시리즈로도 만나뵐 수 있을 것 같고요. 감사하게도 올 한 해도 바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아요. 기쁘고요, 또 기쁩니다.”

김현
2009년 《작가세계》 시 부문 신인상으로 데뷔했다.
시집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김현 시선》과 산문집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를 펴냈다. 두 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으로 제 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고, 마르지 않는 성실함과 창작열로 등단 이후 가장 왕성한 오늘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시집 두 권과 산문집, 소설집 등 출간 예정인 작품만 다섯 권이 넘고, 대학 시절부터 좋아했던 영화 만드는 일을 언젠가 꼭 다시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다.
글을 목소리로 전하는 일을 기꺼워한다.

염은영은 책과 영화의 이야기를 글로 매만지던 사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에디터였다.
따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꺼워한다.

정치호는 기자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디자인 그룹 엇모스트의 대표다.
사람들의 진심 어린 ‘민낯’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
등록일 : 2019-04-11 09:36   |  수정일 : 2019-04-1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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