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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장에서 드라마 거장으로, 박찬욱 감독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영화계 거장 박찬욱 감독의 첫 드라마.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영한 <리틀 드러머 걸>의 감독판이 공개된다. 3월 29일 전 세계 최초 공개를 앞두고 진행된 시사회에서 박찬욱 감독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총 6편 중 1, 2편을 본 직후였다.

글 | 임언영 여성조선 기자 2019-04-10 09:42

“박찬욱 감독의 놀라운 TV 데뷔” “모든 것이 찬란하고 아름답다. 스파이물에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리시하면서 관습적이지 않은 표현들이 녹아들었다” “감각적이고 미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는 드라마” “올해 최고의 TV 드라마 중 하나. 박찬욱 감독은 우리를 전혀 실망시키지 않았다” 등. 2018년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영한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 걸>을 두고 세계 언론이 내놓은 평이다.

방영 당시 인기를 끈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되어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 요원들의 숨 막히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다. 허름한 연극 무대와 냉혹한 오디션장을 전전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찰리는 평범한 삶에서 일탈을 꿈꾸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현실 세계의 스파이라는 일생일대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은밀히 침투해가는 여정은 기존에 만나지 못한 신선한 설정이다.

한편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의 전설로 불리는 비밀 요원 ‘가디 베커’는 정체를 숨긴 채 찰리에게 접근해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인물이다. 찰리를 스파이로 훈련시키는 임무와 그녀를 향한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디 베커는 찰리와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이끈다.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뮤즈로 떠오른 플로렌스 퓨와 지난해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실험실 보안책임자 역을 맡은 마이클 섀넌이 정보국 고위 요원으로 출연해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다.

3월 29일 왓챠플레이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리틀 드러머 걸:감독판>은 조금 더 ‘박찬욱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이다. 방송심의 기준과 상영시간 제한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제외된 장면들이 살아났고, 음악과 색, 카메라 앵글 등 모든 면에서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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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드러머 걸> 촬영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플로렌스 퓨가 포옹하고 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TV 드라마를 하고 싶어서 이 작품을 만든 건 아니다. <리틀 드러머 걸>을 하고 싶어서 TV라는 형식이 따라왔다. 원작인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보면 아는데, 내용이 풍부하고 굉장히 두꺼운 책이다. 이것을 영화로 옮기려면 (내용을) 다 쳐내고 인물들을 없애거나 축소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 흥미로운 인물들이고 유럽의 극좌파, 테러리스트도 하나하나 중요했다. 6개 에피소드도 많이 줄인 거다. 원작을 원 없이 하겠다면 10개 정도면 좋을 뻔했다.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 꽤 많다. <올드보이>는 일본 만화고, <공동경비구역 JSA>는 한국 소설, <박쥐>는 각색이라고 하기엔 좀 멀어졌지만 소설 <테레즈 라캥>을 많이 바꿔서 만들었다. <아가씨>도 영국 소설이다.

이번 작품은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 각색했나. 원작을 읽고 제일 좋았던 건 첩보 스릴러인 동시에 로맨스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를 매료시킨 특징이 사라지지 않게, 그것이 다른 것에 압도되어서 희석되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추격전이나 총격전 등 흔한 첩보 스릴러의 자극적인 요소에 묻히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소재를 다루기가 어렵진 않았나. 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낯선 소재가 한국 관객에게는 어떻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나도 잘 모르던 이야기다. 문학이나 영화, TV의 좋은 점이 그것을 통해 모르는 세계를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전혀 관심도 없고 모르던 팔레스타인 분쟁을 소설을 읽고 알았다. 이후 관심이 생겨 관련 뉴스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책이나 다큐멘터리도 찾아보았다. 내가 겪은 과정을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도 가길 바란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되풀이되는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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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정부 최초로 아크로폴리스 밤 촬영 허가
영국·그리스·체코 3개국 로케 촬영, 한국과 세계 정상급 스태프 협업

<리틀 드러머 걸>은 세계 정상급 스태프들의 협업으로 만든,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영국, 독일, 그리스, 이스라엘 등 국제를 무대로 한 첩보전을 담기 위해 영국, 그리스, 체코 3개국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그리스 정부 최초로 아크로폴리스 밤 촬영 허가를 받아내기도 했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이끌리는 로맨틱한 장소이자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순간을 마법과 같이 완성했다. 1970년대 생생한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체코 건축물들을 찾아내고, 영국 런던의 폐쇄된 기숙학교를 개조해 뮌헨 올림픽 빌리지를 촬영하는 등 방대한 로케이션 결과물은 작품에 생명력을 더했다.

시대 배경이 1979년이다. 원작에서는 1980년대 초인데, 드라마에서는 1979년으로 옮겼다. 작가 동의를 얻은 부분이다. 유럽 극좌파 테러조직이 붉은 여당, 팔레스타인 조직과 연계해 많은 사건을 저지른 시기가 1970년대다. 존 르 카레가 많이 취재한 시기도 그때다.

스타일리시한 미감이 눈에 띄고, 기존 첩보물과 달리 강렬한 색이 많이 등장한다. 시대 분위기를 어떻게 살릴지, 미술감독과 많은 대화를 했다. 1970년대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히피 느낌이 나는 보헤미안 룩 등 자유분방한 것들이 눈에 띄는데, 1979년은 198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라 독특한 뭔가를 찾아보자고 접근했다. 자동차, 전화, 녹음기, 도청장치 등 요즘엔 볼 수 없는 구식 아날로그 향수를 자극하는 소품을 많이 등장시켰다.

미술감독의 역할이 컸을 것 같다. 나에게 미술감독은 중요한 문제다. 이번에는 시대배경도 있어서 특히 중요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예전부터 꼭 함께 일하고 싶던 마리아 듀코빅 감독과 일한 것이 행운이다. 영국 프로덕션과 처음 회의할 때부터 미술감독은 그 사람을 요청했다. <이미테이션 게임> <디 아워스> <빌리 엘리어트> 등 좋은 영화를 많이 한 감독인데, 취향과 의견이 잘 맞아서 행복하게 일했다. 즐거운 추억이다.

유럽 전역을 무대로 했다. 촬영 현장은 어땠나. 로케이션 촬영은 재미있지만 어려운 문제였다. 작품에는 이스라엘, 레바논, 유고슬라비아 등 여러 나라가 나오지만 실제로 돌아다니면서 찍을 수는 없어서 영국, 그리스, 체코 세 나라의 도시 몇 군데를 영리하게 포착해서 촬영했다. 제작비 측면에서는 이동거리를 줄이는 게 중요한 문제다. 최소한의 이동으로 어떻게 다양한 지역 색을 표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현지 스태프들과 문화 차이는 없었나. 촬영감독과 프로듀서만 우리나라 사람이고, 나머지는 주로 영국인이다. 영화인은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일해보니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얼마나 유능하냐가 중요할 뿐이다.

드라마 시리즈물과 영화 작업의 차이점도 궁금하다. 요즘은 바뀌는 추세이지만 아직 한국에서 촬영 횟수는 영미권에 비해 감독에게 많이 주어지는 편이다. 6시간이 넘는 분량의 드라마를 80회에 촬영했다. 제작비의 한계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을 찍을 때만도 못 한 촬영 횟수로 세 편 분량을 만드느라 어려웠다. 이동도 많고, 새로운 나라에 가면 현지 스태프와 일하느라 호흡을 맞추고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김우형 촬영감독이 순발력 있게 움직여서 촬영 횟수를 초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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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드러머 걸> 스틸컷

# 모든 디테일이 달라진 감독판 만족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생각은 긍정적

이번에 공개되는 감독판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 의도가 온전히 담긴, 차별화된 결과물임에 분명하다. 박찬욱 감독은 “<리틀 드러머 걸:감독판>을 제약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자 내 작품을 가장 좋아할 사람들에게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왓챠플라이”라며 새로운 시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감독판은 TV에서 왓챠플레이로 플랫폼이 바뀌었다. 플랫폼이 달라진 것도 후반 작업에 반영했나. 영국에서는 에피소드 한 개씩, 미국에서는 두 개씩 묶어서 방영했다. 왓챠플레이에서는 한꺼번에 공개하니까 원하는 사람은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시리즈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서 보는 시청 방식이 많지 않나. 밤새 보거나 주말에 몰아서 보는 게 가능하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한 회가 끝날 때 ‘다음 회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한 번에 보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독판은 방송 버전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분은 둘 다 봐도 ‘뭐가 다른 거예요?’ 할지 모른다.(웃음) 꼼꼼히 집중해서 보면, 같은 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디테일이 다르다. 편집 자체가 다른 경우도 있고, 똑같은 편집인데 테이크가 다른 경우도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연기와 방송국이 좋아하는 연기에서 의견 차이가 있기도 했다. BBC는 폭력 묘사에 대해 엄격하고, AMC는 노출과 욕설에 엄격했다. 내 입장에서는 못 하는 거다. 그걸 알고 찍었기 때문에 심하게 자극적인 장면은 없는데, 찍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후반 작업을 많이 한 만큼 결과물에도 만족하나. 물론. 작년엔 정신없이 편집해서 방송하느라 바빠서 아쉽게 생각하는 편집도 있다. 이번에는 그걸 내 뜻대로 돌려놓은 것에 의미가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만지니까. 영화나 드라마는 만질수록 좋아지고 점점 세련되어진다. 방송은 상영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몇 분 안에 끝내야 하는데, 그런 것에서 자유로워진 것도 좋다. 사운드도 많이 발전한 데다 색 보정까지 해서 훨씬 좋아졌다.

드라마의 생명은 엔딩신이다. ‘박찬욱의 엔딩’은 어떤 특별함이 있나. 에피소드를 마무리 짓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드라마는 다음 회를 보게 해야 하니까 더욱 중요한 문제다. 각색할 때부터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각 에피소드 마무리마다 새로운 대상을 만나게 했다. 단순히 궁금한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성장 드라마라고 볼 때 성장 과정에서 고비마다 마주치는 중요한 사람이나 계기, 무엇인가를 짚어주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내 생각에는 에피소드 4화에서 마무리가 좋다. 5화가 좋은가?(웃음)

큰 스크린으로 보니 모니터로 보기엔 아까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로 재편집할 생각은 없나.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다만 시간을 줄이면 희생이 클 것 같다. 작품이 훼손될 것 같다는 말이다. 애초에 영화도 생각해봤지만, 그때도 이미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에피소드 3, 4, 5, 6편으로 갈수록 점점 더 재미있다. 1, 2편이 기대만 못 하더라도 참고 보시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등록일 : 2019-04-10 09:42   |  수정일 : 2019-04-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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