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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55% 화상, K-9 자주포 생존자 이찬호

“과거의 나로 돌아가지 못해도… 이젠 괜찮아요”

2017년 8월 끔찍하리만큼 처참한 폭발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목숨을 부지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기엔 통증의 흔적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온몸에 역력했다. ‘K-9 자주포 폭발사고’ 피해자 이찬호는 알고 있다.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래서 담담해졌다. 최근 출간한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는 스스로 되뇌는 위로와도 같다.

글 | 이근하 기자   사진제공 | 안규림 2019-03-20 09:49

K-9 자주포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군인 7명이 K-9 포사격 훈련을 받던 중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나 3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한 큰 사고였다. 40톤짜리 화포는 두 동강이 났고 주변 모든 문이 찢겨나갔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이찬호 병장은 생존자 가운데 가장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온몸의 55%가 불타버렸다. 183㎝에 83㎏인 체구가 한순간에 66kg까지 줄었을 정도다. 사고 흔적은 지우기 어려운 흉터로 남았다.

죽음을 결심한 적도, 죽을 뻔한 적도 수차례.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에게 지난 1년의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진 건 그래서였다.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지만 아파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달라진 모습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해답은 ‘기록’이었다.

“사고를 겪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어요. 침대에 누워 있을 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모든 걸 더 찬찬히, 깊숙이 바라보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무심코 지나치던 것들도 다시 보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안 괜찮은’ 걸 인정하니 괜찮아지더군요. 이를테면 ‘과거의 나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 같은 거…. 그렇게 지금의 나에게 순응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내용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기록하기보다 지워내고 싶지 않았느냐고 묻자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기록을 택했습니다. 기억함으로써 잊는 방법도 있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증거”

그는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에서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증거”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흉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한다. 자신의 책이 흉터를 가진 누구에게나 위안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사람은 누구나 흉터를 가지고 있어요. 안 보일 수 있겠지만요. 그래서 이 책은 제 이야기만이 아니라 누구나의 이야기예요. 용기, 위로가 필요한 누구나의 이야기….”

일관되게 초연한 표정이었다. 울긋불긋한 손등을 내보이더니 “만져봐도 된다”며 미소 짓는 얼굴엔 편안함이 묻어났다. 그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데는 가족의 힘이 컸다.
“자살하고 싶어도 움직일 수조차 없었어요. 온몸이 붕대로 감겨 있을뿐더러 살짝 일어나려고만 해도 픽픽 쓰러졌으니까요. 제 옆을 가족들이 온종일 지켰어요. 아버지와 형은 퇴근하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와서 말동무가 돼줬죠. 유난히 말 없고 감정 표현이 서툰 아버지였는데 요새 들어 제게 사랑 고백을 자주 하시네요.(웃음) 어머니는 한 번도 울지 않으셨어요.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당신이 울면 안 될 것 같으셨대요.”
사고 이후 그의 일상엔 제약이 많아졌다. 짧은 외출마저 빛이 많은 낮시간엔 허락되지 않는다. 피부 착색을 우려해서다. 여름철은 더 고역이다. 땀구멍이 손상되어 노폐물 배출이 불가능해 체온 조절과 같은 피부 주요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도 여전하다. 터널이나 엘리베이터 등 밀폐된 공간에선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폭발음이나 물체가 터지는 형상에도 공포감이 든다고 했다.
가만히 서 있는 자세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부동자세를 유지할 경우 따가움과 저릿함이 몰려온다. 소변을 볼 때조차 약간 움직여야 한다. 마음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무리다.

“서 있는 게 너무 힘들어서 노약자석에 잠시 앉은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제 사정을 알 리 없으니 시선이 쏠리더군요. 눈 돌아가는 소리가 느껴질 정도였어요. 자연스럽게 대중교통을 멀리하게 됐죠.”

샤워기 수압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적도 있다. 물줄기가 피부에 닿자마자 전해지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는 “지금은 괜찮은데 그때만 해도 ‘졸졸졸’ 흐르는 물에 씻었다”고 회상했다.

“아, 로션! 화상이 생기고 로션 값이 엄청 들어요. 피부가 건조하고 가려워서 온몸에 수시로 발라야 하거든요. 그 돈 무시 못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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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배우 꿈’, 잠시 내려놓기로

유쾌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가던 그도 이따금 감정이 흔들리는 때가 있었다. 꿈을 이야기할 때였다. 그는 올해 스물여섯 살이다. 사고 당시 스물 넷, 전역을 8개월 앞둔 병장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꿈꿔온 배우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가슴 벅찬 시절이기도 했다.

“열다섯 살, 길거리 캐스팅을 계기로 이듬해 연기학원에 다녔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대학교에선 연기를 전공했고요. 배울수록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TV를 보면서 ‘나도 꼭 영향력 있는 좋은 배우가 돼야지’라고 다짐했었죠. 몸과 얼굴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젠 뭐… 외모가 전부는 아니라지만 연기란 표현과 선택의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목표를 내려놓는 데 대한 안타까움은 그의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얀 스케치북에 작품을 그려야 하는데 이미 흉으로 얼룩인 종이에 그리려니 그려지나….”

사고 이후 영화를 보는 태도도 달라졌단다. 이전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배우의 호흡, 연기력, 의상, 배경음악, 촬영기법 등에 집중하고 기억하려 했다면 지금은 영화 자체에 몰두한다고. 낯선 자신에게 익숙해지는 그만의 방식이다. 

그는 잠시 꿈을 묻어두기로 했다. 배우보다 먼저 ‘보통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취업을 고민하고, 뜨겁게 연애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꾸릴 가정을 기대하는 여느 20대가 되는 게 우선이다.

“친구들의 흔한 고민이 제겐 사치가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제가 나온 기사의 댓글을 챙겨 보는데 100개 중 한 개는 꼭 악플이에요. ‘흉하다’ ‘너무 많이 나오는 것 아니냐’ 등. 그런 걸 보면 평범한 사람과 같이 고민하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신경 쓰이죠.”

열 차례 이상 남은 수술을 모두 받아야 하는지도 또 다른 고민거리다. 회복 기간까지 합치면 1년에 가능한 수술 횟수는 최대 다섯 번. 앞으로 2~3년 동안 수술과 회복을 반복해야 한다.

“모든 수술을 거치면 겉모습은 나아지겠지만 그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30대가 되는 거잖아요.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크지 않을까 걱정돼요. 아직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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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끊임없는 고민 속에서도 분명한 건 있다. 사고 이후 받은 온기를 나누겠다는 확고한 의지다. 그는 지난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3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인들을 포함해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봉사하고 싶어요.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입니다. 꿋꿋이 살아가는 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는 특별한 사진전을 기획 중이다. 흉터, 아픔 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려 한다.

“흉터가 결코 흉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누구나 상처가 있고, 상처가 아문 흔적이 바로 흉터니까요.” 문득,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받은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흉터가 아름답게 나왔으면 합니다.” 몸 절반을 덮은 뜨거운 자국이 그만의 예술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마친 뒤 “오늘 참 춥지 않아요?”라는 물음에 재치 넘치는 답변이 돌아왔다.

“에이, 저는 한 번 불타봤는데요 뭘. 하하.”

그는 이미 누구보다 평범한 20대였다.
등록일 : 2019-03-20 09:49   |  수정일 : 2019-03-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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