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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보리밥 김정옥 회장 공짜 밥이 일으킨 기적

누구나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주막보리밥 김정옥 회장은 “밥 먹고 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에게 밥은 단순히 ‘식사’가 아니다. 나눔이자 정이고 염려다. 행여 굶을까 봐 주린 배를 쥐고 식당 앞에 서서 망설이는 이를 잡아끈 세월이 20년이다.

글 | 박지현 여성조선 기자

초가삼간이 따로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서삼릉 골짜기, 그곳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한자로 ‘주막(酒幕)’이라고 적힌 청사초롱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만큼 허름하고 작은. 그 앞을 지나던 나그네가 ‘뭐하는 집인고’ 해서 들러본 게 시작이었다. 무엇의 시작이냐고? ‘대박집’의 시작. 

“간판 달 돈도 없었어요. 플라스틱도 아니고, 아크릴 있잖습니까. 그걸로 조악하게 만든 청사초롱에 ‘주막(酒幕)’이라고 한자로 두 글자를 써서 매달아놨어요. 33㎡(10평)쯤 됐으려나. 월세 내는 임대 가게였는데, 천장도 낮아서 머리를 한참 숙이고 들어와야 했어요. 거기서 살림도 같이 했고요. 어느 날 누가 들어오더니 뭐하는 집이냐고 묻더라고. 보리밥집이라고, 한상 차려줬지요.”

20여 년 전 첫 손님의 기억. 아직도 생생하다. 맛있게 먹었다며 돌아간 그 손님은 이튿날 지인을 데리고 왔다. 그 지인은 맛집을 발굴했다며 또 다른 손님을 데리고 왔다.
 

베풂의 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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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 좋았다. 김 회장은 “운이 좋아 입소문이 빨리 났다”고 했지만, 보아 하니 그곳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제가 어려운 사람 심정을 잘 알아요. 저 또한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기도 해요. 주막이라는 이름을 쓴 건 그런 이유였어요. 힘든 사람, 피곤한 사람 부담 없이 쉬다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그네들 쉼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무전취식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일부러 문을 활짝 열어두고 행인에게 “밥 먹고 가시오” 했으니 입소문이 날 밖에. 워낙 골짜기에 위치한 터라 겨울철엔 그마저도 발길이 끊기곤 했단다.

“아주 좁은 길에 버스 노선도 없던 곳이었거든요. 눈이 많이 오면 자가용이 올라오기도 힘들었어요. 그런 날은 준비해놓은 음식을 못 파니까 주변에 골프장이며, 어디며 일하시는 분들 모시고 와서 식사하고 가시라고 하곤 했지요.”

돌이켜보면 ‘베풂’은 집안 내력이었다.

“저 학교 다닐 때는 ‘분식의 날’이라고 있었어요. 학생들이 분식을 싸오는 날이에요. 짝꿍 집이 무척 가난했는데, 그 친구한테 분식은 사치였죠. 빵을 못 싸오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가 그걸 아시고 짝꿍 빵을 따로 싸주셨는데, 내 빵과 친구 빵 소를 일부러 다르게 싸주셨어요. 소가 같으면 저희 집에서 얻어 온 게 티 난다고요.”
 

사즉생의 마음으로 일군 가게

1999년, 주막보리밥은 김 회장이 벼랑 끝까지 갔을 때 ‘사즉생’의 심경으로 연 가게다. 가게를 열기 전에는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1등을 놓치지 않아 ‘보험계의 신화’로 불릴 때도 있었다.

“설계사 3년 만에 집을 한 채 샀을 정도니까요. 소장 자리까지 갔어요.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6개월 입원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도 안 되고, 무조건 아물 때까지 쉬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사이 제가 관리하던 직원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 거죠. 몸은 몸대로 힘들고 리듬이 완전히 깨져버린 거죠. 그렇다고 일을 놓을 수는 없으니까 영업하면서 이어오던 걸 무리하게 돈으로 메운 거예요. 상황이 점점 악화되더니 결국 사금융까지 손을 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죠.”

결국 사표를 썼고, 직장을 잃었다. 빚과 악만 남았다. 돈은 잃었지만 나까지 잃을 순 없었다.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마침 남편도 퇴직했던 터라 일어설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길로 가게자리를 알아봤고 싼 곳을 찾다 보니 서삼릉까지 흘러간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메뉴를 보리밥으로 한 게 신의 한수였어요. 재밌는 건 메뉴를 정하고 나서 가게를 알아본 게 아니라 가게를 구하고 메뉴를 정했다는 겁니다. 가게가 워낙 허름하니까 수수한 보리밥이 딱 어울리더라고요.(웃음) 어릴 적 엄마가 차려주신 보리밥이 기가 막혔거든요. 그걸 살려보자 싶기도 했고요. 어쨌든 어쩔 수 없이 가게에 메뉴를 맞춘 건데, 이후 웰빙 바람이 불면서 붐이 일어난 겁니다.”
 

손님과 함께 꾸려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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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들러 ‘공짜밥’을 먹는 사람보다 그 맛에 반해 다시 찾는 이들이 차츰차츰 많아졌다.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가게는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4년 만에 ‘내 가게’가 생겼다. 서삼릉에 본점을 두고, 서오릉에 직영점을 오픈한 것. 한동안 두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며 운영했다. 새벽에 서오릉에서 모든 식재료를 준비한 뒤 음식 맛이 변하면 안 되니 재빨리 서삼릉으로 나르는 일을 1년간 했다.

“서오릉에서 서삼릉에 갔더니 벌써부터 줄을 길게 서 있기에 ‘같은 가게니까 서오릉으로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웬걸요. 손님들이 안 움직여요. 본점에서 먹겠다는 거죠. 단골손님은 제 얼굴을 아니까 2호점을 냈냐면서 따라오시는데 처음 온 분들은 그저 그 앞에서 줄을 계속 서 있었어요. 그때 느꼈습니다. 아, 손님은 와주시는 거지, 내 손으로 끌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저 묵묵히 열심히 해야겠구나.”

그러던 어느 날, 서삼릉 지점 집주인이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보고는 가게를 빼라고 하더란다. 쫓겨나다시피 서오릉으로 본점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김 회장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시기였지만, 내 가게가 생겼다는 이유에서 낙담보다 희망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때 하루에 2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습니다. 단골 중에 의사가 한 분 계셨는데, 한 날은 제 몰골을 보더니 ‘당신 이러다 죽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호통치듯 말했어요. 당시 빚을 많이 갚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1억원 정도 빚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쉴 수 있겠어요.”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 그를 살린 건 단골들이었다.

“한의원을 하던 단골손님이 와서 맥을 짚더니 빨리 약을 먹어야 한다며 지어주시고요, 정형외과 원무과장이던 손님은 앰뷸런스를 보내 수액을 놔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 가게는 손님과 함께 일군 셈”이라며 웃었다.
 

대한민국공헌대상 봉사상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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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9일 열린 세계연맹 '2018 대한민국공헌대상'에서 봉사대상의 영예를 안은 김정옥 주막보리밥 회장.

혹자는 말한다. 음식점을 하는 데는 중요한 요소가 세 가지 있다고. 첫째는 위치, 둘째는 장소, 셋째는 자리라고. 그만큼 입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 ‘혹자’가 서오릉 주막보리밥에 와본다면?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길눈이 밝은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헤맬 법한 위치다. 요컨대 꽁꽁 숨어 있다.

“한 손님은 이 집에 찾아오느라 7번 헤맸다면서 하소연을 늘어놓더라고요. 제가 말했어요. ‘손님, 귀한 건 원래 숨어 있는 겁니다’라고요.(웃음)”

그렇게 ‘헤매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평일 1500명, 주말 2000명에 이른다. 밥때가 되면 줄 서는 건 기본이다.

20년 전, 33m2(10평)짜리에서 시작한 가게는 지금 330m2(100평)이 됐다. 본점 직원만 40명에 이른다. 분점도 한때 20군데나 됐다. 처음에는 분점을 내는 게 마뜩치 않았단다. 김 회장은 “레시피는 하루 만에 배울 수 있지만 정성과 마음가짐은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막보리밥 분점. 아무나 낼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그는 세계청년리더총연맹의 대한민국공헌대상에서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토속음식을 널리 알리고, 분점 개설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으며, 불우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했다는 게 수상 이유다. 소감을 묻자 김 회장은 “그저 ‘밥 먹고 가’라고 몇 번 말했을 뿐”이라며 자못 쑥스러워했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이젠 하루쯤 쉬셔도 되지 않느냐고. 그때마다 김 회장은 손사래를 친다.

“여길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있어야 합니다. 중년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호사, 뭐가 있을까요. 이를테면 크루즈 여행? 저는 그것보다 주막보리밥 주방에 있는 게 더 행복합니다.”

그는 주막보리밥 주방에서 쓰러지는 날까지 앞치마를 벗지 않겠다고 했다.

“주막보리밥의 외형은 많이 변했어요. 가게가 커졌고, 이제는 멀쩡한 간판도 달고 있지요. 문지방을 넘나드는 손님도 훨씬 많아졌고, 주차장도 크고요. 다만 변하지 않은 것,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 있다면 주인장의 마음가짐입니다. 그게 제 양심인 셈이지요.”
 
 


20년째 단골, 심드림 작가
“김정옥 회장은 현대판 경주 최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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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식 식탁에서 얘기를 나누던 김정옥 회장은 식당 여기저기 포진해 있던 손님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대부분 20년지기. 그러니까 오픈 당시부터 이어온 단골손님이다. 그중에는 심드림 작가도 있었다. 심 작가와의 첫 만남을 김 회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웬 걸인 비슷한 사람이 가게로 들어왔어요. 남루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요. 얘길 듣자 하니 어렵게 산대요. 신용불량자래요. 수중에 돈도 한 푼 없다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나요.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죠. 그게 인연이 돼서 이렇게 20년째 보고 있네요.(웃음)” 

인터뷰 이후 김 회장은 특유의 ‘큰손’으로 푸짐하게 한상 차려냈다. 옛날보리밥, 시래기털레기, 옛날국밥, 녹두전, 도토리묵, 제육볶음, 주꾸미볶음, 코다리찜…. 모두 1만원 안팎으로 저렴해 4인 가족이 와도 2만~3만원이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이 중 특히 옛날보리밥과 시래기털레기가 인기다.

심 작가는 보리밥을 쓱쓱 비벼 한입 씹더니 “20년 전 그 맛과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잖아요. 맛과 서비스, 인테리어 등이요. 저는 주인장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사가 사람을 고치는 것도 결국 ‘인술’인 것처럼요. 여기에 더해 김 회장은 ‘산타병’까지 있는 거지요. 밑 빠진 독이라도, 빠진 밑보다 내리는 비가 더 세차면 독은 찰 수밖에 없거든요. 아무리 퍼주어도, 또 찾아오는 손님이 더 많으니까 계속 그러시나 봅니다. 경주 최부자가 1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잖습니까. 김 회장이 바로 현대판 경주 최부자 아니겠어요. 허허.”
등록일 : 2018-08-2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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