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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색채를 녹여 넣은 춤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댄스팀 저스트 절크(Just Jerk)

글 | 이선주 톱클래스 객원기자   사진 | 김선아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은 댄스팀이 있었다. 저스트 절크(Just Jerk).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팀이었다. 그들은 한국적인 색채를 절묘하게 녹여 넣은 역동적인 춤으로 세계인을 매혹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비롯해 SNS에는 ‘이런 팀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잇따랐다.

서울 합정역 근처, 새로 문을 연 ‘저스트 절크 댄스 아카데미’에서 그들을 만났다. 아카데미 개소를 앞두고 함께 청소하려고 모여 있을 때였다. 댄스 아카데미는 그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공간이다. 이전에는 이곳저곳 전전하면서 연습해왔다고 한다. 다른 댄스학원의 연습실이 빌 때를 기다려야 해서 자정에 만나 아침 6시까지 밤을 꼬박 새우면서 연습하는 게 다반사였고, 한강공원이나 거리에서 연습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제 후배 춤꾼들을 교육하면서 언제든 모여 연습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저스트 절크의 첫인상은 자유분방한 아티스트라기보다 자기관리와 절제가 몸에 배어 있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그러나 음악이 흘러나오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바로 표변하더니 특유의 에너지와 끼를 뿜어냈다. “이런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느냐?”고 묻자 성영재 대표는 “절실함에서 비롯됐습니다”라고 말한다. 중·고등학교 때 춤을 시작해 서른 살 가까운 나이가 된 이들은 “춤에 인생을 걸었다”고 말한다.


꿈을 좇아서


성영재 대표는 2007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 초등학교 5학년 때 복싱을 시작했고, 아마추어 선수로도 뛰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개인 사정으로 복싱을 그만뒀고, 몇 달 방황하면서 우울하게 지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 ‘몸 쓰기를 좋아하니 춤을 추면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 주변에 2AM 정진운같이 자신만의 꿈을 좇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도 꿈을 가지고 내 삶을 개척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댄스학원에 다녔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니 재미도 있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운동할 때의 근성이 발동해 누구보다 일찍 와서 마지막까지 남아 연습하면서 팝핀, 힙합 등 각종 춤을 익혀나갔다.

좋아하는 댄서의 춤 동영상을 찾아내 똑같이 출 때까지 연습을 거듭했다. 그리고 2011년에 댄스팀 ‘저스트 절크’를 만들었다. ‘저스트 절크’를 함께 시작한 멤버 중 최준호 씨는 성영재 씨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 배서원 씨는 두 사람을 가르쳤던 댄스학원 선생님이었다.

최준호 씨는 성영재 씨 덕분에 춤 세계에 들어왔다고 한다. 먼저 댄스학원에 다니던 성씨가 팝핀댄스 영상을 보여주면서 ‘너도 춤 배울래?’라고 권유했다.

성영재 씨가 어떻게 하면 잘 출 수 있을까 연구를 거듭하는 노력형이라면, 최준호 씨는 음악을 듣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타고난 춤꾼이었다고 한다. ‘저스트 절크’를 결성한 후 국내외 대회에서 수상한 이들은 2014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세계적인 댄스경연대회인 ‘보디 록(Body Rock)’에 참가했다.

“춤의 본고장에 가니 ‘너희가 뭘 알겠어?’라며 아시안을 얕잡아보려는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대회가 끝난 후 숙소에서 ‘내년 대회에는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올까?’ 고민하다 드라마 〈추노〉의 OST 음반을 들으면서 설핏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복을 입고 미국 무대에서 춤을 추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자 ‘대놓고 우리 색깔을 보여주면 신선하고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호에게 ‘한복 입고 춤추면 어떨까?’ 물었더니 ‘완전 좋아’라고 했어요.”

한국에 돌아온 그들은 춤에 한국적인 요소를 녹여 넣기 위해 한국무용을 배우고 한국 춤의 특징과 역사도 공부했다. 2015년 ‘보디 록’ 대회에서 이들은 한복을 입고 탈을 쓴 채 등장했다. 드라마 〈추노〉와 영화 〈왕의 남자〉 OST 등 한국적인 색채의 음악에 맞춰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역동적으로 춤을 추었다.

공연 후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관객들은 중간중간 탄성을 지르다 기립박수를 보냈고, 세계적인 댄서들이 찾아와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너희에게 1등을 줄 것’이라고 칭찬했다. 다음 해인 2016년 대회에서 이들은 드디어 우승을 차지했다.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다


“2016년 대회는 ‘1등 내놓으라’는 심정으로 전장에 나가듯 준비했습니다. ‘한국적인 색깔을 가지고도 이렇게 강렬한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고 작정했죠. 의상도 곤룡포를 응용한 빨간색 옷으로 강렬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1년 내내 춤 연습을 하고 여행경비를 모으면서 대회 준비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경비를 아끼려고 어머니들이 준비한 반찬을 싸 들고 여러 곳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갔죠. 어렵게 준비하고 간절하게 원했기에 무대에서 더욱 에너지를 폭발시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 이들은 미국 NBC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에 출연해 8강까지 진출하면서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들이 무대에 나올 때마다 심사위원 전원은 기립 박수를 보냈고, 날카로운 독설을 퍼붓는 심사로 유명한 사이먼 코웰(Simon Cowell)조차 미소를 띤 채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춤이다. 우리 대회의 수준을 한 차원 올려놓았다” 같은 칭찬이 이어졌다.

“〈아메리카 갓 탤런트〉 연출진이 2016년 보디 록 대회를 보러 왔었나 봐요. ‘예선 없이 바로 본선에 나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음악만 내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음악 선정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춤은 음악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죠.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받아 결승에 올라갔지만, 그 뒤에는 시청자 투표점수가 합산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미국 시민이 아니라서 불리했습니다.”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이 대회를 통해 이들의 이름은 더욱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세계 각국에서 공연 요청이 잇따랐다. 저스트 절크에는 성영재, 최준호, 배서원, 김예환, 황규홍 등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저스트 절크’와 오디션을 통과한 멤버들로 이루어진 ‘절크 패밀리’가 있다.

‘저스트 절크’는 형팀, ‘절크 패밀리’는 아우팀이라고 할 수 있다. 대회 참가나 공연을 위해 저스트 절크와 절크 패밀리가 합칠 때는 ‘저스트 절크 크루(Just Jerk Crew)’라고 부른다. 남자 댄스팀으로 출발했지만, 절크 패밀리에는 여성 멤버도 있다. 성영재 대표는 “오디션을 할 때는 남자 여자 상관하지 않고 얼마나 춤을 사랑하는지, 잘 추고자 하는 의지와 간절함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본다”고 말한다. 성영재, 최준호, 배서원 씨 등 형들은 대학이나 학원에서 춤을 가르치고, 안무하고, 기획사에서 가수들을 훈련하면서 웬만한 기업의 임원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들도 좋아하는 춤을 추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아직 할 일이 많다.

“춤에는 중독성이 있어요. 관객의 환호와 박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다음에는 더 멋진 무대를 보여줘야지’ 다짐하게 되죠. 모든 장르의 춤을 아우르면서 어떤 주제든 표현할 수 있는 게 저희가 추는 어반 댄스의 특징입니다. 한국적인 주제뿐 무엇이든 춤으로 표현하면서 죽을 때까지 춤을 전파하고 싶어요. 80대 할아버지가 되면 동작 하나하나에 삶이 농축되어 더 멋진 춤을 추겠죠?”
등록일 : 2018-05-15 08:56   |  수정일 : 2018-05-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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