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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 그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과 진실들을 답하다

긴 말 필요 없다. 만인의 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궁금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로 다 알 순 없겠지만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그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과 진실들.

글 | 박지현 여성조선 기자   사진 | 안규림

인터뷰를 앞두고 나름 사전 조사를 했다. 여러 지인에게 먼저 물었다. 배현진에게 가장 궁금한 게 뭐냐고. 대답은 한결같았다. 도대체 정체가 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대형 커뮤니티에서 평판도 살폈다. 마찬가지였다. 비판 일색이었다. 많이 순화해서 ‘비판’이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렸지만, 당사자가 보면 충격깨나 받을 만한 내용도 많았다. 잠실에 마련한 그의 사무실. 색안경을 벗고 보자, 누차 다짐하고 들어섰다. 운동화 차림의 누군가가 환하게 웃으며 걸어왔다. 보무당당했다.
 

아나운서 때와 이미지가 사뭇 다르다. 당연하다. 그때는 뉴스 1시간을 위해 세팅된 이미지였다. 지금이 진짜 나다. 아직도 친구들은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며 놀린다. 오그라든다, 남 같다면서. 특히 뉴스를 진행할 때는 너무 냉정해 보인다고 했다. 원래는 푼수 같은 면이 있다. 원래의 나로 돌아와서 사는 것 같다. 편하고, 좋다.

그간 본 모습을 숨기고 살았다는 말인가. 조심해야 했다. 회사의 메인 뉴스를 대표하는 얼굴이니까. 강박적으로, 밖에서 실수하지 않으려 했다. 사생활도 없었다. 워낙 출근이 늦고, 퇴근도 늦으니까 집, 회사, 집, 회사 그렇게 살았다. 주말 이틀은 집에서 쉬었고, 휴가도 잘 안 썼다. 특히 여름휴가는 딱 한 번 갔다. 1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냈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나. 일이 너무 재밌었다. 어려서부터 꿈꿔온 일이다. 평생 살면서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감사했다. 이런 기회가 주어졌으니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뒤돌아봤을 때 후회 없도록 하자는 각오도 다졌다.
 
사람들은 배현진을 독하다고들 한다. 그런 면이 당연히 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는 있겠지만.
 
뒷배가 대단한 것 같다는 얘기도 많다. 글쎄다. 앞배는 있지만 뒷배는 없는데. 하하.
 
여러 사람에게 ‘적’으로 비친다. 대형 커뮤니티에서 ‘배현진’을 쳐보면 안다. 댓글도 상당한데, 본 적이 있나. 커뮤니티는 어떻게 들어가는지 몰라서 안 가봤지만 친구들이 종종 알려준다. ‘분위기 무섭더라’면서. 기사 댓글은 자주 본다. 처음엔 되게 속상했다. 나를 모르면서 왜 이렇게 잔인하게 말씀하시지, 싶었다. 역치가 높아진 걸까. 무던해지더라. 그래도 부모님 욕은 심했다. 상처였다. 내 욕은 감수하면 끝인데,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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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운털’ 왜?

10년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그렇다. 우여곡절을 겪기에 충분하다. 배현진은 더 그랬다. 그는 2008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당시 경쟁률은 1926대 1이었다. 이후 5시 뉴스,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거쳐 2013년까지 평일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동했다. 그사이 노조 파업에 참여했다가 언론노조를 탈퇴하고, 앵커로 복귀했다. 파업 103일 만이었다. 2014년부터 2017년 말까지 메인 앵커로 활동한 뒤 올해 3월 7일 MBC를 퇴사했다. 자유한국당에 가입하며 정계 진출을 선언한 것. 그의 행보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파업 중단 후 앵커 복귀를 두고 “(당시) 정권에 부역한 장본인”이라는 논란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라 더 그랬다. 한편 그는 당내 ‘좌파정권 방송장악 피해자 지원 특별위원회’를 통해 “피해자는 바로 나”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왜 욕한다고 생각하나. 2012년 파업을 계기로 그렇게 된 것 같다. 여러 가지 오해가 있는데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탓이다. 지금 같으면 자유롭게 해명하겠지만 그땐 앵커의 스탠스를 유지해야 했다. 참는 동안 이미지가 공고히 굳어진 것 같다. 지금 그려지고 있는 모습이 진짜 ‘배현진’이라면 어쩔 수 없는데 아닌 부분이 많다. 내가 봐도 미운 캐릭터다. 예의 없고 버르장머리 없고, 그런데 메인 앵커는 계속하고. 이렇게 이미지가 굳어진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오해를 푸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다만 그 시간을 좀 단축시키려고 한다.
 
MBC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계속 펼칠 거란 뜻인가. 주변에서도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사실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프레임을 먼저 씌운 건 그쪽(MBC 노조)이다.
 
앞서 ‘오해’라고 했는데 가장 얼토당토않은 건 뭔가. 나는 인정할 건 하고, 아니면 안 한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저돌적’이다. 목표를 한번 설정하면 그것만 보고 달려간다. 물론 반칙 없이.

경주마처럼? 맞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고난이 오기 마련이잖나.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함께 달리는 사람들은 내가 방어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되레 화살을 맞기도 한다.
 
함께 가는 사람을 방어해서 화살을 받았다니, 세간에는 반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공분을 산 것이고. 드러나지 않은 미담이 있나 보다. 일할 때 동료나 스태프들을 보호하고 피해는 내가 감수한다는 철칙이 있다. 사내에서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건마다 알릴 기회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일일이 다 소개하긴 좀 구차하지 않나.
 
있다고 하자. ‘오해’ 얘길 하고 있다. 파업 복귀 전까진 회사에서 자부할 정도로 사랑받는 직원이었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복귀를 계기로 세상 못된 사람이 됐다. 같은 길을 가던 동료들이 인간적인 서운함을 가지고 공격을 쏟아붓는 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양치대첩, 피구대첩 들어봤나? 해명하기에도 기막힌 일들이 일어났다. 다들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가정에서 잘 자란, 양식 있는 구성원들이 그런 루머를 만들어냈다는 게 부끄러웠다. 개인이 소요사태를 일으켰다고 인사 조치할 만큼 허술한 조직이 아니다, MBC는.

허술한 조직이 ‘아님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분노하는 거다. 양치대첩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다. 그 얘기 핵심은 내가 갑질해서 본인이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는 거잖나. 그런데 그분보다 내가 먼저 잘렸다. 본인이 인사 조치당했다고 했을 시점보다 몇 개월 먼저 앵커에서 하차하고 2013년 11월부로 월급 없이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 전후관계는 말 안 하더라.

양치대첩도 여러 버전이 있던데 뭐가 사실인가. 2013년 가을에 있었던 사건이다.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아껴 쓰라고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게 아니다. 양치를 하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왜 컵을 안 쓰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종이컵이라도 쓰겠습니다라고 했다. 그즈음에 그런 일이 워낙 많았다. 유치해서 말하기도 민망한데 사무실에 붙어 있는 내 사진에 콧물이랑 다리털을 그려놓기도 하고, 서랍을 뒤지기도 했다. 일하고 있는데 위협적으로 꽹과리를 치기도 했고. 심지어 뉴스 준비하고 있는데 와서 굵은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자판 사이에 소금이 낀 채 타자를 쳤다. 모두 내가 ‘확!’ 지르길 바라고 있었던 거다. 언제 터지나, 본 거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꾹 참았다. 양치대첩도 그중 하나인데, 내가 사과했더니 선배가 화장실을 나갔다. 분이 안 풀렸는지 바로 뒤에 다시 들어와서 수돗물을 탁 잠그고 다시 나가더라. 그리고 보도국으로 돌아왔더니 나만 들리게 “너, 가정교육 못 받았냐?”고 했다. 못 참겠더라. “가정교육은 댁에 가서 하시죠!”라고 소리 지르고 말았다. 그 일로 다음 날 조사위원회가 열렸다. 당시 사장님도 그렇고 사내 분위기가 나한테 우호적이지 않았다. 위원회는 내 잘못을 입증하기 위해 열린 것 같았다. 그분은 경위서에 “도로 들어와서 수돗물을 끈 적이 절대 없다” “부모님 욕을 한 적이 없다”고 쓰셨더라.

미안한 말이지만 코미디 같다. 그 일로 CCTV까지 돌려봤다. 나한텐 끝까지 사과 안 하셨다. 담당 부장에게만 물의를 빚어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작년 7월에 그 얘기가 다시 나온 거다. 피구대첩은 또 어떤가. 한때 파트너로 모시면서 존경하던 선배님이 그런 말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정말 재밌게 깔깔거리면서 피구를 같이 했다. 피구가, 피구라는 게….(웃음) 원래 그 안에 맞으러 들어가는 거잖나. 휴! 믿기 힘들지 않나?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 게. 그땐 진짜 무슨 일만 있으면 배현진을 탓했다.
 
조직에서 그 정도면 그만큼 엄청난 미움을 샀다는 건데. 동료들이 고생하는 동안 배현진은 꽃가마를 탔다는 얘길 듣는다. 특혜를 받았다는 얘긴데, 나는 당당하게 오디션을 거쳐 뉴스 앵커가 됐다. 외부에서는 파업을 접으면서 앵커 자리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데, 아니다. 원래 하던 일을 복귀하고 했을 뿐이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나? 이해할 수 없다. 개개인으로 만나면 굉장히 따뜻한 사람들이다. 집단으로 뭉쳐서 의식을 공유하고, 폭력적으로 변할 때 얼마나 무서운가를 봤다. 분명히 잘못 가고 있는 건데 다수가 그 길로 가고 있으니까, 말은 못 하고 함께하면서 합리화한 거라 생각한다. 당시 나는 3년 차 앵커였다. 피라미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든, 이후 파업에서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든 누군가는 나와서 ‘이거 아닙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얘기하자!’고 한 건데, 굉장히 오랫동안 고난이 시작됐지.

사람들이 욕하는 건 특혜를 받아서가 아니다. 파업 후 앵커를 계속했다는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더라. 물론 복귀 후에 비난받을 건 어느 정도 감수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말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험난한 건 감수해야잖나. 그런 비난을 참은 건 ‘내가’ 감수한 거다. 동료들이 그 길에서 어려움을 겪는 건 ‘본인들이’ 감수해야 한다. 내가 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건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나는 아무에게도 보호를 못 받았다. 정말 맨몸으로 견뎌냈다. 부모님이 정말 많이 우셨다. 불효하는 것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조직과 개인을 상호간 이익에만 집중한 별도의 객체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사원들과의 연대나 저널리즘이라는 기능과 역할은 완전히 배제한 것 같다. 저널리즘의 역할이 뭐기에… 저널리즘? 언론? 말이 거창하지 결국 사람 잘살자고 하는 거 아닌가. 마치 ‘쇼’처럼 파업을 하면 좀 더 공정한 언론을 만들 수 있다? 판타지다. 담백하게 우리 사는 얘기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것이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365일, 매일매일의 삶을 뉴스를 통해 나눠주는 것.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얼마나 가치 있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앵커, 기자, PD라 생각한다. 그래서 파업을 접었다. 사장만 끌어내리면 공정 언론을 실현할 수 있다는 데 동력을 몰고 가는 것에 반대하고 싶었다. 결코 ‘개인적’인 게 아니다. 앵커로 살면서 오히려 개인의 삶이 파괴됐는데, 어떻게 개인적인 선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뉴스를 진행할 당시 보도가 공정했다는 데 이견이 없겠다. ‘공정성’이라는 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적어도 뉴스를 진행함에 있어서 결코 ‘감히’ 하지는 않았다.

말이 나온 김에 손수호 변호사를 아는지?(손 변호사는 최근 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MBC에서 배현진에 관한 큰 건을 터뜨리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잘 모르는데 무슨 이슈가 필요한 사람인가? 이목을 끌 일이 있나? 본인에게 별로 득 될 것도 없는데 구태여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내용은 친구에게 들어서 안다. 사내에 워낙 루머가 많았다. 홍콩에 가서 애를 낳고 왔다, 재벌이 여의도에 아파트를 사줬다, 해외에서 전신성형을 하고 왔다…. 일련의 소문 중 하나를 들은 게 아닐까 짐작한다.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고, 앵커 신분이 아니므로 강경하게 조치할 생각이다. 어떤 발언을 하건 상관없지만 책임은 져야 한다. 법적 조치까지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어떤 내용이 터질까 기다리고 있다더라. 선거운동 시작하기만을 벼르고 있다고도 하고. 예비후보 등록한 지가 언젠데 왜 아무 말도 없는지 궁금하다. 나도 기다리고 있다. 빨리 터뜨리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한 번쯤은 즉각 대응해야 하지 않겠나.

최근에 나경원 의원과 함께 찍힌 사진이 화제가 됐다. 굳은 표정의 나 의원 앞에서 해맑게 웃는 모습인데 해당 매체에서는 ‘언니, 저 맘에 안 들죠?’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휴! 왜 다들 그렇게만… 기본적으로 내가 얄미운 캐릭터가 맞나 보다. 행사 중간이어서 나  의원은 집중하고 계셨고, 나는 인사를 하는 상황이었다.

난감했겠다. 둘 사이는 무사한지. 물론. 차도 사주셨고, 따뜻하신 분이다.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대상이 있나. 언론사에 있을 때는 정치인들을 보고 너무 쉽게 ‘잘한다, 못한다’고 평가했던 것 같다. 막상 정치 캠프에 와보니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너무 열심이고, 훌륭한 사람도 많다. 막 발을 디뎌서 배우는 단계다. 좀 더 지켜보면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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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아버지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그는 사는 게 힘겨울 때면 이 구절을 떠올리며 ‘그래, 누구에게나…’ 하며 버텼다고 했다. 그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퍼진 데는 그간 워낙 알려진 게 없었기 때문인 것도 한몫했다. 특히 가족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굳이 가족 얘기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항간에 부모님이 대단한 분들이란 얘기가 돌았다. 사내에선 장관 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사상 최대 경쟁률을 뚫다 보니까. 굳이 부정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원래 그렇다. 그런 걸 그냥 듣고 넘기는 편이다. 보통 드라마에서 보면 메인 앵커가 되려면 대단한 배경이 있잖나. 나는 정말 평범하게 살았다.

‘평범하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부유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보통 수준이거나 그보다 부족하거나. 그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아버지가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했었다. 기복이 심했다. IMF 외환위기도 있었고. 특히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 어려워졌다. 무딘 성격인 데도 힘들다 느낄 정도였다.

사춘기였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힘들어하는 걸 부모님은 모르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두 분은 밖에 나가서 일하기 바빴으니까. 자식들을 돌보지 못하셨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방황하거나, 일탈하거나 반항하는 성격이 못 된다. 겉모습만 보면 똑같았다. 성실히 학교 다녔고, 선생님께도 네, 네, 했다. 그런데 성적이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불만을 품었고 공부에서 손을 놓은 게 나름의 표출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땐 부모님을 좀 원망했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지니까. 친구들은 엄마, 아버지가 다 해주시는데…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거다. 고3이 됐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내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구나.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 성실하고 공부 잘하던 아이인데, 아무 티도 안 나는데 성적이 뚝뚝 떨어지니까. 마음을 다독이는 말씀도 해주시고 좋은 책도 권하셨다. 성경책도 주시고.

커서 돌이켜보니 어떤가. 부모님은 그때 얘길 하면 지금도 우신다. 미안하다고. 좋은 경험이었다. 독립적으로 클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모든 경제권에서 독립했다. 등록금부터 하다못해 휴대폰 요금도 아르바이트해서 해결했다. 강하게 클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나. 주로 과외였다. 나름 능력 있는 선생님이라 소문났었다. 반에서 꼴찌 하던 여학생을 두 달 만에 1등으로 만들었다. 그 학생 어머니가 같은 아파트 라인에 사는 이웃을 쭉 소개해줘서 윗집 끝내고 아랫집으로 가고 그랬다. 그때 많이 벌었다.(웃음)

유년시절은 어땠나. 남자아이처럼 컸다. 골목대장이었고, 활달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다 남자다. 방학 때면 오전 8시에 같이 축구하자고 찾아오곤 했다. 남자로 여겼다. 어린아이치고 키가 커서 ‘거인클럽’이었다. 혼자서도 잘 놀았다. 미끄럼틀 거꾸로 뛰어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철봉도 하고 그네도 타고, 철봉이랑 전봇대 사이에 고무줄 묶어놓고 뛰고 그랬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신기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또래 중 나만 학원을 안 다닌 거더라. 두 살 터울 남동생은 학원을 많이 다녔다. 악기, 속셈, 외국어까지. 나만 안 보내셨다.

왜? 모르겠다. 지금도 대답을 안 해주시는데, 아들이라서 더 신경 쓴 게 아닌가 싶다. 피아노를 잠깐 배우긴 했지만 흥미를 못 느껴서 금세 그만뒀다. 정적인 것보다 뛰노는 게 좋았다.

어머니는 무얼 강조하셨나. 딱 두 가지였다. 학교 갈 땐 차조심해라.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지내라. 평생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한 번도 안 하셨다. 고3 때는 보통 엄마들이 극성인데 우리 엄마는 그런 것도 없었다. 학교가 멀어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5시에 집을 나섰다. 초반에는 아침밥을 주시더니 나중에는 계속 김밥을 주시더라.(웃음)

김밥도 대단한 거다. 맞다. 그냥 김밥인가 보다, 하면서 다녔다. 성적이 잘 나와도 시큰둥하셨다. 요즘 말로 쿨하신 분이다. 금이야 옥이야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아나운서 시험 볼 때 문화 충격이었다. 지원자들이 전부 엄마가 따라와서 짐을 들어주더라.

이번에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 ‘이 일’(웃음)을 한다고 했더니 한숨을 푹 내쉬셨다. 앵커의 길도 쉽지 않았으니까. 이제 다른 친구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충분히 이해한다. 특히 부모님은 나 때문에 굉장히 위축돼서 사셨다. ‘우리 딸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얘기해봤자니까. 걱정이 좀 됐겠나. 충분히 설득했고, 지금은 응원해주신다. 다만 더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시긴 한다. 험난한 길이란 걸 아시니까.

결혼 생각은 있나? 10여 년 전부터 있었다. 친구들에게도 “제일 먼저 할 거다”라고 말했다. 빨리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

안정적인 가정을 갖겠다는 사람의 행보가 아닌데. (웃음) 어려서부터 부침이 있어서인지 평온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를 빨리 갖고 싶다. 부모님도 잘 모시고 싶고. 그런데 계속 일하다 보니까 결혼 시기가 자꾸 늦어진다. 건실한 청년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말하고 다닌다. 성실하고 생각이 건전한 사람. 주변에서는 재력을 보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돈이 많아서 싫다는 사람은 없지 않나.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보다는 그냥 먹고 싶은 거 같이 사먹고 말 잘 통하고,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편하고 기댈 수 있는.

스스로 능력에 자신 있는 여성이 말하는 ‘편한 남자’란 ‘나를 잘 보필해주는 남자’가 아닐까. 그런 남자 찾기가 어쩌면 제일 어려울 수도 있다. (웃음) 맞다. ‘외조’라는 말이 적절한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선택한 일이 외조가 필요한 일이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남자 쪽에서 너무 바쁘면 곤란하다. 나를 따뜻하게 보살펴줄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10년 동안 하고 있다. 하하.

포털에서 ‘배현진’을 치면 연관 검색어에 ‘남편’이 뜬다. 공개된 개인정보가 워낙 없으니까 궁금해서 많이들 쳐보나 보다. 저 나이쯤이면 결혼했을 법한데 남편은 누굴까 싶겠지. 뿐만 아니라 ‘전남편’도 뜨고 ‘이혼’도 뜬다.(웃음)

마지막 연애는? 5~6년 된 것 같다. 연애라기보다 썸? (연애를) 잘 못했다. 회사 선배들이 몰래 소개팅을 주선해줬다. 좋은 감정으로 몇 번 만나다가 흐지부지됐다. 바빠서 메시지에 대답을 잘 못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더라. 그때 A씨, 어디선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같은 일하던 사람인가. 제안이 들어온 건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소개팅을 많이 한 것 같은데(웃음) 그렇진 않다.

기사를 검색하다가 ‘배현진 사주’라는 글을 봤다. 신강한 사주이면서 성격이 보통 아니고, 결혼을 늦게 한다고 씌어 있더라. 남편이 정계 쪽일 수도 있다고 하고. 기독교 신자라 사주 안 본다. 괜히 흔들릴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은근히 소심한 면도 있어서.(웃음) 재밌네. 너무 신강해서 주변에 남자가 없나….
 
집에선 주로 뭘 하며 지내나. 할 일이 많다. 개도 키워야 하고, 뜨개질도 하고, 가내수공업 쪽은 다 해본 것 같다. 시간 날 때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놀기도 한다. 미니 오븐을 갖다 놓고 쿠키도 굽는다. 엄마는 불날까 봐 걱정하시고.

주량은? 모른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20대 때는 많이 마셨다. 많은 양을 마셨다기보다 자주 마셨다. 요즘은 많이 못 마시겠더라.

주량을 모르겠다는 건 소주 3병 이상이란 건데. 맥주 세 잔으로 해두자.
 
10년 뒤엔 뭘 하고 있을까? 10년 뒤라도 젊은 나이다. 뭔가 활기찬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언론인일 때도, 지금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막연히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역시 목표가 있으면 그것만 향해 달리는 스타일인가 보다.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목표한 게 있으면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돌파해나가는 게 내 원칙이다. 뒤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게. 대한민국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녹음기를 끄고 물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인가.” 돌아온 답이다. “털털하고 괄괄한 사람이다. 주변 환경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욕을 먹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남에게 죄 짓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복 받지 않을까?” 주부 독자들에게도 한마디 보탰다.

“저 진짜 콩쥐처럼 물 길어다가 열심히 산 사람이에요. 어떡하면 언니들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등록일 : 2018-05-04 08:35   |  수정일 : 2018-05-0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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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식  ( 2018-05-08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17
나라는 국민과 국토.주권으로 구성된다.군인나라를 지키다 죽는 것도 애국이지마는 주권을 강도질 하는 박정회일당독제자를 몰아내기 위한 시위도 52511;불집회도 애국자이다.박근혜 국정농단 막는 것역시 애국이다.다만 자기욕심과 욕망 출세를 것은 애국이 아니다.노조의활동 역시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요 헌법에 노동삼권을 지키여야 하는데 거기서 자신 야망을 채우기 위헤서 노조를 탈퇴하는 것은 반노동활동으로 지탄 받아 마땅하다.좌파.운운하는 것은 자신을 우파라는 증명하는 것으로 이번 선거를 통하여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답글보이기  김효태  ( 2018-05-08 )  찬성 : 10 반대 : 3
서해해전 전몰자 행사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딴행사 핑계대면서 불참하고 박정희는 매일 주한미군철수 주체사상이나 주장하는 운동권에대한 제제였고 불집회는 온갖 좌파 추종자들이 선동한 시위가 본질이였고 지금 대통령주위는 온갖 좌파세력이 대통령을 조정하니 근혜 국정농단 못지않고 노조의 가입과 탈퇴는 개인의 자유인데 그것자체를 문제삼는것은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것이며 노동운동은 노사간의 이해관계를 위해 존재하나 이제는 노조가 절대적힘을 가진 정치집단이 돼었고 드루킹 사건에서 나타나듯이 사실상의 국민 여론을 조직적으로 왜곡한것은 지금의 민주당이라 생각하며 잔인한 독재자 정은이가 사라지기까지는 자유대한민국에서 친북,종북 좌파세력은 이땅에서 사라질때 우리국민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2천만 북한주민의 노예상태가 해방되리라 믿는다.
강순기  ( 2018-05-07 )  답글보이기 찬성 : 29 반대 : 4
모처럼 세상 눈치 보지않는 당당한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인생은 사이클을 그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배현진씨를 알면서도 욕하고 비난하고, 알지 못하면서도 비난하고 하나 봅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당차게 개척해 가는 인생을 살다보면, 나중에는 이해해 주고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배현진님이 걷고 있는 힘든 길과 꿋꿋이 이겨내는 행보를 보고, 뒤따라 가는 후배 여성 인재들은 힘을 얻을 것입니다. 굿세게 사십시오.
문죄인씨뱔럼  ( 2018-05-07 )  답글보이기 찬성 : 22 반대 : 4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아들이나 손자들은 데모꾼으로 키워야
대성하는 세상이 되었다

죽도록 공부해 봤자
취직도 안되고
항상 피지배적 위치를
탈피할 수가 없다.

평생을 데모꾼으로
살아온 백남기를 보라!

그 자식들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외국여행을 옆집 다니듯
가볍게 살지 않았든가?

김일성을 고무 찬양하고
미군철수를 외치며
화염병 던지고
보도블럭 깨서 투석전하면 대통령 비서실장되고 ...

국회의원 자리 쯤은
따논 당상이다.
삐딱하게 정부에
비 협조적이며
김정은 정책 및
전략 전술에 협조적이면
어느날 갑자기 영웅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갑자기 소설 꺼피탄 리가 떠오르네.

양손에 태극기와
인공기를 들고
어느걸 흔들어야 될 건지를 잘 판단만 하면 된다.

이렇게 쉬운 인생을
우리는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 왔던가?

나라를 지키다 죽으면
개죽음이다.

데모를 하다 죽으면
열사가 되고 ...

그 후대는 돈 걱정,
직장 걱정없이
부귀와 영화를
누릴수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아온 사람은 무조건 매국노 독재자라 외치고,
없는 사실도 만들어
음해와 모략으로 일관하면 성공한다.

이제 나는
김일성 배지를 만들고
인공기를 만들어
판매할 사업을 하면
대박이 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

이제 애국가 대신
김일성을 찬양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더 사랑해야지.

흘러간 세월 60년,
다가올 세월은 불만과 협잡으로 살아간다면
김대중 선생의 사진옆에
내 사진도 걸리게 될까

아 ∼ 답답한 세상이여!

진실이 시궁창에
목욕을 하고
거짓이 빛을 발하는
삼천리 금수강산!

결코, 빛이 어둠을
내몰지 못했도다.

출처 김동길 박사님 글.
Vineyards2016  ( 2018-05-05 )  답글보이기 찬성 : 38 반대 : 5
어떤 발언을 하건 상관없지만 책임은 져야 한다. 그녀답게 Overly dry. 큰 정치 하세요. 파이팅. 그리고 기자님, 주량을 모르겠다는 건 소주 세 병 이상이란 건데, 다 아는 얘기라도 술 얘기는 좀 조심해야죠.
역시 좌파  ( 2018-05-05 )  답글보이기 찬성 : 94 반대 : 5
좌파 빨갱이 특징: 자기가 한짓 똑같이 하면 입에 거품물고 난리남.역지사지란 기본적인 사자성어 모름. 논리적,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려고 해도 말이 안통함. 마치 살아있는 장승한테 떠드는거 같음. 도저히 말이 안 통해서 그냥 내가 참지..어휴..하고 말면 좌파 빨갱이들은 지들 말이 옳고 이긴줄 착각함.
김효태  ( 2018-05-05 )  답글보이기 찬성 : 110 반대 : 8
자기 신념과 주관이 뚜렸한, 주위의 눈치를 보지않고 소신껏 살아가는 이러한 분이 사회를 이끌면 희망이 있을텐데 온갖 환경을 남탓으로만 돌리며 사회에 적개심만 내뿜는 온갖 좌경화된 쓰레기 인간들이 나라를 시궁창으로 끌어가고있으니 어찌 나라다운 나라가 될까? 가는길이 망국의 길이 아닌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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