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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뒤늦은 후회’ 부른 가수 최진희

“너무 악착같이 살지 마시고, 조금 느슨하게 즐기면서…”

한반도에 ‘뒤늦은 후회’로 봄이 왔으면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가 아닌가. 더욱이 한민족에게는…. ‘사랑의 미로’ 이후 남북한의 봄을 재촉하는 노래 ‘뒤늦은 후회’가 동평양대극장을 들썩이게 하더니, 가수 최진희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여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하고 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자신만만했다. 평양공연 뒤풀이 때 술도 약한 사람이 분위기에 취해 30도짜리 평양소주 7잔을 마시고, 현송월 단장의 양 볼을 잡고 스킨십을 한 것도, 자연스럽기에 스스럼없는 최진희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렷다. 의왕시에 있는 카페 ‘사랑의 미로’에서 만난 그녀의 뒤편 창 너머에도 가는 봄을 붙잡고 싶은 ‘뒤늦은 후회’인 양 연분홍 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글 | 장광팔 만담가   정리 | 박미정 여성조선 기자   사진제공 | 안규림

비만은 질병, 체중계 옆에 끼고 수시로 체중 관리

장광팔 평양 다녀오시고 여독도 풀리지 않았을 텐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최진희 정해진 시간에 열심히 운동을 해요. 우리 몸에는 생체 시계가 있어요. 제시간에 자극을 주어야 잘 수용하거든요. 식사 시간도 마찬가지고요. 수영을 한 지 10년 됐어요. 여건상 수영을 못하면, 빠르게 걷기 운동으로 대신해요. 필라테스도 막 시작했어요. 나이 들면 활동량이 줄어서 살이 찌기 쉽기 때문에 운동이 필수예요. 특히 근력운동을 꼭 해야 해요.

장광팔 나잇살이죠.(웃음) 주부들이 비만 관리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것 같아요.

최진희 예민한 게 아니라 비만은 사실 질병이잖아요. 체중 조절과 건강관리는 불가분의 관계예요. 제 경우만 해도 살이 찌면 바로 관절에 무리가 와요. 체중계를 문 앞에 두고 수시로 체크해요.

장광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계시죠?

최진희 먹는 음식이 곧 내 몸이 되잖아요. 지방 공연을 갈 때는 채소를 싸가지고 가요. 매일 달걀을 두 알씩 꼭 먹고요. 짠 음식을 의도적으로 피하다 보니 이젠 짠 걸 아예 못 먹겠더라고요.
 

북한 김치, 동치미처럼 시원한 맛이 일품

장광팔 먹는 음식이 곧 내 몸이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짠 걸 먹으면 사람이 짜져요.(웃음) 북한 음식은 어떻든가요?

최진희 저는 참 맛있더라고요. 우리는 보통 김치를 썰어서 눕혀놓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김치를 세워놓더라고요. 보기도 예쁠뿐더러 젓가락으로 집기도 좋았어요. 백김치는 아닌데 양념이 별로 없고 고춧가루도 약간만 넣어서 동치미 국물처럼 맛이 시원하고 짜지 않은 것이 입맛에 딱 맞았어요. 우리나라 김장 김치는 오래 저장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대체로 너무 짜요. 기후 때문인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음식이 짜요.

장광팔 어려서 어머니가 김장할 때 생태하고 무를 크게 반쪽 썰어 넣었던 시원한 북한식 김장김치 생각을 하면 지금도 군침이 돕니다. 생태는 삭았을 때 손으로 찢어 먹어야 해요. 칼을 대면 칼 비린내가 나거든요.

최진희 맞아요. 저도 어머니가 김장을 하실 때면 갈치김치하고 그냥 김치 두 가지를 담그셨어요. 갈치 안 넣은 김치는 담가서 바로 먹기 시작하고, 갈치김치는 봄부터 먹었죠. 저는 김치에 양념을 많이 넣으면 시원한 맛이 없어져서인지 입맛에 잘 안 맞아요. 평양고려호텔, 옥류관, 미산각에서 먹어본 김치는 똑같이 맛있었어요. 북한 김치를 꼭 한 번 담가보려고 해요.

장광팔 이번에 평양에는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아부다비 외국 공연 때 제의를 받았다고 하던데요.

최진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이 말을 해도 되나?” 정현성 매니저를 쳐다보고는) 대통령 만찬에 초대되어 교포들을 위한 공연을 할 때인데, 거기서 제의를 받았어요.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는 바쁜 일정이었어요.
 

평양, 김정일 때와 분위기 완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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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 평양 순항공항 가는 길은 어땠나요?

최진희 서해안을 밖으로 돌아서 바로 들어갔는데, 50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정말 가깝더라고요. 공항은 사람이 참 없다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한산했어요. 일반인은 비행기를 탈 일이 없어서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면세점은 있지만 살 만한 물건은 별로 없었어요.

장광팔 우리나라 가수로는 북한에 가장 많이 가셨지요?

최진희 1999년 평양친선음악회 공연차 평양 봉화예술극장 무대에 섰고요. 2002년에 이번에도 선 동평양대극장에서 MBC 평양특별 공연을 했고, 2005년에 KBS 열린음악회 출연차 금강산 무대에 서봤고, 이번 동평양대극장과 류경 정주영체육관 남북 합동공연까지 네 차례 방문했습니다. 그 외에도 중국 연변이나 사할린에서 북한 예술단과 함께 공연한 적이 있어요.

장광팔 북한 전문 가수네요.(웃음) 그런데 예전과 비교해서 평양 분위기는 어땠나요?

최진희 김정일 위원장 시절과 비교해보면 평양 시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다른 곳에 온 것 같더라고요. 버스 창밖으로 보니 사람들이 휴대폰도 자유롭게 쓰는 것 같고, 아이들도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다녔어요. 김정일 위원장 시대와는 많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죠.

장광팔 북측 요청으로 ‘뒤늦은 후회’를 부른 게 화제가 되었는데, 이 노래로 최진희 씨 개인적으로는 ‘사랑의 미로’ 이후 제2의 전성기가 왔다고 하던데요.

최진희 그래요? 저는 계속 전성기예요.(웃음) 아부다비에서 평양 공연 제의를 받으며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서 의아했어요. 제가 고 장덕(1961~1991)이랑 생전에 친하게 지내서 장례식장에서 많이 울었어요. 오빠 장현(1956~1991)이 노랫말을 쓰고 덕이가 곡을 붙여 부른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와 덕이가 작곡한 진미령 씨의 ‘소녀와 가로등’ 등은 알고 있었지만, 이 노래는 제의받았을 때 처음 들었어요.(눈을 크게 뜨며)

장광팔 이은하 씨가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도 장덕 씨 작품이지요.

최진희 그래요? 예쁘고 재주 많은 남매였는데,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가서 가슴이 아파요.

장광팔 뜬금없이 장덕의 ‘뒤늦은 후회’를 불러달라니 당황했겠어요.

최진희 이유도 모르고, 더구나 모르는 노래를 음원만 듣고 맞춰야 하는데 연습 시간도 촉박하고, 가사도 길어서 잊어버릴까 봐 걱정이 많았어요. 그나마 반복되는 구절이 있어 다행이었죠.(웃음) 부를 때도 틀릴까 봐 바짝 긴장이 되더라고요.

장광팔 (카톡을 보며 읽는다) “창밖에 내리는 빗물 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으니까요/거리에 스치는 바람소리에 슬픔이 밀려와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살며시 눈 감았지요/계절은 소리 없이 가고요. 사랑도 떠나갔어요/ 외로운 나에겐 아무것도 남은 게 없고요/ 사랑이라면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1절)” 우울한 분위기인데요?

최진희 네, 마이너 음계의 4분의 4박자 슬로고고 형식 노래예요.

장광팔 어떻게 리메이크하셨어요?

최진희 가능한 원곡을 그대로 살리되 비트 리듬의 다소 빠른 톤으로만 바꿨어요. 새 앨범 타이틀도 ‘뒤늦은 후회’로 하고 ‘와인’을 비롯해서 마음에 닿는 노래를 선곡해서 수록했어요.

장광팔 북측의 ‘뒤늦은 후회’ 신청은 정말 의외의 선곡인데, 김정은 위원장의 신청곡인가요?

최진희 북측에서 신청한 곡이고, 공연을 마친 후 김정은 위원장이 저와 악수를 하며 “노래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했으니까 정확한 건 잘 모르겠지만, ‘아! 이 노래를 그래서 하라고 했구나’ 추측만 할 뿐이죠.
 

현송월과 언니 동생 사이?
직접 만나보니 호탕한 성격에 피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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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 현송월 단장과 스스럼없이 지내셨다고요?

최진희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현송월 단장은 가까이서 대해보니까 피부도 너무 좋고 예쁘고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는 데다, 성격도 호탕하고 쾌활한 게 너무 정이 가더라고요. 그렇다고 한두 번 본 사이에 언니 동생 할 수는 없고요. 제가 18도짜리 소주 석 잔이 정량인데, 대화도 통하고 기분이 좋은데 자꾸 권하는 걸 받아먹다 보니 30도짜리 평양 소주 7잔을 마셨어요. 그래서 술도 먹었겠다, 현 단장을 안아주고 볼을 비비다가 양쪽 볼을 잡고 흔들기도 했지요. 진짜 순수하고 좋은 마음에서 그랬더니 상대도 좋아하더라고요.

장광팔 북측 다른 분들은 어땠어요?

최진희 그전에는 북측 사람들을 보면 거부감이 들고 괜스레 겁도 나고 그랬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그런지 북측에서 더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고, 편안한 분위기다 보니 거부감이 사라져 좋았어요. 특히 철갑상어 등 산해진미에 처음 접해보는 요리로 대접을 잘 받았지요.

장광팔 북측 예술단 관계자들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최진희 만찬 석상에서 삼지연 악단장 겸 지휘자가 마침 제 옆에 앉았어요. 그가 “이번에는 남측 악단이 ‘사랑의 미로’ 반주를 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가 해보고 싶다. 우리도 잘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삼지연 악단의 연주는 정말 0.001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요. 우리와 달리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모두 연주에만 몰입해서 그렇겠지만 실력이 대단하고 멋있어요. “합동 공연에서라도 ‘사랑의 미로’ 반주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더군요.

장광팔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최진희 씨 인기가 대단할 거예요.

최진희 (웃음) 개인적인 일을 떠나 우리나라가 통일만 되면 전 세계 어느 나라 안 부러울 거예요. 한민족 특유의 근성에 북측의 잠재된 인재를 개발하면 정말 잘살 수 있을 거예요. 물론 통일이 된다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자유 왕래만이라도 하면 좋겠어요.
 

그들이 본 우리, “왜 말을 할 때 감정 없이 하는가?”

장광팔 한민족이지만 70년 이상 단절되어 있었으니 동질감 회복이 급선무겠지요. 이번 공연 같은 문화 교류가 활발해져야 합니다. 남북한 언어의 차이점 극복을 위한 <우리말사전> 편찬, 유적 발굴, 남북 축구 교류, 마라톤 대회 등 다양한 교류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북한 공연을 다니며 언제 이질감을 많이 느끼셨나요?

최진희 우선 말투가 거세요. 그래서 좀 무서운 생각도 들고, 저렇게 목젖이 튀어나올 정도로 힘주어 말하다가는 금방 기운 빠지겠다 싶더군요.(웃음) 그런데 그분들은 우리가 하는 말투에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고 지적하더군요. “왜 말을 할 때 감정 없이 하는가?” 그래요. 일례로 예전에 연변 남북 공연에서 김희애 씨와 북한 남성 MC가 진행을 했는데, 그분이 김희애 씨한테 “왜 감정 없이 사회를 보는가?” 그러더라고요. 김희애 씨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사근사근하게 말을 잘해요? 그런데 그분들 보기에는 매가리(맥) 없어 보이고, 그래서 정 없어 보이나 봐요.

장광팔 이번 평양 공연 멤버들은 어땠어요?

최진희 베스트였어요. 윤상 감독을 비롯해서 모두 착하고요, 저도 착해요.(웃음) 그런데 매니저는 저를 못됐다고 할 거예요.(웃음) 조용필, 이선희, 강산에, 윤도현, 백지영, 정인, 알리, 레드벨벳, 김광민(피아니스트), 진행까지 맡은 서현 그리고 저 최진희. 여기에 조용필 밴드 ‘위대한 탄생’, 태권도 시범단도 너무 수고가 많았지요.

장광팔 출연진 중 여러분이 감기 몸살로 힘드셨다지요?

최진희 조용필 선배, 이선희 씨도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 최선을 다했지요. 저도 몸이 너무 아파 참을 수 없어 부탁했더니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의료진이 와서 진찰을 해주었어요. 너무 고마웠지요.

장광팔 만약 ‘뒤늦은 후회’ 신청곡이 없었다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사랑의 미로’ 말고.

최진희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부르려고 했어요.

장광팔 제목에서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은 느낌도 오네요. 그런데 ‘사랑의 미로’가 북한에서는 <외국 민요집>에 수록되었다지요?(웃음)

최진희 네, 저도 들었어요. ‘사랑의 미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골프의 미로’ 등 여러 가사 버전이 있어서 웃으며 듣다 보면 제가 원가사와 헷갈릴 때가 있어요.(웃음) 그런데 북한에서도 가사를 바꿔 부른대요. 예를 들면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를 “그대 작은 가슴에 빛을 준 사랑이여…” 이렇게요.

장광팔 ‘사랑의 미로’는 태원 씨의 ‘너의 사랑’을 개사해서 편곡한 곡이지요?

최진희 맞아요. 1976년에 태원 선배가 부른 노래인데, 제가 좋아서 즐겨 부르던 노래예요. (노래를 부른다) “우리 같이 걷던 이 길은 지금도 변함이 없고/ 꽃이 핀 나무 그늘에는 새들의 노래 들리네/ 사랑이 꽃피던 그리운 시절은 추억이 되었지만은/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너의 사랑….”

장광팔 그런데 ‘너의 사랑’이 어떻게 최진희 씨의 ‘사랑의 미로’로 새로 탄생했나요?

최진희 김희갑 선생님과 ‘한울타리’를 할 때였어요. 제가 이 노래를 자주 부르니까 김희갑 선생님이 장은숙 씨의 ‘춤을 추어요’ ‘못 잊어’ 가사를 쓴 지명길 선생님께 개사를 부탁하여 만들어준 노래예요.

장광팔 ‘한울타리’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최진희 1983년에 결성된 그룹이에요. 기타 김희갑에 보컬은 제가 맡고, 베이스&보컬에 허영래, 오르간 이표영, 드럼 노광일, 색소폰 박기빈, 트럼펫 황용기 등 정말 쟁쟁한 멤버들로 구성했었죠. 그때 앨범에 수록된 곡이 ‘눈물의 승차권’ ‘그대는 나의 인생’ 등이에요.

장광팔 그룹 ‘한울타리’ 보컬로 데뷔한 건가요?

최진희 아니에요. 1976년에 서울로 올라와 노래를 부르다가 7년 정도 지나서 ‘한울타리’에 들어간 거예요.
 

7년의 무명생활, “노래 부르는 게 마냥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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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팔 무명 시절에는 힘들지 않았어요?

최진희 저는 무명 시절에도 서러운 거 모르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행복하게 노래 부르며 돈도 잘 벌었어요. 돈을 떠나서 노래 부르는 게 마냥 좋았어요. 피아노 한 대 놓고 이 노래 많이 불렀어요. (노래를 부른다) “오늘 처음 만난 날, 비가 몹시 내렸지/ 쏟아지는 빗속을 둘이 마냥 좋았네.”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내 노랫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한번은 명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외국인 한 분이 식사를 하는데 음식에서 변 냄새가 나는 거예요. ‘어떻게 저런 냄새 나는 음식을 먹지?’ 하고 상을 찌푸리며 의아해했는데, 치즈였어요. 제가 그때 치즈를 처음 접한 거예요.(웃음)

장광팔 업소에서 노래하는데 어머니가 승낙하시던가요?

최진희 웬걸요. 엄마가 매일같이 쫓아와서 집으로 데리고 가곤 했어요.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나이트클럽이 새벽 3시 반에 마쳐도 새벽 4시 통금 해제될 때까지는 꼼짝없이 클럽에 있어야 하던 시절이니까 더 그러셨겠죠. 딸을 밤에 내보내놓고 어머니가 편히 잠을 주무셨겠어요?
 

1986년 <서울국제가요제> 금상으로 방송계 데뷔

장광팔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최진희 집에 들어와서 하루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손님들이 노래 잘한다고 많이 칭찬하더라고 하면 좋아하시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1986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도’로 금상을 받았는데 그때 엄마가 고모와 함께 객석에 계셨던 거예요. 고모가 엄마에게 “언니, 어떻게 저런 훌륭한 딸을 낳았어?”라고 칭찬하자,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내가 하도 고생을 하니까 하느님이 저런 딸을 나한테 주셨나 봐” 하며 기뻐하시더래요.

장광팔 고모님이 연예인이라고 들었는데요.

최진희 탤런트 최선자(1941~ ) 씨예요. 1965년에 동아연기상을 수상한 개성파 연기자예요.

장광팔 카페 이름도 ‘사랑의 미로’고 바로 앞집이 비어 있던데 ‘뒤늦은 후회’라는 카페를 하나 더 여시죠.(웃음) 어떻게 카페 열 엄두를 내셨어요?

최진희 평소 건강과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내 몸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치는 바른 먹거리를 같이 만들어 먹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또 제가 매니저 따라다니며 노래만 하다 보니까 세상을 너무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며 바른 음식 먹어보자’ 이런 취지로 오픈한 지가 벌써 14년 되었네요.

장광팔 어머니 닮아서 예쁘고 음식 솜씨도 좋으신 거예요?

최진희 우리 엄마는 진짜 예쁘세요. 그런데 하필 저는 아버지를 닮아서 안 예뻐요.(웃음) 앞에서 김장 얘기도 했지만 엄마가 음식을 하면 입에 착착 감겼는데, 저는 음식 솜씨도 엄마 따라가려면 어림없어요. 카페 음식이야 저는 바른 재료만 신경 쓰지, 요리는 전문 셰프들이 계시니까요.

장광팔 본명이 최명숙이지요?

최진희 본명이 최진희예요. 원래 아버지가 밝을 명(明)에 맑을 숙(淑)자로 지어주신 본래 이름도 정감이 가고 좋지만, 하도 최진희로 불리다 보니까 누가 “최명숙 씨!” 하고 부르면 남의 이름 부르는 줄 알아요. 최명숙보다는 최진희로 산 세월이 훨씬 길잖아요, 그래서 아예 개명을 했어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2년간 목소리 잃어

장광팔 어머니(국옥순 여사) 돌아가시고 너무 상심해서 목소리를 한동안 못 냈다고 들었어요. 소리꾼 장사익 선생님도 목을 한동안 못 쓰셔서 고생하다가 다시 옛 소리를 찾으셨지요.

최진희 브라질 공연 가서 장 선생님께 들었어요. 어머니를 잃고 슬프지 않은 딸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저는 모든 걸 의지했기에 더욱 힘들었어요. 거의 2년간 목소리를 잃어 절망하다가 병원 도움도 받았지만 세월이 약인 것 같아요. 마음을 편하게 먹고 건강을 챙기니까 다시 제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장광팔 딸이 나이가 들면 어머니하고는 자매처럼 지내게 되죠?

최진희 그럼요, 장난도 치고. 한번은 TV에 미국 가수 밥 딜런이 나오기에 “엄마! 한국에는 엄마처럼 ‘국’ 씨가 있는데, 미국에는 ‘밥’ 씨가 있네” 하며 둘이 깔깔대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너무 악착같이 살지 마시고 조금 느슨하게 즐기면서 사세요”

장광팔 그런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즐겁게 사세요. 그런데 사랑을 해보니 사랑은 진정 미로던가요?

최진희 예?(놀라다가 웃음) 사랑은 그야말로 미로예요. 정해진 길이 없잖아요, 그렇지만 사랑의 미로 속에 있을 때가 행복한 거 아닌가요? 사랑의 미로에서 빠져나와버리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지요. 사랑의 미로 속에 계속 머물고 싶어요. 사랑보다 더 중한 게 어디 있나요?

장광팔 이제 <여성조선> 독자분들께 ‘이렇게 사는 게 좋겠더라고요’ 하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최진희 저도 잘하지 못해 말씀드릴 자격이 없지만, 부모님 살아계실 때 시간 내서 함께 예쁜 추억을 많이 만드세요. 인생 그리 길지 않아요. 너무 악착같이 살지 마시고 조금 느슨하게 즐기면서 사세요. ‘뒤늦은 후회’하지 마시고요.
등록일 : 2018-04-27 14:21   |  수정일 : 2018-04-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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