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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여자들의 상처를 모른다

베스트셀러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글 | 박미정 여성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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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이 가시화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미투 운동의 핵심은 그것이 ‘상하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라는 것이다. 이는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침범하는 문제다. 마침 인간관계의 ‘거리두기’에 관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가 쓴 <당신과 나 사이>다. 김혜남 전문의는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비롯해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등 총 일곱 권의 책을 펴내 130만 독자의 공감을 얻은 베스트셀러 작가다. 들불처럼 번져가는 미투 현상에 대해 그녀의 입장을 듣고 싶었다. 애초 인터뷰 요청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18년째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파킨슨병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몸이 굳어버리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우려도 잠시, 그녀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어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자택을 찾았다. 작업실로 쓰고 있는 지하 1층 탁자엔 시간대별로 나뉘어 있는 약상자와 생수 한 병 그리고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한 시간 반 간격으로 울리는 휴대폰 알람소리에 맞춰 약을 먹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팔다리 근육뿐 아니라 얼굴 근육까지 굳어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녀가 들려준 얘기는 생각지 않게 드라마틱했다. 미투 관련한 질문을 하기 전에 그녀의 인생 이야기부터 들었다.
 

마흔세 살에 찾아온 파킨슨병

파킨슨병으로 18년째 투병 중이라 들었습니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심정이 어떠셨나요? 2001년 2월에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정말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죠. 그때가 제 나이 마흔세 살이었어요. 파킨슨병은 우울증과 치매라는 끔찍한 증상을 동반하는데 처음엔 제게 그런 시련이 닥쳤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나, 세상이 원망스러웠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아직 나는 그대로인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든 거죠. 그때부터 다시 진료를 시작하고 강의를 나가고 집안일을 시작했어요.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는데 막을 방법이 없다면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자기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최근 <당신과 나 사이>란 책을 내셨지요. 책 출판과 관련해서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아무래도 증상이 심해지다 보니 오래 집중을 못해요. 한 시간 글을 쓰고 나면 두 시간을 누워서 쉬어야 해요. 한 시간 이상 앉아서 일을 못 합니다. 이 책을 내는 데도 3년 정도 걸렸어요.

책을 내고 나서는 주로 병하고 싸우고 있죠. 병색이 안 좋아져서 작년에는 여섯 번이나 입원을 했으니까요. 지금은 한 시간 반 간격으로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사회생활을 안 하니까 위축되는 것 같아 가끔은 인터뷰도 하고 강의도 하고 그럽니다. 강의도 하나 있을 예정인데요. 병이 좀 호전되기를 바라야죠.

지금까지 일곱 권의 책을 쓰셨고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책을 쓰시게 됐나요? 사실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어요. 정신분석가로서 꿈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시점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죠. 정신분석가는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 학문이잖아요. 근데 그 꿈이 좌절되고 나니 개인이 아닌 대중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책을 쓰는 게 대중에게 말을 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대중과 나누고자 책을 쓰게 됐죠.

책에서 “죽을 것 같은 고통 앞에서 나는 말 그대로 혼자였다”고 쓰셨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죠. 세상에 돈으로 남들이 다 해주는데 돈으로 못 해주는 게 ‘고통’이라고요. 그건 온전히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죠. 누가 옆에서 손 잡아주면 조금 안심이 되고 좋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안 아픈 건 아니거든요. 특히 밤중에 혼자 깼을 때는 옆 사람을 깨우지도 못하고 혼자서 그 아픔을 감당해야 하니깐 어쩔 땐 3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요. 작년에 입원했을 때는 정말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어요. 그럴 땐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고통’에 관한 책을 또 준비하고 있어요.

학창 시절은 어떠셨나요? 친구는 많진 않았지만 당시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 평이 나 있었어요. 반면 차갑고 냉정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죠. 친한 사람과는 말을 잘해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잘 안 하거든요. 사람들은 활발한 줄 알았는데 말을 잘 안 하니까 차갑게 느껴지나 봐요. 한번은 학회에 갔는데 보름 동안 저랑 같이 방을 쓰게 된 친구가 학회 가기 전에 열 통의 전화를 받았대요. 무서워서 어떡하냐고요.(웃음)
스승님 한 분도 저더러 밖에서 보면 활달해 보이는데 사실은 말이 없고 내성적이다 그러셨죠. 친한 친구 하나는 제가 ‘내숭적’이어서 그렇다 그래요.(웃음) 사실 전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그걸 고치려고 대학 때 연극반에 들어갔으니까요. 제가 이래 봬도 고대 연극반에서 전설적인 존재였어요. 본과 4학년 때까지 했으니까요.(웃음) 무대에만 올라가면 사람이 달라졌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산다는 게 정말 매력적으로 와 닿았어요. 그래서 대학 때는 연극영화과에 편입을 할까도 생각했었죠. 제 꿈이 나이 들어서 영화나 연극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거였어요. 지금은 몸이 이러니 못 하게 됐지만요.

그녀는 연극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게 <노비문서>의 취바리 역이었다고 한다. 취바리는 “어허~ 놀이를 한다니깐 똥파리들이 다 모였구나” 하면서 한바탕 무대를 뒤집어놓고 가는 역할이다. 이를 소화하기 위해 탈춤부터 온갖 춤을 배웠다고 했다. 무대만 올라가면 휘젓고 다닐 만큼 대학 시절 댄싱퀸이었다는 그녀의 말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연극은 대학시절에만 하셨나요? 이후 사이코드라마를 했었어요. 전문의가 돼서도 공연을 했으니까요. 사이코드라마는 연극적인 기법을 이용한 치료법이에요. 상황 속의 역할을 주고 여러 기법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당시 연극적 방법을 이용한 공연을 한 달 반 정도에 걸쳐 했었어요. 공연할 때 제일 큰 찬사가 뭔지 아세요? 어느 정신과 의국에서 단체로 공연 관람을 왔는데, 저를 가리키더니 “야, 저 사람 의사 해도 되겠다” 그러는 거예요. 제가 배우인 줄 알았다는 건 배우로서 성공했다는 거잖아요?(웃음)
 

짝사랑 고민 들어준 친구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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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사랑에 빠졌을 때라고 하셨어요. 남편과는 어떻게 만나 연애하셨나요? 과 동기였어요. 남편이 재수를 하고 내가 한 살 일찍 들어갔으니까 두 살 차이죠. 그때 제가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봤거든요. 당시 연극도 하고 활동적이어서 친구들은 제가 남자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사실 세 번 이상 만나본 남자가 없어요. 짝사랑만 2년간 했었어요. 어떤 선배를 좋아했죠. 근데 그걸 혼자 감당하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본과 4학년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지금의 제 남편에게 얘기 좀 들어달라며 다 털어놓았어요. 그런데 남편이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더라고요. 적극적으로 그 선배를 만나고 저를 만나서 코치를 했어요.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었죠. 남녀 관계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그러다가 정말 과 커플이 됐어요. 남편은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에요.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사람이죠. 제가 시집가서 그렇게 가난한 집은 처음 봤으니까요. 남편과 사귄 후로는 우리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거의 한 식구처럼 지냈죠. 

부부갈등을 또 빼놓을 수가 없죠. 부부갈등을 해소하는 노하우 같은 게 있으신가요? 없어요.(웃음) 그냥 끊임없이 싸우고 부딪히는 거죠. 근데 부부간 갈등을 잘 해결하려면 서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게 중요해요. 절대로 ‘내가 저 사람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죠. 서로 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지거든요. 재밌는 실험이 하나 있어요. 결혼한 지 2주 된 부부와 2개월 된 부부 그리고 2년 된 부부와 20년 된 부부를 대상으로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실험을 해봤어요. 어떤 부부가 서로 제일 잘 알 것 같으세요? 2주 된 부부예요. ‘오늘은 뭘 하고 있을까.’ ‘밥은 먹었을까.’ ‘오늘은 왜 얼굴 표정이 어두울까.’ 처음에는 이렇게 관심들을 가지는데, 2년쯤 되면 ‘또 인상 쓰고 들어오네, 자기만 힘들었나’ 그러면서 알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그건 상대방이 자기를 엄마처럼 잘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거든요. 우리가 상처를 입었다고 그러는데 왜 상처를 입겠어요. 결국 뭔가를 절실히 원하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입는 거예요. 사실 우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줘요. 상대 약점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말로 상처를 주고 서로 문을 닫으며 그렇게 점점 멀어지죠. 부부싸움을 하면 남편이 저더러 “당신이 쓴 책 좀 읽어보라” 그래요. 책에는 그렇게 좋은 말들 많이 써놓고 왜 그렇게 안 하냐는 거죠. 그럼 제가 “내가 현실에서 그럴 수 있으면 그런 책을 썼겠어? 현실이 그러지 못 하니까 그런 책을 쓴 거지” 해요.(웃음) 요즘엔 남편이 정말 고마워요. 옛날엔 밉기만 하고 원망스러웠는데 요즘엔 ‘저 사람이 진심으로 날 걱정하고 있구나’ 그게 느껴져요. 그러면서 ‘저 사람도 참 힘들겠다. 밖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내가 아픈 것만 보게 되니깐 참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최근 미투 운동이 한창입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진작 오픈했어야 하는 일이죠. 제가 중학교 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 어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나한테 스킨십을 해오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려버렸어요. 저는 그때 말을 못 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최근까지도 그렇지만 강간의 조건이 여자가 반항을 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칼을 목에 대고 폭행을 하는데 어떻게 반항을 할 수 있나요. 거기서 죽으라는 얘기죠.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게 뭔지 아세요? 무력감이에요. 그때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그들을 가장 괴롭히거든요. 자기 힘을 통해 남을 지배하고 남한테 고통을 가함으로써 자기가 우월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게 성폭력 문제의 본질이지 성적 쾌감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봐요.

최근엔 펜스룰이 여성 배척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도 들립니다. 그러다 제자리를 잡을 거예요. 우리나라가 격변기에 있잖아요. 하물며 칠거지악이라 해서 아들을 못 낳는 것도 여자 탓이고 질투를 해서도 안 되고 이런 분위기에서 수백 년을 살아왔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게 변화한 게 몇 십 년 안 되거든요. 저는 우리나라가 제자리를 잡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정 중에 있는 거죠. 그동안 남자들은 여자들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몰랐던 거예요. 여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남자들이 이를 반성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겠죠. 오히려 회식문화도 2차, 3차 없어지고 좋아졌죠.

최근 신간인 <당신과 나 사이>에서 “모든 인간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미투 운동의 핵심은 ‘성’ 문제를 넘어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일방적인 공격’이라는 데 있어요. 상사가 힘으로 부하직원에 대해 사적인 문제를 강요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죠. 직장상사와 직원 간의 거리를 무시하고 경계를 침범하는 거예요. 하물며 남자 상사와 여자 직원 간의 문제는 더 크겠죠. 상사가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봤다면 그렇게 했겠어요? 거리두기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중’을 넣는 거예요.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이런 부당함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제도적으로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돼야겠죠. 그전에 피해자 여성도 태도가 분명해야 해요. 상사라고 그냥 묵인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당한 그 순간에 문제제기를 해야 해요. 단호하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익혀야죠. 우리나라가 참 모순되고 불합리한 문제가 많잖아요. 개인들 하나하나가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그것이 하나의 힘으로 합쳐져 결국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봐요.

올해 출간된 신간 <당신과 나 사이>에서는 가족, 친구, 회사 사람의 관계 유형에 따라 필요한 최적의 거리를 제시한다. 가족과 연인 등 밀접한 사람들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0~46㎝,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46㎝~1.2m, 회사 사람들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1.2~3.6m라는 것이다.
 

파킨슨병이 내게 가르쳐준 것

워킹맘들은 전업주부 엄마들처럼 아이를 일일이 챙겨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으레 아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쉬운데요. 아이를 자기가 돌보지 못하고 혼자 내버려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크죠. 하지만 죄책감이 제일 나쁜 거예요. 죄책감을 느끼면 일단 행복하지 않아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데 말이죠. 죄책감이란 감정은 분노가 자신을 향해 터져 나오는 감정이에요. 죄책감을 가질 게 아니라 힘들면 그걸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해결하면 그만이거든요. ‘아! 내가 많이 피곤했구나. 그럼 해결 방안은 뭘까’ 이렇게요. 그리고 아이와 짧은 시간이라도 서로 감정이나 사랑을 주고받는 게 중요하죠. 퇴근하고 와서 바로 아이를 안아주면 돼요. 스킨십이 굉장히 중요해요. 30분만 놀아주고 얘기 들어주고 그다음에 밥을 먹어도 늦지 않거든요. 뭐가 중요한지를 생각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면 되는 문제예요.

집에 있는 주부들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진 않아요. 상담을 하다 보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결혼 전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결혼하고 애 낳고 보니 애는 봐야겠고 자기 꿈은 접어야겠고 그래서 항상 우울하다고요.
‘저애들만 없었다면 내 일을 했을 텐데’ 하면서 속 앓다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다시 죄책감에 빠지길 반복하죠. 그럼 제가 그래요. “제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애들이 어렸을 때 마음껏 놀아주지 못한 거예요.” 일단 지금은 애들을 사랑할 시간이니까 애들을 사랑하고 충분히 그 시간을 즐겨라 그래요. 그다음에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 어떤 일이 다가올지 그건 그때 가서 기다리면 된다고요. 조급할 필요가 없죠. 인생은 결국 자기가 뭘 원하면 그쪽으로 가게 돼 있거든요.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재미있게 살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저는 일을 그만뒀을 때 ‘이런 일상도 있구나. 너무 좋다’ 했어요. 누워서 TV만 보면 되니깐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재작년엔 정원에 장미 나무를 25그루 심었어요. 꽃 가꾸는 재미가 아주 쏠쏠해요. 물방울 사진 찍어서 액자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할 게 많아요. 아프다고 누워 있는 것보다 소소한 삶의 재미를 만들어가려고 하죠.

한번은 제주도에 혼자 6개월을 가 있었어요. 그때 곶자왈이라고 연못이 있었는데 한 시간 코스예요. 약 먹는 시간하고 잘 맞춰야지 돌아올 때 잘못하면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번번이 가서 풍광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거예요. 돌아올 때 몸이 굳어서 나뭇가지 잡고 간신히 돌아오곤 했어요. 한번은 저쪽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오고 있는 게 보이는데 ‘참 부럽다.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맨 뒤에 뇌성마비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오는 게 보였어요. 그걸 보는 순간 너무 미안하고 내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어요. ‘저 사람은 서 있는 나를 부러워할 텐데, 내가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었구나’ 했죠. 그렇게 감사를 배웠어요. 그다음부터 감사하기 위해 노력했죠. 노력이 벽돌처럼 쌓여서 인생을 형성하는 거예요. 가끔 흙색 벽돌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멋있잖아요? 자기한테 조금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한테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질 수 있거든요. 예전에는 이렇게 감사할 게 많은 줄 미처 몰랐어요.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저를 찾아와주는 친구들과 옆에서 지켜준 남편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까지 감사한 일투성이죠. 매사에 감사하고 재미있게 살려고만 하면 세상은 얼마든지 재밌는 일로 가득 찰 거예요.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2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다.
경희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인제대 의대 외래 교수이자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환자들을 돌봤다. 80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비롯해 <당신과 나 사이> 등 일곱 권의 책을 펴내 130만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등록일 : 2018-04-20 08:33   |  수정일 : 2018-04-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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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 2018-05-05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0
가시철망을 두르거나 끼우면 상처가 생기는건 당근!!! 그래서 전중후에 잘 씻어야 한다.
이병곤  ( 2018-04-20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0
남자들은 여자들의 상처를 모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가지 놓치신 것이 있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상처입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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