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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보통 ,어른 되는 건 슬픈 일?

대기업을 퇴사하고 만화가가 됐다. 글도 잘 쓴다.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은다. 이쯤 되면 특별해 보이는 데도 그의 꿈은 ‘보통’이란다. 얘기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근 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펴낸 작가 김보통을 만났다.

글 | 서재경 여성조선 기자   사진 | 안규림

초등학교 1학년 때, 김보통의 자리는 교탁 바로 옆이었다. 그 자리에 앉은 이유는 일종의 격리 조치였단다. 그가 ‘반에서 자기 이름을 못 쓰는 유일한 아이’인데다 ‘수업 중 앉은 자리에서 시시때때로 오줌을 싸기도’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땐 선생님에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지 못할 거란 얘기를, 고등학교 땐 자퇴하란 소리를 들었다. 결코 ‘보통’은 아닌 유년 시절을 보낸 그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은 에세이를 내놨다. 제목은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이다.

2013년, 암 환자 이야기를 다룬 <아만자>라는 만화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으며 묵직하게 데뷔한 김보통은 지난해부터 그림뿐 아니라 글로 쓴 작품도 내놓고 있다. 대기업을 퇴사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2017)를 시작으로 올 초엔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출간했다. 어떻게 보면 불행해 보이는 일들을 남 얘기하듯 덤덤한 말투로 풀어낸 두 권의 에세이는 연령불문 공감을 사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가난하고 힘들던 유년시절을 지나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들어갔고, 퇴사 후 걷게 된 만화가의 길에선 데뷔작부터 큰 상을 받았으며, 여전히 만화와 글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작가 김보통의 이력은 ‘보통’이라기보다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행보를 ‘성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작품이 아닌 자신의 ‘배경’으로 주목받는 것을 경계한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나와서 만화가가 될 수도 있고, 호떡을 팔다가 의사가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보통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우리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모든 것이 그저 보통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래서 김보통은 오늘도 보통을 꿈꾼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이란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요? 책 본문에 “어른이 되면, 달콤한 스카치 캔디보다 쌉싸름한 계피 사탕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언제까지고 이 부드러운 달콤함을 즐기며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구절이 나오거든요.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하던 일들을 어른이 되고 뒤늦게 이해할 때가 있어요. 이를 테면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때 부모님께서 저에게 500원짜리 장난감을 사주셨는데 그게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식에게 비싼 장난감을 못 사주는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해가 돼요. 뒤늦게 그런 걸 깨달으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서글픈 일이구나 싶었어요. 이해하지 못하던 고통을 이해하게 되니까요.

가난했고 그래서 꿈도 쉽게 포기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보다 어린 시절이 더 서글펐을 것 같은데요. 어렸을 땐 서글프다는 감정보다는 그저 이해할 수 없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그때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니까 서글픈 거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진 않았나요? 그렇진 않았어요. 어른들의 좋은 모습을 봐야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텐데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어른인 저희 부모님이나 이웃 어른들을 보면 살아가는 게 하루하루 전쟁이었거든요.

삶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 땐 보통 분노나 우울, 원망의 감정이 들게 마련이잖아요. 자전적인 에세이인데 책에선 그런 감정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종종 그런 얘길 들어요. “너는 충분히 비뚤어질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는데 참 밝다”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주변이 다 못살았어요. 저희 집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었죠. 적어도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시고, 아버지가 알코올중독도 아니고, 어머니가 집을 나가지도 않으셨거든요.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축복받은 가정에서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들어가고 나서 알았죠. 세상엔 당연히 알코올중독이 아닌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으며 사는 사람도 있다는걸.(웃음)

그렇더라도 자신의 일인데 거리를 두고 얘기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겪는 고통에 별로 몰입하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지금 못살고 백수라 할지라도 이 상황이 계속될 거란 생각보다는 지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거든요. 그래서 남 얘기하듯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지나치게 몰입해서 쓰면 너무 슬퍼질까 봐 거리를 두고 쓴 것 같기도 하고요.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어쩔 수 없잖아요.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요? 한마디로 모자란 애였어요.(웃음) 학교 특수반에서도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나머지 공부를 하고, 5학년 때까지 바지에 오줌을 쌌어요. 중학교 땐 담임 선생님한테 고등학교에 못 갈 거란 얘기도 들었고, 고등학교 땐 자퇴하라는 얘기까지 나왔죠. 공교육을 따라가기가 버거웠어요.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은 없었는데, 평균적인 집단에 속해 있고 싶다는 생각은 했거든요. ‘난 왜 튕겨져 나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책에 “인생은 쉽게 불행해지거나 순순히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구절도 나와요. 지금은 책도 잘되고, 하고 싶던 그림도 그리며 살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나요? 똑같아요. 불행하진 않아요. 행복하냐는 물음에는 어떤 목표가 달성돼서 행복할 거라는 예상이 담겨 있잖아요. 책을 내고, 그 책이 잘 팔려서 행복하냐고 묻는 거라면 그렇지는 않아요. 한편으론 그런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지도 않죠. 책은 이미 나왔고 읽히면 좋고, 안 읽혀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것과는 별개로 저는 오늘 할 일을 충실히 하면서 살면 되는 거니까. 불행하지 않으면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고 생각해요. 그걸로 됐죠, 뭐.

원래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격인가요? 회사 다니면서 반동이 생긴 것 같아요. 회사에 있을 때는 매일 실시간으로 비교당했거든요. 그런 것에 지친 것 같아요.

책 말미에 요양원 할머니들 이야기가 나와요. 그분들이 열심히 놀라고 했는데요. 요즘 잘 놀고 있나요? 논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누군가에겐 노는 게 여행을 가는 거고, 누군가에겐 게임을 하는 거겠죠. 저한텐 글을 쓰는 게 노는 것 같아요. 제가 쓴 글을 누군가가 본다는 자체가 신기해요. 그런 점에서 보면 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보기에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제 일을 하는 거니까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아직도 신기해요, 제가 뭐라고.

데뷔한 지 5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신기하신가요? 6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만 해도 주변에서 다 망할 거라고 했거든요.(웃음)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데 제가 어떻게 인터뷰도 하고, TV에도 나오는지 그저 신기해요.

망할 거라고 악담했던 지인들 반응은 어떤가요?(웃음) 일단 제가 뭘 하는지 아무도 몰라요. 주변에 얘기를 안 하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서 그 사람들이 혹시 알게 되면 그때는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여전히 행복하냐고.

‘김보통’이란 예명을 쓰는 것에 말이 많아요. ‘김보통의 가면을 쓴 김특별’ 아니냐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가요? 이름을 지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김보통’으로 지은 건데, 유명해졌다고 “너 왜 이름이 김보통이야?”라고 물어봤자 5~6년 전 저는 "몰랐거든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초창기에 저의 백그라운드(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뒀다는) 때문에 인터뷰가 많이 들어왔어요. 후에 책을 통해 알려지긴 했지만 그땐 그런 게 밝혀지는 게 싫었거든요. 더 이상 그런 것들이 이슈가 되지 않는 사회였으면 해요. 대기업을 다니다가 나와서 만화가가 될 수도 있고, 호떡을 팔다가 의사가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보통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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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통’이 제일 힘든 일일 수도 있지 않나요? 힘들죠.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보통으로 삽시다’라고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100주년을 기념하더라고요. 여성의 투표가 당연시된 지도 100년밖에 안 된 거예요. 보통을 만들기 위해서 이 정도 시간이 걸린 거죠. 보통의 범위를 점점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인간의 역사인 것 같아요. 지금은 공교육이 생겼고, 무상급식 얘기도 나오는 세상이잖아요. 이런 것들이 보통이 되는 건 어느 날 뚝딱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도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왜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작가니까 그런 생각을 갖고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역할일 테고요.

대기업을 퇴사한 경험을 다룬 전작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많은 직장인에게 공감을 샀어요. 회사라는 조직에서 어떤 부분이 견디기 힘들던가요? 회사는 개인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한 모든 삶을 요구한다는 점이요. 왜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충성 경쟁을 하고, 늦게까지 남아 술을 마셔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들을 보면서 그런 삶을 10년, 20년 이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컸죠. 지금은 반동 심리로 제 작업실을 반대로 운영해요. 최대한 개인 시간을 많이 주고 삶을 최대한 빼앗지 않으려 하죠.

어시스턴트를 뽑으면서 4대 보험과 초과근무수당을 제공한다는 공고를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만화계에서 흔치 않은 관행이어서인지 화제가 됐어요. 당연한 거예요. 그걸 안 지키는 게 문제지 지키고 있는 사람한테 ‘와! 신기하네요’라고 하면 안 되는 거라고 봐요. 저는 특별한 신념도 뜻도 없어요. 근로기준법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나쁜 거지 지키는 건 특별한 게 아니잖아요. 머지않아 이런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면 좋겠어요. 이번에 어시스턴트들에게 설 연휴를 포함해 3주 동안 휴가를 드렸는데, 앞으론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 있는 회사가 보통이 되면 좋겠어요.

본인은 휴가를 안 가시나요? 지금도 놀고 있는 건데요.(웃음) 굳이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내 일이니까. 회사를 다닐 때는 굳게 닫힌 철문을 못 나가게 지키는 감시원이 있는 삶이었지만, 지금은 언제든 원하면 나갈 수 있거든요. 제 삶의 주도권을 제가 쥐고 있으니까 괴롭지 않죠. 

많은 사람이 퇴사를 원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데요. 이 불안감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못 다뤄요.(웃음) 불안의 총량은 사라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면 불안하지 않으냐고 하는데 회사 다닐 땐 안 불안한가요? 그땐 그때대로 불안해요. 내 삶이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닌가 싶잖아요. 불안이 없이 사는 사람은 도태되는 거예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유기 생명체는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생명은 유한하니까요. 결국 불안을 인정하는 수밖엔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데뷔 초창기에는 이 불안감이 언제 사라질까 고민했는데,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어느 정도 불안감은 기본 값으로 깔고 가게 됐죠.

불안을 안고 갈 수밖에 없군요. 물론 자신의 삶을 좀먹는 불안감이 있다면 도망쳐야 해요. 우리 사회는 도망치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데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못 하겠다’ ‘그만두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다른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 아닐까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하면 된다’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것 같아요. 하면 다 되는 게 아니라 해서 된 사람들만 살아남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니까. 그게 당연시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해요.

그래서인지 김 작가는 인터뷰할 때마다 ‘성공한 사람’으로 표현되는 걸 무척이나 경계하더군요. 실제로도 성공하지 못했으니까요.(웃음) 만약에 누군가 성공했다고 쳐요. 사람들은 성공한 인터뷰이에게 기대하는 대답이 있을 거예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성공했다는 비결 같은 거겠죠. 하지만 그 성공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특수한 일이고 보편적인 게 아닌데 그런 얘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절망을 줄 수도 있어요.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의 경험을 떠벌리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더 잘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그저 지금처럼 남한테 해 입히지 않고 제 삶을 충실히 산다는 느낌만 가질 수 있으면 된 것 같아요. 물론 이것도 복에 겨운 소리긴 하지만요.

약자와 소수자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아무래도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가 이입하는 대상이 그런 사람들인 경우가 많아요. 영화를 봐도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지 주인공은 별로 관심이 안 가요.

만화든 글이든 그런 이야기를 많이 그릴 수밖에 없겠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관심이 가요.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변두리에 떠도는 사람들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루야마 겐지라는 일본 소설가가 “작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눈 돌리게 하는 예쁜 환상을 만드는 게 아니고, 보기 싫은 현실을 들여다보게 눈앞에 들이미는” 거라고 했어요. 그게 저의 작가론이에요. 보기 싫은 불편한 진실을 계속 보여줄 수 있게 끊임없이 들이미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올해 나올 작품도 기대가 돼요. 이란 작품이 영화화되는데요. 시나리오 작업은 끝났고 곧 캐스팅 작업을 시작할 것 같아요. 또 그림책을 여러 권 낼 계획이에요.
등록일 : 2018-03-20 10:06   |  수정일 : 2018-03-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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