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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기그룹 ‘듀스’ 보컬 김성재 의문사 22년, 어머니 육영애의 격정토로

“죽은 아들의 목숨은 되돌릴 수 없지만 누군가 나서서 진실을 밝혀준다면…”

⊙ 문경새재에 유골 뿌렸는데 정확한 장소 알 수 없어… 당시 동행했던 이들 수소문 중
⊙ 타살의 증거들, “주삿바늘 자국은 모두 사건 당일에 생긴 것… 오른손잡이가 오른쪽 팔뚝에 주사할 수 있나”
⊙ 당시 용의자 집안 가정부의 증언, “졸레틸 구매해 개에게 먼저 안락사 실험을 했던 거 같다”
⊙ 1심 무기징역 선고 이후 검사 교체되고 2심 무죄 선고… “당시 용의자 측 외가는 유력 정치인”

글 | 김성훈 월간조선 기자

▲ 김성재씨의 솔로앨범 1집 〈말하자면〉.
최근 가수 김광석과 그의 딸 서연 양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며 과거 인기스타 의문사(疑問死)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96년 1월 김광석 사망 당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은 인기 그룹 ‘듀스’의 김성재다. 김성재는 김광석이 죽기 두 달 전인 1995년 11월 20일 새벽, 그룹 숙소로 사용됐던 은평구 S호텔 한라 스위트 룸 57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듀스는 1993년 이현도와 김성재가 팀을 이뤄 데뷔한 힙합 듀오 그룹으로 ‘나를 돌아봐’ ‘여름 안에서’ 등의 곡을 히트시켰으나 2년 뒤인 1995년에 해체된다. 이현도는 프로듀서가 되기를 희망했고 김성재는 엔터테이너로 독립하고자 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해체 이후 김성재는 솔로 가수 활동을 선언한다.
 
  사망 전날은 김씨가 SBS 〈생방송 TV가요20〉 프로그램에서 첫 솔로 무대를 선보인 날이었다. 김씨는 한때 연인관계였던 여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오후 10시쯤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당시 방에는 흑인 남녀 백댄서 2명, 한국인 백댄서 4명, 매니저와 김씨의 동료가 있었다. 문제의 여자는 새벽 3시40분쯤 호텔을 나갔다.
 
  부검 결과 김씨의 오른쪽 팔뚝에서 28곳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됐고 사인은 약물중독으로 확인됐다. 이후 오른손잡이인 김씨가 자기 오른쪽 팔뚝에 주사를 놓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당시 연인이었던 여자가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고 12월 8일 긴급구속됐다. 경찰은 당시 “그가 호텔에서 동료들이 모두 잠자러 각자의 방에 들어간 뒤 동물용 수면제를 잠든 김씨의 팔에 집중적으로 주사한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김성재는 그 여자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여자는 김성재를 사망케 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용 수면제 졸레틸, 황산마그네슘, 주사기 등을 서초구 소재 동물병원에서 11월 초에 구매한 것이 확인됐다. 여자는 약품은 애완견 안락사(安樂死)용으로 구매했으나 다음날 버렸다며 살해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여자에게 살인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새 대통령 취임식 날인 1998년 2월 25일 기각됐고 여자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후 진범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22년이 흐른 현재까지 김성재 사망 사건은 미제(未濟)로 남았다.
 
  김성재씨의 어머니인 육영애씨를 어렵게 만나 김성재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 일흔이 넘은 육영애씨는 현재 서울 인근 모처에서 차남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김성재가 평소 좋아했던 문경새재에 유골 뿌려
 
최근 김성재의 유골이 뿌려진 문경새재를 방문한 육영애씨와 김성재씨의 팬들. 사진=김성재 팬클럽
  ― 사건 당일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날 성재가 머물던 호텔에 가봤어야 했는데 안 가서 그런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로드 매니저 했던 친구한테서 밤늦게 전화가 왔어요. 제가 성재한테 너무 가보고 싶다고 하니깐 ‘어머니 제가 모시러 갈 테니 우리 가요’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사양했어요. 공연 잘 마치고 편하게 잘 것 같은데 오늘은 가지 말자고.”
 
  ― 그러고서 그 다음날 사망 소식을 들은 거군요.
 
  “네. 소식을 듣고 저는 영안실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어요. 노제(路祭)하고 눈이 오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벽제 가서 화장하고 차가 대절돼 있기에 타고서 문경새재로 갔어요. 당시 장례 준비를 매니저가 맡아서 했던 걸로 생각이 돼요.”
 
  ― 문경새재요.
 
  “네. 유골을 뿌릴 장소를 성재가 평소에 많이 좋아했던 문경새재로 정했어요. MBC 별밤인가 촬영하러 문경새재 갈 때마다 너무나 좋았다고 나중에 꼭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 유골을 문경새재에 뿌렸던 게 그래서였군요.
 
  “근데 추운 겨울이고 깜깜했던지라 정확히 문경새재 어디였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당시에 정신도 없었고.”
 
  ― 문경새재에는 누가 같이 갔습니까.
 
  “성재 아빠, 저, 성욱이(김성재씨 동생) 그리고 매니저, 팬들이 같이 갔어요. 유골을 한 줌씩 돌아가면서 뿌렸는데 뿌릴 때는 조금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못 하고 다 뿌렸어요. 나중에 성욱이가 ‘그때 형이 참 따뜻했는데 왜 남겨서 가져올 생각을 못 했지’ 후회하더라고요. 다들 경황이 없었던 것 같아요.”
 
  육씨와 통화하게 된 것은 김성재씨의 팬이 《월간조선》에 보내온 한 통의 제보 때문이었다. 얼마 전 육씨와 김성재씨의 팬들 몇 명이서 김성재씨의 유골이 뿌려진 문경새재에 다녀왔다고 한다. 육씨는 유골을 뿌렸을 당시 너무 경황이 없고 밤이었던지라 정확히 어느 장소에 뿌렸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동생 김성욱씨를 포함해 당시 동행했던 이들도 장소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동안은 정황상 문경새재 삼관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지내왔으나 육씨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정확한 장소를 찾고자 했다. 이에 제보자는 유골을 뿌린 위치를 알 만한 이들을 수소문하던 끝에 김성재 사망 사건을 최초로 보도했고 최근까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온 《월간조선》 문갑식 편집장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 기자는 제보자를 통해 육씨와 연락을 할 수 있었고 김성재씨 사망에 숨겨진 의혹들을 들을 수 있었다.
 
 
  “유골을 뿌린 장소 당시 김성재씨 매니저가 알지 않을까”
 
  ― 그동안 유골을 뿌린 장소를 안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까.
 
  “유골을 뿌리러 같이 갔던 사람들을 수소문하다 위치를 알고 있다는 사람을 찾았어요. 성재가 알고 지내던 영화계 쪽 사람이었는데 장소에 같이 가기로 약속해 놓고 자살해 버렸어요.”
 
  ― 자살이요? 그게 언제였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2000년대 이후예요. 2011년 전후였던 것 같아요.”
 
  ― 유골을 뿌렸던 장소에 따로 표시를 해두지는 않았나요.
  
  “팬들이 유골을 뿌린 장소를 표시하려고 나무에 리본도 매놓고 했는데 이제 와서는 찾을 수가 없어요. 문경새재도 변해 가고 세월은 흘러가는데 어디인지 빨리 알고 싶어요.”
 
  ― 장소를 기억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요.
 
  “당시 매니저가 성재 장례 관련 모든 일을 했으니깐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성재 가고 나서는 마음이 안 좋아 매니저를 만나지 않았어요. 매니저를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옆에서 ‘매니저가 정신 팔려서 성재를 안 챙겼기 때문에 죽은 거’라며 나쁜 녀석이라고 하니깐 점점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 연락을 취해보지 않았나요.
 
  “2000년이 됐을 때 매니저도 안 좋은 일로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여러 가지 안 좋았던 마음 지우고 편안하게 지내면 좋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연락했어요. 근데 매니저가 화가 많이 나 있더라고요.”
 
  ― 화가 나 있었다고요.
 
  “네. 자기도 열심히 했는데 비난당하니깐 화가 났고 성재 사건 이후 매니저의 큰형이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시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아마 집안에서 막내일 텐데 혈혈단신(孑孑單身)인 기분이었을 거예요. 자기도 자기 잘못들이 생각나서 힘들었다면서 내 말은 하나도 안 듣고 본인 얘기만 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이후에는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 당시 매니저는 현재 어떻게 지낸다고 얘기를 들은 바 있습니까.
 
  “현재는 드라마 제작자로 잘나가고 있다고 들었어요. 다시 만나면 오해도 풀고 싶고 묻고 싶은 게 참 많아요. 다시 연락해 보려고 노력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고 연락이 닿지 않네요.”
 
 
  오른팔 바늘 자국은 사건 당일 누군가가 주사한 것
 
당시 김성재 사망 사건 기사. 사건 직후 김성재씨의 사인(死因)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이후 조사에서 사인은 약물중독이었으며 타살 추정으로 결론이 난다. 사진=조선일보
  ― 사건 직후부터 매니저와 사이가 틀어졌던 건가요.
 
  “처음에는 여자(살해 용의자였던 김성재씨의 전 여자친구)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저와 매니저밖에 없어서 둘이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제가 매니저한테 성재가 보통 리허설할 때 윗도리를 안 입고 하는데 (죽기 전날) 리허설할 때도 윗도리를 안 입고 했는지 물었어요. 매니저가 그렇다고 하기에 리허설 비디오를 찾아서 팔에 바늘 자국이 있는지 찾아보자고 했어요. 비디오 사진에는 팔에 바늘 자국이 없었어요. 바늘 자국은 (공연 후) 새벽에 생긴 거예요.”
 
  ― 사망 전날까지는 약물 같은 거를 맞은 적이 없다는 증거겠네요.
 
  “성재는 전에도 마약 같은 거를 한 적이 없어요. 게다가 성재는 오른손잡이인데 주삿바늘 자국은 다 오른팔에 있었어요.”
 
  ― 그럼 다른 누군가가 주사했다는.
 
  “네. 근데 그 여자는 나를 볼 때마다 ‘성재는 왼손잡이예요’라고 소리쳤어요. 내가 23년을 키운 아들인데 오른손잡이인 걸 모르겠어요. 동생 성욱이가 왼손잡이예요.”
 
  ― 김성재씨 사망 당시 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까.
 
  “여자는 성재가 잘 자고 있었다고 했는데 성재는 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어요. 자기 전에 잠들 준비를 하고 렌즈도 꼭 빼는 아이인데 머리도 세팅한 그대로였고 화장도 지우지 않은 상태였어요. 렌즈도 끼고 있는 상태였고요. 그리고 성재가 ‘밀러’라는 맥주를 입에 대면 끝까지 마시는 거를 좋아했는데 사건 현장에는 반이나 남아 있었어요. 맥주를 여자가 줬다고 하더라고요. 성재가 맛에 굉장히 민감한 아이인데 저는 맥주에 뭐가 들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성재가 죽은 채 발견됐을 때 입안에 피가 고여 있었다고 해요.”
 
  ― 경찰이 맥주의 내용물을 검사해 보지 않았나요.
 
  “경찰이 초동 수사 때 증거물을 제대로 수집하지 못했어요. 그냥 버렸다고 해요.”
 
 
  여자는 사건 전 동물병원에서 동물용 수면제 졸레틸 등을 구매해
 
  ― 여자가 동물병원에서 동물용 수면제 졸레틸을 구매했었다면서요.
 
  “강남의 한 동물병원에서 졸레틸이랑 주사기 등을 샀어요. 부검하기 전에 여자가 동물병원 원장한테 찾아가서 자기가 사갔다는 얘기를 아무한테도 하지 말라고 했대요.”
 
  ― 구매한 거는 어떻게 밝혀지게 된 겁니까.
 
  “동물병원 원장이 여자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전하는 중에 라디오에서 성재 몸에서 졸레틸 성분이 나왔다고 보도를 하더래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경찰서에 가서 그 여자가 졸레틸이랑 주사기를 사갔다는 거를 신고한 거예요.”
 
  ― 결정적인 증거가 됐겠네요.
 
  “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결정적 증거를 잡았다 생각하고 여자 집에 대기하고 있다가 여자를 체포해 갔어요.”
 
  ― 여자는 경찰에서 구매했던 것을 자백했습니까.
 
  “처음에는 동물병원 원장한테 도대체 얼마를 받고 위증을 하느냐고 따지더니 더 이상 숨길 수 없자 샀다고, 자기가 키우던 개가 치매가 걸려서 안락사시키려고 산 거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중에 동물병원 원장 증언이 조금 바뀌어요. 여자가 사갔던 양은 소량이었다고.”
 
  ― 그래서 ‘치사량이 아니었다’ 이런 얘기가 나왔던 거군요.
 
  “네.”
 
  ― 애완견을 안락사시키려고 구매했다는 거는 사실인가요.
 
  “여자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아주머니께 들은 건데요, 여자가 강아지를 사서 졸레틸의 효과를 시험한 것 같대요. 그리고 ‘○○’라는 개도 키우고 있었는데 그 개도 죽였다고 했어요. 나중에 똑같이 생긴 개를 사서 데리고 다녔대요.”
 
  ― 부검을 앞두고 여자가 특이 반응을 보인 것은 없습니까.
 
  “성재가 몸에 상처 나는 거를 싫어해서 처음에는 제가 부검을 반대했었는데 부검하도록 명령이 내려오면 바꿀 수 없나 봐요. 할 수 없이 부검하려고 하는데 여자애가 부검 안 하겠다고 해놓고 왜 하느냐고 따지는 거예요. 돈 주면 안 할 수 있으니깐 돈 주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여자 때문에라도 부검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부검 장소까지 따라와서 부검을 하지 말라고 막 말리더니 공중전화에서 ‘부검을 한대요. 글쎄’ 이러면서 계속 전화를 하더라고요.”
 
 
  2심 검사 교체되고 무죄 판결 나자 배후 세력 의심해
 
분당 야탑에 있는 김성재 추모비, 김성재씨가 사망한 지 22년이 흘렀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성재 팬클럽
  ― 1심 재판부에서는 살해 용의자의 혐의를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었죠.
 
  “1심 재판에서 검사님이 사형을 구형했고 판사는 무기징역으로 판결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사건은 중간에 검사를 바꾸는 일이 없다고 들었어요. 1심 검사도 저를 안심시키면서 ‘다음 심에서는 더 잘 해서 형(刑)이 더 분명하게 나오도록 하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1심 이후부터는 법원에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 법원에서 연락이 없었다고요.
 
  “네. 2심부터는 연락을 받지 못해 재판에도 참석을 못 했는데 담당 검사가 바뀌어 있고 무죄 처분이 나온 거예요.”
 
  ― 담당 검사는 왜 갑자기 바뀐 겁니까.
 
  “1심 때 검사님을 찾았더니 없더라고요. 확인해 보니 1심 이후 대구로 발령이 났어요. 전화를 했더니 ‘죄송하다고 이거는 임기가 바뀔 때가 돼서 옮긴 거니깐 섭섭해하지 말라고 끝까지 못 해서 죄송하다’고 반복해서 얘기했어요.”
 
  ―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배후 세력을 생각해 보지는 않았나요.
 
  “뭐가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에는 잘 몰랐어요. 성재가 ‘제가 이 여자랑 관두는 첫째 이유가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어머니를 너무 슬프게 하는 일이고, 둘째 이유는 여자 집안이 권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단한데 어머니가 부담을 져야 하니깐 이런 여자랑 결혼 못 한다. 엄마가 편하게 살 수 있고 엄마한테 맞는 여자한테 장가가겠다’고 말했어요. 자기는 이렇게 굉장한 집 딸을 데리고 살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결별할 생각이라고 얘기했었어요. 그게 뭔데 물으니깐 ‘엄마는 몰라도 된다고 자기가 알았으니 망정이지 몰랐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고요. 무지막지한 뒤가 있다고’.”
 
  ― 사건이 있기 전에 김성재씨가 이별을 통보했었다고 하던데요.
 
  “여자애가 포기를 안 하는 거예요. 성재는 싫다는데 여자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이미 1995년 5월에 헤어지기로 했었는데 자기가 몇 살 많으니 그냥 누나로, 좋은 친구로 남겠다고 계속 매달리는 거예요. 성재가 미국에 갔을 때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었거든요. 그 여자애보다 더 젊고 예뻤던 친구인데 엄청 질투가 났나 봐요. 성재가 여자한테 이렇게 얘기했어요. ‘너는 대학까지 다니면서 중고등학교 수준이냐고, 서로가 안 맞으면 끝내는 거지, 어째서 너는 수없이 끝내자고 얘기해 놓고 계속 번복을 하느냐. 나는 절대로 너하고 결혼 못 한다. 우리 엄마, 가족을 위해서 너는 아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저를 많이 미워했지요.”
 
 
  문제의 여자 외가는 유력 정치인 집안
 
  ― 그런데 여자 집안이 도대체 어떻기에.
 
  “당시에는 성재가 얘기를 안 했으니깐 뭐가 있긴 있는가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모르고 지내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데 화면에 누가 하나 떠요. ‘왜 저 사람이 저기에 나왔지. 근데 저 사람이 그 여자가 말하던 그 사람이었구나’ TV 화면을 보니깐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요. 우리 집에 그 여자애가 느닷없이 와서 그 사람이 우리 아저씨뻘 되는 사람이라고 자랑했었어요. 제가 ‘내가 그 사람을 알아서 뭐하니. 나는 모른다’라고 말하니깐 어떻게 그 사람을 모르시냐고 뭐라 하며 설명을 했어요. 당시엔 웃으면서 넘어갔는데 나중에야 누군지 깨달은 거예요.”
 
  ―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거를 흘려들은 어느 주간지 기자가 ‘○○씨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는 이유 몇 가지’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거기에 ○○씨가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는 이유 중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에 ‘김성재 어머니의 말씀’이라고 써놓은 거예요. 얼마나 놀랐던지. 당시 그분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다 이런 얘기들이 있었는데 그 신문이 나온 뒤에 그 말이 쏙 들어갔어요. 그래서 결국 대통령에 못 나왔어요.”
 
  육씨는 그 유력 정치인이 여자의 외가 쪽 친척이라고 얘기했다.
 
  ― 그 유력 정치인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고 보는 건가요.
 
  “네. 제가 볼 때 재판 결과는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었는데 변호사들을 여러 명 쓰면서 말들을 짜깁기해서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재판 이후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변호사가 됐어요. 정의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돈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성재 팬들 중에 변호사가 아버지인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자기 아버지가 술 먹고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대요. ‘변호사들 간에는 그 여자가 범인인 걸 다 알고 있었다고. 네가 팬인데 말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 외가에 또 다른 실력자는 없었습니까.
 
  “여자 어머니가 국회의원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 지역에 내려가 있느라 여의도 집에는 거의 안 있었다고 해요. 여자 집에 갔었는데 여자 어머니랑 영부인이 악수하는 사진도 크게 걸려 있었어요.”
 
  ― 여자 어머니는 이후에 국회의원이 됐나요.
 
  “출마를 못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여자의 근황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나요.
 
  “성재 팬 아이들에게 듣기로는 전문직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그 여자애가 예전에 유학 간다고 거짓말을 했었어요. 그래서 성재랑 나랑 ‘쟤가 드디어 유학 가는구나. 해방이구나’ 그랬는데 유학 간다는 말이 거짓말이었어요. 그래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성재가 죽은 날이 그 여자가 유학을 떠난다는 날이었어요. 완전히 소설이죠.”
 
  육씨는 22년 전의 사건임에도 소상하게 설명해 줬다. 어떤 부분에서는 목이 메인 채 얘기를 전했다.
 
  육씨는 “언론에서 성재의 죽음을 간혹 자살로 잘못 보도하는데 ‘진범을 밝히지 못한 타살’”임을 거듭 강조해서 얘기했다. 여전히 못다 한 얘기가 많고 아직은 말해줄 수 없는 내용들도 있다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죽은 아들의 목숨은 되돌릴 수 없지만 누군가 나서서 진실을 밝혀준다면 저도 그렇지만 팬들이 정말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부는 당시 살해 용의자를 최종적으로 무죄 처분했고 공소시효는 2015년에 끝났다. 숱한 의혹은 있지만 김성재씨 의문사의 진범이 누구라고 어느 누구도 예단(豫斷)할 수는 없다. 다만 늦게라도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그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아팠던 이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등록일 : 2017-12-05 09:34   |  수정일 : 2017-12-0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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