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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복쟁반’의 재발견, 대동문

글 |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 대표메뉴 어복쟁반
어복쟁반으로 유명한 평양 음식의 명가 ‘대동문’. 주인장 문광석(59)씨는 오래된 통장 하나를 소중히 품고 다닌다. 겉표지가 나달나달해진 통장을 펼치면 지면마다 만두피, 냉면 등 작은 글씨로 출력된 레시피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그동안 아내 최현숙(52)씨와 수없이 연구하면서 완성한 것들이다. 음식 맛에 집중하는 이러한 열정은 대물림받을 당시 작은 규모였던 대동문을 서울 여의도의 내로라하는 식당으로 성장시켰다.
   
   문씨의 어머니는 평양 출신으로 1·4후퇴 때 월남했다. 이런저런 고생 끝에 1990년대 초 서울 여의도상가 건물 2층에 ‘삼미옥’이라는 상호를 걸고 만둣국, 어복쟁반, 부대찌개, 김치전골 같은 한식메뉴를 팔았다. 평양 음식 전문점으로 변신한 것은 1999년, 아들 문광석씨가 대물림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는 평양 음식 위주로 메뉴를 정리하고 재료를 고급화하면서 음식의 질을 높였다. 갈수록 평양 음식 전문점으로 명성이 자자해지자 그에 걸맞은 상호가 좋겠다 싶어 북한의 국보인 평양의 대동문에서 상호를 따왔다.
   
   대동문의 인기 메뉴는 어복쟁반을 비롯해 만두, 김치말이, 평양냉면 등이다. 그중에서 특히 어복쟁반은 국물에 기름이 전혀 뜨지 않는 깔끔 담백한 조리법으로 미식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맛난 음식으로 소문이 나 있다고는 하지만 어복쟁반이 어떤 음식인지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죽, 평양냉면과 함께 평양을 대표하는 음식인 어복쟁반은 놋쟁반에 쇠고기 편육과 야채 등을 얹고 육수를 부어 끓이면서 먹는다. 고기를 다 건져 먹은 후에는 평양의 향토음식답게 만두나 냉면 사리를 넣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어복쟁반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병 걱정 없이 쇠고기 요리를 즐기고 싶은 임금님을 만족시킨 음식이라는 설도 있고, 추운 날 평양시장의 상인들이 놋쟁반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여 먹던 것에서 발달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원래 우복(牛腹)쟁반이었다가 나중에 이름이 바뀐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복은 한자 그대로 소의 뱃살이라는 뜻이다. 정확하게는 소 뱃살 중에서도 값이 저렴한 젖가슴살인 유통을 넣었다니 시장 상인들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쉽게 먹을 수 있었겠다 싶다. 지금이야 전문점에서 어복쟁반을 맛볼 수 있지만 보글보글 끓이면서 먹는 어복쟁반엔 어쩐지 재래시장의 정감이 물씬 녹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문광석 대표와 아내 최현숙씨

   음식점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맛!
   
   분단 반세기를 훌쩍 넘긴 현재, 어복쟁반은 대한민국의 대표 국수가 된 평양냉면처럼 널리 자리 잡지는 못했다. 고향을 떠난 어복쟁반은 몇몇 북한 음식 전문점에서 귀하게 맛볼 수 있는 고급 요리로 변신했다. 그중에서 대동문의 어복쟁반은 가장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 것으로 손꼽힌다. 그래서일까 이곳 손님들 대부분은 메인요리로 일단 어복쟁반을 주문하고 만두나 냉면, 김치말이 등을 곁들여 먹는다.
   
   이 집 어복쟁반은 커다란 놋쟁반에 쇠고기 양지편육을 담고 쑥갓, 대파, 배추, 새송이버섯 등 4가지 채소와 평양만두를 올려준다. 향이 강한 미나리 대신 쑥갓을 사용하고 식감이 쫄깃한 새송이버섯을 넣은 것은 주인장의 아이디어다. 쟁반 가운데에 넣어주는 만두는 평양만두라고 하기엔 크기가 작다. 근처 직장인 여성들이 큰 평양만두를 먹기 힘들어해 먹기 좋게 크기를 줄였다고 한다. 어복쟁반이라는 명칭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발해온 흔적이 엿보인다.
   
   어복쟁반이 보글보글 끓어 편육과 채소에서 맛이 우러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국물 맛을 보았다. 채소가 올라간 네 군데의 국물은 각각 미묘한 맛의 차이가 난다. 파가 있는 부분은 매콤하고 배추가 있는 부분은 시원하다. 얕은 조미료 맛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머니가 정성 들여 끓여주신 국물처럼 정성이 가득 느껴진다. 일반 음식점에선 흔하게 맛볼 수 없는 깨끗한 맛이랄까! 자꾸만 숟가락이 가는 시원한 맛에 중독되어 버릴 것만 같다.
   
   “평양식 어복쟁반의 맑은 맛을 살리기 위해 인공조미료는 일절 넣지 않고 있어요.”
   
   한번은 더 맛있을까 싶은 욕심에 실험 삼아 인공조미료를 넣어 보았지만 오히려 국물이 느끼해져 다시는 넣지 않고 있다. 편육을 함께 끓이는데도 기름이 전혀 뜨지 않는데, 그 비법은 마블링이 많은 한우 대신 육우를 쓰는 것부터 시작된다.
   
   “한우는 구워 먹기엔 적당하지만 국물을 맑게 내기에는 육우가 안성맞춤이지요.”
   
   문씨는 강원도의 한 농장에서 자란 육우의 최고등급 양지만을 공급받아 핏물을 제거하지 않고 오로지 간장, 소금, 술만 넣고 삶는다. 오랜 노하우로 적당히 삶아낸 양지는 건져서 기름기를 완전히 떼내고 얇게 썰어 준비한다. 국물은 식혀서 굳기름을 말끔히 걷어낸다. 무, 셀러리, 대파 등 시원한 맛이 나는 7가지 채소로 국물을 맑게 우려낸 다음 쇠고기 양지육수를 섞어 어복쟁반의 국물로 사용한다. 신기한 것은 이 국물만 맛보았을 때는 좀 밍밍한 편인데, 양지수육과 채소 등 건지를 넣고 다시 뜨겁게 끓이면 맛이 우러나와 은근히 입에 붙는 맛난 국물이 된다는 것이다. 채소와 국물은 원할 때까지 리필된다.
   
   편육과 만두는 이미 익혀서 나오기 때문에 버섯, 쑥갓 등 각종 채소들이 육수에 자작하니 데쳐지면 편육에 야채를 종류별로 말아서 초간장 소스에 살짝 찍어 먹는다. 새콤한 초간장과 만난 편육은 채소와 어우러져 전혀 느끼하지 않고 씹을수록 입안에 육향(肉香)이 퍼지면서 뒷맛이 고소하다. 취향에 따라 메밀면이나 떡사리 등을 얹어 먹은 뒤 제일 마지막에 밥을 볶아 먹을 수도 있어 술안주와 식사를 겸할 수 있다. 여기에 순수 국산 녹두를 갈아 돼지고기 삼겹살을 넣고 고소하게 구워낸 녹두전과 주인장이 최초로 개발한 소주슬러시를 한잔 곁들이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다.
   
   대동문의 어복쟁반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워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 오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는 문씨. 주변에 방송국이 있어 연예인들의 발길이 잦다. 그중에 개그맨 남희석씨는 3일을 연달아 올 정도로 대동문 매니아다.
   
   문씨의 아들 문용재(25)씨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며 벌써부터 대물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 때 냉면 반죽을 가르쳐줬어요.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니 든든하죠.” 어머니에게서 그 아들로 또 손자로 이어지는 대동문. 담백하고 정갈한 평양의 맛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등록일 : 2017-08-30 15:47   |  수정일 : 2017-08-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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