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피플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명창 안숙선,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70을 바라봐도 ‘영원한 춘향’

명창 안숙선이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고 있다. 철부지 아홉 살에 ‘남원의 아기 명창’이란 애칭을 얻으며 판소리와 함께한 인생이 어느덧 종심(終心)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젊고 건강하다. 올여름엔 고향 남원의 인근 진촌과 계촌에서 ‘국악거리축제’와 ‘판소리 캠프’를 열며 대한민국의 모든 계층이 국악을 즐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노쇠와 우울을 모르는 활기 가득한 명창의 여름 일상을 전한다.

글 | 이일섭 웰빙라이프 기자   사진 | 이경호

본문이미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득음이란건 없어요”
 
명창 안숙선은 산에 오르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 젊은 날엔 고향집 뒤편에 있는 지리산 둔덕에 올라 온종일 소리 연습에 매진했고 국립창극단 단원이 된 이후론 국립극장이 있는 남산이 그녀의 두 번째 고향이 됐다. 하얀 저고리와 옅은 분홍빛 치마를 좋아했지만 가시덤불을 헤쳐나가고 계곡을 건너기에 몸빼바지와 월남치마 차림이 제일이라 어쩌면 당신은 휴일의 등산길에서 작고 초라한 행색의 여인이 ‘사랑가’와 ‘인당수 뱃노래’ 한 대목을 기막히게 불러내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싶다. 힘차면서도 구성지고 명료하면서도 곰삭은 그녀의 깊은 울림을 말이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정말 따사로운 산이죠. 높고 험해 보여도 가만히 바라보면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는 부드럽고 야트막한 산줄기가 대부분이니까요. 스승 김소희 선생의 부름에 태생지 남원과는 열아홉 살에 작별을 하게 됐는데 정 많은 고향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보다 지리산을 더는 볼 수 없는 일이 힘들었죠. 내 노랫소리를 되돌려주던 산골짜기의 메아리를 더는 들을 수 없어서 고향 산의 흔적을 찾느라 남산의 등성이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보냈죠. 그 허전한 마음을 산이 알아준 덕인지 나는 남산에서 소리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됐어요.
 
득음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건 없어요. 남산시대를 접고 국립국악원이 있는 우면산으로 터전을 옮긴 지 20년이 넘었지만 득음의 경지는 점점 멀게만 느껴져요. 오히려 내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울 때가 있어요. 더구나 우면산은 기가 센 편이죠. 지리산이나 남산처럼 저를 보듬어주지 않아요. 나를 나무라고 내모는 모질고 냉담한 산이죠. 어쩌면 그 기세에 눌려 더 정진하자는 다짐과 반성을 할 수 있으니 가장 고마운 산인지도 모르고요.”
 
 
시원한 고음과 적당히 쉰 목소리의 조화
 
명창 안숙선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수식은 단연 ‘영원한 춘향’이다. 그녀가 ‘춘향가’를 빼어나게 잘 불러서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창극 무대에서 춘향을 연기할 수 있는 내공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절창(絶唱)의 ‘사랑가’는 언제 들어도 감동 그 자체다. 어리지만 꽉 찬 속을 지닌 여인의 풋풋함과 성숙함이 뼛속 깊이 전해져 오곤 한다. 이어 옥중에서 이도령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쑥대머리’ 대목에선 온갖 시련과 고초 속에서도 이도령에 대한 진한 사랑에 기대어 꿋꿋하게 견디는 처연한 춘향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시원스레 질러내는 고음과 적당히 쉰 목소리를 바꿔가며 격조와 절제가 실린 그녀의 작창(作昌)은 판소리가 우리 고유의 음악을 넘어 세계 최고의 음악임을 실감하게 한다.
 
“예전엔 스승이 가르쳐주는 대로 별생각 없이 소리를 했죠. 하지만 춘향가에 담긴 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면서 판소리를 잘하는 것이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득음의 경지란 최고 경지의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소리를 통해 참된 삶이 무언지를 깨닫는 순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춘향은 남자를 섬기는 지조 있는 여성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스스로 정하는 독립된 여성이기도 해요. 이런 미덕과 지성을 갖춘 여성이라면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거죠. 나는 남자든 여자든 자신이 뜻하는 대로 삶을 열어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문이미지
1 판소리와 첼로 연주의 조우. 안숙선·정명화 두 거장의 호흡은 음악이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 원대한 세계임을 증명하곤 한다.
2 스승인 만정 김소희 선생과 함께. '너 방정 떨지 말고 더 잘 혀야 헌다!'며 늘 다그치곤 했지만 음악에 있어서나 인생에 있어서나 그녀가 기대고 매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어머니다.
3 신명나게 설장구춤을 추던 어린시절 모습. 가야금 산조와 판소리 명창에 가려진 춤 솜씨를 공개할 무대를 구상중이다.
4 88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행사로 공연된 <춘향전>의 실황 장면. 그녀에게 ‘영원한 춘향’이란 수식이 내려진 무대다.


고향 남원에서 국악 페스티벌 열어
 
아홉 살에 데뷔를 해 설장구춤을 추며 신이 나 하던 해맑은 소녀는 스무 살엔 만정(晩汀) 김소희(金素姬) 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춘향가와 흥보가를 사사하게 된다. 파마머리로 한껏 웨이브를 살린 그녀의 모습에 질겁을 하며 호통을 친 좀 막힌(?) 스승이었지만 몸가짐과 내면이 정돈돼야 제대로 된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참된 스승이다. 더구나 가야금 산조를 가르쳐준 향사(香史) 박귀희(朴貴姬) 명창에게 애제자를 빼앗기지 않으려 신경전을 불사르던 너무도 인간적인 스승을 생각하면 자신도 그런 리더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고.
 
40대에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가야금 병창)로 이름을 올렸고, 50대엔 국립창극단 단장으로 명예를 드높였으며, 이어 전공여사(전철 공짜로 타는 여자)로 분류되는 65세엔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에 올라선 그녀가 나이 70을 바라보는 지금, 가장 열렬히 바라는 일은 무얼까. 그것은 진정한 판소리와 국악의 발전이다. 예전에 비해 우리의 전통음악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구문화와 대중음악에 짓눌려 더욱 위태로워진 국악계의 현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가슴 아파해 한다.
 
자신의 전성기 회복과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그녀가 동참하고 있는 ‘동편제마을 국악 거리축제’가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다. 그녀의 태생지인 전북 남원시 일대에서 열리는 이 국악 페스티벌은 명창들이 펼치는 판소리와 창극무대를 비롯해 민요교실과 판소리 캠프가 여름내 열려 우리의 영혼과 몸짓에 내재된 가락과 리듬의 흥겨움을 일깨울 예정이다. TV와 극장에서만 만나던 안숙선의 국악 세계를 신록이 물결치는 자연 속에서 만나려거든 지금 남원으로 출발하는 게 좋겠다.
 
본문이미지
안숙선의 명창 인생 60년. 그녀는 판소리 완창, 다섯마당 공연과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예능 보유자라는 믿을 만한 레이블을 완성하는 데 이어 서구 재즈 음악가들과 협연한 레코드 ‘웨스트엔드West End’와 ‘지음知音’ 등으로 우리의 얼굴을 가진 음악을 들려주는 일에 매진해 왔다.

안숙선이 들려주는 건강한 삶
 
ㆍ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저마다의 매력과 감동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물론 ‘춘향가’다. ‘영원한 춘향’이라는 두 번째 이름을 얻어서 특별하기도 하지만 춘향이라는 인물을 통해 내 삶의 원칙을 세울 수 있어서 각별하다.
사랑하는 남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여자만의 자격,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여자만의 의무를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명창의 행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다면.
역시 체력의 한계다. 예전엔 7~8시간이 소요되는 완창 무대에 서려면 7~8시간 푹 자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7~8개월 힘을 비축하고 목을 가다듬어야
가능하다. 에어컨의 건조한 바람, 도시의 매캐한 공기, 사람들과의 작은 의견 충돌 앞에서도 맥을 못 출 때가 많다. 그래서 지리산의 맑은 정기와 고
요를 이토록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등록일 : 2017-07-12 14:38   |  수정일 : 2017-07-12 15:03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