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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부사장서 ‘돌’ 박사로... ‘민 자연사연구소’ 이지섭 소장

30년간 3000점 국립과천과학관 전시

글 |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 photo 백이현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들어서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진다. “와~” 나지막한 탄성만 터져나왔다. 아무리 희귀광물이라도 ‘돌’ 아닌가. 광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중국, 멕시코,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지구 곳곳에서 날아온 희귀광물들은 저마다의 광채와 형체로 눈을 사로잡았다. 쳐다볼수록 빨려들어갈 듯 신비로웠다. 화려함을 넘어 눈이 부셨다. 그 어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벅찬 감동이 차올라 할 말을 잃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있는 ‘민 자연사연구소’는 한 남자의 30여년간 집념과 열정이 응축된 공간이다. 삼성전자 부사장을 지낸 이지섭(70) 소장. 그의 광물 사랑은 취미 이상이다. 1981년 뉴욕 출장 당시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광물의 신비로움에 빠진 이후 해외 출장이나 여행 때마다 희귀광물을 하나둘 그러모았다. 아내와 두 아들도 광물의 매력에 빨려들어 힘을 보탰다. 그렇게 모은 광물이 3000여점에 이른다. 복층으로 된 ‘민 자연사연구소’에 1000여점이 보관돼 있고 나머지는 개인 수장고에 있다.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다. 이 소장이 소지한 희귀광물은 국내외 수준급이다. 그는 전 세계 희귀광물 수집가들의 모임인 ‘미네랄 컬렉터 심포지엄’의 200여명 중 유일한 아시아 회원이기도 하다. 희귀광물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속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는 난감한 듯 웃더니 “수집가는 마음에 드는 걸 보면 가슴이 뛴다”며 답했다. “큰 광물은 데커레이션용이고, 진짜 귀한 수집품은 20㎝ 이하입니다. 금 결정이 아름다운 광물 중에는 500만달러(약 60억원)가 넘는 것도 있어요.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수집가가 소지한 것으로 압니다.”
   
   이곳은 상시 개방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비를 들여 만든 사설연구소라 평소에는 닫혀 있고 예약제로 운영한다. 관람비는 아직 무료다. 2010년 오픈 이후 연간 1000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고려대학교 지구과학 전공학부 대학원생, 광물자원공사 임직원, 국립과학관 관계자, 지구과학 교사들이 다녀갔고, 광물광 꼬마 손에 이끌려 오는 부모도 꽤 된다. 전자통신연구원 박문호 박사가 이끄는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회원들이 방문해 이곳에서 라이브 강연도 했다.
   
   오는 6월에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초대전을 연다. 공식 전시로는 최초다. ‘광물 특별전’이라는 주제로 6월 13일부터 7월 9일까지 4주간 열리며 다양한 크기의 희귀광물 150점 정도 전시할 예정이다. “현재 과학관 측과 전시 레이아웃 토의 중입니다. ‘마법의 세계’ ‘상상너머 아름다움’ ‘생명과 함께’ ‘다양한 쓰임새’ ‘갤러리와 체험’ 다섯 테마로 전시할 계획이에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기한 광물, 기하학적 결정을 지닌 미학적 광물에서부터 의약품, 반도체, 화장품, 세라믹 원료로 쓰이는 광물도 전시됩니다. 대표 표본으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석 광물인 ‘언양 자수정’을 내세우려 합니다.”
   
   
   전문가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
   
   이지섭 소장은 36년간 삼성맨으로 근무했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그는 제일모직에 입사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를 거쳐 LCD사업부의 제조팀장(총괄 부사장)으로 일했다. 그에게는 삼성인의 DNA가 깊이 각인돼 있다. 흑백TV를 만들던 시절에 입사해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전자레인지를 생산해내는 시절을 거쳐 전 세계 전자레인지 생산량의 20%를 차지하기까지,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로 우뚝 서기까지 삼성전자의 성공신화를 몸으로 겪어냈다.
   
   겸손이 몸에 밴 이 소장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으나 후배들의 증언이나 자료를 통해 알게 된 그의 공로는 대단했다. GE(제너럴일렉트릭)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박경팔 당시 삼성전자 사장에게 “나는 특히 이지섭 한국지사장의 뛰어난 업적에 깊이 감명받았다. 1983년 처음 만난 후부터 그는 품질관리 분야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2010년 퇴임하면서 그는 후배들을 위해 제조 현장의 품질관리 노하우를 담은 책을 자비 출판했다. ‘품질로 승부하라’는 제목의 80여쪽 책자에서 강조한 것은 첫째도 품질, 둘째도 품질이었다. “숙련자와 미숙련자의 차이는 질적 차이가 아니라 속도의 차이여야 한다. 신입사원에서 숙련자와 동일 속도를 요구하면 품질의 차이가 난다. 결국 불량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이지섭 소장은 2010년 삼성전자 퇴임 후 광물박사로서의 제2인생을 시작했다. ‘민 자연사연구소’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준비해온 일이었다. 연구소 명칭 ‘민’은 광물을 뜻하는 ‘미네랄(Mineral)’의 첫 글자이자 둘째 아들 이름의 ‘민(玟·옥돌 민)’ 자에서 따왔다. 광물에 대한 그의 지식은 넓고 깊다. 웬만한 전문가도 울고 갈 수준이다. 광물을 통해 우주와 생명, 지구과학과 지리, 역사와 건축, 물리와 화학을 이야기한다. “광물은 우주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자연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말 없는 이야기꾼입니다. 호기심의 문을 열어주고 학문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죠. 21세기는 융합의 시대인데, 광물 공부야말로 융합 공부입니다.”
   
   그는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방문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이야기를 꺼냈다. “전시물도 훌륭하지만 안내책자를 보고 놀랐습니다. 건축에 사용된 재료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전문적이고 미술관 안내책자도 웬만한 과학 교과서를 능가하더군요. 현재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현주소는 어떤가요? 이공계 대학을 나와도 지질과 광물에 대한 지식 수준이 높지 않지요. 실물을 보고 배운 사람들과 책으로 보고 배운 사람들의 차이라고 봅니다.”
   
   눈길 가는 곳곳에서 그는 광물이 품은 시간의 역사를 읽어낸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익숙한 집 마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로마공화국 광장과 스페인 광장 바닥재는 현무암 규격판으로 동일합니다. 우리 집 뜰 디딤판도 현무암입니다. 로마의 현무암은 마그네슘과 철분이 높고 가스 성분이 낮은 마그마에서 만들어졌지만, 우리집 현무암은 철분이 낮고 가스가 많은 마그마에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색이 밝고 기공이 많아요.”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은 ‘알고잽이’였다. 알고잽이는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경남 함안군에서 나고 자란 그는 마당 평상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자주 공상에 잠겼다. 새까만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떨어져내리는 별똥별을 본 다음날이면 별똥별을 줍겠다며 뛰쳐나가기도 했다.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지식의 비결은 호기심이었다.
   
   이 소장의 호기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는 터키 파묵칼레와 자신이 사는 동네의 아파트 담벼락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하얀 목화밭 같은 파묵칼레는 온천수가 지상으로 분출하여 방해석 성분이 침전되어 만들어낸 기묘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이것 좀 보세요. 길을 가다가 발견한 물결 무늬입니다. 이 무늬가 왜 생겼는지 아십니까? 돌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시멘트에 있는 방해석 성분을 용해시켰고 이 둘이 섞인 빗물이 담벽을 타고 흐르다가 증발하면서 결정물이 침전된 것이지요.”
   
   ‘광물, 호기심의 문을 열다’(가제). 그가 준비 중인 책이다. 자신이 모은 광물을 지구과학과 인류학, 예술과 역사를 넘나들며 풀어내는 내용이다. ‘광물은 딱딱하고 매력 없는 무기질 덩어리’라는 편견을 벗겨내고 예술품 못지않게 아름다우면서 인간의 역사와 생활에 밀접한 대상이라는 점을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 모래에 지하수가 스며들어 콘크리트화된 광물로 미쉐린타이어와 닮아 ‘하얀 뚱보’라는 별명이 있다. 원산지는 프랑스(좌). 홍연석(crocoite)은 섬세한 결정들이 살아남아 ‘생존자’라는 별명을 지녔다. 원산지는 호주.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도움되길
   
   ‘민 자연사연구소’가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자리 잡을지에 대해 학계에서도 관심이 많다. 정해진 건 없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입장료를 받고 사설박물관으로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민 자연사연구소’의 향후 청사진을 묻자 그는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단기적으로 세 가지 목표가 있어요. 첫째, 제가 가진 광물과 화석 표본의 자료를 충실히 정리해서 이를 토대로 대중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을 출간할 겁니다. 둘째, 학생들이 지구과학을 좀 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과학 교사들과 연구회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셋째, 외부 특별전시회를 통해 많은 분들께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지방 과학관 순회전시도 좋고 ‘뮤지엄 인 뮤지엄’ 식으로 융합 전시도 좋습니다.”
   
   장기적 계획을 내보이면서 그는 영국의 국립자연사박물관 이야기를 꺼냈다. “영국의 자연사박물관은 한스 슬로안(Hans Sloane) 경이 평생 수집한 골동품을 헌납하면서 설립됐습니다. 개인 수집품이 모태가 된 것이죠. 제 개인 역량으로 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건 전문성과 지속성 면에서 어렵습니다. 국가 또는 지자체가 운영할 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재단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운영할 수도 있겠죠. 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멀리 보려 합니다. 제가 평생 모든 희귀광물이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호기심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등록일 : 2017-06-02 09:20   |  수정일 : 2017-06-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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