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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생활사 전문가가 된 주부 허운홍씨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60대 주부가 나방에 쏙 빠졌다. 10여 년간 이 산 저 산을 다니면서 나방 애벌레를 채집한 후 성충으로 키워내 표본으로 만들었다. 그는 지금 국내에서 독보적인 나방생태 전문가다.

글 | 이선주 객원기자   사진 | 김선아

꽃들 사이로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면서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나비는 아름다운 빛깔과 형태로 사람들을 매혹하면서 문학이나 예술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에 비해 나방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햇살을 받아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나비와 달리,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방은 나비목 곤충 중 나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두루 일컫는 말로, 나비보다 훨씬 종류가 많다.

3월 23일부터 4월 7일까지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열린 〈허운홍의 나방-애벌레 이야기전(展)〉에는 900여 종 2000여 마리의 나방 표본이 전시되었다. 크기와 색깔, 무늬가 각양각색인 나방을 보면서 ‘붓으로 그려도 이렇게 정교하게, 이렇게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연신 감탄했다.

나방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찬찬히 꼼꼼하게 나방 표본들을 살펴보면서 허운홍씨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폴란드인, 러시아인 등 한국 여행을 온 외국인 관람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관람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말 또는 영어로 각 나방의 특징과 나방을 키운 과정을 설명해주던 허운홍씨는 “자연과 가깝게 살아서 그런지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훨씬 깊은 관심을 보인다”고 말한다. 10여 년간 이 산 저 산을 다니면서 나방 애벌레를 채집한 후 성충으로 키워내 표본으로 만든 허운홍씨는 놀랍게도 생물학을 전공한 적이 없는 60대 주부다. 그에게 왜 나비가 아니라 나방의 애벌레를 채집했는지 물었다.

“보세요. 나방들이 얼마나 예쁘고 다양해요? 나방의 종류는 나비의 20배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나방은 6000종류 정도이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나방은 그중 3400종류 정도라고 합니다. 그만큼 방대하지만 연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은 분야라 매력을 느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나방이 몇 종류나 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나방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류나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정도지요. 지구의 모든 종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의지합니다. 인간 역시 다른 종들로부터 먹을거리와 연료, 약 등을 공급받는 존재지요. 나방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나방 애벌레에 빠진 이유

전시장을 찾은 폴란드인 가족에게 나방 표본을 설명하고 있는 허운홍씨.
지금은 독보적인 나방생태 전문가가 되었지만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생물 과목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경남 밀양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경기여고를 거쳐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결혼해 40여 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가 생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7~1998년 교환교수인 남편과 함께 영국에서 생활하면서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나면 노년에 무엇을 하면서 살까?’ 이것저것 생각이 많을 때였습니다. 영국에서는 다양하게 공부할 기회가 많아 좋았어요. 케임브리지 개방대학에서 역사와 건축, 천문학, 생태학 등 갖가지 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고, 특히 생태학이 재미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참고 도서로 일본인이 쓴 책들을 자주 소개하기에 ‘왜 한국인이 쓴 책은 없을까?’ 궁금했지요.”

한국에 돌아온 후 서울의 길동자연생태공원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솔깃했다. 그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길동자연생태공원에서 생태안내자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곤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잎벌, 노린재, 딱정벌레, 등에 등 다양한 곤충을 길렀지만 2007년부터는 오로지 나방 애벌레를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잎벌 애벌레인 줄 알고 키운 나방 애벌레가 날개를 펴며 성충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난 후 나방에 푹 빠져들었다. 외국 문헌들을 뒤지며 나방의 종류와 습성 등을 공부하고,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나방 애벌레를 수집했다. “나방은 밤에 불빛을 보고 모여드는 특성이 있어 보통 불빛을 밝혀 채집합니다. 그러면 성충 상태의 나방밖에 볼 수 없지요.”

그는 애벌레 상태인 나방을 채집한 후 직접 길러 성충이 되기까지 과정을 관찰하면서 생활사를 연구했다. 생물학계에서도 거의 시도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집 주변에서 시작해 채집 범위를 점차 넓혀나갔다. 산악회를 따라다니며 전국의 산을 헤집기도 했다. 애벌레의 먹이를 갈아주고, 생태를 기록하고, 새벽부터 채집을 나가려면 하루에 네다섯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애벌레를 기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닥나무, 느릅나무, 고로쇠나무, 버드나무, 굴피나무, 팽나무, 생강나무 등 나방마다 먹는 나무가 달라요. 칡의 두꺼운 부분이나 오대산에서 자란 나무만 먹는 등 입맛이 까다로운 나방도 많습니다. 신선한 잎을 구하기 위해 나방을 채집했던 곳을 다시 찾기도 합니다. 성충이 되기까지의 기간, 성충이 되는 시기도 종류마다 달라요. 번데기 상태에서 10개월을 지내는 나방도 있죠. 그렇게 오랜 기간을 거쳐 성충이 된 나방을 보면 엄청 반갑습니다. 여름에는 보통 26~27도로 실내 온도를 맞춥니다. 햇빛이 들어오면 애벌레를 키우는 통 속의 온도가 급상승하기 때문에 커튼을 쳐두죠. 겨울을 나는 애벌레들은 4~10도로 맞춰줘야 합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길러서 성충이 되고 나면 바로 표본으로 만듭니다. 죽은 나방들을 위해 천도제도 지내요.”

900여 종 2000여 마리의 나방 표본을 선보인 〈허운홍의 나방-애벌레 이야기〉 전시회.
2012년 그는 국내 최초로 나방이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나방애벌레도감》을 펴냈고, 2016년에 두 번째 도감을 출간했다. 《나방애벌레도감》에는 각각의 애벌레들이 어느 곳에 서식하며 어떤 먹이를 먹는지, 애벌레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다 언제 성충이 되는지, 애벌레의 길이와 성충의 날개 길이는 얼마나 되는지 등의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애벌레 때와 성충이 되었을 때의 모습, 표본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어 나방의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의 노력으로 애벌레 때의 모습이나 생태가 알려져 있지 않던 나방의 생활사가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지난해 그는 전남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지리산, 백운산, 제석산 등 전남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채집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이제까지 만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나방 애벌레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채집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대여섯 시간을 걸어 다니다 겨우 하나를 찾아낼 때도 있지요. 보물찾기와도 같아요. 인연이 맞아야 만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나방이 기기묘묘한 무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새, 박쥐, 거미, 벌 등 나방은 천적이 많아요. 천적을 피하려고 다양한 색깔과 무늬로 자신을 위장하는 거지요. 보세요. 이 나방의 무늬는 나무의 잎맥과 똑같이 생겼잖아요. 이 나방은 낙엽처럼 보이고, 저 나방은 통나무 조각 같지 않아요? 애벌레들도 자신의 몸을 잎으로 돌돌 말거나 꽃잎 속에 숨기도 합니다. 나방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면 합니다.”

그는 산에 갈 때 샛길로 다니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람들의 발길로 흙이 다져지면 물이 전혀 스며들지 않는 아스팔트와 같아집니다. 이 때문에 지표면 밑에서 여름이나 겨울을 나는 곤충들이 죽을 수도 있지요. 우리의 자연이 지속가능하려면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등록일 : 2017-05-10 07:42   |  수정일 : 2017-05-1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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