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피플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조연의 품격 - 성격파 악역 전문 배우 김병옥

“요즘도 무대 위 대사 까먹는 꿈 꿔”

⊙ 〈올드 보이〉 〈내부자들〉 등에서 깡패·건달·부패관료 등 악역 도맡아
⊙ “악당 틀에서 벗어나는 게 좀 더 표현에서 풍성해져”
⊙ 연극배우로 20여년 경력 … 2000년 〈맥베스〉에서 첫 주연
⊙ “연기는 던지는 순간 소멸해. 허탈감이 몰려와도 어쩔 수 없다”
⊙ 영화 오디션 계속 낙방. 박찬욱 감독 통해 충무로 데뷔
⊙ “조연으로 출연한 짧은 순간, 관객이 눈치 못 채게, 주인공처럼 연기해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감시자들〉(2013년)에서 ‘정통’ 역으로 나온 김병옥.
부리부리한 눈, 까무잡잡한 피부의 김병옥(金炳玉·58)은 악역 전문 배우다. 깡패, 건달, 속물, 악당, 조폭, 거지가 그에게 각인된 이미지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얻어먹던 단발머리 목사, 〈올드 보이〉에서 유지태의 냉혈한 보디가드, 〈신세계〉에서 연변 거지, 〈짝패〉의 속물 청년회장, 〈해바라기〉에서 비열한 건달, 〈내부자들〉에서 검찰을 사병화(私兵化)한 부패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분(扮)했던 그다.
 
  농익은 악한 이미지에, 요즘은 코믹 연기까지 소화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최근 방영된 MBC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과 결탁한 무반 당상관 ‘엄자치’ 역을 맡았다. 지난 1월 25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그를 만났다.
 
  스크린에서 보는 것과 달리 김병옥의 민낯은 잘생긴 중년의 모습이었다. 길에서 만났다면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일이다.
 
  — 자신의 악역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내 머릿속엔 온갖 나쁜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걸 행동에 옮길 시간이 없다’고요. 사람은 누구나 동전의 양면처럼 악함과 선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죠. 선악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나요? 악한이라도 24시간 나쁜 생각만 하고 삽니까?”
 
  알 듯 말 듯한 얘기였지만, 묘하게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영화 〈올드 보이〉(2003년)로 김병옥은 충무로에서 확실한 조연배우로 자리 잡았다.
  “과거엔 악역을 한답시고 (카메라 앞에)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위협적인 말을 했는데, 점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강자인데, 생각 없이 날뛰는 똘마니라면 모를까, 굳이 약자에게 험하게 굴 필요가 없잖아요.”
 
  — 그럼 어떻게 해요.
 
  그는 “오히려 인간적인 얘기를 던지는 게 관객에게 더 섬뜩할 수 있다. 예컨대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식이다. 검사가 잡범 다룰 때 그런 표현을 쓴다더라”고 했다.
 
  “야비하고 비열한 언사를 쏟기보다 긴장의 순간에 지나가는 말투로 툭 던지는 게 되레 공포감을 줄 수 있어요. 영화 〈잔혹한 출근〉에선 (악한 표현의) 욕심이 과했다고 생각해 〈해바라기〉에선 그걸 조금 눌렀어요. 악역이라도 항상 영화에 맞는 매력을 찾아야 합니다.”
 
  — 일종의 간접화법이군요.
 
  “누군가를 직접 위협하는 말보다 ‘저기 오다 보니, 사람이 죽어 있어’라고 조용히 툭 던지는 식이랄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려 해도, 안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미묘한 경계의 말로 듣는 거죠. 비록 악당이지만 악당 틀에서 벗어나는 게 좀 더 표현에서 자유로워지고 풍성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간접화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왜 그렇게 사악한 포스로 가는지 저도 의아한데, 결국 저도 찾지 못한 제 안의 사악함을 남이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관객도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기타노 다케시’ 스타일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년)에서 김병옥은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을 얻어먹던 단발머리 목사로 나왔다.
  김병옥은 일본의 명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케시 하면 〈소나티네〉에서 잔인한 야쿠자 보스, 〈하나비〉에서 냉철하고 무감한 형사로 주목을 받았었다.
 
  “관객들이 제가 눈빛 하나로 모든 걸 쓰러뜨릴 것 같은 느낌을 받나 봐요. 저도 기타노 다케시를 보며 느끼는 건데 (그의 영화엔) 죽음의 미학이랄까, 악이 지닌 폭력의 미학이 있어요.”
 
  그 역시 영화 〈예의 없는 것들〉에서 조폭 우두머리이자 패륜을 일삼는 악의 화신으로 연기했다. 피투성이 폭력을 통해 섬뜩한 인간내면을 들춰냈다고 할까.
 
  — 좋은 배우란?
 
  “타고난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거기다 노력과 끈기를 겸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부족해요. 끝없는 수양이 필요합니다. 자기만의 보물을 찾는 일이 자신에게 즐거움이지만 남들한텐 ‘똥 덩어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빨리 자기를 버려야 해요.”
 
  — 자기를 버린다?
 
  “무대에서 몇 마디를 안 해도, 혹은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짓는다 해도, 배우는 그걸 소화해서 관객에게 던지는 순간, 잊어버려야 해요. 연기는 던지는 순간, 소멸하는 것이니까 …. (연기 후) 허탈감이 몰려와도 어쩔 수 없죠. 그게 배우의 운명이니까요.”
 
  — 배우 김학철은 ‘액션(움직임, 행동)보다 리액션(상대 연기에 대한 반응)이 좋은 배우가 진짜 배우’라고 하던데요.
 
  “스승이신 안민수(安民洙·연출가, 서울예대 학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 역임) 선생님이 대학시절,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액션과 리액션은 다르지 않다’고요. ‘액션은 리액션이다. 리액션만 잘해선 안 된다. 리액션과 액션은 생사불이(生死不異)다. 둘이 다르지 않다’고요.
 
  그러곤, ‘니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반대로 생각해 봐. 지금 니 마음이 급하잖아. 오히려 더 천천히 해 봐. 답은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뒤에 있을 수 있어. 왜 돌진만 하느냐’고요. 수업을 들은 지 3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말씀이 귀에 맴돌아요.”
 
영화 〈해바라기〉(2006년)에서 김병옥. 조폭 ‘조판수’ 역으로 출연, 악역 이미지를 굳혔다.
  안민수는 한국 근대연극사의 대표적 인물인 동랑(東朗) 유치진(柳致眞·1905~1974) 선생의 사위다.
 
  김병옥은 “요즘도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꿈을 꾼다. 식은 땀을 삐죽삐죽 흘리며 …”라고 털어놓았다.
 
  “늘 나쁜 역만 맡다 보니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 배우의 운명이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배역과 별개로 어떤 숙명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론 쌓아 가는 것인데, 언젠가는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죠.
 
  요즘엔 나이가 들면서 현장의 순발력만으론 안 되는 게 있더군요. 한 컷 한 컷 상황을 연상하면서 3종류의 연기를 머릿속에 그리며 준비해요. 그렇게 하면 현장에서 좀 덜 당황하게 됩니다.”
 
  — 실제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은 경험이 있나요.
 
  “연극배우 시절 진땀나는 경험이 있지요. 간혹 상대 배우가 틀린 대사를 할 때, 속으로 ‘이게 맞나?’ 하다가 (대사가) 1~2초 늦어지는 것이죠.”
 
  김병옥의 고향은 경기도 부천이다. 부천 시내에서 8km는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이었다고 한다. ‘장화 없인 다닐 수 없는 질척한 길을 걸어’ 인천 대건고와 서울예대 연극과(80학번)를 다녔다.
 
  대학에서 철학 전공을 할 생각을 하다가 1년 재수를 하고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원서를 냈다. ‘소설가 최인훈에 미쳤을 때’였다. 그런데 대입 면접을 보면서 연극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예대 80학번, 연극 〈리어왕〉의 오스왈드 역으로 데뷔
 
김병옥은 대학로 연극판에서 20년간 무대에 선 베테랑 배우다.
  “아버지는 평안도(의주군)가 고향이신데 반공포로 출신이셨어요. 학창시절, 신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니체, 쇼펜하우어, 사르트르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죠. 공부해서 대학 가면 뭐 하나, 세상이라는 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구나, 생각했어요. 공부 대신 최인훈의 〈광장〉, 〈회색인〉을 읽고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곤 했죠. 중앙대 문창과, 서울예대 문창과 두 곳을 저울질하다 최인훈 선생이 계시던 서울예대를 택했죠. 당시 대입 면접을 문창과와 연극과가 같이 봤는데, 연극과 양정현 교수님이 저더러 연극과로 오라시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의 방향이 틀어지게 됐죠.”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뒤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연극이란 게 얼마나 고된지 모르고 까불던 시절”이라고 했다.
 
  “그래도 기라성 같은 연극 선배님이 있어 좋았고 그분들과 함께 작품을 한다는 게 영광이라 생각했어요.”
 
  박영규, 정진각, 김학철, 한명구, 김세동, 정원중, 성지루, 임원희, 장영남 같은 개성만점 선후배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데뷔작은 1982년 〈리어왕〉. 시종 오스왈드 역이었다. 어쩌면 오스왈드도 주인의 명령에 그저 맹종하는 일종의 악역이다.
 
  자신의 대표작으로 그는 〈맥베스〉 (2000년. 기국서 연출)를 꼽았다. 평생 처음 맡은 주인공 역이었다.
 
  “주위에서 ‘키도 조그만 녀석이 맥베스를 했어?’ 그랬어요. 이전엔 주인공을 못했거든요. 주로 조연으로 1인 4역, 5역을 했어요. 금방 옷 갈아입고 다른 역 하고 ….”
 
  계속된 그의 말이다.
 
  “극단 ‘목화’에 들어가면서 연기 인생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연출가 오태석 선생님이 당시 단장이었는데 연출방식이 독특했어요. 아니, 치열하다고 할까 …. 끝없이 트레이닝을 시키는데, ‘배우가 정형화된 틀 속에 갇히지 않으려면 하루도 안 쉬고 연기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시멘트가 굳지 않게 레미콘 트럭 믹서를 계속 돌리듯 해야 연기도 딱딱하게 굳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니까,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그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현장의 느낌이랄까, (지나친 연습은) 배역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죠. 한쪽으로 치우지면 다른 한쪽은 놓치게 되니까요. 항상 양쪽을 경계해야 합니다.”
 
  — 무명시절 고생이 많으셨죠?
 
  “어찌 보면, 극단 ‘목화’와 잘 안 맞았어요. 20대 때 들어가 마흔 가까이 ‘목화’에 있었는데 무척 힘이 들었어요. 중요 배역도, 극단의 중심축에 끼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큰 역할은 못 맡았지만 무언가 단단하게 다지던 시절이라 해야 할까요?”
 
  — 선배 배우들 중에서 함께 무대에 섰던 분들은 누군가요.
 
  기자는 최주봉, 윤문식, 박인환, 전무송, 이호재, 박정자, 김학철 같은 이름을 쭉 나열했다.
 
  “전무송·이호재·김학철·오현경 선생님이랑 함께 무대에 섰어요. 이호재 선생님은 무대에서의 자연스러움과 기가 막힌 화법, 정말이지 작은 목소리까지 관객에게 전달하는 목소리를 갖고 계시죠. 그런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는 배우고 싶고 존경할 부분입니다.
 
  오현경 선생님과는 두 작품을 같이 했는데, 항상 제게 너그러우셨어요. ‘이런 것은 이렇게 해야 돼. 이 대사는 이렇게 해야 돼. 그렇게 하면 틀린 거야’라고 지적하시고 후배를 다독이셨어요.
 
  아들처럼 저를 대하셨는데, 그땐 제가 전혀 주목받지 못했어요. 배역도 변변찮은데 연습할 때 따로 저를 불러 설렁탕이랑 에스프레소 커피를 사주셨어요. 어쩌면 사소할 수 있지만 그게 잊을 수 없어요.”
 
명동성당에서 아내 이윤자씨와 두 딸과 함께.
  — 결혼은 언제 했나요.
 
  “서른다섯(1994년) 무렵, 막차를 탔어요. 친구들이 다 결혼을 한 상태였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죽기 전에 제 장가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셨어요. 선을 봐서 두 달 만에 식을 올렸는데 2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내 이윤자(李允子·55)를 만난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연극배우 김병옥이 스크린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작 〈클래식〉이다. 주인공 조승우의 담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넷.
 
  이후 〈올드 보이〉, 〈음란서생〉 등으로 차츰 보폭을 넓혔다. 드라마는 2008년 작 MBC 드라마 〈밤이면 밤마다〉가 첫 작품이다. 물론 악역이었다.
 
  — 무대를 연극에서 영화, 드라마로 옮기면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났나요.
 
  “좀 나아진 정도죠. (조연은) 주인공 출연료의 1/10이 안 돼요. 그래도 연극하는 것보다는 나았죠. 주위 사람들이 서서히 알아보기 시작하고 ….”
 
  — 동료 연극배우들이 부러워하던가요.
 
  “그럴 수 있죠. 저도 그랬으니까. 연극에만 매달려 저쪽(영화, 드라마)을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괜히 기웃거리면 찬밥 취급을 당하니까요. 하고 싶은 연극만 하고 살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더니 툭, 이런 고백을 했다.
 
  “사실 영화 오디션을 여러 차례 봤지만 다 떨어졌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념하고 말았어요.”
 
  — 그럼, 어떻게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나요.
 
  “제 연극을 누가 보고 영화 출연을 제안한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참 우연적이게도 말이죠.”
 
  — 오디션에서 떨어진 작품 중 흥행작이 있나요.
 
  “다 흥행이 안 됐어요.(웃음)”
 
  그를 충무로로 당긴 이가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박찬욱 감독이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김병옥은 안 어울리는 단발에다 도끼날 같은 쌍꺼풀, 그러나 불타는 눈빛을 지닌 목사로 분했다. 〈올드 보이〉에선 유지태의 경호실장으로 최민식과 살벌한 주먹다짐을 벌이다 처참하게 죽는 역이었다. 이 두 작품으로 그는 충무로의 ‘정글’에서 한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조연이라도 마치 주인공처럼 연기해야”
 
  — 자신만의 ‘조연배우론’을 말해 주세요.
 
  “어떤 배역이든 중요하지 않은 배역은 없어요. 그러나 조연으로 출연한 그 짧은 순간을, 마치 관객이 눈치 못 채게, 주인공처럼 연기해야 합니다. 휙 지나가는 찰나의 배역이라도 소명의식을 갖고 하면 그게 연기고, 연기인생이지 않습니까. 주연배우보다 출연료가 적은 것이야 어쩔 수가 없죠.”
 
  — 배우의 삶이란 게 수수께끼 같아요.
 
  “연기는 무대라는 편협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행위예술이잖아요. 배우는 무대 밖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삶이죠. 그게 배우의 운명입니다. 자칫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 있고, 경제적으로 힘들며, 하는 일(연기)도 힘이 들어요.
 
  또 고전인 셰익스피어, 아서 밀러, 유진 오닐의 작품을 우리 시대에 맞게 표현하려면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생각이 저마다 다른 관객들과 어떻게 교감할 것이냐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죠.”
 
  —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마피아 역도 하고 싶고, 로베르토 베니니가 배우·감독으로 열연한 〈인생은 아름다워〉,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같은 작품도 하고 싶어요.”
 
  — 연기 인생 40년이 다가오는데, 이제 연기의 길이 잘 보입니까.
 
  “대학시절, 안민수 선생님은 ‘연기는 가르칠 수 없다. 하지만 배울 수는 있다’고 하셨어요. 모순된 얘기 같죠? 당시 학생들은 ‘그럼, 어떻게 연기하면 되느냐’고 여쭸는데 스승은 선문답처럼 ‘나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께 많은 것을 배웠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적선은 몇 년을 먹여살릴 수 있지만, 중요한 말 한마디는 평생을 먹여살릴 수 있다’고 했어요. 말 한마디가 위대하고 어려운 겁니다.
 
  지금도 아스팔트 위에서 허덕이는데, 여전히 나무인지 숲인지 모르는 판국에, 뭘 얘기할 수 있을까요? 요즘 후배를 만나면, 말을 많이 안 하고 들으려고 해요. 아이가 태어나 말을 하는 데(배우는 데) 3~4년 걸리지만, 듣는 데는 50년 넘게 걸린다고 하잖아요. 말은 쉬워도 남의 말을 경청하는 건 어렵습니다. 아직 연기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월간조선 2017년 3월호 / 글=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등록일 : 2017-03-13 09:53   |  수정일 : 2017-03-13 10:09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