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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4세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킴

신들린 바이올린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다

글 | 황은순 주간조선 차장

photo 밀레니엄오케스트라
‘미친 연주’ ‘신들린 바이올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러시아 국적의 바이올리니스트 로만 킴(25)을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로만 킴의 화려한 테크닉과 폭발적 에너지는 같은 연주가들도 탄성을 자아낼 정도이다. 19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린의 전설 니콜로 파가니니의 곡을 연주하는 손놀림은 신기에 가깝다. 덕분에 유학을 했던 독일에서 ‘21세기의 파가니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로만 킴은 유튜브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초원 위를 달리는 야생마처럼 현(絃) 위를 질주하는 그의 연주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연주 실력 이외에도 우리가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로만 킴은 고려인 4세이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1905년 을사늑약 때 조선을 떠나 연해주로 이주했다가,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열차에 실려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다. 로만 킴이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온다. 3월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멘델스존 서거 17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성기선)와 협연을 한다. 국내에서 로만 킴은 무명에 가깝다. 주간조선은 한국 공연을 앞둔 로만 킴과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할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데 큰 힘이 돼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벨라루스에 살다 부모와 함께 모스크바로 이사를 했다. 할아버지 세대와 달리 그에게 고려인으로서 남아 있는 기억은 없는 듯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은 사실 음악이 전부이다.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는 트럼펫 주자였습니다. 집안엔 늘 음악이 흘렀고 집에 손님이 오면 피아노를 치면서 모두 음악을 즐겼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풍경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일찍부터 나타났다. “악보도 읽기 전 네 살 때부터 MTV에서 나온 음악을 듣고 그대로 피아노로 연주를 했습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작은 바이올린을 사오셨어요. 그걸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살 때 처음 콩쿠르를 나가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때 연주한 곡이 멘델스존의 협주곡이었어요.”
   
   이번에 로만 킴이 연주하는 곡도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20년 전의 무대가 그를 바이올리니스트의 길로 이끌어주었듯, 이번 공연이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린 시절부터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러시아의 거장 로스트로포비치 재단의 후원을 받아 2000년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했다. 2007년 러시아의 바이올린 영웅 막심 벤게로프에게 사사(師事)하는 것을 비롯해 고토 미도리, 루이스 카플란, 미리암 프라이드, 기돈 크레머 등 거장들의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실력을 다졌다. 16세 때인 2008년에는 독일 쾰른음악학교에 입학해 거장 빅토르 트레차코프에게 사사하면서 작곡 공부도 병행했다.
   
   그가 편곡한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Air’(G선상의 아리아)는 독일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소한 다섯 대의 악기가 필요한 곡을 그는 한 대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해냈다. 독일의 한 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편곡 악보는 초판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독일 아헨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한 그를 두고 독일 신문 ‘아헤너 자이툴’은 이렇게 평했다.
   
   ‘그에게 테크닉적인 어려움이란 전혀 없는 것 같다. 어마어마한 음정과 흠 잡을 데 없는 인토네이션으로 단순히 흔한 중음과 배음, 미친 듯이 빠른 런과 불편하게 배치된 피치카토 섹션의 수준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이를 완벽히 마스터했다.’
   
   독일 신문 ‘쾰르너 슈타트 안차이거’도 쾰른 필하모니와 협연한 그의 데뷔 무대에 대해 찬사를 쏟아냈다.
   
   ‘로만 킴은 마술을 부려 쾰른 필하모니를 찾은 관객들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로만 킴처럼 단 5분 안에 풍부한 음색과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실력만큼 세계 무대에 이름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러시아에서도, 유학을 한 독일에서도 그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다. 할아버지 세대가 그렇듯 그도 주변인의 한계를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가 이번 무대에 서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밀레니엄오케스트라의 이재환 단장은 늦은 밤 TV를 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최고난도의 기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다음날 이 단장은 당장 연주자를 수소문했다. 연주의 주인공은 작은 음악회에 초청돼 한국을 찾은 로만 킴이었다. 그 후 이 단장은 로만 킴과 함께할 수 있는 무대를 고민하다 이번 공연의 협연자로 초청하게 된 것이다.
   
   로만 킴은 그동안 몇 차례 한국을 찾았다. 첫 방문은 2006년.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한·러 수교 기념무대였다. 당시 14세인 로만 킴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 단장처럼 우연히 그를 발견한 한국 음악가들의 초청으로 2014년 대형 교회에서 독주회를 갖고, 2015년 10월 KBS 열린음악회에 출연하면서 국내에도 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16년엔 수원국제음악제 폐막 무대에 섰다. 이 공연에서 그는 괴상한 안경을 쓰고 나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프리즘처럼 생긴 안경은 현을 잘 보기 위한 그의 발명품이다. 그는 바이올린 현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에릭 슈만, 리비 카스레누 등 그가 만든 현을 사용한 바이올리니스트도 꽤 있다. “바이올린은 음악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악기지만 아직 완벽하게 개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데 그중 제가 만든 현은 아주 성공적입니다. 어떤 음도 소화하고 큰 음량도 낼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콘서트홀이나 오케스트라 앞에서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바이올린은 저로 하여금 연주가로만 남지 않고 발명가나 작곡가가 되도록 자극을 줍니다.”
   
   그의 실험정신은 연주에도 나타난다. 이로 현을 뜯는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파가니니와 함께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색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소리를 추구해가는 지미 핸드릭스의 연주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은 그 시대의 환경과 의식을 반영해야 하고 기존의 해석을 넘어 자신만의 생각을 부여해야 살아있는 음악이다”란 것이 그의 생각이다.
등록일 : 2017-03-07 16:03   |  수정일 : 2017-03-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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