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피플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뮤지컬 음악의 ‘작은 거인’, 김문정 음악감독

날카로운 눈빛과 날선 독설. 음악감독 김문정의 이미지가 깨지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 반달의 눈웃음에 마치 옆집 언니를 오랜만에 만난 듯 편안했다. 심지어 처음으로 건넨 말이 ‘키가 정말 작네요’였으니.
그는 껄껄 웃으며 ‘진짜 작아요! 이거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 한다. 거침없는 말이 매력인 뮤지컬 음악의 ‘작은 거인’ 김문정 음악감독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났다.

글 | 서경리 톱클래스 기자

진심 어린 애정이 묻어 있는 날카로운 독설

“습관처럼 바쁘게 살아서 오히려 시간이 비면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요. 이게 워커홀릭인 거죠? 오늘은 아침에 학교에서 회의가 있었고, 〈데스노트〉 마지막 공연이 있는 날이에요. 그거 끝나면 쫑파티에 얼굴 비춰야 하고요. 내일은 JTBC 〈팬텀싱어〉 파이널 생방송이 있어요. 그 다음 날에는 뮤지컬 〈영웅〉 공연이 2회 있고요. 토, 일, 월에는 뮤지컬 〈팬텀〉까지 … 새로 무대에 올린 작품은 〈팬텀〉뿐이고, 나머지는 앙코르 공연이에요.”

줄줄이 스케줄을 풀어내는데 끝이 어딘지 모를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문정은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섭외 1순위’ 음악감독이다. 뮤지컬 〈모차르트〉 〈레베카〉 〈명성황후〉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등 다수의 히트작이 그의 지휘봉 끝에서 연주됐다. 지난해 참여한 작품만 10개가 넘는다. 한세대 공연예술학과 주임교수로 대학 강의도 나간다. 최근에는 종합채널 JTBC의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거절을 잘 못 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일 년에 신작은 2~3편이지만, 앙코르 공연이 많아 항상 시간에 쫓긴다. 새로운 공연이 시작되면 2개월 정도의 연습 기간을 거친다. 공연은 짧게 3주에서 길게는 1년 정도 하는데, 지방 공연에 앙코르 공연까지 하면 보통 100회 이상이다. 작고 마른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와 이 많은 공연을 소화하는지 궁금하다.

“건강은 자랑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좋은 편인 것 같아요. 나와 같은 공연으로 지휘한 부지휘자가 ‘감독님 어떻게 버텨요’라고 물어요. 우스갯소리로 ‘피곤한 게 뭐야? 눈이 감겨? 팔이 안 돌아가? 장난하지 마~’ 이렇게 말하죠(웃음). 몸이 처져 있다가도 공연이 시작되면 다시 살아나요. 이제는 매일 밤 지휘를 하는 것이 체력 관리인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서서 3시간 동안 유산소 운동을 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공연이 없을 때 아픈 것 같아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그는 7년 정도 건반세션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2001년 뮤지컬 〈둘리〉로 음악감독에 데뷔했다. 올해로 17년 차. 뮤지컬과 청춘을 같이했다.

“1997년 〈명성황후〉 연주자로 시작했으니, 20년이 넘었네요. 첫 공연 장소가 이곳 오페라하우스였으니까. 2001년 7월, 지휘자로 이 방을 처음 썼어요. 와! 진짜! 오늘 기념사진 찍어야겠다!”

말을 한 번 시작하면 속사포다. 주저함이 없다. 표정도 갖가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덩달아 웃음이 난다. 방송에서 본 이미지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하자 “방송에 서툴러서 말실수도 많고 표정 관리도 잘 안 된다”며 “느끼는 대로 했을 뿐인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잦은 클로즈업으로 모든 표정이 여과 없이 방송됐고, “이 곡은 참가자가 부른 것보다 오만 배는 더 좋은 노래다” “본인이 노래 잘한다고 생각하시죠” “별로였어요” 등 날 선 심사평은 그의 이름 앞에 ‘독설가’라는 말이 붙게 했다.

“‘오만 배’라는 표현도, ‘오늘 우리 연주 틀리면 벌금 4억이야’ ‘지각하면 20억’ 이런 장난을 많이 했거든요. 그게 그대로 방송됐어요. 시청자가 보기에 안 좋았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그의 독설은 모든 참가자가 두려워할 만큼 냉혹하지만, 다년간 음악감독으로 지휘한 노하우에서 나온 말이기에 진정성이 있다.

“개인적으로 출연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오디션에서도 가끔 있는 일이죠. 공연은 그날그날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적 점수나 앞으로의 미래를 보고 점수를 주지는 못해요. 공연을 보고 느낌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너희 모두가 배우가 될 수 있다. 꿈과 희망을 가져라’라고 말하지 않아요. ‘누구나 배우를 꿈꿀 수 있지만 아무나 배우가 될 수는 없다’는 거죠. 배우라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데요. 마트에서 줄 서서 순서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이 바닥은. 모든 것을 다 걸어도 안 될 수 있다는 거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에요.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보고 싶은 사람을 뽑는 것이 오디션이에요. 프로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배우와 호흡이 맞을 때 느끼는 짜릿함


김문정은 음악감독으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달려왔다. 지난해 8월에는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직접 작곡도 했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이후 8년 만이다. 그는 “혼자 상상하던 곡을 배우들이 부르며 완성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뿌듯했다”고 말했다. 극 중 영국 귀족 청년 도리안 그레이를 배우 김준수가 맡았다. 그와의 작품은 이번이 네 번째다.

“콘서트 때마다 준수씨가 나를 찾아줬어요. 그의 작품을 차곡차곡 해왔으니 서로 편했고. ‘케미’가 맞다고 할까요? 〈데스노트〉에서 준수씨가 객석을 등지고 ‘마지막 빛~’ 하고 노래를 끊는 장면이 있는데, 입 모양도 안 보이고 배우도 내 지휘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쯤에서 끝내겠지’ 하고 감으로 끊었는데 딱 맞았죠. 공연 후에 서로 ‘오늘 짜릿했다’는 말을 했어요. 약속한 것도 아닌데, ‘캬!’ 하는 순간을 몇 번 경험했죠.”

배우들은 감정 선에 따라 느리게 부르거나 빨라지는 경우가 있다.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배우의 호흡을 읽으며 맞춰가는 게 음악감독의 일이다.

“호흡이 잘 맞는 배우와의 짜릿한 순간이 있어요. 그게 체력을 유지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 그때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는, 죽이죠! 그건 아무도 모를 거예요.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

다른 배우와는 어떤지 물었다.

“배우 정성화씨와도 잘 맞아요. 공연을 하다가 ‘오늘은 목이 안 좋은 것 같네’ 이런 것도 느껴지고. (옥)주현씨는 치어업(cheer up)을 잘해줘요. ‘선생님 오늘 좋았어, 잘했어’ 하면서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좋아요. (박)효신씨는 공연 끝나면 ‘오늘 느리게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이런 얘기들을 하곤 하죠.”

오랜 음악감독의 노하우일까. 혹은 숙련의 힘일까.

“이 얘기 정말인데요, 애정의 눈으로 보면 다 들려요. 진짜! 진심! 계속 그를,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지금 숨이 차구나’가 보여요. 믿음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90% 배우만 봐요. 악보는 거의 외우고 있으니까.”

JTBC 〈팬텀싱어〉 방송 장면.
음악감독이 배우를 보고 있다면 연주자들은 음악감독만 바라본다. 그가 조심스럽게 지휘하면, 연주도 조용히 나오고, 강렬하게 지휘하면 음악도 따라간다.

“무대가 있고 바로 밑에 연주자가 있어요. 연주자들은 무대를 등지고 있죠. 음악감독은 무대를 반사하는 거울이에요. 표정과 손짓으로 무대를 보여줘야 하죠. 가끔 ‘감독님 얼굴만 보고 있어도 뮤지컬 한 편 보는 것 같다’고 말해요. 표정에 감정이입이 되니까. 하하.”

뮤지컬의 시작과 끝은 음악감독의 손끝에 있다. 음악감독 김문정의 필모그래피는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만큼이나 화려하다. 그 작품 하나하나에 애정이 넘친다.

“인생 뮤지컬 〈레미제라블〉, 내 삶의 일부 〈오케피〉, 해외 뮤지션 친구들을 만들어준 〈명성황후〉, 〈맨 오브 라만차〉는 채찍질 해준 작품이죠. 〈데스노트〉는 건반 치며 지휘하는 신나는 공연. 스트레스 풀 수 있는 〈맘마미아〉. 〈원스〉는 진심! 이런 표현 잘 안 하는데, 애정하는! 사랑하는 작품. 정말 아끼는, 힐링?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좋아하는 공연이에요. 음악과 스토리 모두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작품이죠. 단백하고 소박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밀도가 있고 농도가 짙어서 이런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김문정 감독은 뮤지컬에 몸담으며 뮤지컬 어워즈 음악감독상을 네 번이나 받았다. 또 2008년 〈내 마음의 풍금〉으로 한국 뮤지컬 대상 작곡상을 받았다. 그는 “앞으로 상은 못 받을 것”이라며 “경력이 있고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신인들과 경쟁하려면 내 표현으로 ‘오만 배’ 더 잘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의 나이도 이제 중년이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뮤지컬 음악을 지휘하는 최초의 할머니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얘기를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한 번 던진 말인데 계속 도네요. 일이 재밌고 언제나 다이내믹하고 설레고 짜릿한 부분들이 있으니까, 백발이 성성해서 지휘해도 멋있겠다고 생각해서 한 말인데, 인터뷰가 이래서 무서워!”
등록일 : 2017-03-06 14:41   |  수정일 : 2017-03-06 16:29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