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피플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내 인생의 소울푸드...‘수요미식회’ 진행자 전현무의 ‘곰국’

수십 번 우려 진국 빠진 곰국 그 안엔 엄마표 특제소스가

글 | 전현무

그렇게 많은 맛집을 돌아다니고 나름 입맛의 수준을 높여가면서도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주제였다. 나의 소울푸드? 각 메뉴의 일등 맛집도 알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老鋪)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나만의 음식은 무엇일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주간조선의 원고 청탁을 받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소울푸드를 생각했다. 이것은 매우 신선할 뿐 아니라 진작에 곱씹어봤어야 할 흥미로운 주제였다.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1년 365일 가족을 위한 삼시세끼 메뉴를 쥐어짜야 하는 의무를 평생의 업처럼 여겨 오신 어머니가 그 수고로움에서 잠시나마 해방되기 위해 고안해낸 훌륭한 작품이 분명 몇 개 있었다. 일단 하나의 재료로 여러 가지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이름하여 ‘수퍼 매직 원푸드 세트 메뉴’.
   
   첫 번째는 배추를 이용한 음식이다. 집된장 옆에 한아름 쌓아올린 노란 생배추들. 그 옆엔 두고두고 데워 먹을 수 있는 배추전이 있다. 그리고 멀건 배춧국 또는 갓 담근 배추겉절이가 이내 머슴밥처럼 솟아오른 꽁보리밥 주위를 에워싼다. 배추의, 배추에 의한, 배추를 위한 배추 일변도의 폭력적인 식단이다.
   
   두 번째는 어떤 인도 가정식도 부럽지 않은 한솥 가득 인스턴트 카레. 여기에는 감자, 당근, 양파 등 어머니가 새로 추가한 유기농 재료가 넘쳐난다. 인스턴트인 듯 인스턴트가 아닌 인스턴트 카레로 나는 보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은 이보다 훨씬 오래 연명할 수 있게 한 음식이 바로 사골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릴 때까지 우리고 우린 뜨끈뜨끈한 곰국이다.
   
   학창 시절 나는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곰국을 오래 먹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하도 오래 먹었던 음식인지라 기억이 강렬할 수밖에. 하지만 이 음식을 나의 소울푸드로 꼽는 건 한 타임 최장기간을 기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고 우릴 때마다 첨가되는 어머니의 창의성과 가족에 대한 정성 어린 마음이 매번 너무도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곰국은 그야말로 고기를 푹 곤 국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울 때마다 마냥 여러 차례 우리기만 하면 고기에서 없던 누린내가 발생하기도 하고 구멍 뚫린 사골로부터 난데없는 쓴맛의 역습을 당하고 만다. 그래서 쉬운 듯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메뉴가 바로 곰국이다.
   
   지금부터 공개할 어머니의 비법은 50년 전통의 곰탕집 사장님을 얼어붙게 만들고 맛집 파워블로거들이 긴장하게 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지적을 하고 핀잔을 준다면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법한 매우 비과학적인 레시피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곰국을 끓여내고 첫 숟가락으로 떠먹었던 국물 색깔과 한 달 뒤 먹었던 국물의 비주얼이 판이하게 달랐던 사실을. 사골을 오래오래 우리고 뼈에 구멍이 보일 정도로 곤죽을 만들면 아들 몸에 마냥 좋을 줄 알고 가급적이면 오래 묵혀두고 먹으려 했던 어머니. 그러다 보니 강해지는 고기의 누린내를 후추와 고춧가루로 잡으려 하셨다. 점차 다진 마늘과 생강도 꽤나 많이 투하되었던 것 같다. 영양분을 모두 잃고 열 번도 넘게 우려져 바닷속 산호가 되어버린 뼈는 쓴맛을 내기 시작하면 곧 굵은 소금을 만난다. 여기에 또 변해버린 맛을 숨기기 위해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한 당면이 긴급지원군으로 출동한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이미 매우 심각해진다. 국물 색은 몰라보게 짙어지고 간은 본의 아니게 점점 세진다. 집에서 한 음식은 무조건 몸에 좋다는 어머니의 신념에 따라 반강제로 국물을 몽땅 마시고 나면 국물에 섞이지 못한 후춧가루가 모래알처럼 한 줌 그릇 바닥에 잔뜩 침전되는 ‘참사’도 발생한다.
   
   곰국을 포함해 사골을 우린 탕은 적정 횟수를 넘겨 과도하게 끓이다 보면 득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한국인 대부분은 짜게 먹는 식습관 때문에 칼슘이 평균 30% 정도 부족하다고 한다. 나트륨과 인 성분이 체내의 칼슘을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곰국은 부족한 칼슘 보충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이지만 역설적으로 뼈를 여러 번 우리게 되면 다량의 인(燐)이 발생하게 된다. 어머니가 궁여지책으로 집중 투하한 소금 속 나트륨은 어렵게 생성시킨 칼슘을 고스란히 몸 밖으로 내보낸다. 이는 다이어트를 하겠답시고 고구마 7개를 짠 배추김치에 돌돌 싸먹어 살이 더 찌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할 수 있다. 이 역시 나의 최근 어리석은 경험담이기도 하다. 곰국은 6시간씩 총 3회 정도 끓여 먹는 게 좋다고들 한다. 4회 이상이 되면 칼슘 잡아먹는 인이 다량 방출되기 때문에 화석이 되어버린 사골 뼈는 버리는 게 맞다.
   
   어머니를 이렇게까지 말하며 어머니의 곰국을 대체 왜 나의 소울푸드로 꼽았는지 독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이유로 곰국은 나의 잊지 못할 소울푸드다. 평택에 가서 인생 꼬리곰탕도 먹어 보고, 포항에 내려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깊은 육수의 곰탕도 접해 보고, 통인시장 주변 35년 전통의 소머리국밥도 정신 잃고 흡입해 봤지만 한 달 반 동안 너무도 다채로운 비주얼과 버라이어티한 맛을 자랑했던 어머니의 곰국은 감히 따라올 수 없다. 곰국은 여러 번 끓이면 몸에 좋다는 어머니의 믿음은 비록 틀린 것이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 건강하라고 어떻게든 더 많이 더 오래 곰국을 먹게 했던 당신의 마음은 어떤 맛집과 노포도 흉내 낼 수 없었다. 남들은 성공했다, 재미있다 과분한 칭찬을 많이 해주지만 나는 사실 늘 부모님께 무뚝뚝하고 툴툴대는 아들이다. 나트륨과 인이 잔뜩 들어간 어머니표 곰국이 문득 먹고 싶어진다. 비록 몸에는 안 좋을지 모르나 나의 정신건강은 대단히 풍요롭게 해주는 특별건강식이기에 그렇다. 불효자 아들은 지금도 어머니표 곰국이 그립다.
등록일 : 2017-03-03 15:56   |  수정일 : 2017-03-03 15:33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