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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멋있다 [길용우, 독고영재]

누군가의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배우들이 있다. 연기생활 40년을 목전에 둔 길용우와 3대째 배우의 길을 걷는 독고영재가 그들이다. 이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현장의 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들이 출연한 드라마 <사랑만 할래>와 <고양이는 있다> 촬영 현장을 찾았다.

글 | 김가영 여성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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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이어도 괜찮아
길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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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막장’ 소재가 시청률을 견인한다고 하지만, 배우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종영한 <사랑만 할래>의 길용우는 딜레마에 빠졌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캐릭터를 소화하려니 마음이 안 따라주고, 그렇다고 시청률의 주역이 되어버린 배역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가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달리 중반쯤에 방향을 틀어서… (여기까지 왔어).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는 바람에 이상한 성격의 원장으로 변했지.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인 역할인데 만날 납치, 감금, 폭행만 하는 사이코 같은 악인 중의 악인으로 비참한 최후까지 맞이하게 돼.”
 
기자가 방문한 날은 <사랑만 할래>의 마지막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리허설 동선은 병원 집무실을 시작으로 창고, 장례식장 그리고 교도소까지 이어졌다. 장례식장 신에서는 단상 위에 놓인 이영란(이응경)의 영정 사진 높이를 두고 감독과 배우 간에 사소한 의견 차가 생기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최적의 동선을 꼼꼼히 체크하는 모습이었다. 극 중 병원장 최동준을 연기하는 길용우는 이곳에서 아내의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다 절벽으로 향한다.(드라마는 최동준의 자살로 막을 내린다.)
 
리허설을 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길용우의 존재감은 꽤 컸다. 애초에 젊은 남녀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드라마가 언제부턴가 광기 어린 병원장의 악행과 파멸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 길용우가 더 악랄하게 연기할수록, 시청률은 고공행진 했다.
 
“처음부터 악인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 타당성 있는 캐릭터였다면 연기하기가 편하고 준비도 많이 했을 텐데 아쉬워. 갑자기 (캐릭터의 이미지가) 바뀌는 바람에 부담이 되기도 했고. 연기라는 게 타당성과 당위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마구잡이, 어거지로 전개되다 보니까 솔직히 짜증이 날 때도 있었어. 하여튼 뭐, 그래. 어쨌든 마지막 촬영까지 오게 됐으니까 유종의 미를 거둘 일만 남았지.”
 
최동준이 극의 중심인물로 바뀌면서 길용우가 등장하는 신도 부쩍 늘었다. 체력과 대사 암기를 안배해야 하는 배우, 특히 중년의 그에게 갑자기 늘어난 분량은 꽤 부담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사이드 배역에 있어야 될 아버지가 갑자기 주인공하고 동급이 되는 바람에 촬영분도 많아지고 대사도 많아졌어. 그래서 버겁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 물론 이런 일을 거치면서 배우가 한층 거듭날 수도 있겠지. 새로운 설정(평범한 원장이 어느 날 갑자기 악랄한 사이코가 된 것)이 보태지면서 좀 더 다양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하고 좋은 면으로 생각하려고 해. 아쉬운 점은 털어버리고 좋은 면으로만 생각해야지. 애써준 사람들도 너무나 많은데 선배 된 입장에서 모든 걸 포용하고 감싸주는 게 맞으니까.”
 
철없고 뻔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면을 가진 3년 전의 황남봉(<반짝반짝 빛나는>)은 3년 만에 ‘올해의 악역’으로 제대로 변신했다.
 
“사실 나도 옛날부터 악역을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악역도 악역다운 악역, 말하자면 명작에 나오는 악인들 말이에요. 그런 악인들은 참 해보고 싶었는데…. 하여튼 간에 마지막까지…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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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대를 넘나들며
 
지난여름 연극 무대에 오른 그를 보러 대학로 쇳대박물관을 찾았다. 1975년 극단 민중극장 출신이자 대학 시절 공연창작을 전공한 그에게 연극 무대란 고향과 다름없다. 해당 연극은 클래식이 가미된 모노드라마 <피아노포르테, 나의 사랑>.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을 제외하면 배우로는 단독으로 80분에 달하는 공연을 소화했다. 연극이 끝나고 주어진 짤막한 질의응답 시간. ‘드라마 출연으로 바쁜 와중에도 왜 연극 무대에 서게 됐느냐’라는 한 대학생의 질문에 그는 ‘배우는 새로운 자극으로 스스로를 계속 단련시켜야 한다. 연극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라는 답을 건넸다.
 
“겨울에 대사 외우느라고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 혼자 하는 거니까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무용가와) 모여서 연습한 게 몇 번 안 돼. 그보다는 혼자 설정하고 연습하고 대사 외느라고 힘이 좀 들었어.”
 
2010년에는 연극 <엄마를 부탁해>로 10년 만에 무대에 오른 그다. 2년 전에는 작은 사진전을 열기도 했으니, 배우라는 꼬리표를 떼어낸 화면 밖의 길용우는 상당히 바지런하다.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러 가는 봉사활동을 갔었어. 아이들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순박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걸 본 지인이 ‘그냥 넘어가기 아까우니 전시회를 하자’ 해서 하게 된 거야. 사진을 좋아하긴 하는데 제대로 공부한 건 아니고 사실 요새 카메라 기능이 워낙 좋잖아. 아마추어도 좋은 그림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으니까.”(웃음)
 
배우들에게 휴가는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 전이다. 지독한 악역을 소화한 다음이라 그 어느 때보다 휴식이 필요하진 않을까.
 
“사실 드라마가 올림픽 방송이다 뭐다 해서 3주 딜레이가 됐어. 원래 여행 계획이 있었는데 (작품이) 늦어지는 바람에 딴 친구들은 갔고 난 못 갔지. 지금 계획은 미니시리즈 하나 더 하고 쉴까 해. 사실 배우는 촬영이 없는 날은 쉬는 거니까.”
 
여전히 젠틀한 외모와 중후한 목소리를 유지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체력 관리 비법을 물었다.
 
“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는데 자꾸 게을러져서 못 해. 대신 진돗개 한 마리를 기르는데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산책을 하지. 그게 체력 관리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어. 촬영이 없는 날은 아침에도 끌고 다니고 낮에도 밤에도 가끔 끌고 다녀. 그러니까 개가 나만 보면 밖에 나가자고 완전히 난리가 나.”(웃음)
 

고양이는 바로 나
독고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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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23.8%)로 막을 내린 일일드라마 <고양이는 있다>가 종영한 지 2주쯤 지났을까. 얼마 전 현장을 찾았지만,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독고영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장 6개월을 달려온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그는 짧은 휴식기를 즐기고 있었다. 결혼한 딸 내외를 포함한 온 가족이 제주도로 곧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며 기뻐하는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고양이는 있다>는 소위 말하는 막장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작품이야. 사람이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안 좋은 일을 저지르거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기잖아.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거기엔 다 이유가 있고. 그 때문에 가족이 고통 받고 부모자식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내용이거든. 순수하고 따뜻한 드라마야.”
 
지난 11월 21일 종영한 KBS <고양이는 있다>에서 독고영재는 주인공 고양순(최윤영)의 아버지 고동준 역을 맡았다. 사업 부도에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까지 다녀온 기구한 운명이지만, 그 와중에 본처(이경진)를 두고도 생명의 은인인 윤정혜(김서라)와 살림을 차리는 등 중년의 로맨스(?)도 선보였다.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딸의 노력이 극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드라마는 막장 코드 대신 가족의 온기를 선택한다.
 
“막장 코드가 없기 때문에 보면서 ‘저저 나쁜 놈!’ 하는 게 없었다고 해. 근데 요즘 시청자들이 막장 코드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 세야 보거든. 세지 않으면 심심하다고 한단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동 시간대 1위를 했어. 센 코드가 있었으면 시청률이 더 올라가고 화제가 됐을 텐데, 이건 무난하게 조용히 온 거야. 편안하게 시작해서 (편안하게) 끝났지.”
 
일명 ‘착한 드라마’다. 그가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데는 이은주 작가에 대한 신뢰가 컸다.
“이은주 작가가 <삼생이>(2013년 1월부터 6개월간 방영된 아침드라마) 작가거든. 지금 <삼생이>가 동남아시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 하여튼 <삼생이> 같이하면서 대단한 작가다, 생각했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사용한 언어와 소재와 분위기를 현대물로 참 잘 각색했거든. 촬영 끝나고 ‘다음에 이 감독(김원용)과 작가가 하는 작품은 무조건 하자’ 생각했지. 그래서 이번에 섭외 들어왔을 때 역할도 안 물어보고 하겠다고 했어.”(웃음)
 
작가와 감독에 대한 배우의 신뢰가 이만큼 두텁기는 쉽지 않다. 작품에 대한 안(배우와 스태프 등)과 밖(시청자 등)의 평가가 고르게 좋았던 것도 그 때문 아닐까. 참고로 <고양이는 있다>의 ‘고양이’는 극 중 독고영재가 맡은 고동준을 가리킨다고.
 
“동준이가 (회사가 망하고) 숨어 살다가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엔 한 여자를 만나 같이 살잖아. 가족들이 동준이 죽은 줄 알고 사망신고를 했기 때문에 호적이 없어 결혼식도 못 했지. 말하자면 동준은 타의에 의해서 ‘숨어 사는 사람’이야. 근데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해. 작가가 그들을 고양이에 비유한 거거든. 고양이는 실제로 우리 주변에 많지만, 평소엔 숨어 있다가 밥 먹을 때만 살짝 나타나잖아. 개처럼 다정다감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남을 해치는 동물도 아니라고. 그런 고양이에 비유한 게 바로 이 고동준이라는 캐릭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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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할리 데이비슨, 오프로드…
그가 젊게 사는 비결
 
독고영재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은 마인드의 소유자다. 현장에서도 먼저 어린 스태프들에게 다가가 농담을 건네는 ‘선배’ 배우이기도 하다. 집에서 가져온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것도 그가 촬영장에서 즐겨 하는 일이다.

“오늘처럼 대사 양이 많지 않은 날엔 가끔 이렇게 사진을 찍어. <선덕여왕> 때도 그랬고 <태왕사신기> 할 때도 그랬지. 30~40년 전 (촬영장에서) 찍어놓은 사진들도 있어. 지금 그때 사진들을 보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해.”
 
지금은 이 세상에 없거나, 더 이상 배우가 아닌 동료 및 선후배들을 새삼 떠올리게 되는 건 사진 한 장의 힘이다. 그에게 사진은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다.
 
“그 시절에는 내가 이런 마음가짐이었지, 하며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을 해. 오랫동안 연기를 하고 나이가 들면 열정이 식잖아. 그런 것들을 다잡게 돼. 나는 두근거림이 없어지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든 두근거림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야. 그 두근거림이 에너지를 만들어주거든.”
 
그 두근거림을 만들어주는 건 새로운 자극이다. 독고영재에게는 십수 년째 타고 있는 할리 데이비슨이, 오프로드가, 사진이 그런 것이다.
 
“촬영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임 후배들과 할리(데이비슨)를 타러 가. ‘시간 나는데 우리 번개하자’ 그러면 6~7명이 모여서 맛난 거 먹으러 가는 거야. 겨울엔 오프로드를 하거든? 눈 속에서 텐트 치고 야영을 하는데, 그게 또 묘미가 있어서 눈 쌓이기를 기다려.”(웃음)
 
레포츠를 즐기니 자연스레 살찔 틈이 없다. 실제로 3년 전 기자가 그를 보았을 때보다 몸이 더 좋아진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이나 바벨, 철봉 등으로 몸을 풀며 40분 정도 운동을 해. 새해부터는 헬스클럽에 다니며 6개월 몸만들기를 할 계획이야. 이참에 30대 몸을 만들어보려고 프로그램을 짰거든. 술? 원래 안 마시잖아.”(웃음)

사진 강현욱, 박종혁
출처 | 여성조선
등록일 : 2015-01-10 오전 9:55:00   |  수정일 : 2015-01-0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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