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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람 만나고 싶다! 오정연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 장대비가 걷힌 오정연은 삶이 단단해졌다. 익숙한 정도(正道)를 벗어나 걸어도 불안하지 않을 만큼. 짧지 않은 터널을 빠져나온 그가 길 위에 섰다.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서다. 그 길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글 | 이근하 기자 2019-03-14 09:52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바라는 것이라면 자신도 바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부모님이 그리는 딸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장녀로서 책임감은 알아서 견뎌야 할 몫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그에겐 ‘정답’이었다.

“어릴 때 체형교정 때문에 발레를 배우다가 공부한다고 그만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말에 문과, 이과 나뉘면서 진로를 고민하는데 발레가 하고 싶은 거예요. 아버지는 반대하셨죠. 제가 서울대에 가겠다고 하니까 허락하시더라고요.”

무작정 열심히 살았다. 보상은 확실했다. ‘서울대 졸업생’ ‘지상파 아나운서’. 사람들이 설명하는 그는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때 알았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에세이 작성 시간을 가진 적이 있어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쓰는 거였는데 눈물이 왈칵했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울었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말 잘 듣는 딸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아버지가 정한 통금시간 오후 10시를 넘기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썼으니 말이다.

“부모님의 바람, 사회의 기대치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잘 안 됐어요. 30여 년 살아온 습관을 한 번에 깨는 게 어려웠거든요.”

그대로 시간이 흘렀다. 이혼 후 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선망의 대상이었고, 많이 좋아했어요. 기대한 바와 달랐지만 개의치 않았죠. 늘 과거를 그리워하고 갖지 못한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면을 보듬어주고 싶었고, 함께 극복하려 했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의 부정적인 기운에 전염된 것 같아요. 상대는 저를 더 의지하고 저는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결국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죠.”

‘나침반 같던’ 사람을 잃고 몰려드는 슬픔은 이전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1년 가까이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렸다. 깊은 어둠 안에 스스로를 가뒀다. 금세 6㎏이 빠져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 말라갔다. 내내 자신을 돌아봤다. ‘잘살고 있나’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인가’ ‘원하는 삶의 방식인가’ 등. 당시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다.

처음 해본 카페 아르바이트, 카페 창업도 하고 싶다

흔하디흔한 표현처럼 시간이 약이고 극복되지 않는 건 없었다. 다시 일어선 그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내가 이걸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저걸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썼다면 이젠 아무 상관없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카페 아르바이트였다. 구직 사이트를 통해 면접까지 보고 찾은 일자리다. 대학 땐 아버지 반대로 하지 못했고, 프리랜서가 되고 나선 혹 사람들이 ‘일이 없어서 저러나’라고 할까 봐 포기했었다.

“그저 좋았어요. 아이스 음료인데 뜨거운 물을 부어서 혼나고, 바닐라 시럽을 넣어야 하는데 이상한 시럽을 넣어서 혼나도 좋았어요. 하고 싶은 걸 행동한다는 데 뿌듯함도 들었죠.”

손님들과 대화 너머 다른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방송국에서 매번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비슷한 경험을 하던 것과 달랐다.

덕분에(?) 몸무게가 11㎏이 늘었다. 만들고 남은 주스를 마시면서 살이 오른 것도 있지만 의욕을 되찾아서였다.

봇물 터진 듯 이것저것 다 했다. 스킨스쿠버도 배우고 오토바이 면허,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땄다. 한국무용과 연극을 더한 ‘춤극’ 공연도 해봤다.

“한국무용, 연극 둘 다 처음인지라 제겐 도전이고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30석도 안 되는 작은 무대에 선 것도 변화였고요. 몇 천 석 음악회 사회를 보던 날보다 훨씬 떨리고 긴장되던 걸요.”

‘마음대로’ 살아보니 하고 싶은 일이 또 생겼다. 카페 창업이다.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지트 느낌의 카페 공간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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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살고 싶다

아무리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일지라도 자유롭지 못한 게 있다면 ‘소문’ 아닐까. 대중에 비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법한 소문에서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없건만, 바라는 대로 그리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말하고 싶단다.

“오정연은 사치스럽다?(웃음). 직장 생활할 때부터 월수입의 60프로 이상을 고스란히 저축하고 투자한 저랍니다. 친구들 사이에선 완전 짠순이라고 불릴 정도로 알뜰한 편이에요. 가장 자부하는 점이 경제관념인데 사치가 있다니요….”

덧붙여 ‘매우 지저분한 사람이다’라는 소문은 “아나운서 초년병 시절 머리 감을 시간조차 아껴 쪽잠을 잔 적 있다”고 한 에피소드가 와전됐다고.

“더 억울하고 힘든 건 그런 루머를 이혼사유로 확신한 채 올리는 익명의 글들이었어요. (아니라고 말해도) 일부 대중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잖아요. 굳이 해명하지 않았죠. 제가 언급함으로써 (루머를) 몰랐던 사람조차 알게 되는 것도 꺼려졌고요. 어떻든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게 제가 바라는 거니까 거리낌 없이 말할래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확신이 있었다. 넘어짐과 일어섬을 반복해도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단단해졌다.

“인생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 같아요. 그걸 극복했다 싶은데 더 큰 위기가 올 수도 있겠고요.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예요. 누군가 말하길 비관하는 건 기분에 속하지만 낙관하는 건 의지에 속한대요. 죽어라 힘들 땐 들리지도 않던 이야기인데 지나고 나니 어찌나 가슴에 와 닿던지….”

돌이켜보면 2년 전 그때 뒤늦은 사춘기를 겪은 것 같다고 했다. 사춘기를 지나면 어른이 되듯, 그도 자랐다.

“그만하면 인생을 다 아는 줄 알았어요. 아나운서 하면서 누구보다 공감하고 이해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 착각이었어요. 사춘기 아닌 사춘기를 보내고서야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마다 이유로 고통받고 있을까 비로소 헤아리게 됐어요.”
 

긍정적 에너지 주는 사람 만나고 싶다

일련의 시간은 그의 ‘사랑’에도 영향을 준 듯하다. 자상하고 친구 같고 귀여운 사람, 한결같은 이상형에 조건이 생겼다.

“소개 받는 거 잘 못 하는 성격이고, 조건도 잘 안 봐요. 이상형은 정말 ‘이상’형일 뿐이잖아요. 저는 뭔가에 꽂히면 한없이 빠져드는 스타일? 측은지심으로 사랑한 적이 많았어요. 이제 좀 따져보려고요. 나도 그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 서로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 꼭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따질 거예요.”

그는 올해 서른일곱 살이다. 아나운서가 되지 않았다면 서른일곱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반 회사 시험도 많이 봤어요. 그때 은행에 합격했으니 은행원이 됐을 것 같기도 하고, 음… 지금처럼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더 활개치고 살았을 것 같아요.”(웃음)
여성조선 2019년 3월호
등록일 : 2019-03-14 09:52   |  수정일 : 2019-03-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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