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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안에 결혼? ‘싱글 대디’ 배우 김승현

“김승현 씨!” 지난해 연말 한 방송사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놀란 기색이 역력한 그의 얼굴이 방송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멋쩍어하며 무대로 향하던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돌리더니 딸에게 다가가 짧은 포옹을 나누고서야 시상대에 올라섰다. 배우 겸 방송인 김승현이기에 앞서 아빠 김승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글 | 이근하 기자 2019-02-19 10:22

16년 전인 2003년 어느 날 하이틴 스타 김승현이 대중 앞에서 고백했다. 한 살 많은 여자친구 사이에서 낳은 세 살배기 딸이 있다고. 적잖은 충격이었다. 당시 김승현은 모델, 연기자, 음악방송 MC, 라디오 DJ 등 분야를 막론하고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였으니 일종의 배신감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 셋에 불과했을 때다.

고백의 대가는 혹독했다. 나날이 치솟던 인기는 한순간에 사라졌고 그를 찾는 소녀 팬도, 방송가 관계자도 없었다. 데뷔와 함께 일약 스타가 된 김승현은 그렇게 잊혀갔다. 2017년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딸 ‘수빈’이를 공개하기 전까진 말이다.

김승현은 딸과의 일상을 꾸밈없이 보여줬다. 도타운 부녀 관계를 연출했을 법도 한데 서먹한 모습을 그대로 전했다. 비좁은 옥탑 방에서 혼자 생활하는 모습도 전파를 탔다. 진정성이 통했을까. 미혼부라는 고백에 쏟아진 과거 비난의 시선이 응원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덕분에 새 전성기가 열리는 듯하다. ‘싱글 대디’라는 이유로 대중에게서 멀어졌던 그는 요즘 ‘싱글 대디’라서 사랑받는 중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연예대상 우수상 수상 축하 인사로 시작했다.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데뷔하고 20년 만에 처음 상을 받았어요. 트로피 되게 무겁던데요. 트로피 자체가 원체 무거운데다 책임감까지 더해지니 무게감이 훨씬 컸어요. 무명시절 없이 연예계 생활을 해서인지 공백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번 상은 그 시간을 묵묵히 잘 견뎌왔다고 인정받은 게 아닌가… 어쨌거나 축하 인사는 몇 번을 들어도 기분 좋네요.”

수상자로 호명되자 그는 딸이 앉은 자리부터 찾았다. 딸이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모습에 놀라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단다.

“평소 감정 표현이 별로 없는 애라 우는 걸 보고 너무 놀랐어요. 전혀 예상 못 한 그림이었거든요. 원래 같았으면 제 포옹을 피하고도 남았을 텐데.(웃음) 제가 방송을 못 하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지난 순간들이 스치면서 울컥했나 봐요.”
 

포장마차 할머니 말에 재기

그에게 딸은 언제나 가장 우선이다. 16년 전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결심한 것 역시 그래서였다. 설령 연예인을 못 하더라도 딸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회견 이후 세상은 참 매서웠다.
 
“인기고 뭐고 아이가 소중했어요. 내 딸인데 맘놓고 같이 외출 한 번 제대로 못 했으니 어떻게 아빠라고 할 수 있었겠어요. 부모님은 저를 생각해서 수빈이를 늦둥이라고 속이고 사셨는데, 자식들 다 키워놓고 또 고생시켜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죠. 기자회견 하면 어떻게 될지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괴로웠어요. 대놓고 손가락질하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안 들리겠거니 하면서 수군거리는데 다 들리거든요.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피부로 느껴지니 결국 외출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일이 사라지니 수입이 있을 리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해봤지만 얼굴이 알려진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한창 때 벌어둔 수입은 소속사가 자신 앞으로 몰래 쌓아둔 빚을 갚는 데 몽땅 써버렸다.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두운 시간이 길어지면서 입대할 시기에 이르렀다.

군 복무를 마치고 방송가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 6년이 훌쩍 흘렀다. ‘재기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막연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주 들르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포장마차가 그를 변화시킬 줄이야.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포장마차였거든요. 활동할 때부터 단골이었는데 그땐 제가 누군지 모르시더니 제대하고 나니까 알아보시더라고요. 군에 있는 동안 <출발 드림팀>이 재방송됐는지 ‘잘 보고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언제 또 방송에 나올 거냐, 우리 딸이 팬인데 엄청 기다리고 있다’고 하시는데 와, 그때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아직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고 놀랍고.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창 활동하던 시절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지 고민했다. 답은 ‘연기’였다. 하지만 지난 경험은 부족한 연기 실력을 채우기엔 턱없었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무작정 대학로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땐 감독님들이 시키는 대로 연기했어요. 무지하게 욕먹으면서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하고. 다시 연기를 시작하려고 결심했을 땐 그 정도 실력으로는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무대 연기가 연기의 기본이니까 대학로로 갔죠. 몇 년간 연극 생활하면서 간간이 단막극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었어요. 기본기가 쌓이니까 어느 순간 연기가 진심으로 즐겁고 자신감이 늘더라고요.”

연극 무대에 섰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때마침 아이를 공개해달라는 인터뷰, 방송 촬영 요청이 들어왔다. 섭외 요청 중엔 유명 프로그램도 있었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엔 확실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아이가 본인 의사를 밝힐 만한 나이가 아니었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다. 그런 아빠에게 딸이 먼저 말했다. “아빠, 언제까지 연극만 하면서 살 거야. 이제 방송 좀 해야지.” 아빠가 차마 말하지 못한 고민을 알아채고 보듬어줄 만큼 속 깊은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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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부 바라보는 시선 달라져

딸을 방송에 공개한 여파는 컸다. 아이를 수단으로 돈벌이하려 한다는 비난, 아이와 아빠의 외모가 다르다며 쏟아내는 직설적 표현 등. 그의 가족이 감내해야 할 몫은 예상보다 무거웠다. 그렇지만 시대는 분명히 변했다. 부정적 시선 못지않게 그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예전이랑 비교하면 미혼모, 미혼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공감하는 분위기가 커진 듯해요. 요새 아이돌이 결혼하고 애 낳는다고 하면 마냥 비난하지만은 않잖아요. 축하해주고 응원도 해주던데요. 아마 제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것도 시대가 바뀌어서 가능했을 겁니다.”

다시금 피어나는 인기에 힘입어 그는 지난해에만 몽골 합작 드라마 한 편, 영화 두 편에 참여했다. 이들 작품 모두 올해 방영 및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작업복 모델, 햄버거 광고 모델에도 발탁됐다. 그럼에도 그는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는다. 인기의 부침을 겪어봤기에 언젠가는 지금처럼 관심 받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더욱이 온 가족이 함께 주목받고 있는 요즘엔 그 부담감이 더욱 크다.

한편으로는 싱글 대디로서 자신과 같은 입장의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데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1년간 미혼보호시설 도담하우스에서 정기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유다.

“많은 분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어요. 특히 혼자서 자녀를 키우시는 분들이요. 그분들이 제가 다시 일어선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었으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제가 좀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동생이 대뜸 봉사활동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라고요. 대단한 활동은 아니에요. 재능 기부도 하고, 생필품을 후원하기도 하고, 거기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요.”

지난해 11월에는 싱글 대디 5명과 함께 여성가족부가 주관한 미혼부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여가부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좋은 취지로 기획된 일이니 흔쾌히 참석했죠. 미혼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실태 조사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진선미 장관님도 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기억에 남는 게 거기서 만난 분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기분이 묘했어요. 내가 뭐라고…. 뭔가 아빠로서 배우로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죠. 그래서 장관님께 말씀드렸어요. 미혼부 정책 홍보를 위해서라면 적극 동참할 뜻이 있으니 언제든 연락 주시라고.” 

친구 같은 딸이 고마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다시 각인시키기까지 김승현은 자그마치 16년의 세월을 보냈다. 만일 그날, 딸이 있다고 밝히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김승현은 달라졌을까. 정작 그는 이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단다. ‘수빈이 아빠’임을 알린 순간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도 없다고 했다. 어느덧 스무 살인 친구 같은 딸이 고마울 따름이란다.

“안 그랬는데 요즘 부쩍 잔소리를 많이 하네요. 진짜 친구 같은 딸이에요. 둘 다 꾸미는 걸 좋아해서 대화가 잘 통해요. 가끔 제 운동화 사면서 똑같은 걸 하나 더 사서 줄 때가 있는데 그걸 친구들이 부러워한대요. 너희 아빤 젊어서 좋겠다고. 이젠 딸이랑 둘이 유럽이든 미국이든 먼 데로 여행하고 싶어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근데 애가 대학생 되더니 저보다 더 바쁘네요.”

올해 김승현은 ‘배우’라는 수식어에 무게를 실으려 한다. 예능도 좋지만 연기하는 모습을 비출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나이 들어도 연기하려고요. 무슨 역할이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해야죠. 잘될 것 같은 기대감도 있어요.(웃음) 확정된 건 아니지만 하나 둘 제의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옛날처럼 유명 연예인을 꿈꾸진 않아요. 연기 자체로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얼마 전 방영된 예능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문득 스쳤다. “장가는 언제 가느냐”는 집안 어르신들 질문에 김승현의 아버지가 “두 달 안에 할 것”이라고 답한 장면이다. 혹 의미심장한 답변이 아닐까 싶어 결혼 계획을 묻자 그가 급하게 손사래 치며 말했다.

“정말 그냥 하신 말씀이에요. 물론 누구보다 제 결혼을 원하시긴 해요. 당장이라도 결혼하라고 성화시거든요. 이젠 수빈이도 적극 지지하니 저도 좋은 이성을 만나면 결혼하고 싶어요. 아버지 말씀은 방송 재미를 고려해서 하신 거라고 봐주시면 됩니다. 결혼,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연기 활동부터 열심히 할게요.”
여성조선 2019년 2월호
등록일 : 2019-02-19 10:22   |  수정일 : 2019-02-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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