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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물괴〉의 혜리, 예쁘기보단, 즐겁고 싶어요

글 | 이루신 자유기고가   사진 |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롯데엔터테인먼트

“아 이건 TMI인데… 푸흡.”

멋쩍게 말한 뒤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다. TMI는 ‘Too Much Information’의 약자다. 너무 많은 정보를 말한다는 뜻으로,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함)’이 듣는 이의 입장이라면, TMI는 말하는 사람이 ‘제 발 저려’ 하는 자수에 가깝다. 부정적 의미의 신조어지만 인터뷰라면 다르다. 다른 데에서 나오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가 반가운 자리에서, TMI는 고마운 일이다. 혜리가 TMI라며 나눈 이야기는 스포츠였다. 자신이 얼마나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한참을 이야기했다. 어릴 적부터 세계 스포츠 경기며, 국내 대회까지 모든 종목의 중계를 본다고 했다. 합숙소에서도 밤을 새워 경기를 본 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동료들에게 전날 본 경기가 얼마나 근사했는지를 전해주었다고. 최근에 끝난 아시안게임도 다 챙겨 보았는데, 아쉬운 게 있다.

“왜 볼링 중계는 안 해줄까요? 볼링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결과만 보게 돼서 너무 아쉬워요.”

요즘 혜리의 관심사 중에는 볼링도 있다. 실제 볼링장을 다니면서 볼링을 배우고 경기를 한다. 성수동에 있는 볼링장에서 혜리를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스포츠라면 보는 것뿐 아니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돌 육상대회’에서 메달을 딴 경력도 있다. 당시 양궁대회에 출전한 혜리는 당당하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의 실력이 줄지 않았는지, 처음 도전한 영화 〈물괴〉에서도 당차게 활을 쏘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대 양궁이랑 조선시대 국궁은 쏘는 법이 다르긴 해요. 쓰는 손가락도 다르고요. 양궁이 이렇게 똑바로 쏜다면, 국궁은 화살을 이렇게 꺾어서 쏘죠.”

9월 개봉한 영화 〈물괴〉에서 혜리가 보여준 건 이뿐 아니다. 산에서 자란 소녀의 ‘자연인’ 모습부터 사랑에 빠진 이의 풋풋함과 아비를 잃는 딸의 애끊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처음엔 놀랐어요. 사극 시나리오가 저에게 와서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는, ‘명’이라는 인물이 좋아졌어요. 씩씩하고 용감하죠. 선배들과 함께 수색단에 속해 있으면서 민폐를 끼치거나 위험에 빠지지 않고 제 할 몫을 톡톡히 해내는 게 마음에 쏙 들어왔어요.”


자신에 대해 고민하던 1년


영화 〈물괴〉는 조선왕조실록에 남은 기이한 짐승에 관한 기록에서 시작됐다. 중종 22년, 인왕산에 흉악한 짐승이 나타나 사람을 해쳤는데, 이를 두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짐승이라 하여 사물 물(物), 괴이할 괴(怪)를 써 ‘물괴’라 불렀다. 중종은 폐조 연산을 몰아낸 무리에 의해 왕으로 옹립된 인물. 당시만 해도 이렇다 할 실권이 없었고 백성의 삶은 날로 피폐해졌다. 물괴는 실존하는 괴수인가, 백성의 마음에 움튼 공포인가… 그 실체를 찾아내는 것이 물괴수색단의 임무다.

〈물괴〉를 만나기 전 1년은 혜리가 스스로 자신을 수색하는 시간이었다. 2014년 MBC 예능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게 되고, 그때의 털털하고 씩씩한 모습이 2015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으로 이어졌다. 한 시기를 뒤흔든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건 영광인 동시에 숙제였다. 이후 혜리는 현빈, 한지민과 함께 〈하이드 지킬, 나〉, 지성과 함께 〈딴따라〉 등의 드라마를 찍었다. 덕선이로 생긴 기대감을 충족시키면서 덕선이의 존재감을 지워가는 게 그에게 남은 과제였다. 숨 돌릴 틈 없는 시간이 지난 뒤 혜리는 쉬었다. 쉬면서 자신을 다잡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작품은 내가 준비되었을 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저는 대중의 평가를 받는 사람이니까요. 저에 대한 기사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도 다 찾아 봐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걸 극복하는 것도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하루 울고 나면, 다음 날부턴 밥도 잘 먹고 승부욕에 불타고 그래요.(웃음)”

영화는 다시 신인의 마음을 갖게 해줬다. 〈물괴〉의 명이는 딱 혜리가 데뷔한 나이인 열일곱이다. 산에서 자라 노루와 토끼가 친구인 아이, 무료함을 달래려 궁술과 의술을 익힌 아이다. 산골짜기 초막에 살면서, 한양은 어떤 곳일까를 늘 꿈꾸는 소녀이기도 하다.

“명이는 어떤 생각을 하며 보냈을까를 상상해 봤어요. 매일 사냥을 하고, 풀죽을 쑤어 먹고, 산속을 돌아다니면 일단 옷을 자주 갈아입거나 아주 깨끗한 상태는 아닐 것 같았어요.(웃음) 머리도 어릴 때부터 길렀을 테니 아주 긴 댕기머리를 하고 있을 것 같았고요.”

명이의 아버지 ‘윤겸’으로 출연한 김명민은 혜리가 ‘거지꼴’을 하고 나타나서 놀랐다고 했다. 매일 검댕이를 묻히고, 거울도 보지 않는 여배우를 보면서 “태도가 참 바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혜리는 예뻐 보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평소에 드라마나, 예능에서 그가 보이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혜리 얼굴 그렇게 쓸 거면 저 주세요’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저는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현장이 학교였어요. 드라마를 하면서 연기가 어떤 건지 알았죠. 영화를 하면서는 인물에 다가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영화는 인물의 처음과 끝을 알고 시작하잖아요. 좀 더 인물에 깊게 들어가 볼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엔 잘 되지 않았다. 인물의 전사와 후사를 살피는 일이 낯설었다. 하지만 명이가 되어 살아볼수록, 명이의 심정이 더 이해가 갔다. 〈물괴〉에서는 명이가 치고 나가야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첫 영화에서 대선배들을 앞에 두고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부담이 쌓여 마음이 위축되면, 더욱 명이의 마음에 집중했다.

“명이는 제 생각보다 더 어른스러운 인물이더라고요. 천방지축인 것 같아도 지금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다 헤아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두려움 없이, 상황을 치고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더 용기를 냈죠.”

인터뷰를 할 때도 혜리의 목소리는 흩어짐이 없다. 웃을 때도 그렇다. 스크린 안에서도 혜리의 목소리는 단단하게 화면을 채운다. 아비규환 속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나, 군중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도 그렇다. 평소에도 그렇게 목소리가 큰 편이냐고 물으니 호탕한 웃음으로 답한다.

“제 목소리에 대해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일단 잘 뻗어 나가고 잘 들리면 다행이죠.”


바라보면 즐거운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인터뷰 현장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발랄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가리켜 ‘비글미’가 넘친다고 하는데, 이 역시 발랄한 견종인 비글(beagle)과 아름다울 미(美)를 합친 신조어다. 혜리를 통해서 여러 신조어가 형태를 가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본 이들에게 눈을 반짝이며 “어떠셨어요?” 일일이 질문을 건네기도 했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다. 최근 그는 ‘방탈출 게임’에 빠져있다고 한다. 각 방이 가진 단서들을 추리해 방문을 열고 나오는 일종의 추리 게임이다.

“웬만한 방탈출 게임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새로운 추리 게임이 나왔다고 하면 눈이 번뜩 뜨여요. 얼마 전에 친척 언니들과 방탈출 게임을 하러 갔는데 제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단서들을 척척 찾아내니까 ‘도대체 여기에 돈을 얼마나 쓴 거냐’고 하더라고요. 푸핫.”

씩씩하고, 용감하며, 호기심이 많다는 점에서 명이와 혜리는 닮았다. 자신이 속한 공간에 활기를 더하는 인물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산골 소녀가 한양에 온 것처럼, 영화계에 입문한 혜리의 마음은 낯섦과 설렘의 연속이다. 자신에게 ‘즐거웠던 모험’이 보는 이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전에 동료들의 ‘VIP 시사회’에 초대받으면 ‘시간 되면 갈게’ 정도로 가볍게 대답했는데, 제가 초대하는 사람이 되어 보니, 엄청 고마운 일인 걸 알겠더라고요. 보고 나서 감상을 말할 때도 ‘음, 영화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엄지를 척 올리며) 연기는 정말 좋았어’라고 애매한 답변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한마디 한마디가 다 마음에 걸려요.(웃음) 역시 다 겪어봐야 아는 건가 봐요. 이것도 다 제가 감당할 몫이겠죠?”
등록일 : 2018-09-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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