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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김희애 인터뷰… 우아함 버리고 걸쭉하고 당찬 부산 여자로 변신

우아함의 대명사, 배우 김희애가 본인의 색깔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캐릭터로 스크린을 찾았다. 부산 종군위안부·여자 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사건을 다룬 관부재판 실화를 옮긴 영화 <허스토리(HERSTORY)>에서 당찬 실존 인물 문정숙 역을 연기했다. 그 변화가 굉장히 놀랍다.

글 | 임언영 여성조선 기자

“이겨야죠! 이겨야 할매들 분이 안 풀리겠습니까?”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재판부에 당당히 맞선 부산 종군위안부·여자 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사건을 다룬 영화, <허스토리>에서 김희애는 계속 부르짖는다. 배꼽 아래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우렁찬 부산 사투리로 화면을 압도하는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로 구성된 원고단을 이끄는 단장 문정숙 역을 맡았다. 문정숙은 개인의 삶은 뒤로한 채 재판을 위해 6년 동안 고군분투하는 당찬 여자 사업가로, 배우 김희애의 헤어스타일을 처음으로 짧게 만들었고, 나긋나긋한 표준어는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바뀌게 했다.
관부재판(關釜裁判, 시모노세키 재판)은 1992년 12월, 위안부 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총 10명이 원고가 되어 일본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재소하며 진행된 역사적 재판이다. 13명의 무료 변호인단이 6년에 걸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 사건이다.   

언론 시사회 후 마련된 인터뷰 자리. 스크린을 장악하던 걸쭉한 김희애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큰 부담을 갖고 연기했다는 그는, 다시 김희애로 돌아와 있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실화라 관객 입장에서 울림이 컸습니다. 연기를 오래 했지만 마지막 날 촬영하고 울기는 처음이었어요. (연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끝까지 왔는데 다 해냈다는 안도감, 그동안 쌓인 울분과 허탈감 등 뭔지 모를 감정이 뒤섞여서 엉엉 울었어요. 나쁘거나 부정적인 건 아니고 카타르시스였던 것 같아요. 

그만큼 의미 있었다는 건가요. 할머니들이 당당하게 정부를 상대로 재판장에서 행동하는 모습들이 저에게는 크게 다가왔어요. ‘너무 몰랐구나’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죠. 이런 영화는 처음이지 않을까요? 위안부 소재를 어둡고 무겁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당당하게 자기 이야기를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굽히지 않고 주장하는 모습이 마음을 크게 움직였어요.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고, 힘든 걸 이겨내고 오랜 세월 참고 참았다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용기가 너무 멋지지 않나요?

더구나 관부재판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 더 그럴 수도 있겠어요. 저도 잘 몰랐어요. ‘나만 모르는 이야기인가’ 싶어 부끄러운 마음에 찾아봤는데 알려진 내용이 별로 없더라고요. 감독님께 정확히 설명해달라고 부탁드렸고, 인터넷을 뒤져보면서 하나씩 알게 됐죠. 오래된 역사도 아닌데 작품에 출연하면서 알게 되어 놀라웠어요. 안타까웠고요.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할 수 있었겠어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시면서 별 말씀이 없으셨어요. 역할을 맡은 만큼 관련 다큐멘터리도 찾아보고, 관심을 가졌죠. 책도 주셨는데 어렵지만 읽어봤고요.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더 나은 인간이 된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더 진심을 가지고 연기하려고 했습니다.

민규동 감독 역시 마음에 돌을 얹은 기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픈 이야기죠.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당했어요. 그런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그냥 피하고, 그 시대니까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가슴 아팠어요. 뭔가를 해야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연기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지 싶어서 저를 다그치고 더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문정숙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던데요. 당찬 여성이잖아요. 평소 농담처럼 여자 배우들이 남자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할이 다양하지 않은 편이라서 필요하면 내가 머리 커트 치고 남성 캐릭터도 연기할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해요. 이번에는 남성, 여성을 떠나서 멋진 한 인간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위안부 할머니로 출연하신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나요? 선배님들이 헌신하셨어요. 각자 재판 신은 더구나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셨겠어요. 각자 그날이 왔을 때 떨리는 감성으로, 순한 마음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현역으로 일하려면 신인 같은 마음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김선영 씨를 비롯한 후배 배우들과 호흡도 좋았어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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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 버리고 걸쭉하고 당찬 부산 여자 
 
대한민국 우아한 여배우의 대명사였던 그녀가 이번에는 쇼트커트를 단행하고 흰머리를 분장하는 등 캐릭터에 충실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했다. 뱃심 좋은 여사장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체중도 5㎏ 정도 늘렸다. 1990년대 시대상을 살리는 것이어서 김희애는 오히려 자유로웠다고 한다. 실존 인물인 문정숙 사장을 연기하기 위해서, 그녀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살리려고 노력했다.
 
 
우아한 김희애의 변신으로 작품을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아한 게 뭔가요? 열심히 일하니까 성실함으로 봐주시는 거겠죠? 우아함을 외적인 화려함으로 보신다면 그건 제가 역할 속에 들어가서 그런 거고, 직업적인 전문성으로 봐주신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려고 해요.

부산 사투리, 일본어 연기가 화제가 됐어요. 연기하면서 이렇게 걱정해본 적이 없어요. 피할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어요. 모든 대사가 사투리인데 잘못하면 ‘(김희애) 나잇살 먹어서 뭐냐’ 하실 것 같아서 가위 눌리고 그랬죠. 촬영 3개월 전부터 두 발 뻗고 잔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숙면하지 못하는 편인데, 잘 때도 일어나서 일본어, 부산 사투리를 했어요. 부산 사투리 할 줄 아는 배우들이 제일 부럽더라니까요. 그동안 배우는 표준어를 잘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부산 사투리는 어떻게 연습하셨나요? 선생님이 계셨어요. 매번 어떻게 틀리는지 톤을 수시로 바꿔가면서 연습했죠. 친한 부산 친구가 있는데 “야야, 내랑 통화 함 하자” 하면서 일부러 사투리로 통화하기도 하고요. 친구는 “야, 그거 아니거든?”이라고 했지만요.(웃음) 사투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니까 제 목소리가 약하더라고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투리 선생님의 어머니, 이모, 사업하시는 분들, 왁자지껄한 분들과 자주 통화하면서 준비했습니다.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던데요. 돌아서면 생각이 안 나서 매일 반복해서 연습했어요. 기억력이 심각하게 좋지 않은 편인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지금까지도 일본어 대사를 안 잊어버리고 있어요.

쇼트커트, 안경 등 새로운 스타일도 시도했고요. 외형적인 것은 문정숙 사장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옮겨왔어요. 좀 더 우아하려고, 젊어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서 편하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실제 캐릭터를 옮겨오는 작업이라 자유로운 지점이 있더라고요.

흰머리 분장도 했는데 특히 노안 연기의 디테일이 놀랍더군요. 실제로 제가 노안이 왔거든요.(웃음) 저는 시력이 좋아서 앞에 있는 게 안 보이는데, 보통 분들은 가까이 있는 건 보이고 멀리 있는 건 안 보이잖아요. 실제 저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연기했어요. 평소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도 좋은 걸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도 노안은 피할 수 없더라고요. 안 보이니까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인간의 길은 피할 수 없구나, 공평하구나 느꼈습니다.

연기를 위해서 체중을 찌웠다고요. 저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고 싶었는데, 찌더라고요.(웃음) 5kg 정도 찌웠어요. 살은 금세 찌지만 빼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잖아요. 빼느라 고생했어요. 운동하고 음식 조절하면서 뺐습니다.

평소 자기관리 잘하기로 유명한데, 이참에 비법도 공유하시죠. 운동은 계속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실내자전거 한 시간 타고, 걷기도 하고 스쿼트를 비롯한 스트레칭도 해요. 하루 5~6시간 몰아서 운동하는 것보다 10분, 20분씩 10년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멈추지 않는 게 바람직한 것 같아요. 번개 맞듯이 오는 게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내 몸매가 되는 거죠.(웃음) 매일 적어도 한 시간씩 운동하면 진짜 내 것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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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하는 엄마, 능동적인 여성, 매력적인 배우
 
작품에서 문정숙은 혼자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다. 반항하는 딸과 소통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그는 엄마 소질이 없다며 실망에 빠지기도 한다. 실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한 김희애는 어떤 면에서는 문정숙과 닮은 점이 있다고 전했다.
 
 
“나는 엄마의 소질이 없다”는 극중 대사가 인상적이던데요. 엄마 김희애는 어떤가요?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다만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아이들)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요. 어떤 아이는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하고, 어떤 아이는 방임해야 하고, 어떤 아이는 모험심을 키우기 위해서 경험을 많이 시켜야 해요. 어떤 면에서는 문정숙과 상황이 비슷한 게 (제 아이들이) 모범생이 아니에요. 힘이 많이 들었는데, 결국 제 선택은 방임 교육이었어요.

방임 교육은 성공하셨나요? 대학교 1학년인데 사춘기가 안 끝났어요. 여전히 방임 교육을 합니다. 제가 하도 교육에 관해서는 “하지 마” 소리만 하니까, 급기야 애들한테 “왜 다른 엄마들은 이것저것 하라고 하는데 엄마는 하지 말라고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들었어요. 본인이 자라니까 필요한 게 있거든요. 절로 “할 거야”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이정도면 성공 아닌가요?

문정숙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에요. 실제 김희애는 어떤가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내가 과연 그렇게 훌륭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 없지만, 사명감이나 의협심을 가진 분도 아니고 사업가로서 오해도 받고 비난받은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눅 들지 않고 소명대로, 현재까지 그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래요. 당장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좋은 영향을 주신 같아요.

이번 작품 전에 <사라진 밤>에도 출연하셨죠. 이제 영화 작업도 본격적으로 할 계획인가요? 저희 세대 영화는 노출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도전하지 못하고 드라마 위주로 활동했죠. 기회가 되면 영화 작업도 많이 하고 싶어요. 영화라는 장르가 적은 돈으로 위대한 사람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게 좋잖아요. 최근에 <쓰리 빌보드>라는 영화를 봤는데, 샘 록웰을 보면서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럽고, 존경스럽고, 매력적인 배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요? 제 또래 친구들이 현역으로 일하는 게 위로예요. 얼마 전에 나문희 선생님이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출연하셨잖아요. 나문희 선생님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에요. 배우로서 자랑스러웠고, 수명을 늘려주신 것 같고, 젊고 건강한 어른이 많아서 든든해요. 저도 현역으로서 건강하게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요.
등록일 : 2018-07-04 17:53   |  수정일 : 2018-07-0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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