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FUN | 방송·연예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버닝' 전종서 인터뷰, 이제 진실을 말해봐

사진제공 : CGV 아트하우스

글 | 유슬기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울어야 하는 날이 있고, 웃어야 하는 날이 있다. 두 날이 같은 날이라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울어야 했던 날, 전종서는 공개적으로 웃어야 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대신 붉게 달아오른 눈시울을 가리고 황급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이 일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배우의 기본 자질이나, 공인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 대부분이었다.

배우이긴 하지만 공인은 아니라는 반박이 무색했던 건, 그 자리가 다름 아닌 ‘칸 영화제’ 출국길이었기 때문이다. 생애 첫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 가게 된 신데렐라의 들뜬 표정을 담기 위해 기다렸던 이들은, 유리 구두를 신지도 않고 공주처럼 웃지도 않는 그에게 대놓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전종서는,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비판받았다.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신인배우의 등장, 그야말로 ‘신(新)’인이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인생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갑자기 바뀌어버린 인생을 준비하지 않고 맞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신속한 사과로 상황을 무마하거나, 개인적 사정을 들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신 전종서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바라봤다. 마치 그 속에 있지 않았던 것처럼 거리를 두고, 들여다봤다. ‘이창동 감독에게 발탁된 뮤즈’나, ‘칸 영화제의 레드카펫에 선 슈퍼 신인’이라는 호들갑이나 호들갑을 기대한 질문에도 휘둘리지 않았다.

“이창동 감독님의 뮤즈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고작 한 작품을 했을 뿐인걸요. 칸 영화제에 섰던 소감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저 주어진 스케줄을 소화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았어요. 이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영광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명확해질 것 같아요.”

처음 본 오디션이었다.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를 다니던 전종서는 ‘학교에서는 원하는 배움’을 얻을 수 없었다. 수업은 대부분 빠졌고, 대신 영화를 봤다. 인생의 고민이 있을 때나, 그 고민의 터널을 빠져나올 때나 그의 곁에 있어 준 건 영화였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고 싶었고, 소속사에 들어가게 됐다. 회사에 들어가 처음 본 오디션이 <버닝>이었다. 그는 생애 첫 오디션으로 생애 첫 주연을 맞게 되고, 생애 첫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서게 된다.

“처음 본 오디션이 <버닝>이었다는 것과, 그 작품이 저의 첫 작품이 된 건 제 삶에 두고두고 큰 행운으로 남을 거 같아요. 어떤 일을 하든 <버닝>에서 배운 태도와 분위기가 기준이 될 거고요.”

소의 분뇨 냄새로 가득했던 파주의 어느 집에서 다 함께 해 질 녘을 기다리던 현장의 분위기와 공기, 거기에서 새처럼 춤추던 해미의 모습은 어느새 전종서의 일부가 됐다. 그 소박하고 행복하던 현장에서 칸 영화제까지 이르렀던 여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현기증 나는 일정이었다. 그 안에서도 전종서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무엇이, 진짜일까.’

시나리오를 받고 일주일이 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을 찾아볼 시간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을 읽을 여유도 없었다. 일단 마임을 배웠다. 마임을 배우고, 대본을 숙지하고 현장에 갔다. 촬영 자체가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대본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훼손되지 않았다.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진다고 하는데, 자신의 삶에 볕이 드는 건 햇살이 남산 타워를 비출 때의 찰나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는 뜨고 또 진다.

“다 같이 노을을 바라보던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저렇게 불타오르고 있는데 곧 사라지잖아요. 주황색이었다가 붉은색이었다가 파란색이 되죠. 해미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해미는 늘 꿈을 꾸잖아요. ‘그레이트 헝거’이니까요.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춤추는 새 같죠.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 그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아도, 해미에게는 삶에 희망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휘둘리지 않는 법


어쩌면 전종서는 이창동이라는 거장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춤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둘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도, 이창동 감독은 그에게 ‘큰 어른이고 큰사람’이었고, <버닝>은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귤이 있다고 상상하는 대신, 귤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방법’으로 언제든 귤을 즐겼던 해미처럼, 전종서는 두 사람의 명성 자체를 잊어버리는 방법으로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새삼 그 무게를 느끼는 건 작품이 끝난 뒤였다.

“지금 저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혼란스럽지만, 이 현실과 저 현실 사이의 갭을 채워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버닝> 무대인사를 위해 유아인 선배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무슨 말 끝에 ‘바라볼 줄 알아야 해’라고요. 그 말이 제 고민에 키(key)가 됐어요.”

휘둘리지 않고 바라보는 법,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법. 그 연습은 영화 속에서나 영화 후에나 계속되고 있다. 전종서는 <버닝>을 통해 그 훈련을 했던 것이 퍽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앞으로 그에게 꽃길이 펼쳐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 나아갈 힘을 얻은 기분이다.

“저는 공주가 아니에요. 스타도 아니고요. 지금 저에게 쏟아지는 타이틀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저는 다만 연기가 하고 싶은 배우예요.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가려고 해요.”

이창동 감독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버닝>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분노를 품은 무기력한 남자와 자신을 신처럼 생각하는 정체불명의 남자 사이에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 나아가려는 한 여자가 춤을 추는 영화”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버닝>에서 해미는 사라진다. 전종서는 사라진 해미가 ‘찾을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정말로 벤(스티브 연)이 해미를 죽인 건지, 종수(유아인)는 해미를 찾아낼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해미가 어떤 인물인지가 중요했다.

“<버닝>의 각 인물은 순수함을 담고 있어요. 해미에게 자유로운 순수함이 있다면 종수에게는 분노하는 순수함이 있죠. 벤에게는 영리한 순수함이 있고요. 결국 <버닝>은 순수한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설혹 대중이 그의 의도를, 그의 영화를 ‘순수하게’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전종서는 서글퍼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들에게는 해석할 자유가 있고, 그에게는 해명할 의무가 없다. 다만 <버닝>을 통해 배운 ‘몽상하는 힘’은 잃어버리지 않을 작정이다. 사람들은 전종서에게 자꾸 ‘소감을 말해보라’고 다그친다. 공주를 상상하는 동안, 전종서는 거기에 없다. 삶의 의미와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굶주린 ‘그레이트 헝거’만 있을 뿐이다.
등록일 : 2018-07-02 11:21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