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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이 조영남·홍상수·나영석에 대해

똑 부러지다 못해 까칠한, 그러면서도 소녀 같은 귀여움을 지닌 윤여정이지만, 그이만큼 ‘여자’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몇이나 될까. 그것도 일흔을 넘긴 나이에 말이다. 윤여정(70)은 바로 그 몇 안 되는, 아니 거의 유일한 여배우다.

글 | 김수정 TV리포트 기자   사진제공 | TV리포트 제공

윤여정은 명쾌하다. 질문이 조금만 늘어진다 싶으면 “짧게 말해도 다 알아들으니까 짧게, 짧게”를 외친다. 윤여정은 까칠하다. 영화 홍보 콘셉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마케팅 담당자를 힐끗 째려보며 입을 삐쭉거린다. 윤여정은 귀엽다. 인터뷰 도중 걸려온 AS센터 전화에 “고객 과실이라고요?”를 외치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윤여정은 웃기다. 전 남편 조영남을 은근 언급하며 “내가 첫인상 믿었다 여러 번 망했어”라며 기자를 웃긴다. 윤여정은 털털하다. 뜨끈한 누룽지 컵밥과 아삭한 과자를 먹음직스럽게 먹으며 한 숟가락 건넨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발을 내디딘 윤여정은 시작부터 당돌하고 세련됐다. 스크린 데뷔작 <화녀>(1971)에서 그로테스크한 김기영 감독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표현하더니 <충녀>를 통해 또다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지금 봐도 충격에 가까운 김기영 감독의 영화적 색채를 윤여정만큼 확실히 표현할 배우는 많지 않았다. 윤여정은 존재만으로도 감독의 뮤즈이자 장르로 기능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홍상수는 돈을 안 주고 임상수는 돈을 줘”

2000년대 접어들면서는 홍상수와 임상수 작품을 오가며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했다. “홍상수는 돈을 안 주고 임상수는 돈을 줘”라는 농담으로 두 감독을 표현하는 윤여정은 ‘두 상수’ 감독의 영화로 세계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특히 윤여정은 촬영 당일 대본을 주는 홍상수 감독의 촬영장에 대해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떠올렸다.

“(영화 <하하하> 촬영 때) 당일 시나리오를 주고 외우라고 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다시는 홍상수 영화에 출연 안 한다고 굳게 맹세했어요. 아무래도 내가 젊은 배우보다 대사 외우는 게 느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엄청났거든. 그런데 완성본을 보니 내가 제일 연기를 못 했더라고. 다른 애들은 다 잘했어요. 나는 계속 성질 피우느라 연기를 못 한 거지. 그러고 나서 홍상수한테 ‘미안하다. 앞으로 기회가 또 있다면 성질은 안 부리겠다’고 사과했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노인 캐릭터만 필요하면 전화하더라고. 홍상수는 내가 만날 놀고 있는 줄 아나 봐.”(일동 웃음)

대사 외우는 게 힘들다는 그이지만 때로는 젊은 남자와 뜨거운 정사를 나누는 돈 많은 여자로(<돈의 맛>), 때로는 1인 2역(<다른 나라에서>)으로, 때로는 박카스 할머니(<죽여주는 여자>)로 스크린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냈다. 윤여정은 단 한 번이라도 고인 물인 적이 없다. 연기해보지 않은 캐릭터, 제 손에 쥐어본 적 없는 질감의 작품이라도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필모그래피의 범위를 끊임없이 확장한다는 점에서 윤여정이 지닌 의미는 남다르다. 브라운관과 스크린, 상업영화와 장르영화의 경계를 이토록 자유롭게 넘나드는 여배우는 전 세대를 통틀어 찾아보기 어렵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 솔직히 내가 예쁜 배우는 아니잖아요. 다만 욕심이 있다면 고(故) 김무생처럼 세상을 떠난 후에도 모든 이가 그리워하는 대체 불가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나 할까.”

늘 도전을 멈추지 않는 윤여정은 1월 18일 개봉한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최성현 감독, JK필름 제작)에서 연기 인생 처음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시도했다. 윤여정이 연기한 주인숙은 평생 착한 아들 진태(박정민 분)만 바라보고 살아온 보통 엄마. 17년간 떨어져 산 또 다른 아들 조하(이병헌 분)와 진태 사이에서 눈치 보기에 바쁜 보통 엄마 캐릭터다. 윤여정은 그동안의 세련된 모습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친근한 모습으로 변신을 꾀했다.

“시사회 끝나고 ‘내 실패작’이라고 했다가 엄청나게 혼났어요. 나는 영 내 사투리 연기가 아쉽더라고. 충청도 사투리는 해본 적 있는데, 경상도 사투리는 정말 힘들었어요. 사투리 선생님이랑 석 달을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면서 연습을 했는데도 쉽지 않았다니까. 사투리라는 제한이 있다 보니 연기를 내 마음대로 못 하겠더라고요. 부끄러웠죠.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감독이 ‘선생님, 그냥 서울말 쓰셔도 됩니다’라고 했는데, 그냥 서울말을 쓰자니 너무 특색 없는 엄마로 그려질 것 같았지. 나야 그냥 뒤에 있는 여자니까 이병헌, 박정민 연기를 보시면 될 것 같아.”
 

“나영석에게 매번 속아 날 예능으로 빠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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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적이고 까탈스러운 이미지로 알려진 윤여정에게도 반전은 있었다. 바로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와 <윤식당>을 통해서다. 숙소에서 몰래 양말 냄새를 맡고, 앞에선 야단쳤다 뒤에선 조용히 후배를 품어주는 반전 매력의 배우. 차갑고 까칠한 이미지의 윤여정의 숨은 인간미를 끄집어낸 장본인(?)이 바로 나영석 PD다.

<꽃보다 누나>를 시작으로 <윤식당> 시리즈까지, 윤여정 필모그래피에 굵직한 작품을 남긴 나영석 PD. 윤여정은 그에 대해 “매번 속아 날 예능으로 빠뜨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예능이 내 연기 스타일에 변화를 준다거나 발전을 준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건 아니고 나는 그저 나영석의 꼬임에 넘어간 거예요. 나영석 때문에 내 대표작이 <윤식당>이 됐어. 사람들이 다른 작품 얘길 안 해. 내가 창피해 죽겠어 정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매번 윤여정을 꾀는 나영석이라지만 앞서 언급했듯 대중이 윤여정의 진짜 민낯을 알게 된 것도 나영석 덕분이다. 나이 든 엄마를 늘 노심초사하는 여린 딸, 비좁은 숙소에도 금세 적응하고, 손빨래가 귀찮아 양말 하루쯤은 더 신는 사람. 모두 나영석의 예능 프로그램 속 ‘자연인’ 윤여정의 모습이다.

“내가 <꽃보다 누나> 했을 때 기절했잖아. 작은 숙소에서 손빨래를 하는 게 정말 너무 힘들어서 양말을 하루만 더 신을 참으로 냄새를 맡았는데 그게 방송에 나온 거야. 나영석이한테 바로 전화해서 ‘사람을 비위생적으로 그리면 어쩌자는 거냐’고 따졌더니 ‘선생님 까칠한 이미지를 바꿔주겠다’고 하더라고. 아니 세상에 양말하고 친근감하고 무슨 상관이람.”(좌중 폭소)

매번 나영석에게 ‘당하는’ 윤여정이지만 그럼에도 그를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단다.

“내가 나영석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내가 걔를 잘생겨서 좋아하겠어요? 굉장히 현명한데도 티를 안 내. 나는 막 티 내면서 챙겨주는 사람을 안 좋아하나 봐. 가령 ‘아이고, 선배님 여기 앉으세요’ 하면서 의자를 들이밀거나 하는 것 말이에요. 나영석이도, 이서진이도 티 안 나게 주변 사람을 잘 챙겨줘. 게다가 참 굿 리스너예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줘요. 좋아할 수밖에 없죠.”

늘 기운 넘치고 카랑카랑한 윤여정이지만 최근 1년은 고된 시간이었다.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걸 모르고 오랜 시간 복용한 알레르기 약 때문이다. 알레르기가 나아지기는커녕 온몸이 망가졌고, 원인도 모른 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미국 드라마 <하이랜드>, 스페인 <윤식당2> 촬영을 오갔다. 우연히 <윤식당2> 촬영에 동반한 의사로부터 스테로이드 중독이라는 진단을 받고 하루아침에 약을 끊었다. 금단현상도 만만치 않았단다.

“스테로이드 중독인 줄도 모르고 미국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찍었거든. 면역성이 떨어져 엄청나게 아팠어요. 나영석 PD에게도 너무 아파서 <윤식당2>를 못 할 것 같다고 했는데, <윤식당2> 찍으면서 거기서 만난 의사가 스테로이드 중독이라고 진단을 해줬어요. 나영석 덕분에 나은 셈이죠. 스테로이드 중독인 경우에는 약을 천천히 끊어야 하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단번에 끊었더니 금단 부작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스테로이드가 내 몸에서 다 빠져나가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대요.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어요.”
 

“대사 외울 수 있는 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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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은 죽기 직전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사를 외울 수 있는 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저도 매너리즘에 빠지곤 해요. 남들이 내 연기를 식상해하면 매너리즘이 온 거예요. 사람들이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외모, 단점 얘기를 꺼내기 시작해요. 특히 나처럼 오래 연기하다 보면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로 연기하는데, 사람들이 매번 신선하게 느낄 수가 있나. 극복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극복됐는지는 모르겠다. 배우 인생은 장애물 넘기예요. 하나를 넘기면 또 다른 장애물이 있어요. 그럼에도 전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60세 넘어서는 보너스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좋을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리라고 결심했어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 행복해요.”
등록일 : 2018-02-12 08:20   |  수정일 : 2018-02-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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