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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레터’ ‘배니싱’의 작가 한재은

단 두 작품으로 대학로를 흔들다

글 | 김효정 주간조선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7~8년 사이 뮤지컬시장 규모는 4배 넘게 성장했다. 뮤지컬시장이 커지면서 창작뮤지컬은 항상 ‘뮤지컬의 미래’라는 기대를 받는다. 그러나 막상 창작뮤지컬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매년 쏟아지는 창작뮤지컬 작품 수만 해도 몇백 건이다. 이 중에서 무대에 올라가는 작품은 손에 꼽는다. 무대에 올라가도 금세 잊혀지는 작품이 대다수다.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고 투자자를 끌어모으며 이듬해에 더 큰 무대에 서게 되는 작품은 극소수다.
   
   이런 상황에서 한 해 두 편의 창작뮤지컬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뮤지컬 작가가 있다. 뮤지컬 ‘팬레터’와 ‘배니싱’의 신인 작가 한재은씨다.
   
   지난해 처음 관객과 만난 뮤지컬 ‘팬레터’는 보기 드문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객석점유율 90%를 달성했고 관객평점 9.6점을 기록했을 정도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와 함께 대학로를 대표하는 공연장, 동숭아트센터에서 올해 재연(再演)이 결정됐다. 곧바로 공연 전문 포털사이트 스테이지톡에서 선정한 ‘2017년 가장 기대되는 창작뮤지컬’에 뽑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2017년 창작뮤지컬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왕자웨이(王家衛)도 뮤지컬 ‘팬레터’에 관심을 보였다. 왕자웨이 감독이 설립한 음악회사 블락투뮤직은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 ‘화양연화’ ‘해피투게더’의 음악을 제작한 곳으로 올해 ‘팬레터’의 투자사로 참여했다. 왕자웨이 감독은 뮤지컬 ‘팬레터’를 두고 “영화로 만들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란 뜻을 밝히기도 했다.
   
   “왕자웨이 감독이 투자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놀라우면서도 기뻤어요. 저는 언제나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내러티브에 보편적인 감정을 싣고 싶었거든요. ‘팬레터’라는 작품이 1930년대 경성이라는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잖아요. 그 이야기가 외국의 영화감독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한창 ‘팬레터’가 공연 중인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난 한재은 작가는 한 번에 두 작품을 이끌어 나가느라 분주한 기색이었다. 보통 뮤지컬 작가가 하는 일은 극본을 쓰는 일에 그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가의 역할은 작품이 상연되는 도중에도 계속된다. “뮤지컬 작가는 이야기는 물론 노래에 맞는 가사도 만들어야 해요. 자연스럽게 공연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조금씩 극본과 가사를 수정해야 합니다.” ‘팬레터’와 같은 기간에 공연하는 ‘배니싱’의 경우 올해 처음 무대에 오른 작품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재은 작가가 뮤지컬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고려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해 공부하던 중 직접 펜을 들게 된 것이 계기다. “대학 재학 시절에도 연극반에 속해 있었고 평소에 여러 장르의 예술을 두루 좋아했거든요. 뮤지컬이 예술의 융합 지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뮤지컬 창작자를 지원하는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작품 ‘이채’가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배니싱’이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에 선정됐고 ‘팬레터’가 ‘글로컬뮤지컬라이브’ 최우수작에 뽑히면서 잇따라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됐다.
   
   
▲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photo 라이브

   어디서나 통하는 이야기 쓰고 싶어
   
   두 작품이 동시에 무대에 올라 호평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 어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뮤지컬 ‘팬레터’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을 무대로 한 작품이다. 실제 역사에서 이태준, 박태원, 이상, 김유정, 정지용 등이 모여 ‘순수예술을 추구하자’며 만든 문학 동인 구인회(九人會)를 모티브로 해 순수예술을 추구하던 작가와 작가의 팬(fan)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그렸다.
   
   “요즘 공연뿐 아니라 대중예술 작품을 보면 격렬한 감정,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 세계 어디서든 세대를 초월해 느낄 수 있는 극적이고 풍부한 감정들은 언제 어디서나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팬레터’는 그런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다.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작가 ‘해진’을 동경하는 ‘세훈’, 그리고 ‘히카루’의 관계는 1930년대의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요즘 시대 스타와 팬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열정과 동경, 배신과 용서가 얽힌 2시간의 이야기에 푹 빠져 눈물을 닦는 관객이 많다.
   
   “‘팬레터’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관객들이 많아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김유정과 이상 같은 순수예술을 추구하던 문인(文人)들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어릴 적 좋은 노래와 좋은 시를 접했을 때 느끼는 그 원초적인 감정, 그걸 다시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 순수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시대가 1930년대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지금의 관객에게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공연장 한쪽 스크린에 일본어와 중국어 자막이 같이 띄워지는 데도 이유가 있다. 뮤지컬 ‘팬레터’는 그 시대를 잘 모르는 외국인 관객이 와서 작품을 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배니싱’도 마찬가지다. 1920년대의 뱀파이어 의학도라는 파격적인 설정이지만 삶과 인간성에 대해 묻는 작품 내의 사건들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한재은 작가가 이렇게 독특한 소재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게 된 것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해 고민할 무렵 직접 공연장에 와서 뮤지컬을 관람할 기회가 많았어요. 배우가 직접 무대에 서서 성대를 울리며 전하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야기를 직접 전해듣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감탄하곤 했죠. 어떤 편집도 거치지 않고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관람 경험은, 한번 겪게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작가가 디지털 매체의 영향력이 강해질 미래에도 뮤지컬이라는 아날로그 예술이 살아남고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 이유가 있다. “전달받는 매체가 변해도 아주 순수한 감정, 처음의 경험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뮤지컬은 그 순수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예술이에요. ‘팬레터’와 ‘배니싱’, 두 작품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한재은 작가가 두 번째로 무대에 올린 작품 ‘배니싱’은 지난 12월 10일 마지막 공연을 마쳤다. 전석 매진이라는 관객들의 호응 속에 ‘작품을 떠나보내기 아쉽다’ ‘전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는 뮤지컬 팬들의 호평도 잇따랐다. 단숨에 대학로에서 주목받는 뮤지컬 작가가 된 한재은씨의 다음 작품은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들이 나와 이야기하는 특이한 설정의 작품이에요. 저의 다른 작품들이 그랬듯이 관계와 공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겁니다. 조만간 무대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등록일 : 2017-12-21 09:44   |  수정일 : 2017-12-2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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