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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태조감자국...진한 육수에 60년 노하우가

글 |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 개운하고 순한 맛의 감잣국
“일하는 게 즐거워요.”
   
   감잣국집으로 시집와 남편 이규회씨와 함께 평생을 감잣국에 바친 박이순(70)씨. 그녀는 지난 세월의 이력이 맺혀 있는 굵은 손마디를 펼쳐 보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늘 함께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지만 남편의 재미난 글귀가 빼곡히 적혀 있는 작은 식당에서 여전히 옛맛 그대로 감잣국을 끓이며 행복하다고. 아직도 자신의 손맛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서울 돈암제일시장 초입, 60년 전통의 ‘태조감자국’은 언뜻 보기에 거리의 포장마차 같은 분위기다. 비닐장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서면 감잣국을 먹는 손님들로 북적북적! 실내에는 무엇이든 기록하기를 좋아했던 이규회씨의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오래되어 누렇게 빛바랜 갱지에 감잣국 내력, 감잣국 연가 등 감잣국과 관련된 글들을 손글씨로 적어놓아 그 자체로 푸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부터 국물이 많은 음식에는 ‘국’ 자를, 국물이 적은 음식에는 ‘탕’ 자를 붙였다’는 손글씨 내용을 보면, 감자탕이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에 국물이 많은 메뉴 특성상 감잣국이라고 이름 지은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이 집은 메뉴 이름이 참 독특하다. 메뉴는 감잣국 한 가지인데 양에 따라 ‘좋다’ ‘최고다’ ‘무진장’ ‘혹시나’ 네 가지가 있다. 대개 양이 적은 여자 손님 두 명이 오면 ‘좋다’를 주문하고 남자 손님 둘이라면 ‘최고다’, ‘무진장’은 3인용, ‘혹시나’는 4인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문을 하면 국이라는 이름처럼 넉넉한 육수에 돼지 등뼈, 목뼈, 꼬리뼈를 골고루 담고 감자·수제비·떡·당면을 올린 뒤 생깻잎과 들깨가루를 수북이 올린 냄비가 나온다. 단골들이야 알아서 척척 끓여 먹지만 처음 오는 손님에게는 국물에 양념장을 골고루 풀어 바글바글 한소끔 끓인 다음 불을 약하게 줄여 은근히 졸이면서 먹어야 맛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한소끔 끓어 깻잎이 나른해질 무렵 국물부터 한 술 뜨면 우와! 진하고 구수한 국물에 깻잎의 산뜻한 향이 어우러져 탄성이 절로 나온다. 거기에 들깨가루의 고소한 풍미가 올라오며, 색은 매콤해 보이지만 전혀 맵거나 짜지 않고 누린내 없이 편안한 맛에 숟가락질이 바빠진다. 돼지 등뼈에 두둑하게 붙은 살점은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다. 국물이 배어든 살점을 젓가락으로 발라 나긋나긋하게 익은 깻잎을 얹어 먹으면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포실한 통감자를 숟가락으로 툭툭 잘라 국물에 적셔 먹는 맛도 별미. 건지를 다 먹고 은근히 졸인 국물에 밥, 김치, 김부스러기를 넣어 볶아 먹으면 참 맛있다. 한마디로 푸짐한 양에 가격이 착해 뱃속은 물론 맘까지 든든해진다.
   
   
▲ 3대 대표 이호광씨와 어머니 박이순씨

   두 가지 국물로 만든 비밀 육수
   
   이 집에선 육수를 두 개의 솥에서 따로 끓인다. 한 솥에는 돼지 사골을 24시간 푹 고아내는데, 사용하고 남은 사골 국물에 새 사골을 넣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이는 식으로 이 집의 오랜 역사가 녹아 있다. 다른 솥에는 돼지 등뼈와 꼬리뼈, 목뼈 등 감잣국에 담아낼 뼈를 고아낸다. 이 두 가지 국물을 일대일 비율로 섞어 감잣국 육수로 사용한다. 잡내를 없애기 위해 따로 쓰는 양념은 없다. 국내산의 신선한 재료에 시간의 공을 들일 뿐! 뼈에 붙은 고기는 얼마나 적절하게 시간을 맞춰 삶아주느냐에 따라서 고기 맛이 좌우되는데, 이 집은 오랜 노하우와 정성으로 삶는 시간을 잘 맞추어 고기가 쫄깃하면서도 부드럽다.
   
   개운하고 순한 국물 맛의 비법은 아직도 박이순씨가 직접 만드는 양념장에 숨어 있다.
   
   “저희는 안 맵게 해요. 옛날부터 그랬어요.”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손님에게 청양고추를 따로 줄지언정 양념장엔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고집하고 있다. 파를 듬뿍 다져서 마늘과 생강, 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고루 섞어 맛이 어우러지도록 숙성시키는데, 이 양념장이 뽀얀 육수와 만나 이 집만의 감잣국 맛이 완성된다.
   
   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좋은 깍두기는 아들 이호광(45)씨가 직접 담근다. 모 방송사에서 깍두기 최강 달인으로 선정된 호광씨는 “젓갈을 넣지 않고 깔끔한 맛으로 깍두기를 버무린 다음 무 절였던 국물을 부어 알맞게 익히는 것이 맛의 비법”이라고 귀띔한다.
   
   태조감자국은 1958년 이두환씨(작고)가 처음 문을 열었는데, 우리나라 감자탕의 시초가 된 감잣국 요리를 개발해 인기를 끌었다. 아들 이규회씨, 며느리 박이순씨 부부가 가게를 물려받은 것은 그로부터 13년 후. 입소문이 자자하게 나면서 지금의 본점과 동시에 맞은편 건물 3개 층까지 다 쓸 만큼 손님이 많았다. 개업 당시 상호는 ‘부암집’이었지만, 감자탕이 대중화되며 너도나도 상호 앞에 ‘원조’를 붙이자 이규회씨가 “그럼 우리는 최초라는 의미에서 ‘태조’라고 하자”고 해서 ‘태조감자국’으로 상호를 변경하게 되었다.
   
   10여년 전 건물주가 바뀌면서 3개 층을 쓰던 점포에서 눈물을 머금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태조감잣국엔 여전히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박이순씨의 오랜 단골부터, 감잣국에 소주 한잔을 걸치는 중년들, 젊은이들까지 손님들 연령층은 다양하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꽤 있다. 누가 되었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줄 서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대기 손님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오랜 준비 끝에 지난 1월 본점에서 가까운 성신여대입구에 분점을 내고 호광씨가 상주하고 있다. 분점에 걸려 있는 손글씨 액자들은 옛날 3층짜리 점포에 써놓았던 이규회씨의 손글씨로 아들 호광씨가 떼어 간직하던 것이다.
   
   “‘장사는 목숨 걸고 해야 성공한다’ ‘한 우물을 파면 물이 생긴다’와 같은 아버지의 손글씨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해요.”
   
   서울 돈암동에서 나고 자란 호광씨는 21년 전 어머니가 다리를 다치면서 본격적으로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까지 장사가 안 돼 고민해본 적은 없다고 한다. 서민들 주머니 사정에 맞는 음식을 좋은 식재료로 만들어서 팔기에 IMF 외환위기 등 불경기 때 태조감자국은 오히려 더 성업했다. 오랫동안 손님이 줄을 잇는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한결같은 맛 덕분 아닐까요? 그리고 늘 문이 열려 있으니까 언제든 드시고 싶을 때 편하게 오시는 것 같아요.”
   
   태조감자국은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연중무휴로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등록일 : 2017-03-21 17:45   |  수정일 : 2017-03-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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