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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연극영화과 졸업생 수천 명, 성공은 1%” …

대학로 연극가를 들여다보니

지난 6월 두 명의 무명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한 명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고독사했다.
연기가 본업인 이들에게는 왜 평범한 삶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걸까?
연예인 지망생 1백만 명 시대, 화려한 이상 뒤에 가려진 현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글 | 김가영 여성조선 기자 2015-08-05 09:58


故 판영진, 故 김운하
잇따른 연극배우들의 생활고 속 죽음
 
“죽으라는 법은 없다. 모든 현 상황이 죽을 것 같다지만 지금 살아 있으면 바로 사는 것. 이 명쾌한 현상도… 또 흔들리며 사는 게 삶일 게다!”

죽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삶의 의지를 다잡았던 배우 판영진. 그는 지난 6월 22일 자신의 차량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수석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이 있었다. 연기에 한평생 몸담았던 그는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토록 원했다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앞서 6월 19일에는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연극배우 김운하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죽은 지 5일 만이었다. 불규칙한 수입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지병으로 숨졌다. 김 씨는 손바닥만큼 작은 고시원에서 노숙자와 다름없이 지내왔다. 무연고 상태이던 고인은 동료 배우들에 의해 발인 및 화장 절차를 밟았다. 그로부터 약 1주 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고인의 노제가 열렸다.

최근 잇따라 사망한 두 배우는 무명이지만 실력을 인정받은 예술인이었다. 판 씨는 처음 주연을 맡은 독립영화 <나비두더지>(2008)로 부산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재능 있는 배우였다. 고독사한 김 씨 역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기과를 졸업하고 꾸준히 연극무대에 올랐다. 유작이 된 연극 <인간동물원초>는 2015년 서울연극제 ‘미래야 솟아라’의 연출상 수상작이다.  

실력 있는 예술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2011년 최고은, 2012년 정아율, 2013년 김수진, 2014년 우봉식 씨 등이 비슷한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 숨진 정 씨는 당시 KBS 를 통해 배우로 정식 데뷔했으나 드라마 방영 도중 목숨을 끊었다. 당시 고인의 모친은 “(딸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고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1년 서른셋에 요절한 시나리오작가 최고은 씨는 영화 <격정 소나타>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수상까지 한 재원이었다. 그녀 역시 빈곤 속에서 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집주인에게 전기세가 밀린 것을 사과하며 쌀과 김치를 빌리는 내용의 쪽지가 발견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최 씨의 죽음은 예술인 복지 개선을 위한 여론의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인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출범하며 일명 ‘최고은법’이라는 예술인 복지법까지 마련됐다. 그 결과 예술인의 삶은 달라졌을까? 최근 두 배우의 극단적인 선택과 죽음을 보건대 예술인의 삶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대학로의 현실
“연극배우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1%”

기습적인 무더위가 찾아온 지난 7월 중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을 찾았다. 여기저기서 젊은이들이 공연 전단지를 돌리기에 바빴고, 거리 연주자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전단지에 관심을 보이다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커플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대개 자신의 갈 길을 갔다. 무더위가 내리쬐는 평일, 공연장보다는 시원한 빙수를 파는 카페로 향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공원 한쪽에 위치한 공연안내센터를 찾았다. 이곳에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부터 대형 뮤지컬까지 다양한 안내책자와 리플릿이 비치되어 있다. ‘대학로 문화지도’라는 작은 지도를 펼치자 어림잡아 1백 곳이 훌쩍 넘는 소·중극장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한 건물 건너 하나꼴로 대학로 골목 구석구석에 극장이 즐비했다.
 
한데 이 무수한 극장을 채워줄 관객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관료나 임차료를 제외하면 배우들에게 떨어지는 몫이 있기는 할까? 기자는 대학로 연극배우들의 실상을 알아보기로 했다. 의외로 많은 배우 및 극단에서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을 꺼려했다. 연극배우는 곧 가난이라는 인식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한 배우들은 전부 익명을 요청했다. 

“연극배우들이 빈곤하다고 해도 알바하면서 (생활에 큰 무리 없이) 사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물론 상업 공연보다 극단 위주, 그러니까 순수예술 쪽으로 가면 더 힘들죠. 저 같은 경우는 (상업) 공연도 하면서 다른 일들을 많이 해요. 연극영화과 지망생에게 연기를 가르치기도 하고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김모 씨는 2005년부터 꾸준히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곧 개막하는 연극 리허설로 한창 바쁜 시기라고 했다. 그는 꽤 잘나가는 상업 연극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고 있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사람들 중 이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10%도 안 돼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가 도저히 못 견디고 다른 쪽으로 빠지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결혼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거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는데 돈벌이가 안 되니까요.”

올해로 10년째 연극무대에 서고 있는 김 씨는 그 10%에 해당된다.

“오로지 연극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1%에 불과해요. 그나마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일이 아닌 다른 일(연기지도 선생 같은 비교적 덜 고된 일들)을 하면서 연극을 하는 사람은 5% 정도일 거예요. 저도 그중 하나고요.”

연극배우의 삶이 필연적으로 힘든 것은 ‘계약직’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인 점도 있다. 일반회사의 계약직은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고용을 보장해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배우가 힘든 건) 월급제가 아니니까요. 작품을 하면 회당 얼마 받는 경우가 많은데,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녀야 되거든요. 다음 작품에 캐스팅되기 전까지는 백수인 거죠.”

현재 한예종 4학년인 이모 씨는 기획사에 소속된 배우다. 아직 알 만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적은 없다. 

“많은 상업 기획사가 ‘(성공하려면) 실력은 필요 없다. 어차피 감독님이 현장에서 다 알려주시니까’라고 해요. 대신 ‘모든 게 하나가 될 때’ 성공한 1%가 된다고 하죠. 인맥·인격·기회 등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이어야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 씨의 부모는 초등학생 때부터 연기자를 꿈꾼 아들에게 여전히 ‘연기는 취미로만 할 수 없겠느냐’고 말한다. 그도 가끔은 연기자의 길을 선택한 걸 후회할 때가 있지만, 이 꿈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예술가는 가난하게 산다는 걸 받아들이고 시작한 사람이 많아요. 솔직히 아르바이트만 할 수 있어도 생활이 가능하고요. 한 가지 아쉬운 건, 꾸준히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거예요. 저희는 공연이 본업인데, 보통 공연 연습은 저녁시간대에 해요. 오디션도 언제 어디서 잡힐지 모르죠. 그래서 저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심야 아르바이트를 해요. 그래야 공연 연습도 할 수 있고 생활도 가능하거든요.”

본업을 이어나가기 위한 부업조차 이루어지기 힘든 환경, 예술인의 복지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이 씨가 첨언했다.

“성공한 1%가 정말 화려하게 비춰지잖아요? 그래서 ‘연예인 지망생 1백만 명 시대’라고도 하고요. 많은 학교에 연극영화과가 있는데, 거기에 1년에 1천 명만 들어간다고 쳐도 그게 많게는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간 숫자일 거란 거죠. 따라서 연극영화과 졸업생 수도 엄청 많고 연극영화과가 아닌 배우 지망생도 엄청 많을 거예요. 그들 대부분이 화려한 모습만 생각하면서 연예인을 꿈꾸고요. 길이 더욱더 좁아질 수밖에 없죠.”  



고질적인 임금 체불과 출연료 미지급
“방송사가 부적절한 외주제작사를 선정하기 때문”

최근 한 고발 프로그램이 공개한 연기자들의 평균 소득수준은 놀랄 만큼 열악했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소속된 약 4천 명의 연기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4년 연소득이 1천20만원 미만인 연기자가 70%에 달했던 것. 특히 월평균 수입이 1백만원 이하인 경우는 50.5%로 연극인이 가장 많았다. 회당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 출연료를 받는 톱스타들의 사정은 그야말로 별세계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방송가에 만연한 임금 체불과 출연료 미지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안인희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사무국장은 “공중파 3사 등 방송사가 제대로 된 외주제작사를 선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출연료 미지급이나 임금 체불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예요. 방송사가 제대로 된 외주제작사에 편성을 주면 그런 문제가 안 생길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주연배우들도 출연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그들이 사는 세상>(2008년 KBS에서 방영된 16부작 드라마) 같은 경우, 배우들이 민사소송을 걸어 3심까지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못 받았어요. 외주제작사 대표가 지금은 돈이 없다, 생기면 주겠다고 하니까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 명의로 또 다른 사업을 벌이죠. 그런 문제가 있는 외주제작사를 방송사는 또 선택하고 또 선택합니다. 그러니 (임금 체불 등이) 반복되는 거죠.” 

민사소송을 걸어 승소하더라도 피의자 측에서 돈이 없으면 당장은 받을 수가 없다. 아니면 처음에는 제때 지급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밀리거나, 아예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심지어 콘텐츠를 만드는 방송사가 배우들의 노동의 대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부족한 경우도 많다.

“한 신만 출연하는 단역이라도 하루 혹은 이틀을 나와 촬영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배우는 그 몇 초 분량을 위해 며칠을 꼬박 할애했는데, 방송사에서는 ‘몇 초 나왔는데 30만~50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 거 아니냐’고 해요. 방송을 만드는 사람이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방송·문화계가) 퇴보할 수밖에요. 겉으로는 한류 발전을 외치면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자기네 이익만 생각하지, 배우들의 처우는 신경 안 씁니다.”

비단 방송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런 부당한 현실은 연극배우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드라마의) 단역배우는 주로 대학로 배우들을 섭외해서 씁니다. 연극인은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방송을 하러 갔는데, 정작 방송 출연료는 받지 못하니 이중고를 겪는 거죠.”

그가 마지막으로 뼈 있는 말을 던졌다.

“2013년 김종학 PD(1981년 MBC <수사반장>을 시작으로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등을 연출했다.)가 돌아가신 후 정부가 방송3사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드라마제작협회가 참관한 자리에서 ‘표준계약서’를 만들었어요. 그 안에 ‘외주제작사가 출연료를 미지급하면 방송사에서 책임진다’는 조항이 들어 있죠. 그런데 법적 효력이 없는 권고사항이라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이 표준계약서만 지켜져도 배우들이 임금을 못 받는 경우는 없어지겠죠.”
   
연예인이 될 확률과 가능성?
“아이돌을 동경해서 연예인이 되려면 포기하는 게 낫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과 함께 자녀를 연예인으로 키우려는 부모도 대폭 늘어난 지금. 그러나 어렵게 데뷔해도 스타는커녕 꾸준한 활동의 기회조차 갖기 힘든 게 현실이다. 손성민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장(bob코리아엔터테인먼트 대표)은 맹목적으로 연예인을 꿈꾼다면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한다.

“신인배우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연예인을 동경하고 스타를 동경해요. 배우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미쳐 있는 느낌이 아니라는 거죠. 연예인 지망생 10명 중 7~8명이 그저 ‘저 아이돌 멤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예인을 꿈꾸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대학교에 엔터테인먼트 관련학과만 6천 개가 넘습니다. 매년 수천, 수만 명의 연예인 지망생이 쏟아져나오죠. 인가받은 기획사가 7백여 개인데, 그 회사들이 각 10명의 연예인을 관리한다고 치면 총 7천 명이에요. 그러나 방송에 나오는 배우는 1천~2천 명에 불과하죠. 그중에서도 연극배우는 월 1백만원도 못 버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매년 최소 6천 명의 젊은이가 연예인을 지망한다고 치면 5년 뒤 3만 명,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중 기획사와 PD, 그리고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자질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성공 요인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느낌’이 오는 친구가 있어요. 또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외모야 성형이 있으니까 그렇다 쳐도 목소리는 다르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마인드라고 봅니다. 본인의 멘탈(정신)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죠.”
 
등록일 : 2015-08-05 09:58   |  수정일 : 2015-08-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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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일  ( 2015-08-09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5
드 높은 이상과 가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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