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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영화 “ 감동적 vs 터무니없다” ⑭]
산을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멜로 영화 『빙우』

글 |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산에 대한 전문지식 부족 노출… 산악인의 기대에는 못미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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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우氷雨 (2003)
 
감독 김은숙
출연 이성재(강중현), 송승헌(한우성), 김하늘(김경민)
 
잃어버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알래스카의 산 ‘아시아크’. 내일 이 산을 오르기 위해 떠나는 경민(김하늘)에겐 두 남자가 있다. 멋진 아시아크와 닮은 중현 (이성재)은 산악부 선배다. 신입생 환영회 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중현은 이미 결혼한 남자다. 또 다른 남자 우성 (송승헌)에게 경민은 초등학교 때의 첫사랑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그녀의 곁을 맴도는 우성.

그가 사랑을 고백할 즈음 경민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중현을 잊기로 한 경민은 아시아크 등반 도중 위험에 처한 중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자일을 끊고 추락한다. 3년 후 두 남자는 경민을 기억하기 위해 아시아크를 찾는다. 악천후에 등반에 나선 두 사람은 조난을 당하고 설산에 고립된다.
 
신용관(이하 신) 이번 호에서는 박정헌 대장과 함께 한국 영화 <빙우>(감독 김은숙, 2003)를 다뤄보겠습니다.
 
박정헌(이하 박) 개봉 당시 많은 기대를 안고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있는 영화입니다. 한국 최초의 산악 영화를 표방했었으니까요.
 
산악 영화로서 처음이었던가요?
 
‘산’이라는 TV 드라마가 있긴 했지요. 본격적인 산악 영화로는 <빙우>가 처음인 셈입니다.
 
<빙우>는 산악인들 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는 강중현(이성재 扮)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원들이 알래스카 ‘아시아크’를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시아크라는 곳은 실제 지명이 아닌 듯합니다만.
 
저도 못 들어봤습니다. 아마도 영화에서 설정한 가상의 공간인 듯합니다.
 
대원들 중에는 일본인도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에피소드가 짤막하게 나오더군요.
 
원정대에는 외국대원들이 많이 합류합니다. 저도 1996년 러시아 팀에 끼어서 히말라야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등반허가(퍼미션)를 같이 받고,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그렇게들 했지요. 기본이 몇 명에 얼마, 식이었으니까요. 의사소통은 통상 영어로 합니다. 산행하는 사람들은 말이 많이 필요하진 않으니까 큰 문제없습니다.
 
본격 산행을 앞두고 술자리를 갖는데, 산에 설치하는 것치곤 텐트가 너무 넓어 보이더군요.
 
베이스캠프 텐트들은 대부분 크긴 합니다. <빙우>의 그 장면은 세트장에서 촬영했는데, 현지의 지형을 감안했으면 좀더 작게 했어야 했겠지요.
 
한밤중 산 아래에서 저 멀리 산 중턱에 비치는 불빛을 보며 “누가 솔로 등반하는가봐요”라며 등반대원 한우성(송승헌 扮)이 대장과 대화를 나눕니다. 혼자서도 등반을 자주 합니까?
 
저도 1997년 낭가파르바트를 오를 때 문라이트 클라이밍을 솔로로 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헤드랜턴 켜고 오르는 문라이트 클라이밍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캄캄한 와중에 아이젠 긁히는 소리만 들리는데 상당히 운치 있습니다.
 
영화는 현재의 산행과 과거 시점인 지난 일이 수시로 교차 편집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때는 1998년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우성이 초등학교 때의 첫사랑 김경민(김하늘 扮)을 광화문에서 우연히 만나지요. 둘은 반가움에 술을 같이 마시는데 취한 김하늘이 전철역 승강장에서 철로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엇갈린 사랑이 <빙우>의 줄거리지요. 전철역에 스크린 도어가 없던 시절인데, 김하늘이 의외로 대범한 성격임을 보여 주는 장면 같습니다.
 
98학번 신입생 김하늘은 대학 산악부에서 선배인 이성재를 처음 만납니다. 어떤 후배가 “정상에 오르면 무슨 생각이 나시나요?”라고 묻자, 이성재가 “아무 생각 안 나. 여길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대학 산악부가 무척 활성화됐었나 봅니다.
 
요즘이야 레저의 종류가 너무 많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대학에 있는 여러 동아리 중 산악부처럼 먹을거리가 많고 선배들이 잘해주는 데가 없었습니다. 선후배끼리 단결력이 있으니까 재정적인 능력도 제법 있었지요. 산악부실에서 잠을 자도 됐으니까요. 거의 모든 대학의 산악부 동아리에서 잠자리를 제공했었습니다.
 
이성재는 이미 결혼한 유부남입니다. 부인은 이성재의 친구인 산악부 박인수(유해진 扮)와도 잘 아는 사이지요. 김하늘은 그런 이성재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둘은 전철역 광고판에 걸려 있는 알래스카 아시아크 봉우리 사진을 보며 “저곳에 가면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는 등의 대화를 나눕니다. 또한 김하늘은 야구 선수인 송승헌과는 대학 도서관에서 떡볶이를 먹고, 아시아크 사진이 실린 책을 찢어 보관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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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면 너무 유치한 장면들이지요. 2003년 개봉 당시 봤을 때에도 뚜렷한 주제가 없이 유치하게 느껴졌었으니까요.
 
영화에서 김하늘이 차고 있는 등산용 디지털시계가 시종일관 주요한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도와 방위가 같이 나오는 시계입니다. 다이빙용 시계가 따로 있듯 산악인을 위한 시계였지요. 히말라야에 가는 사람은 하나씩 다 차고 갔습니다. 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었던 셈입니다.
 
김하늘은 기숙사에 있는 친구를 불렀는데 반응이 없자 홈통을 타고 외벽을 올라 5층 높이의 건물 창문으로 들어갑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건물을 타고 오른 적이 있습니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한 번쯤은 해봤을 겁니다. 등산화 만드는 이탈리아 회사 라스포르티바는 사무실 앞에 있는 난간에 오르는 시합을 페스티벌 형식으로 열기도 하더군요(웃음). 알프스 몽블랑 밑 뒷골목에 가면 주정뱅이들이 뒷담 오르는 내기들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 장면에서 송승헌과 이성재 등 3명이 아시아크를 함께 오르고 있습니다.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고 번개가 바위에 박혀 있는 하켄을 때리면서 사람이 굴러 떨어집니다. 낙뢰 때문에 추락하기도 합니까?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알프스에서 가끔 일어나지요. 그래서 번개 칠 때는 하켄 등 뾰족하게 생긴 물건들을 몸에서 떼어내게 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대학 산악부가 암벽을 함께 오르고 있는데 김하늘이 한쪽 등산화를 잃어버리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하나요?
 
벽에서 미끄러지거나 추락을 할 때 그럴 수 있습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등산화는 내피와 외피로 나뉘어 있는데, 히말라야에서 텐트 안에 들어갈 때는 등산화 안 신고 내피만 신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내피만 신은 채 텐트 밖으로 나갔다가 사고가 나기도 하지요. 접지력이 떨어지니까요. 유명한 셰르파가 에베레스트 아이스폴에서 내피만 신고 이동하다가 미끄러져 추락사한 일도 있었습니다.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정신을 차린 송승헌이 끊어진 자일을 따라가서 눈에 묻힌 이성재를 발견합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다리에 피가 흥건합니다.
 
이건 큰 중상입니다. 뼈가 돌출됐다는 얘기니까요. 단순 골절이 아니라 복합 골절입니다. 단순 골절은 대부분 외상이 없어요. 부러지면서 금만 쫙 가버린 거죠.
 
송승헌이 이성재를 고드름이 달려 있는 커다란 동굴로 피신시키는데요. 산 한가운데에 그런 동굴이 흔합니까?
 
폭포의 안쪽에 있는 동굴이면 몰라도 고드름이 언 동굴이 높은 산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지요.
 
송승헌이 배낭에서 라디오를 꺼내고, 거기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지금은 에베레스트나 로체에서도 전화기가 터지는 시대지만, 2000년대 초반에 라디오가 수신되는 높이에서 조난당한다는 설정이라 좀 이상하긴 하지요.
 
송승헌이 디지털시계를 꺼내고 혹시 둘 다 잠들면 안 된다면서 알람을 맞추겠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김하늘이 차고 있던 그 시계를 보고서 이성재는 자신들이 같은 여자를 두고 얽혀 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지요.
 
조난을 당한 상태에서 잠이 들지 않기 위해 알람을 맞춘다는 건 좀 이상한 설정입니다.
 
과거로 돌아가 김하늘의 기숙사 방에서 송승헌이 형광등을 갈아주고 있습니다. 옷에 석류가 묻자 김하늘은 남자더러 돌아서 있으라면서 탱크톱을 드러내며 윗옷을 갈아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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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실내 암벽장에서 속옷을 드러낸 채 클라이밍 바지를 자연스럽게 갈아입습니다. 유럽인들에게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동양인들을 이상하게 보지요. 우리는 탱크톱만 입고 가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문화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지요. 자연 암벽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김하늘이 이성재와 바닷가로 놀러가 동침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여자 감독이라선지 전혀 야하거나 과하지 않고 동적動的이지 않게, 차분하고 정적靜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산이 좋으냐, 내가 좋으냐”라는 질문도 하고, 자신은 산이 더 좋다면서 “훨씬 크고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올 수 있고”라면서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남자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유부남을 좋아한다는 설정, 어떠신가요?
 
실제로 더러 있지 않나요? 교수를 좋아한 여대생이라든지.
 
 대학 산악부에서는 어땠습니까?
 
산악부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기강이나 도덕 등을 강조하는 곳이니까요. 산악부가 굉장히 보수적인 곳입니다.
 
김하늘이 치과에서 뽑은 사랑니를 식당에서 이성재에게 건네주는데 실수로 화로에 빠지게 되지요. 그러자 이성재가 주저 없이 숯불 사이로 손을 넣어 사랑니를 빼냅니다. 물론 손에 화상을 입지요. 그 상처 때문에 나중에 송승헌이 이성재를 알아보는 계기가 되고요. 영화 <빙우>를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에피소드입니다. 
 
글쎄요. 저는 그런 과격한(?) 애정 표현 행위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이성재가 “너 먼저 내려가서 구조 요청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송승헌이 “저는 길 몰라요”라고 대답하지요. 그래서 이성재를 부축한 채 하산을 시작합니다.
 
아시아크를 처음 오른 송승헌으로선 길을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설악산에는 등산로가 있지만 그런 산은 전혀 새로운 세계니까 길을 만들어서 가야 하지요.
 
이번에는 영화가 현재 기준으로 3년 전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이성재와 김하늘이 아시아크를 등반하고 있지요. 김하늘이 배낭을 멘 채 돌출된 바위에 한 손으로 매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숙달된 전문 등반가라면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영화에서 김하늘이 그런 정도의 수준인지는 설득력 있게 묘사되지 않았습니다만.
 
 김하늘의 발이 미끄러지고 하켄이 뽑히면서 이성재도 덩달아 미끄러집니다. 그래서 둘 다 하켄 하나에 의지해 매달리게 된 거지요.
 
하켄을 새롭게 박을 수 있는 조건이 못 되어 허공에 매달린 절체절명의 상황인 겁니다.
 
김하늘이 “이러다간 둘 다 죽는다”면서 나이프를 뽑아 자신의 자일을 자릅니다. 살아남은 이성재는 발버둥치며 통곡을 하지요. 결국 서로 다른 경위로 아시아크를 오른 두 남자는 그곳에 묻혀 있는 동일한 여자를 사랑했던 거지요. 
 
영화가 전형적인 멜로의 구성을 띠고 있습니다.
신 이성재가 전혀 거동을 못 하자 송승헌은 이성재의 몸을 자일로 칭칭 감아서 끌고 하산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크게 다친 사람을 그렇게 끌고 내려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너무 과장된 장면입니다.
 
송승헌이 지쳐서 쓰러지자 이성재가 자신과 연결된 카라비너를 풀어 버립니다. 그것을 모른 채 기진맥진한 송승헌은 한동안 전진하지요.
 
그건 그럴 수 있습니다. 본인도 제정신이 아니니까요.
 
정신을 차린 송승헌이 되돌아가자 이성재는 죽어 있습니다. 혼자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송승헌을 헬기가 구조하고, 그가 “나는 오늘 두 사람을 묻었다. 그들을 만났던 짧은 순간처럼 잊는 것 또한 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가 끝납니다. <빙우>에 대한 총평을 하신다면.
 
산악인들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던 영화입니다.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했음에도 제작진들이 산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만든 듯합니다. 광대한 자연의 장엄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을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멜로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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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헌 대장
 
안나푸르나 남벽 한국 초등(1994), 에베레스트 남서벽 한국 초등(1995), 낭가파르바트 문 라이트 등정(1997), K2 남남동릉 무산소 등정(2000), 시샤팡마 남서벽 신 루트 등정(2002) 등의 기록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 등반가.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 원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생환했으나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잃었다.
 
이후 패러글라이딩에 입문,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에서 캉첸중가까지 3,200km를 하늘을 날아 종단했고, 2015년에는 자전거와 스키, 카약 등을 이용해 히말라야 5,800km를 횡단했다.
출처 | 월간산 589호
등록일 : 2018-11-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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