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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박종철로 시작해서 이한열로 끝나는 이야기

*영화내용 있습니다

글 | 유슬기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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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12월 27일 개봉

 
영화는 흡사 릴레이같다. 첫 주자인 하정우가 들고 뛰어나간 바톤은 마지막 주자인 김태리에까지 이어진다. 이 때 상대팀의 선수는 동일하다. 아무리 달려도 바뀌지 않는 존재, 거대한 산 같은 독재정권이다. 김태리가 맡은 연희는 바위로 계란을 치면 계란이 깨진다는 것을 알아버린그래서 자기 곁의 소중한 이들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관객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광장과 가장 먼 거리에서 사건을 응시한다. 결국 그가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는 이유는 그 소중한 이들을 지킬 방법은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서다. 결국 그는 광장을 향해 달려 나간다.
 
<1987>, 그 제목만으로 사람을 숨죽이게 한다. 그 해에 얼마나 참혹한 일들이 많았었는지 그 시대를 산 이들이나 그 시대 위에 태어난 이들은 알고 있다. 장준환 감독은 실화에 누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눈 뜨고도 믿을 수 없는일들 앞에서 눈을 감을 것인가, 아니면 한 알의 계란이 되어 바위를 향해 돌진할 것인가. <1987>은 결국 수많은 계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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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 작품

수많은 계란들의 바위치기
 
첫 번째 계란인 최 검사 역에 하정우를 선택한 건 여러모로 믿음직한 일이다. 그는 데모하는 대학생들에게 신나 뿌리니까 신나냐며 뒤통수를 쥐어박는 검사다. 기본적으로 데모하는 이들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열사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일말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생이 경찰조사를 받다가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말을 믿지 않고, 사망한지 8시간도 되지 않아 화장하겠다는 대공수사팀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 당일 당직이었던 그는 부검을 밀어 붙인다. 여기에도 하나의 계란이 등장한다. 부검 담당의는 부검 결과 심정지가 아닌 고문에 의한 질식사라고 밝힌다.
 
책상을 치니, ‘하고 죽었다는 한 문장은 대공수사처의 처장을 맡은 김윤석의 입에서 나온다. 그는 무심히 말한다. 학생이 죽은 바로 다음 날 친 테니스처럼 기계적인 말투다. 다음 바톤은 윤 기자(이희준)에게 이어진다. 그는 이 말을 받아쓰는 대신, 담당 의사와 담당 검사를 만나기 위해 분투한다. 그의 발길은 결국 박종철 학생의 유골이 뿌려지는 강변까지 이어진다. 이미 얼어붙은 강가, 흩날리는 눈발, 그 안에 스며든 박종철의 뼛가루는 떠나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가 물 안으로 들어가 왜 가지를 못하니..”라며 한 줌의 가루를 언 강가에 흘려보내는 장면은 <1987>의 가장 아픈 장면 중 하나다.
 
한 명의 죽음이 많은 것을 바꾼다.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아쓰던이들이 각자의 할 일을 하기 시작한다. 검사는 검사의 일을, 의사는 의사의 일을, 기자는 기자의 일을 하자 세상이라는 거대한 톱니 바퀴가 다시 제대로 돌기 시작한다. 그 바퀴는 진실을 향해 굴러가는데, 이 바퀴를 굴리는 이들 중에는 백골단에 쫓기는 학생들을 숨겨준 신발가게 주인, 교도소 안에 흘러 들어온 진실을 세상 밖으로 전달하는 교도관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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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자 역의 이희준, 최검사 역의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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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 역의 유해진, 87학번 신입생 김태리

골리앗을 깨뜨린 마지막 한 방
 
이제 마지막 바톤이 교도관 유해진에게 전달됐을 때 영화의 긴장도는 극에 달한다. 첫 선수였던 하정우의 최검사는 이런 불의에 맞설 특유의 느물느물함과 한 줌의 배짱이 있던 인물이다. 교도관 유해진은 다르다. 그에게는 누이와 조카가 있고, 그가 가진 건 사람 좋은 미소와 정의감 뿐이다. 결국 그가 남영동에 끌려갔을 때, 우리는 그가 겪게 될 일이 박종철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가 상대하는 건 결국 같은 골리앗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전달한 마지막 바톤은 기어이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한다. 독재의 민낯이 드러난 광장에 사람들은 모여든다. 최루탄이 터지고 군인들이 몰려와도 대열은 흩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열의 제일 앞에서, 이한열이 죽는다.
 
강동원이 이한열임을 몰랐을 때, 강동원의 깜짝 등장이 반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강동원의 존재감이 아니어도 영화는 이미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이한열의 존재감이 강동원의 존재감에 뒤지지 않음을 인정하게 됐다. 박종철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한열로 끝난다. 박종철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릴레이가 이한열의 죽음으로 끝났다는 것은 아직 이 경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는 결국 그 작은 계란들이 자기를 던져 부서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이들이 품었던 생명이 알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 이 모두 안에는 당시의 그들과 오늘의 우리가 포함돼 있다.
 
 
등록일 : 2017-12-27 15:04   |  수정일 : 2017-12-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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