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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넘어선 <살인자의 기억법>...'백치미'는 설현이 아닌 영화에 있다

*영화 내용 있습니다

글 | 유슬기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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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9월 개봉

아빠
은희의 말은 절반 이상이 아빠였다. 아빠를 각각의 상황에 맞게 다른 호흡으로 부르기 위해 배우는 수 백 번 이 단어를 되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그 단어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딸의 잘못이 아니다. 이 단어의 용도의 탓이다. 딸의 말은 오직 상황을 환기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그의 외침은 인물이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씬을 바꾸기 위해 슬레이트를 치는 소리같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김영하는 문장을 쌓아올려 하나의 완벽한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 능란한 작가이고, 설경구는 문장 하나 하나를 이미지화 시키는 데 탁월한 배우다. 영화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살인의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다. 치매는 살인자에게도 찾아온다. 그가 잊고 싶지 않은 것은, 살인하는 법이 아니라 딸의 얼굴이다.
 
설경구는 연기장인이 되려는가  
 
미리 밝혀둔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소설에 기반했지만 소설에 신세지지 않는다. 작가가 다듬어 놓은 문장을 명료하게 재현한다. 여기에는 설경구의 역할이 크다. 그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늙은’, ‘살인마를 해낸다. <서부전선>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그는 바짝 메마른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즈음 <살인자의 기억법>을 촬영 중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그랬었다. “배우는 계속 새로운 얼굴을 찾아야 해요. 그럴 수 있는 감독을 만나야 하고, 그래서 알츠하이머에도 가고, 살인자한테도 가고 그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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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는 이번 영화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살인자를 연기했다

무심히 던진 그 말이, 얼마나 우람한 무게를 지닌 말이었는지 영화로 확인했다. 설경구는 정말 연기 장인이 되려는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감탄이 아니라 탄식인 이유는, 그가 짊어진 무게가 감당이 안 되어 보이는데, 그걸 또 무리 없이 감당해내는 그의 공력이 지독해서다. 두부처럼 반듯하고 창백한 이 스릴러에서 그가 구사하는 유머는 신김치처럼 아삭하다. 그는 두부도, 김치도 될 수 있다. 흡사 설경구의 1인극같다.
 
이제 안타까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간의 스릴러와는 다르다. 인간미를 갖지 못한 한 남자가 모든 기억을 잃어가면서 얻은 '인간의 얼굴'은 애잔하다. <살인자의 기억법> 만이 갖는 일보전진이다. 반면 이 영화가 여성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이전의 관습을 답습한다. 때로는 후퇴한다.
 
여러 얼굴의 주인공, 한 얼굴의 여자들
 
살인자가 유일하게 기대는 존재인 누이, 그가 지키고자 하는 은 여성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다. 누이는 산산조각난 유년기의 마지막 조각이다. 그에게 누이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누이가 수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에게 누이는 성모 마리아 같다. 모든 죄를 용서해주고, 덮어준다.
 
은희를 맡은 배우이자 가수 설현은, ‘지키고 싶은 존재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그는 한없이 순수하고 선량하다. 살인자는 딸을 자기 소유물 다루듯이 거칠게 대하는데, 사실은 딸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로 딸과 관객을 납득시킨다. 그럼에도 딸은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품고 보듬는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빠!”를 외쳐 주인공이 제정신(?)을 차리도록 돕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살인자가 누이은희를 혼동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설현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은희가 어떤 존재인지를 더 부각시킨다. 그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얻은 아이돌 중 한 명이다.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멤버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그 팬덤을 공고히 하는 것은 하나의 경로다. 때문에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선택지가 없다. 
 
백치미가 있는 여성 밖에 등장하는 않는 영화
 
근래 한국영화에 등장한 숱한 여성 인물들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주인공의 환상 속의 그대이거나, 주인공의 각성을 돕는 희생자. 여성 인물이 오롯이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살인자의 기억법>에 등장하는 비중 있는 여성들은 누이와 은희를 제외하고 대부분 살인자에게 살인 당한다. 그들은 살해당하고,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이 죽어 마땅한이유를 영화는 주인공의 트라우마로 설명한다. 그러니까 여성 인물은 주인공의 정신 세계 안에서 살다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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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스틸

여성이 살해되고, 희생되고, 피범벅이 되는 그 익숙한 장면들은, 장르와 이름만 바꾸어가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장면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처럼 나름의 성취를 이룬 영화에서 그런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 생각은 더욱 복잡해진다. 설현이 대중에게 어필하는 매력을 이용해 그가 가진 이미지와 영화의 이미지를 혼동시키면 더 그렇다.
 
이 영화로 또 새로운 얼굴을 찾게 된 배우 설경구는 설현이 가진 백치미가 있다. 이는 배우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로 곤혹을 치렀다. 설경구의 의도는 칭찬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만들어지는 여성 캐릭터를 보면 분명 백치미는 도움이 된다. 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하는 행동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 말은 설경구가 한 말이 아니다. 한국 영화가 끊임없이 전달하는 메시지다. 그의 실언에 면죄부를 줄수는 없지만, 이 모든 죄가 설경구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9월 7일 개봉
등록일 : 2017-08-29 17:37   |  수정일 : 2017-08-2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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