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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 "<군함도>는 과거로부터의 탈출이다"

어쩌면 〈군함도〉는 역사영화나 액션영화가 아니라, 노래에 대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고향에 닿지도 봄날을 맞지도 못했으나 함께 맛본 찰나의 ‘봄’에 대한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 봄날을 보아서인지, 류승완 감독은 많은 논란 속에서도 평안해 보였다.

사진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글 | 유슬기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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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지 않을 만큼 당근을 주고, 넘어지지 않을 만큼 채찍질을 해주는 것 같다.”

자신의 작품을 본 관객의 평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평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두고 쉽게 들뜨지도 쉽게 절망하지도 않는다. 충청도 특유의 평정심을 갖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모든 들뜸과 모든 절망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지나,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물론,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오해의 소지가 생기지 않도록 섬세하게 말한다. 다만 “류승완 감독의 스타일이 많이 사라졌다”는 말이나, “류승완은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는 말 같은 데는 단련이 되어 있다. 그런 말들은 이미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듣던 말이다. 액션을 찍으면 ‘잘하는 액션만 찍으려고 한다’고 하고, 액션이 빠진 영화를 찍으면 ‘류승완의 영화가 변했다’고 한다. 맞추어 춤출 수 없는 장단이다.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군함도〉는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에 ‘둥둥’ 소리를 내던 이야기다.


“시작은 사진 한 장이었어요. 저조차도 까마득히 모르던 이야기였죠. 역사의 한 부분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몰랐어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모르고요. 제가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이제라도 알아 가보자고 생각했죠. 영화를 통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요.”

그 한 장의 흑백사진에는 군함의 모양을 닮은 섬 하나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요새 같은 도시가 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면 섬 안의 바닥까지 적시던 섬, 그 섬의 지면 아래에는 석탄보다 검게 그을린 몸으로 갱도보다 몸을 더 낮게 구부린 조선인들이 있었다. 탈출하거나 살아 돌아온 이들이 거의 없어 감옥섬, 지옥섬이라 불렸고 때문에 이들에 대한 기록이나 연구도 전무했다.

“저희가 자문을 받은 시바타 도시아키라는 분이 계세요.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인데, 그분은 군함도의 진실을 한 분이라도 더 알기를 원하세요. 그러면서 한국에서 군함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죠.”


잊힌 역사 군함도, 수면 위로 들어올리다


잊힌 역사 ‘군함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을 때 선택은 여러 갈래였다. 조선인이 겪는 잔혹한 징용의 현장을 고발할 수도 있고, 이들의 사연을 절절하게 풀어내 마음을 후빌 수도 있다. 한 명의 조선인 영웅을 등장시켜 그가 어떻게 일제의 박해에 맞서 이 지옥을 탈출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영화는 경쾌해진다. 류승완 감독은 이 모든 갈래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좀 더 좁고 협착한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조선인들이 징용돼 착취당하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되, 이들이 가진 사연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위안부로 끌려와 중국과 일본을 전전하던 말년(이정현)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오열하지 않는다. 덤덤할 정도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위안부 생존자들이 처음으로 증언을 시작한 게 1991년이에요. 그때 증언하시던 분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담담해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인간으로서 겪을 수 없는 일을 겪으신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파로 흐르지 않아요. 사실 이분들이 일제강점기 이후로 계속 살아계셨던 건데, 1991년에 처음 목소리를 내신 거예요. 그럼 그 전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계셨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아득해지죠.”


〈군함도〉는 이런 아득함을 담은 영화다. 영화가 나서서 감정을 강요하거나, 역사를 단죄하지 않는다. 다만 아득한 그 섬에서 일어난 아득한 이야기를 카메라로 비출 뿐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이미 일제의 지배를 받은 지 30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그 안에는 친일과 반일이 혼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내면에도 말이다.

“일제강점기의 영화를 만들 때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 ‘친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목적이 친일을 단죄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당시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거죠. 있을 법한 이야기는 당연히 우리가 취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요. 400명이 군함도를 탈출하는 건 판타지일 수 있지만, 실제로 탈출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40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나가려고 했던 움직임도 있었고요. 우리 영화에서는 그 시도가 성공했던 거죠.”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 제작보고회에서, “영화에서라도 탈출시켜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한·일 관계에서도 해묵은 논쟁을 지나,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는 탈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뜨거운 관심 속에 영화가 개봉했다. 현실은 논란의 연속이다. 일본에서는 ‘허구’라고 말하고, 한국에서는 ‘친일’이라고 말한다. 군함도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섬이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산업혁명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의 유산으로 ‘군함도’를 등재시켰다. 이 부분에 강제징용과 전범기업이라는 사실은 빠졌다. 〈군함도〉는 이 부분을 지적한다. 이 섬이 당시 가장 세련된 건물과 화려한 유흥을 즐긴 도시일 수 있었던 이유는, 산업의 동력이었던 석탄을 캐내기 위해 막장 인생을 살았던 조선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진실이다.

“이들이 바라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조국의 독립이나, 광복 같은 거창한 바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바닷물이 들어차지 않는 잘 마른 잠자리에서 자고 싶고, 한 끼라도 콩깻죽이 아니라 밥 한 공기를 먹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겠죠. 그래서 고향에 가고 싶었을 거고요. 고향 집과 고향의 밥이 그리웠을 테니까요.”


내 식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


〈군함도〉를 함께 한 배우 황정민은 류승완에게 영화적 동지다. 둘은 이미 〈부당거래〉, 〈베테랑〉 등을 함께 했다. 영화에서 함께 한 배우들은 ‘류승완과 황정민이 있는 현장’에 감동했다. 류승완 감독이 만드는 현장은 완벽했고, 황정민이 움직이는 현장은 흥겨웠다. 배우들이 촘촘하게 만들어진 완벽한 세트에서 긴장하지 않고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황정민이 그 안에 활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황정민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정말로 그래요. 이 많은 인원이 한마음이 되고, 한 팀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었기 때문이죠. 감독은 멀리에 있어요. 배우는 가까이에 있죠. 함께 ‘슛~!’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장면들이 많았죠.”

그 외에도 동지는 많다. 아내이자 제작사 대표인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 무술을 함께 만들어 온 무술감독 정두홍, 영화에 자문을 구하고 제작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영화 바깥의 친구들…, 이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그가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내 식구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들과 함께 큰 산을 넘었기 때문이다.

“저한테는 언론배급시사도, VIP시사회도 중요하지만, ‘기술시사’가 제일 중요해요. 같이 구르고 달렸던 사람들과 함께 보는 자리니까요. 영화적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고,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이 우리가 약속했던 대로 나왔을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다 표현이 안 돼요. 함께 고생한 사람들에게 떳떳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되죠. 내 식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으니까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중성이 있다. 나만 잘 살고 싶은 나와, 함께 잘 살고 싶은 내가 있다. 그렇게 미숙하고 이기적인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이곳을 탈출한다.

“영화에 제일 많이 나오는 게 ‘떼샷’이에요. 우리 영화는 영웅영화도 친일영화도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야기죠. 그 한계로부터의 탈출이고요.”

이 영화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있다. 당연히 그것은 모두의 자유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류승완은 이번 영화로 어떤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그 도약은 천만이냐 아니냐를 뛰어넘는다. 어떤 당근으로도, 어떤 채찍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등록일 : 2017-08-21 09:32   |  수정일 : 2017-08-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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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들에  ( 2017-08-26 )  답글보이기 찬성 : 0 반대 : 1
변호인 베테랑 내부자들 선동 대성공 하는 거 보고 거의 김일성 솔방울수류탄 수준으로 개씹오바해서 만든 다음 영혼까지 스크린끌어모아서 인민들한테 강제로 처먹였는데ㅋㅋㅋ 개돼지들도 노잼은 싫데ㅋㅋㅋㅋㅋ 그래도 앞으로 선동하기 좋겠네 준용아빠 개새덕분에
ㅇㅇ  ( 2017-08-24 )  답글보이기 찬성 : 2 반대 : 1
이미 폭망한 영화 어떻게든 쉴드치느라 애쓰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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