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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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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배우 안석환- 스라소니, 하이에나, 미어캣 연기법을 아시나요?

⊙ 전라도 사투리의 실험 〈맥베스 411〉 … 97년 〈남자충동〉 이어 두번째
⊙ 악역에서 ‘사람의 심리’ 걷어내야 … 호랑이가 사슴을 보면 동정심이 생길까?
⊙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俳)’는 의미 … 무대에서 자유인이 되고 싶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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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색조 배우 안석환. 연극 〈맥베스 411〉의 한 장면. 사진=아시아문화원 제공
올해로 연기 30년을 맞은 배우 안석환(安奭煥·59)의 연기는 팔색조에 가깝다. 영화 〈넘버3〉와 연극 〈남자충동〉에서 걸쭉한 욕설을 구사하는 조폭으로,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선 ‘게이’ 기관원, 연극 〈리처드 3세〉에서 악의 화신으로 연기 불꽃을 살랐다. KBS 드라마 〈추노〉에서 방화백, 〈꽃보다 남자〉에서 잔디 아빠,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에선 황신혜의 남편으로 웃음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상을 쓰면 주위를 얼어 버리게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1997년작 연극 〈남자충동〉(조광화 연출)에서 목포 깡패 ‘이장정’ 역 때문인지 모른다. 당시 그가 쓴 목포 사투리는 펄떡펄떡 살아 있는 광어, 도다리였다. 이런 식이었다.
 
  “지미, 옷 꼬라지가 저거이 머여. 순 바람난 가이내들맹키 머여. 근디, 허어따, 저거이 가이내였등갑만. 이자봉께, 가이내였어. 쬐깐허던 거이 이태만에 가이내 듸야부렀네. 이 저거이 은지 저렇기 이뻐졌으까. 아니제. 워낙이 이뻤제. 저거이 어릴 때 나가 업고 온금동 언덕 넘어 목마 태운 게 목 우서(위에서) 나 얼굴 꽉 겨안음시로, 나 성(형)이 참말 좋아라. 글던, 나가 까맣게 잊고 있든, 이쁘던, 그 달래여.”
 
  여기서 ‘달래’는 자폐를 앓는 이장정의 동생. 이 연극에서 이장정은 목포 사투리로 친근함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깡패 세계를 그렸다.
 
  “기왕 쑤실라믄 보스를 쑤셔야 않겄어? 그놈 집이 당당히 들어가서 조져분다 이거제. 기선을 잡어야 겁 묵고 까불지 못헐거잉만. 전쟁이사 조직이 클라믄 은젠가는 한번 치뤄야 헐 일잉게. 알 파치노도 그랬제.”
 
  당시 이 연극은 ‘안석환=이장정=알 파치노=목포 사투리’가 한 몸이 되어 전년(연극 〈이 세상 끝〉)에 이어 1997~98년 연속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안석환에게 안겼다.
 
  최근 안석환이 다시 사투리 연기에 도전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것도 셰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를 전라도 사투리로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안석환의 ‘사투리 맥베스’가 궁금해 4월 5일 전남 광주로 내려갔다. 4월 14~16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ACC) 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맥베스 411〉을 앞두고 맹연습 중이었다. ‘411’은 고전 〈맥베스〉가 세상에 나온 지 꼭 411년째라는 의미다.
 
 
  ‘저거는 아닌디’라는 말, 안 나오게 해야
 
〈맥베스 411〉에서 맥베스(안석환)가 잠이 든 덩컨 왕을 단검으로 찔러 죽이고 있다. 사진=아시아문화원 제공
  — 전라도 사투리로 〈맥베스〉를 한다?
 
  “전라도 말로 에럽죠. 부끄럽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연기자들이니까 일반인보다 빨리 습득하는 것 같아요. 전라도분들이 연극을 보고서 ‘증말 저거이 아닌디?’ 하면 안 되는데 ….”
 
  — 〈남자충동〉에서도 전라도 말을 하셨잖아요.
 
  “그건 목포 사투리고, 〈맥베스 411〉은 광주 사투리입니다. 같은 전라도 방언이지만 목포, 광주, 전주 모두 달라요.”
 
  —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들은 거죠. 후배들도 있고 ….”
 
  — 전라도 사투리로 연극의 비장미(悲壯美)를 표현하면 관객들이 피식 웃지 않을까요.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보통의 고정관념이 있어요. 전라도 말을 쓰는 극중 인물이 악역, 깡패, 범인이 아니면 코믹하게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주인공이나 임금 같은 중요 배역은 서울 표준말을 씁니다. 어떻게 하면 전라도 말로 긴장감과 비장미를 제대로 표현할까,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 ‘사투리 맥베스’는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저요. ‘메이드 인 광주’를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광주에선 광주 사투리로 연기하고 대구에선 경상도 방언으로 연기하는 게 지방과 중앙의 문화를 함께 살리는 길입니다. 제가 가끔 하는 말인데요, 지역뉴스만큼은 지역말로 하면 어떨까요. 못 알아들으면 자막 깔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표준말 쓰는 대중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안석환은 경기도 파주 태생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렇다고 이미 사라진 방언은 되도록 안 쓰려 해요. 예를 들어 ‘해부작거린다’는 말은 지금 안 쓰잖아요. 그런 말은 표준어에다 사투리 억양만 실어 표현했어요. 이런 노력이 계속되면 어쩌면 고어나 사어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요?”
 
  — 출연 배우들을 ‘서울 깍쟁이들’로 채운 것 아닌가요.
 
  “연기자 20명 중에 13명을 광주 현지에서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어요. 서울에서 온 배우는 저를 포함해 7명입니다. 광주에서 제작하는데 서울 배우가 다 차지하면 뭐가 되나요.”
 
  — 살이 빠져 보입니다.
 
  “요 정도(61kg 안팎)로 유지하려 합니다. 공연을 하면 긴장해서 좀 마르게 돼요. 또 무대에서 몸이 가벼워야 활달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빼려고 합니다.”
 
 
  시치미 떼고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무(無)연기’ 하기
 
1994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할 당시의 안석환.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할 무렵이다.
  안석환은 송능한 감독의 1997년 작 영화 〈넘버3〉로 감초 조연배우 이미지를 굳혔지만 그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 역을 맡아 700회 가까이 공연을 마친 주연급 베테랑 배우다. 대개는 강렬한 인상의 선 굵은 역을 맡아 왔다. 어쩌면 조폭, 무뢰배, 악당으로 나올 때 더 인상적인지 모른다.
 
  — 악역은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요.
 
  “어깨들은 자기를 신격화시켜요. 말이 필요없죠. 말하기 전 다 이뤄져야 합니다. 〈넘버3〉에서 제 첫 대사가 ‘담배 하나 줘라’였어요. 제가 그랬죠. ‘말도 안 된다. 이렇게 손가락을 ‘V자’로 내미는 순간 (담배가) 꽂혀야 한다. 라이터 좀 줘, 같은 말은 안 쓴다’고 했어요. 그래서 명령하는 대사를 다 지웠죠. 악역은 완전히 주관적으로 연기할 수 있어요. 연기엔 액팅, 리액팅(상대 반응에 대한 연기)이 있는데 조폭 같은 악역은 액팅만 하면 됩니다. 리액팅이 필요 없어요.
 
  연극 〈리처드 3세〉의 글로스터는 성격이 완전히 비뚤어진 꼽추입니다. 왕이 되기 위해 형들을 다 죽이고 더 많은 힘을 갖기 위해 영주 딸을 빼앗죠. 그러곤 내버려요. 영주 부인에게 강제로 키스하고 딸을 달라고 요구하는 악한이죠. 그런 악역을 연기하려면 힘이 엄청 들지만 매력 있어요. 관객도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악역에 왜 매료되느냐. 욕망 때문이죠. 똑같이 소유하고 싶거든요.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있어요. 악역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죠. 겉으론 ‘개새끼’라 욕하면서 속으론 ‘어쩌면 저렇게 하나’ 탄식합니다.
 
  악역도 흔한 깡패처럼 연기하면 안 돼요. 그런 배역일수록 매력 있게 호기심을 유발시켜야 해요. 영화 〈배트맨〉 하면 ‘조커’를 떠올리듯 말입니다.”
 
  — 악역의 심리는 어떻게 표현합니까.
 
  “악역에서 ‘사람의 심리’를 걷어내야 합니다. 호랑이가 사슴을 보면 동정심이 생길까요? 생긴다면 호랑이가 아니죠.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늦어요. 동작 템포가 늦고 눈동자부터 흔들립니다. 짐승의 심리로 먹잇감을 봐야 ‘내 눈깔’이 틀려집니다. 시치미 떼고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무(無)연기를 할 수 있어야 해요. 악역에 동정심이란 있을 수 없죠. 살아남기 위해선 냉혹해야 하니까 ….”
 
  — 그래도 심리적 갈등이 들어가야 극적이지 않을까요.
 
  “악역일수록 갈등이 많으면 안 됩니다. 갈등은 이성과 감성이 충돌한다는 것인데 이성이 적을수록, 감성으로만 연기할 때 초자연적인 에너지가 나올 수 있어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연기자는 색깔이 없어야 한다’고. 무대 위에선 그 사람 내면의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걷어 내야 합니다. 배우(俳優)라는 한자의 ‘배(人+非)’ 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배우라는 말을 함부로 안 써요. 남들이 배우라 불러 주면 황송해합니다. 진정한 배우는 ‘자유’입니다. 어떤 역도 소화할 수 있고 누구에게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을 안 들어도 되는 … 무대 위에서만큼은 자유인이기 때문입니다.”
 
  — 〈배트맨〉에서 조커 역을 맡게 된다면?
 
  “(잠시 고민하더니) 장애를 겪고 있는 조커 … 몸의 반쪽을 못 쓰는, 뇌의 한쪽이 날아간 상태에서 세상의 절반을 없애 버리고 싶어 하는 … 조커, 어떤가요?”
 
  그는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오셀로〉에서 이아고 같은 엄청난 악역을 저는 자유로 본다. 자유 … 인간에겐 다 그런 면이 있다”고 했다.
 
  — 반대로 코믹연기는 어떻게 합니까.
 
  “똑같은 작품의 캐릭터라도 전혀 말이 안 되는 코미디를 구사할 수도 있는 거고, 거꾸로 뒤집어엎는 반(反)연기도 할 수 있지요. 저는 채플린을 존경합니다. 무엇 때문에? 휴머니즘? … 웃으면서도 사람 짠하게 만드는, 저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웃기면 그만이 아니라, 웃긴데 아 씨팔 … 어딘가 짠한 …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이 웃긴데 찐한 캐릭터예요.”
 
 
  ‘외(外) 다수’에서 평론가의 주목을 받다
 
2012년 8월 KBS 2TV 일일시트콤 〈닥치고 패밀리〉에서 황신혜와 안석환.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안석환은 연우무대를 통해 1987년 데뷔했으나 무명(無名)의 기간이 8년도 더 된다. 열심히 해도 연봉 400만원이 안 됐다. 부모에게는 “5년만 연극하고 안 되면 장사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굶어죽어 이 새끼야. 세상 물정 모르면서 지랄이야’라는 욕을 얻어먹었단다. 칼을 뽑았으니 물러나지 않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데뷔 시절인 1990년 어느 날 자신을 발견했어요. 사슴 3마리, 거북이 2마리, 그 위에 비틀어진 소나무 한 그루, 두 그루 …. 장롱에 그려진 십장생을 세고 있더군요. 또 어지러운 벽지무늬를 하릴없이 세고 있었어요. 하하하”
 
  1991년 작 연극 〈마술가게〉에 출연하게 됐다. 재미는 없고, 배역도 비중이 낮은 ‘경비원’. 대사 분량을 다 합쳐야 3분을 넘지 못했다.
 
  “심심해서 제 대사를 전부 더듬어 봤어요. 그랬더니 웃겼어요. 그다음에 대사 앞뒤로 ‘개새끼야’를 넣어 봤어요. 대본에도 없는 …. 예를 들어 ‘밥 먹어’라는 대사를 ‘개새끼야, 밥 먹어, 개새끼야’라고. 그러니 대사가 3배나 늘고 거기다 더듬기까지 하니 5배 가까이 늘어난 거죠.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어요. … 거기다 제 맘대로 5분짜리 모노드라마까지 떡하니 붙였습니다.”
 
  — 연출가가 받아들여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나 사전에 말도 안 하고 해 버렸습니다.”
 
  — 도발이네요.
 
  “난리가 났어요. 객석에서 깔깔거리고.”
 
  — 동료 배우나 연출가 반응이 궁금하네요.
 
  “반응이 … ‘저런 새끼가 다 있나’고 했겠지만 받아 줬어요. 너무 재미있고 그 인물에 딱 맞거든요. 제가 웃긴데 슬프게 연기했어요. 짠하게 … 마치 채플린처럼. 당시 대학로극장이라는 극단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마술가게〉 작품을 샀는데 저를 포함해서 샀어요. 저를 데려간 거죠.”
 
  — 팔려갔네요.
 
  “네. 팔린 거죠. 근데 웃긴 게 주인공이 당시 120만원(월) 받을 때 저는 150만원 받았어요. 보통 커튼콜하면 단역부터 먼저 나갑니다. 제가 나가면 요란하게 박수를 쳐요. 주인공이 나가면 박수소리가 죽어요. 주인공으로선 짜증이 나죠.”
 
  그 무렵 대학로에 ‘이상한 새끼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배우들은 대사를 ‘무대 쪼’라고 부르는, 일상적이지 않은 말을 쓰곤 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철수’를 ‘촬스~’라 부르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떤 더듬는 녀석이 나타나 완전히 ‘아랫것’ 연기”를 하니까 평론가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시절, 저는 ‘외(外) 다수’였어요. 누구누구 외 다수 말이에요. 그런데 평자들이 그냥 단역으로 처리할 걸 ‘경비원(안석원)’ 해 놓고, ‘그의 연기는 어쩌구 저쩌구’ 하며 주목하는 게 아닙니까.
 
  다음해에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에서도 잠깐 더듬는 연기를 썼어요. 그때 송강호가 연우무대에 들어왔나, 그래요. 김윤석이하고. 항간에는 (송)강호가 〈넘버3〉에서 한 더듬는 연기가 저를 카피한 거라고 하던데 제가 확인할 순 없지요. 분명한 것은 (송)강호가 제 8년 후배입니다. 극단에서 제 더듬는 연기를 많이 본 것은 사실이에요.”
 
 
  Drama is not life
 
  1994년 이후 연극과 영화에서 굵직한 섭외가 들어왔다. 그해 까다롭기로 소문난 임영웅 연출의 캐스팅으로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 연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도 그해 출연한 작품이다.
 
  — 좋은 연기란?
 
  “연극 〈마술가게〉도 그렇고 고정관념을 깨는 게 예술행위자의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기라면 연기가 아니죠. 그런 면에서 ‘예술과 과학은 거의 동격’입니다. 아니 예술은 과학보다 앞서요. 상상력에서 말이죠. 예술이 과학이 되고, 과학이 기술이 되고, 기술이 생활이 되잖아요. 연극판에 이런 말이 있어요. ‘Drama is not life(드라마는 생활이 아니다)’라고. 연기는 생활보다 훨씬 높은 차원에 있잖아요.
 
  그런데 배우들이 무대에서 ‘생활’을 하려고 해요. 자연스러워한다고 말이죠. 맞지 …. 자연스럽게 연기해야죠. 그럼에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기여야 합니다.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야 해요.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게 나와요. 어저께까지 했던 작품을 여기서 다시 인용하면 안 됩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작품을 찍을 때 ‘기관원’ 역할을 맡았어요. 검은색 가죽점퍼와 선글라스라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그래서 장선우 감독에게 말했죠. ‘이 영화는 핑크다. 검은색이 아니다. 적어도 퍼플은 돼야 한다’고요. 제가 기관원을 ‘게이’로 갔던(표현했던) 거죠. 장 감독이 처음엔 펄쩍 뛰면서 ‘뭐야, 안 돼’ 그랬는데, 못 이긴 체 받아 줬어요. 그게 먹혔어요. 기관원을 여성적으로 바꾸니 재미가 배가됐어요. 장 감독도 깔깔거리고 그랬어요.
 
  연극 〈남자충동〉은 사실 비극인데 제가 희비극으로 연기했어요. 사람들은 고전극처럼 ‘생짜 비극’은 요즘 잘 안 봅니다. 원래 〈남자충동〉은 배우 김갑수를 염두에 두고 조광화 연출이 만든 작품입니다. 갑수 형이 바빠서 제가 맡았어요. 원래 처음 제가 맡은 역은 ‘이장정’의 동생 역인데 계집애 같은 게이 역할이었어요. 안 한다고 했죠. 대신 이장정 역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40일 가까이 공연하는데 개런티로 900만원을 받았어요. 당시 연극배우로선 최고 대우였어요. 제가 조건을 달았습니다. ‘전 스태프가 목포로 여행을 가야 한다’고요. 목포 사투리를 쓰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 보고 바닷바람도 쐬고 유달산에도 오르자고요. 결국 그렇게 됐어요.”
 
  — 정말 스태프하고 다 목포에 갔어요?
 
  “그럼요. 2박3일 여행한다고 목포라는 도시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목포의 정서는 알겠더라고요. 광주 사람들은 자기가 1등 국민이라 생각합니다. 목포 분들은 2등 국민이라 생각해요. 항상 당하면서 살아왔다고 느낀다고 할까? 그때 단역으로 오달수가 나왔어요. 그 친구를 보고 ‘저거 뭐 해서 먹고 살지?’ 그랬어요. 이렇게 대스타가 될줄 몰랐습니다.”
 
 
  커튼콜 직전의 짧은 순간, 잊을 수 없어
 
2004년 11월 셰익스피어 연극 〈리처드 3세〉에서 클로스터 공작(리처드 3세) 역을 맡아 악의 화신으로 변신하는 안석환(가운데).
  — 연기의 왕도(王道)란?
 
  “연기는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사람마다 색깔이 다르고 인생이 다르잖아요. 네가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 다 다릅니다. 연기엔 법이 없어요.
 
  굳이 조언한다면 배우 스스로 자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이가 나 자신이죠. 본인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저는 소크라테스를 존경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원래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아니었을까요?
 
  연기는 논문과 같아요. 논문에는 어떤 주장도 방어할 수 있는 나만의 이론 틀이 있잖아요. 연기도 그래야 합니다. 관객을 의심하지 않은 채 빠져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죠. 제일 많이 공연했어요. 제 컴퓨터 로그인 아이디가 ‘에스트라공21’입니다. 다음으로 〈남자충동〉, 〈리처드 3세〉예요.
 
  언젠가 세 작품의 배역을 짐승으로 표현한 일이 있어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에스트라공 역을 할 때 모델로 삼은 동물이, 사막의 파수꾼이라 불리는 미어캣입니다. 왜 있잖아요, 개의 앞발처럼 두 손을 앞으로 구부리고 혀는 축 늘어뜨리는 …. 미어캣이 에스트라공의 연기 폼입니다. 〈남자충동〉 이장정 역은 스라소니 같아요. 평소 게으른데 사냥할 때 민첩한 …. 그 작은 놈이 사슴까지 잡아먹어요.
 
  〈리처드 3세〉의 글로스터 공작은 하이에나입니다. 꼽추인 글로스터는 모성결핍 환자인데 하이에나가 그래요. 모든 동물은 수컷이 왕인데 하이에나만 여왕 체제입니다. 새끼도 암컷을 배불리 먹이고 남으면 수컷에게 줘요. 하이에나 암컷은 남성 호르몬이 엄청 많아 남성 성기를 달고 나와요. 암수구별이 어려워 유럽에선 ‘악마’로 인식돼 많이 죽였다고 해요.”
 
  — 어떨 때 배우로서 가장 행복하세요.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할 때였어요. 커튼콜 직전의 에스트라공에서 안석환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순간을 즐겼어요. 속으로 ‘관객이 박수치지 않기를 …’, ‘그냥 에스트라공으로 머물렀으면 …’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때가, 그 짧은 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안석환의 배우론(論)
 
  정답은 없다. 쓸데없는 짓을 하라
 
  안석환은 고교시절 ‘14인치 나팔바지’를 입고 다녔다. 대학에 가려 미친 듯이 공부해 단국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미국 특송회사에 입사했으나 업무상 ‘거짓말을 밥 먹듯 해야 하는’ 일이 싫어 사표를 던졌다. 연극을 하고 싶었다. “다른 이들은 연극영화과를 나와 길을 알지만 상고(商高) 출신이 뭘 알겠나. 답 없는 짓을 8년 가까이 하니 길이 보이더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하면 길이 보일까.
 
  “줄도 없고 백도 없는 놈이 내세울 것은 연습밖에 없었다. 나는 연기니 연출이니, 배운 게 없으니 더 열심히 했다. 남들이 보면 우습다. ‘저러면 안 되는데 저 짓을 한다’는 소릴 들었다. 인생을 60 가까이 살아 보니 쓸데없는 짓이 재산이 됐다. 남들 2시간 연습할 때 8시간 했던, 그 정답 없는 시간이 오늘의 나로 만들었다.
등록일 : 2017-05-08 18:09   |  수정일 : 2017-05-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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