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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소녀의 죽음에 따른 죄의식...<언노운 걸>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 | 신용관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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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드(AUD) 제공]
제니(아델 에넬)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 여의사다. 벨기에의 작은 개인병원에서 건강이 좋지 않은 의사를 대신해 3개월 임시로 병원 일을 봐주고 있다. 곧 25명 지원자 중 발탁된 번듯한 의료센터로 옮길 예정이다.
 
어느 날 저녁 8시쯤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줄리앙(올리비에 보나드)을 혼내고 있을 때 병원 현관 벨이 울린다. 진료 시간이 끝난 지 이미 1시간을 넘긴 뒤여서 제니는 병원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날 경찰이 찾아오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이름 모를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살해된 여성은 신분을 증명할 아무 것도 소지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 여성을 아는 이가 없어 당장 화장 처리될 상황이다. 자신이 문을 열어줬으면 그 여성이 살아있었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든 제니는 여성의 신원을 알기 위해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선다.
 
벨기에-프랑스 합작 영화 <언노운 걸>(The Unknown Girl, 2016)은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의 작품이다. 이들은 벨기에의 청년 실업 문제를 그린 <로제타>(1999)와 나이 어린 젊은이들의 출산 문제를 담은 <더 차일드>(2005)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벨기에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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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연출, 제작을 공동으로 맡고 있는 이들 형제는 타인의 삶과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묻는 작업을 통해 유럽의 사회문제들을 소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을 위로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름 모를 소녀’ 쯤으로 번역될 <언노운 걸> 또한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살해된 흑인 여성의 이름이라도 알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이는 제니와 달리 그 행적을 쫓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제니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살해된 소녀와 모종의 연관이 있는 까닭에 그걸 캐고 다니는 제니가 눈엣가시인 것이다. 그것은 불법이민자, 매춘, 마약거래 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경찰조차 제니의 행동을 마뜩하게 여지지 않는다.
 
줄거리만 떼어 내면 스릴러의 요소가 강한 듯 여겨지지만, 실제 영화는 주인공 제니의 심리 상태 변화, 제니가 만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황 묘사 위주로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영화 화면의 대부분이 '상반신 숏(shot)'이다. 허리 이하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지 않다. 관객으로선 방 안이든 좁은 병원 사무실이든 등장인물들과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1미터쯤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들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의도된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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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도의적 양심’의 문제에 방점을 둔 까닭에 기타 지엽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했다. “살해됐다, 매춘을 했다”는 배우의 대사만 있을 뿐 살해된 시신의 모습도, 매춘을 하는 영상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제니가 병원 진료를 보면서 소녀의 신분을 알아내기 위해 아예 침구를 가져와 숙식을 해결하는 시 외곽의 병원은 고속도로 옆이라 낮이건 밤이건 자동차 질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차 소리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 소리, 병원을 울리는 벨 소리 등 음향효과는 있어도 영화에 음악조차 사용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내면을 건드리는 것은 생면부지 여자 아이의 원혼(冤魂)을 위로하려 고군분투하는 제니의 모습이다. 한 가지 겨울 외투를 걸친 채 동네 남자들의 위협과 흑인 마약상의 협박 등에도 굴하지 않는 면모가, 결코 영웅적이지 않으면서도 쉽사리 잊기 어렵게끔 치밀한 연출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가장 우수한 이과생들이 의대로 몰리고, 의사란 직업이 사회적-경제적 성공의 징표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면모여서 더욱 그렇다. 간호사 한 명 없이 일반의사 혼자 운영하는 개인 병원, 주치의 제도가 있어 왕진 가방을 든 채 한밤중에도 호출 받고 서민 아파트로 진료 가는 모습도 낯설고 새삼스럽다.
 
지극히 건조하고 현실적인 묘사에 따뜻한 시선을 견지함으로써, 사회가 조금씩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조용히 전하는 영화다. 5월 3일 개봉. 상영시간 106분.
 
[글=신용관 기자] 
 
 
등록일 : 2017-04-21 16:11   |  수정일 : 2017-04-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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