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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매니아가 꼽은 일본 애니메이션 10선

글 | 홍성윤 매일경제 프리미엄부 기자

1917년부터 100년 동안 일본에서 제작·발표된 애니메이션 작품 수는 1만1723개에 달한다. 1만개의 애니메이션 중 좋아하는 작품 10개를 꼽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중요한 작품 10개를 선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매니아로서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100주년을 맞아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에서 중요한 작품 10개를 선정해 봤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선정하기 위해 10개 작품을 뽑을 때 우선 일본 애니메이션산업 및 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했다. 또 작품성과 흥행 성적도 감안했다. 일본 문화청에서 매년 주최하는 미디어 예술제와 2006년에 개최한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 일본의 문학·문화 시상식인 성운상(星雲賞), 잡지 아니메쥬에서 주최하는 독자 인기투표 애니메이션 그랑프리 등 매해 개최되는 유명 시상식의 수상작품 목록도 참조했다.
   
   

   1963년
   철완 아톰
   전후 일본 부흥의 메신저

   
   ‘푸른 하늘 저 멀리 랄랄라 힘차게 나는 우주소년 아톰’이란 노래 가사로 익숙한 ‘철완 아톰(鉄腕アトム·우주소년 아톰)’은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이다. 1952년부터 연재된 동명의 SF만화가 원작이다. 1963년 방송된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34%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어 세계 각국에 수출되었다. 흥행 면에서도 성공했지만 ‘철완 아톰’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토대를 구축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도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철완 아톰’은 1960년대 일본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극도로 피폐했던 1950년대를 지나 고도성장기를 맞고 있었다. 원폭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핵융합 에너지로 움직이는 로봇 아톰이 정의와 일본 사회를 위해 활약한다는 내용은 그 자체로 전후 세대에 위로를 전해주는 작품이었다. 데즈카 오사무 본인은 비참한 전후 일본을 경험한 세대로서 평생을 군국주의와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데즈카는 아톰이 과학과 이성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를 원했지만 일본 사회는 아톰을 부흥하는 일본의 투혼과 재생의 아이콘으로 해석하며 열광했다.
   
   ‘철완 아톰’은 이른바 ‘미디어 믹스’라고 불리는 수익 구조를 확립한 작품이기도 하다. 미디어 믹스는 인기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판권을 팔아 캐릭터 상품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또 데즈카 오사무는 ‘철완 아톰’을 제작하면서 한정된 예산과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프레임 수를 줄이고 프레임을 가변적으로 운용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했다. 현재의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기법들은 이 리미티드 기법을 활용하며 단점을 극복해 만든 것이다.
   
   

   1970년
   내일의 죠
   전공투의 성전(聖典)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도전자 허리케인)’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일본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동명의 권투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TV 애니메이션이다. 야부키 죠라는 빈민가 고아 소년이 권투를 배우며 선수로 성장하다 세계 챔피언과의 처절한 승부 끝에 장렬히 산화한다는 내용이다. 1970년부터 이듬해까지 방영됐다. 1970년에 방영된 1기 애니메이션은 시청률 29.2%를 기록했고, 10년 뒤 재방송했을 때는 시청률이 더 높아 31.6%를 기록했다.
   
   ‘내일의 죠’는 1947~1949년생,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団塊) 세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특히 당시 급진적인 대학생 운동권 연합체인 전학공투회의(全學共闘會議·이하 전공투)의 성전과 같은 작품이었다. 전공투 내에서는 ‘오른손에는 아사히저널(당시 좌파 성향의 잡지), 왼손에는 매거진(내일의 죠가 연재된 만화잡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암울한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불사르는 모습이 전공투에 영감을 준 것이다. 1970년 민항기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에 망명한 극좌조직 적군파의 범인 9명은 성명을 내며 “우리들은 ‘내일의 죠’다”라고 발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3년
   도라에몽
   국민 콘텐츠의 힘

   
   일본 3대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꼽히는 ‘도라에몽(ドラえもん)’ ‘사자에상(サザエさん)’ ‘치비마루코짱(ちびまる子ちゃん·마루코는 아홉 살)’은 모두 방영한 지 30~40년이 지난 장수 애니메이션이다. 그중 일본의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가 그린 ‘귀 없는 고양이 로봇 도라에몽’은 1970년 연재 시작 이후 명실상부한 국민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애니메이션으로는 1973년 첫 방영됐는데 현재까지 9600편 이상 방영됐다. ‘도라에몽’과 같은 장수 문화 콘텐츠는 서로 다른 세대를 묶어주는 ‘문화적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미국의 스타워즈가 미국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도라에몽’은 40년 넘게 방영되면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1974년
   우주전함 야마토
   1세대 오타쿠의 탄생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ヤマト)’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로 유명한 마쓰모토 레이지가 제작한 SF애니메이션의 걸작이다. 애니메이션 시청 연령층을 아동이 아닌 청소년, 성인층으로 확대하는 데 공헌했다. 1974년 처음 방영된 TV판의 경우 시청률이 무척 저조해 조기 종영되는 수모를 겪었으나 1977년 TV판을 재편집해 내놓은 극장판이 9억엔(약 90억원)에 육박하는 흥행 대박을 치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극장 개봉 당시 ‘우주전함 야마토’ 매니아들은 표를 사기 위해 극장 앞에서 텐트를 치고 철야를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사회현상으로까지 확산됐다. 이때 ‘우주전함 야마토’ 동호회를 조직하고 회지를 발행하고 밤을 새며 티켓을 산 매니아들은 이후 ‘1세대 오타쿠’라고 불리게 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도 그중 한 명으로 1세대 오타쿠 출신 감독들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
   
   

   1979년
   기동전사 건담
   리얼로봇 신세기를 열다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인간보다 훨씬 크고 위압적인 ‘거대 로봇’이 점령하고 있었다. 제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은 ‘마징가 Z’ ‘게타로보’ 같은 흥행작을 쏟아내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여기에 제작사 선라이즈가 ‘우주전함 야마토’의 실패와 성공담을 벤치마킹해 내놓은 작품이 바로 1979년작 ‘기동전사 건담(機動戰士ガンダム)’이다.
   
   ‘건담’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도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대표작이자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1980년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건담’이란 브랜드로 수많은 콘텐츠가 재생산되는 현재진행형 전설이다.
   
   ‘건담’은 TV 방영 당시 시청률이 저조했다. 작품 기획 단계부터 노렸던 완구 판매도 신통치 않아 조기에 종영됐다. 하지만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재방송 시점부터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1980년 반다이에서 발매한 ‘건담 프라모델(건프라)’은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했다. ‘건담’은 인간 간의 전쟁을 소재로 병기에 가까운 리얼한 로봇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기존 거대 로봇물과 차별화된다. 단순히 주인공과 악당의 선악 구도가 아닌 각각의 신념을 지닌 인물들의 갈등과 충돌을 그려낸 점 역시 성인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건담’ 극장판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 개봉을 앞둔 1981년 2월 22일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다. 일본 도쿄 신주쿠역 광장에서 열린 ‘아니메(애니메이션) 신세기 선언’이 그것이다. 1만5000여명의 군중들은 “우리들은 우리 시대의 아니메를 처음으로 손에 넣었다”며 “우리들은 아니메에 의해 개척되는 우리들의 시대와 아니메 신세기의 개막을 여기에서 선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선언은 단순한 매니아의 행사가 아니라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상징하고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문화 장르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애니메이션 평론가 후지쓰 료타는 이 선언을 두고 “주의(主義)에서 취미의 시대로 변화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평했다.
   
   

   1988년
   아키라
   버블이 낳은 초호화 세기말 작품

   
   ‘아키라(AKIRA·アキラ)’는 만화가 오토모 가쓰히로가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연재한 SF 사이버펑크 만화를 원작으로 해 직접 감독한 애니메이션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양쪽 모두 연출력과 작화, 퀄리티에서 금자탑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당시 일본 버블경제의 사치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작품이다. 데즈카 오사무가 정립한 이래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저비용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을 탈피했다. 초당 20프레임, 동화(動畵) 15만장에 10억엔(약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제작했다.
   
   압도적인 완성도로 해외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평론가와 대중, 업계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영화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 등 굵직한 SF영화 시리즈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5년
   에반게리온
   허무의 세대 신화를 만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이하 에반게리온)’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인류를 위해 거대 로봇에 탑승해 싸우는 14살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산업 전체를 대표한다. 1995년 첫 TV 방영 이래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전 세계 서브컬처계에 전무후무한 영향을 미친 신화적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 문화청이 2006년 선정한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에서는 수많은 명작들을 제치고 애니메이션 부문 1위에 선정됐다.
   
   1세대 오타쿠인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만든 ‘에반게리온’은 여러모로 21세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형을 완성시켰다. 우선 ‘에반게리온’은 한 번 보고 마는 작품이 아니다. ‘에반게리온’ 팬들은 수없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요소나 의미를 찾아내고 다른 팬들과 공유하며 토론한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학술 논문과 서적도 출판될 정도다. ‘에반게리온’ 신드롬은 ‘오타쿠 소비 문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했고 마침 활성화된 PC통신을 통해 온라인 토론 문화를 정립했다.
   
   ‘에반게리온’은 애니메이션 시장도 완전히 바꿨다. 여러 투자자들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리스크와 이익을 투자 비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작위원회 방식을 도입해 대성공을 거뒀다. ‘에반게리온’으로 인해 매니아를 대상으로 하는 심야 애니메이션 시장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미디어 믹스’로도 성공해 애니메이션 외에도 만화책, 극장판, 게임, 완구 등으로 재생산돼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에반게리온’ 방영 20주년을 맞아 작중 이미지로 장식한 신칸센이 달리기도 했다.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지브리의 정점

   
   2002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 2003년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 BBC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4위, 역대 일본 영화 흥행수익 부동의 1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하고 스튜디오지브리가 제작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걸작으로 손꼽힌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토대로 스튜디오지브리를 설립한 이래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이웃집 토토로’(1988), ‘붉은 돼지’(1992), ‘모노노케 히메’(1997) 등 일련의 명작을 만들어온 미야자키 감독의 저력이 나타난 작품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감독의 철학과 작품관이 집대성돼 있다는 측면에서 ‘모노노케 히메’를 대표작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적 흥행과 평단의 평가를 생각해 볼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감독뿐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산업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작품에서 한층 부드러워진 방식으로 섬세한 상징과 의미를 표현했다. 주인공 센이 이상한 세계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평범한 성장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환경과 전쟁에 대한 미야자키 감독의 철학과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한 은유까지 담겨 있다.
   
   

   2011년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반역의 이야기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魔法少女まどか☆マギカ·이하 마마마)’는 2011년 제작된 TV 애니메이션이다. ‘마마마’가 방영되기 전 일본 애니메이션시장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쏟아져 나오며 이른바 ‘모에(萌え)’가 애니메이션시장에 중요한 제작 요소로 자리 잡았다. ‘모에’란 캐릭터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말한다. 일본의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는 저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통해 “‘에반게리온’을 보고 자란 3세대 오타쿠들은 거대 서사에 몰입하는 대신 캐릭터의 매력, 소위 모에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한다. 즉 이 시점에서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시청자들은 더 이상 애니메이션 줄거리나 작품 전체를 감상하지 않게 됐다. 서사라는 뼈대 없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립한 캐릭터에 모에를 느끼는 것으로 작품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마마’는 이 같은 패러다임에 반기를 든 작품이다. 유행하는 마법소녀물이라는 장르적 클리셰를 비틀고, 모에보다 서사를 중시한 작품이다. 흥행 성적이나 파급력만으로는 ‘마마마’를 앞서는 작품이 많지만 시장의 주류에 반기를 든 작품은 흔하지 않다.
   
   ‘마마마’와는 정반대로 캐릭터의 모에 속성을 극대화해 인기를 얻는 작품도 있다. 2006년작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凉宮ハルヒの憂鬱)’이 대표작이다. 아예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해 주요 캐릭터의 설정과 포지션을 투표로 결정한 ‘러브 라이브!’ 시리즈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2016년
   너의 이름은。
   아마도 포스트 미야자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은 일본 애니메이션시장에서도 이례적인 흥행작이다. 거의 혼자 만들다시피한 데뷔작 ‘별의 목소리’(2003)부터 자신만의 미학과 영상미를 뽐내온 신카이 감독의 역량이 응집된 작품이다. 지난해 개봉한 이래 역대 일본 흥행수입 4위,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글로벌 흥행수입 3억2697만달러(약 3690억원)로 1위에 등극하는 등 흥행의 새 역사를 실시간으로 쓰고 있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들은 ‘청춘남녀의 단절·간극’ ‘시공을 초월한 대화’라는 일관된 테마를 갖고 있다. 데뷔작은 매니아 속성이 강했지만 작품을 거듭할수록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왔다. 그 결과 대중의 수요과 완전히 일치한 작품이 바로 ‘너의 이름은。’이다. 남녀노소, 국내외를 불문하고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모두 호평을 받은 이른바 ‘국민 애니’의 등장은 오랜만이다. 덕분에 신카이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논의해 봤을 ‘포스트 미야자키는 누구?’라는 물음에 유력한 답안으로 부상했다.
   
   가족용 애니메이션도 아닌 이 작품의 이례적 흥행을 놓고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많다. 평론가 와타나베 다이스케는 “최근 유행하는 장르에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캐릭터를 대입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평론가 도미노 요시유키는 “요즘 감각에 딱 맞아떨어졌을 뿐 5년 뒤에도 볼 만한 작품은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했다. 어느 쪽이든 ‘너의 이름은。’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가는 중이다.
등록일 : 2017-03-16 09:54   |  수정일 : 2017-03-1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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