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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이 가르쳐준 것

글 | 조정육 미술평론가 2019-03-11 09:59

▲ 일본 시즈오카 후지노미야 지역의 다누키호수에서 바라본 후지산 전경.
일본 시즈오카역에서 후지산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빈자리가 없어서 ‘노약자 우선석’에 앉았다. 앉고 나서 다음 정거장 문이 열리자 할머니 두 분이 들어왔다. 남편과 나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우리도 하루 종일 걸어다닐 예정이라 상당한 예비 노약자에 해당하지만 허리가 굽어 겨우겨우 걷는 두 할머니에 비하면 청년이나 다름없었다. 여행객인데 그냥 잠자는 척하면서 외면할까도 생각했지만 워낙 연로하신 분들이라 잔머리를 굴리기도 전에 우리 몸이 먼저 알아서 일어나져버렸다.
   
   종종걸음으로 조심조심 걷는 할머니들은 거의 아흔 살은 넘어 보였다. 저런 분들이 보호자도 없이 돌아다니다니. 역시 일본은 고령화사회가 맞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두 할머니가 자리에 앉기 전에 우리를 향해 감사하다며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우리는 멍하게 한참을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서야 맞절을 했다. 자리 한 번 양보한 것이 무슨 큰 대단한 일이라고 저렇게 큰절까지 할까. 게다가 저기는 원래 우리가 앉을 자리도 아니지 않은가. ‘일본 노인들은 정말 친절하네. 남이 베푼 친절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한국 같았어봐. 행여라도 노약자 우선석에 앉았다 일어서지 않으면 눈을 부라리면서 큰소리치잖아.’
 
 남편과 내가 그런저런 얘기를 하고 문가에 서 있는데 두 할머니가 두 정거장을 지나 내렸다. 워낙 나이 든 할머니들이라 걷는 것도 불안해 보여 지하철 바깥으로 나갈 때까지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간 할머니들이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우리를 향해 다시 90도 각도로 절을 하며 큰소리로 말한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시타!”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는 ‘스미마셍(미안합니다)’과 함께 일본 여행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다. 일본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라 했고, 내가 실례를 범했는데도 먼저 “스미마셍”이라고 했다. 그들은 마치 “아리가토 고자이마스”와 “스미마셍”을 말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 ‘후지산 46경(富岳四十六景)’ 중 ‘2경’, 1832년

   후지산을 찾아 떠난 여행
   
   그나저나 내가 일본에 온 것은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후지산(富士山)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 에도(江戶·도쿄의 옛 이름)시대의 대표적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1760~1849)와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1797~1858)의 작품에는 후지산이 수시로 등장한다. ‘덧없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뜻의 우키요에는 에도시대(17~20세기 초)에 미인, 기녀, 광대 등의 인물과 당대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풍경, 풍물 등을 그려낸 풍속화를 뜻한다.
   
   가쓰시카는 특히 후지산을 좋아해 1827년에 후지산만을 주제로 한 판화집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을 제작했다. 후가쿠(富嶽·富岳)는 후지산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일식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파도 뒤로 보이는 후지산’이 바로 가쓰시카의 작품이다. 청색과 흰색이 교차된 이 작품은 심할 정도로 과장된 파도가 보는 사람을 덮칠 듯 압도하는 강렬함이 특징이다. 화면 절반을 파도로 채운 가운데 하늘까지 치솟을 듯 솟구친 파도에서 흰 물방울이 떨어진다. 꿈틀거리는 파도 위에 누런 부유물 같은 것이 떠있는 것 같아 들여다보니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뱃전에 납작 엎드린 사람들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거친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하는 뱃사람들의 고단함, 그 모든 삶의 신산스러움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저 멀리 눈 덮인 후지산이 묵묵히 내려다본다.
   
   가쓰시카의 판화가 계기가 되어 일본 미술은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자포니즘(Japonisme)’이라는 거센 파도가 1860년경부터 유럽을 강타했다.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휘슬러, 마네, 드가, 로트렉 등 쟁쟁한 화가들이 자포니즘에 빠져들었다. 이국적이고 신기한 일본 병풍, 부채, 기모노, 도자기, 책자, 족자 등의 일본 문물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가쓰시카가 일으킨 자포니즘의 파도는 19세기의 유럽을 강타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을 흘러다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얼마 전에 부산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도 가쓰시카의 작품을 패러디한 홍보물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가쓰시카의 후지산 사랑은 한 차례 판화를 찍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36경’을 발표하고 난 5년 후인 1832년에 또 한 차례 후지산 연작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36경’에 10경을 더해 ‘후지산 46경(富嶽四十六景)’을 만들었다. ‘붉은 후지산’은 ‘후지산 46경’에 들어있는 두 번째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 역시 화면 전체에 후지산만을 새긴 작품이다. 그가 새긴 후지산에 매료되어 남편과 아들과 함께 시즈오카를 찾았다. 시즈오카에 와서 기차와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후지산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을 찾아다녔다. 니혼다이라호텔, 후지노미야, 미호노마쓰바라에 가서 사흘을 보낸 후 전통적인 숙박시설 료칸(旅館)이 있는 가와구치호로 이동해 또 사흘을 보냈다. 오로지 후지산만 보며 보낸 엿새였다. 아침 햇볕을 받아 붉은색으로 물든 후지산, 구름에 가려 흔적을 감춘 후지산, 달빛을 받아 신령스러운 자태를 보여주던 후지산 등 거의 일주일을 후지산만 보고 지냈으니 그림 속의 후지산이 아니라 실재하는 후지산이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가쓰시카의 그림이 비로소 나의 것이 되었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 ‘후지산 36경(富岳三十六景)’ 중 ‘1경’, 1827년

▲ 부산의 한 카페에서 본 홍보물. 가쓰시카의 그림을 패러디하여 커피원두로 파도를 만든 발상이 이채롭다.

   선한 신은 디테일에 있다
   
   그런데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후지산만이 아니었다. 후지산 아래서 자연에 순응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시즈오카는 일본의 중심지가 아니다. 궁벽한 시골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시골마을이 어느 곳을 가든 예외 없이 깨끗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쓰레기를 어디다 버릴까 의아할 정도로 거리가 깨끗했다. 우리는 마치 쓰레기를 기필코 찾아내야 할 사명을 띠고 일본에 온 사람들처럼 두리번거렸지만 보도블록은 물론이고 후미진 뒷골목에도 쓰레기는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를 방치했을 경우 법적 처벌을 받거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서 깨끗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현상일 것이다. 해산물을 파는 시미즈어시장에 가서 받은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생선을 파는 어시장인데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고 바닥에는 물기가 묻어 있지 않았다. 생선 내장이나 부산물을 버려둔 쓰레기도 물론 보이지 않았다.
   
   내가 놀란 것은 깨끗함만이 아니었다. 디테일에 관심을 갖는 세심함도 압권이었다. 시즈오카미술관을 가려고 버스를 탔을 때였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내리려면 미리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런데 내리기 전부터 문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차가 정차하면 그때야 비로소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걸어갈 때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승객들은 민폐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천천히 걸어 나갔다. 특이한 것은 사람이 타고 내릴 때는 운전수가 차 시동을 껐다. 만의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문 옆의 안내판을 보니 ‘시동이 꺼지면 일시적으로 에어컨이나 난방이 멈출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색다른 것은 또 있었다. 좌석 뒷부분의 잡지나 물 등 작은 소지품을 담을 수 있는 그물망 자리에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배터리가 다 되어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일본 사람들의 세심함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내릴 때가 되어 벨을 누르려고 보니 좌석 천장에 버튼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글씨가 보는 사람이 읽기 편한 방향으로 적혀 있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선한 신은 디테일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분명 선한 신이 살고 있는 나라였다.
   
   놀라움은 계속됐다. 꼬부랑 할머니에게 좌석을 양보한 대가로 “아리가토 고자이마시타!”라는 큰절을 받고 후지산역에서 내렸을 때였다. 화장실에 들러 용무를 보고 나서 물을 내리려는데 손잡이가 없었다. 대신 물내림 표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손을 가져다 대라는 표시가 보였다. 손을 가져다 댔더니 저절로 물이 내려갔다. 다른 사람이 만진 손잡이를 나도 만져야 하는 찝찝함을 고려한 자동화시스템이었다. 생활 속에서 필요하거나 불편한 것은 끊임없이 개선하고 보충해나가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화장실에까지 큰돈을 투자하는 것은 낭비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과연 그것은 낭비였을까. 가와구치호의 료칸은 무료로 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온천에는 수건을 놔두지 않고 대신 큰 수건 한 장과 머리에 두를 수 있는 작은 수건 하나를 사람 수에 맞춰 각 방에 놓아두었다. 투숙객은 각자에게 주어진 수건 한 장으로 하루를 써야 한다. 온천에 수건을 아예 비치해두지 않으니 낭비가 훨씬 줄어든다. 아낄 것은 아끼고 필요한 데는 투자하는 센스가 돋보였다. 화장실에까지 큰돈을 투자하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을 버렸다. 투숙객에게 유카타(浴衣)라는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게 하는 것도 일본을 이해하게 하는 좋은 방편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그 사람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경 쓰는 나라 일본. 이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왠지 내가 존중받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유카타를 입고 료칸 베란다에 앉아 느긋하게 후지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온갖 생각들이 왔다가 사라졌다. ‘그래, 너희들은 우리나라를 피멍 들게 해놓고 이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살고 있다는 거지? 위안부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고, 강제징용에 대해 배상도 하지 않으면서 너희들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거지?’ 괘씸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렇다한들 일본에서 배울 것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인 문제는 문제대로 끝까지 책임을 묻되,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배움을 주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배우냐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대상을 가리지 말고 배워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후지산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주간조선 2547호
등록일 : 2019-03-11 09:59   |  수정일 : 2019-03-1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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