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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트레킹 “나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별이 되었다”

글·사진 | 민미정 백패킹 여행가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좌충우돌 1박2일 캠핑 스토리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우연히 어느 사진작가의 반영 사진을 보았다. 하늘과 또 하나의 하늘이 위아래로 공존하는 곳. 새하얀 땅 위로 파란 하늘이 맞닿은 광활한 배경 어딘가에 오직 작은 ‘점’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 처음 우유니 소금사막 사진을 봤을 때, 이렇게 신비로운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살라르 데 우유니Salar de Uyuni는 볼리비아 남서쪽 안데스산맥의 해발 3,656m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금사막이다. ‘살라르’는 스페인어로 ‘소금기가 있는 곳’을 뜻하는데, 소금사막은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함께 솟아오른 바닷물이 건조 기후에 증발되어 생성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우기에 내린 빗물에 녹은 산의 각종 미네랄 성분이 배출구가 없는 분지에 퇴적되어 호수를 이루다가 물이 증발해 만들어진 것이 소금사막이라는 얘기도 있다. 어떻게 생겨났든 남미 대륙을 여행하며 볼리비아에 가까워지자 그 믿을 수 없었던 사진들을 떠올리며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우유니로 향하는 모든 교통이 파업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남미 여행자들의 로망인 우유니 소금사막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어떤 이는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가 우유니 마을까지 걸어갔다는 소문도 들렸지만, 확실치 않은 정보였다. 모험을 감행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나 혼자라면 걸어서라도 가겠지만, 칠레부터 동행하고 있는 동생 ‘작은 미정(송미정은 나와 이름이 같아서 작은 미정이라고 부른다)’과 함께여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다행히 칠레를 떠나기 전날, 파업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긴가민가했지만, 내 몸은 이미 100m도 못 가서 멈춰 버릴 것 같은 낡은 우유니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우유니마을은 관광지라고 하기엔 한적한 분위기였다. 숙소를 잡고 에이전시에 들러 데이투어(당일 여행)를 예약했다. 다음날 아침 호스텔 앞으로 픽업 온 차량에 올라타자 콜롬비안 친구 두 명과 한국인 한 명, 볼리비안 부부가 타고 있었다.
 
콜롬비아 사람인 가브리엘과 제랄은 대뜸 우리에게 캠핑을 할 거냐고 물었다. 순간 귀가 번쩍 뜨인 나는 앞뒤 가릴 것도 없이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하고, 호스텔로 돌아갔다. 백패킹을 즐기는 나에게 소금사막 가운데서의 캠핑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대충 배낭을 꾸린 후, 가브리엘의 안내로 저녁에 먹을 간단한 음식을 샀다. 꿈에 그리던 소금사막에서 별을 보며 캠핑이라니!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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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마을의 성당 앞에 모인 주민들. 주일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성당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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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의 밤하늘을 함께 만끽했던 친구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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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사막 위에 유유히 떠있는 잉카우아시섬. 잉카의 전령이 쉬어갈 만큼 신비로운 분위기의 선인장들로 덮여 있다.

잉카 전령이 쉬었다는 물고기섬
 
우유니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콜차니colchani마을에서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소금박물관을 관람했다. 빨리 소금사막을 밟고 싶었던 나는 쇼핑을 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멤버들의 쇼핑 시간은 짧았고, 재빨리 다음 장소인 ‘기차묘지’로 이동했다. 19세기 말 태평양 항구로 광물을 운반하는 수송 기차였으나, 지금은 황량한 벌판 위에 온갖 낙서를 뒤집어쓴 채 붉게 녹슨 모습으로 바람이 불면 그대로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프는 다시 모인 멤버들을 싣고 드디어 하얀 벌판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소금사막이었는데 건기라 물이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는 가이드의 무성의한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늘을 그대로 머금은 소금호수 위에서 데칼코마니 같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건기인 탓에 꿈에 그렸던 사진은 포기해야 했다.
 
나는 정해진 계획 없이 1년 넘게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차가 멈춰 선 곳에 발을 내디뎠다. 강렬한 태양에 반짝이는 순백의 알갱이들 위로 육각형으로 오래된 흉터처럼 솟아오른 패턴은 하얀 벌집 모양의 양탄자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작은 미정과 나는 멤버들을 불러 모아 미리 봐 두었던 원근감을 무시한 콘셉트를 설명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어설픈 동작을 보며 웃느라 제대로 된 결과물은 거의 없었지만,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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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의 전통복을 입고 머리를 정갈하게 땋은 중년 여성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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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광활한 대지 위를 거침없이 내달렸을 증기 기관차는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채 ‘기차 묘지’에서 세월을 버텨내고 있었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지프에 몸을 실은 우리는 물고기섬이라 불리는 ‘잉카우아시섬Isla Incahuasi’으로 이동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무인도처럼 하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잉카우아시는 잉카inca와 집을 뜻하는 우아시huasi의 합성어로, 잉카제국 시대에 잉카의 전령들이 쉬어갔다는 전설과 함께 거대한 고슴도치처럼 크고 작은 선인장으로 덮여 있었다. 1년에 1㎜ 밖에 자라지 않는다는 선인장은 높이로 그 세월을 가늠할 수 있었다.
 
드디어 야영지로 이동하는 시간, 차창 밖의 풍경은 하얀 사막과 파란 하늘이 이어지며 그대로 정지된 듯했다. 다만 바퀴가 소금 결정체를 짓누르는 소리를 통해 지프가 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석양이 지평선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을 때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카르 기념비Monument al Dakar Salar de Uyuni가 있는 호텔이었다. 호텔 옆에는 우유니사막의 상징인 만국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플래그 존이 있었다. 돌아가려는 가이드에게 다음 날 몇 시에 차량 픽업이 가능한지 묻자, 터무니없이 비싼 비용을 요구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오지 않겠다고 협박하듯 얘기했다. 가브리엘은 지프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자며 캠핑은 포기하자고 했다.
 
모두 장기 배낭여행자들이라 추가 비용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도 앱으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콜차니마을까지 약 12㎞ 거리였다. 3시간 정도만 걸으면 충분히 사막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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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의 플래그존은 다국적 국기가 세워진, 기념사진 찍기 좋은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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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다카르 랠리를 개최한 기념으로 세워진 ‘다카르 기념비’는 많은 바이커들이 찾는 명소이다.

사막에 벌어진 막춤의 향연
 
내일 새벽 일찍 걷기 시작하면,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 차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캠핑을 해보고 싶다는 모험심 강한 작은 미정은 물론, 망설였던 가브리엘과 제랄도 함께하기로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고는 지프를 타고 돌아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플래그 존으로 뛰었다. 각국의 깃발이 자유롭게 나부끼고 있었고 우리 또한 각자의 국기 아래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해가 지자 굉음과 함께 달려오던 바이크 두 대가 멈춰 섰다. 바이크로 남미를 여행 중인 콜롬비안 부자인데 다카르 살라르 기념비는 많은 바이크 마니아들의 로망이라고 했다.
 
우리가 음식을 데우는 동안 그들은 와인을 꺼냈다. 풍족하지 않은 술과 음식이었지만 밤하늘의 은하수를 조명 삼아 우리의 인연을 자축했다. 와인을 비운 지 오래였지만,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던 조촐한 파티는 사막의 추위가 뼈에 사무칠 무렵에야 끝이 났다.
 
나는 우모복을 챙겨 입고 카메라를 들고 캠프사이트를 벗어났다. “뽀득 뽀득” 소리가 한겨울 꽁꽁 얼어붙은 눈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놓고,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그 순간 세상에 빛을 내는 온갖 것들이 하늘로 모여들고 있는 듯 했다. 별이 너무도 촘촘해 더 이상 빛날 공간이 모자랄 정도로 뒤엉킨 채 황홀한 은하수를 빚어내고 있었다. 나 또한 수많은 별 중 하나가 되어 그 속에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순간 나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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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도 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사막을 걸어 우유니마을로 향한다. 우유니 사막 트레킹은 세계 여행 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새벽 4시. 알람소리에 눈을 떴지만 정신은 혼미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사막의 복사열과 싸우며 걷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기에 모두를 깨워 텐트를 철수했다. 배낭을 꾸리고, 바이크 부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오직 자동차 바퀴 자국을 따라, 하늘과 맞닿아 있는 하얀 지평선 끝에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해가 떠오르는 저곳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만 알고, 걷고 걸었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도 모른 채, 더위가 우리를 괴롭히기 전에 이 경이로운 소금 사막을 벗어나야만 했다.
 
동쪽에 위치한 콜차니마을을 향해 걸었다. 너무 빨리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걸었다. 어젯밤의 아름다웠던 풍경 이야기를 하며 힘든 것도 지루함도 모른 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바이크 부자가 우리를 지나가며 인사했다. 고교 시절 밴드의 싱어로 활동했다는 가브리엘은 콜롬비안 음악을 들려주었고, 춤을 좋아하는 제랄은 그에 맞춰 춤을 추었다. 작은 미정도 합류했다. 나는 춤에 관한 한 몸치였지만, 빠질 순 없었다.
 
우리는 배낭을 내려놓고 막춤을 췄다. 능숙한 춤사위로 사막 위를 미친 듯 휘저었다. 무더운 사막 12㎞ 거리는 걱정에 없었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젖힌 후, 다시 길을 걸었다. 마침내 하얀 사막을 벗어났을 때, 때마침 작은 트럭 한대를 만났다. 그 차를 타고 마을로 나갈 수 있었다. 그 이후 남미여행 중 나는 콜롬비아로 넘어갔고, 가브리엘을 다시  만나 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그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우유니에서의 추억을 다시 이야기하며 배꼽 빠지게 웃었다. 더없이 아름다웠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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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었다. 밤새 쌀쌀했던 소금사막은 붉은 태양이 떠오르며 추위를 떨쳐내고 있었다.

우유니 여행 정보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비자가 필요한 나라로 입국 전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하며, 페루나 칠레에서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여행적기 우기가 막 끝난 12~3월에 가야 소금사막 위에 고인 빗물에 반영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구름이 많아 은하수를 보기 어렵다.
 
투어  
 
데이+선셋 투어 오전에 시작해 소금사막의 낮 풍경과 일몰을 감상한다
 
스타라이트+선라이즈 투어 새벽에 시작해 소금사막에서 별과 일출을 감상한다
 
선셋+스타라이트 투어 늦은 오후에 시작해, 소금사막에서 일몰과 별을 감상한다
 
2박 3일 투어 투어 하면서 칠레 아타카마로 바로 넘어가는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 화산과 플라밍고, 다양한 호수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주의할 점 우유니 사막은 해발 3,600m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고산증이 올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므로 1박 이상의 투어를 할 경우, 방한에 유의해야 한다.
출처 | 월간산 589호
등록일 : 2018-11-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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