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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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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돌로미테]
딸과 함께 오른 내 생애 최고의 비아페라타

글·사진 | 임덕용 꿈 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초보자도 오를 수 있는 돌로미테 고산거벽의 익스트림 스포츠 코스

내 딸 유리는 나와 달리 공부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랬다. 3개월이라는 이탈리아의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방학 이튿날부터 학교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과연 내 딸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나와 DNA가 다른 게 분명하다.

나는 학교 가기를 제일 싫어했고, 공부는 죽어라 기피하고, 시험 보는 날은 1~2시간만 마치고 산으로 도망갈 생각만 했다. 나와는 분명 다르다. 유럽인들은 우리 부녀를 복사해 놓은 것처럼 똑같다고 항상 말했다. 노란 피부색깔에 만돌라(아몬드류)를 닮은 찢어진 눈에 검은색 머리카락도 같다고 말한다.

운동선수처럼 열심히 훈련을 하지는 않지만 여러 운동을 좋아한다는 점과 겉모습은 닮은 셈이다. 그중에서 가장 쏙 빼 닮은 건, 고집불통과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목숨을 걸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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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본 발 가르데나 바위산줄기. 좌측 끝의 독립봉에 피샤두 비아페라타 코스와 우측 끝 봉우리에도 비아페라타 코스가 있다.

비아페라타, 쇠로 만들어진 길

유리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돌아왔다. 1년에 여름겨울을 포함해도 2개월이 안 되는 귀한 시간을 이용해 집에 온 것이다. 유리는 아빠를 위로하고 싶었는지, 갑자기 비아페라타Via Ferrata 등반을 가자고 한다.

이탈리아 돌로미테의 암벽트레킹 루트인 비아페라타는 ‘쇠로 만들어진 길’이란 뜻이다. 제12차 세계대전 중 티롤알프스와 돌로미테의 고산거벽에 전쟁 물자를 나르기 위해 암벽에 만들어진 길이다. 암벽에 쇠말뚝을 박고 와이어로프로 연결해 안전하게 암벽을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 루트에 따라 등반 난이도가 나뉘는데 6~7세 어린이와 노인층도 오를 수 있는 대중적인 암벽 코스다. 헬멧과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하며, 와이어로프에 카라비너로 안전벨트의 연결고리를 건 상태로 안전하게 오르는 익스트림 스포츠인 셈이다.

나는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딸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아들은 독일 뮌헨에서 공부하고 있다. 가끔 아이들이 집에 오면, 산으로 튈 생각만 하는 아빠의 구원자가 되어주는 자식들이 그렇게 고맙고 예쁠 수 없다.

방학 기간 집에 와도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는 딸이 산에 가자고 하니, 덩실덩실 춤이 절로 춰진다. 새벽까지 공부한 딸과 함께 늦은 아침을 먹고 장비를 챙겨 발 가르데나Val Gardena의 파소 가르데나Passo Gardena로 차를 몰았다. 이미 산에는 인기척이 거의 없는 시간이었고 생각보다 눈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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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도 가볍게 요들리 요들”이란 요들송 노랫말처럼, 임유리양이 비아페라타로 이어진 산길을 즐겁게 걷고 있다.

발 가르데나는 볼차노Bolzano에서 1시간 거리이다. ‘돌로미테의 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면 축구장 600개 크기만큼 그야말로 광활한 초원 지대가 나온다. 오르티세이Ortisei는 유럽 알프스 초원 지대 중에서도 가장 크고 넓다. 하절기에는 소를 비롯해 여러 동물을 방목하고, 겨울에는 돌로미티의 거대한 스키장이 된다. 전체 2,500km의 슬로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산 크리스티나San Cristina의 아름다운 마을부터 셀라산군과 그랑 사소의 거대한 돌덩어리 파노라마가 압도적이다. 이곳 마을은 제1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돌로미테의 전쟁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전쟁의 부속품이었던 군 막사와 철조망, 참호, 벽 사이 터널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이런 전쟁유물이 중요한 관광 상품이 되었으며, 고산의 격전지를 트레킹이나 스키로 도는 코스도 무척 유명하다.

시간은 이미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하산해야 할 시간이지만 우리 부녀의 산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오후 6시경 어두워지므로 아직 시간이 있었다. 눈이 많아 바위길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겁먹은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딸에게는 최고의 알피니스트 아빠인데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더욱이 딸이 산에 가자고 해서 온 것이지 않은가.

검은 구름이 갈수록 짙어져, 겉으론 평온한 척 했지만 속으론 걱정이었다. 눈이나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 계속 하늘을 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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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의 벽에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아빠를 따라 산을 타는 것이 익숙한 유리였지만, 무척 오랜만의 산행이었다. 유리는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시원함을 즐기고 있었다.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스트레스를 산바람에 다 날려버리는 모습이 보기 좋아, 카메라를 꺼내 찍게 된다. 내가 어떤 포즈를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딸은 모델처럼 여러 포즈를 취해 준다. 딸에게서 40년 전 데이트하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급경사 산길에서 눈을 만지며 즐거워하다가 벽 아래에서는 매우 차분하고 익숙한 솜씨로 벨트와 헬멧을 착용한다. 초등학생 시절 암벽등반학교를 수료했고, 가끔 인공암장과 자연암장 등반은 물론 비아페라타에서 많은 등반을 했기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눈 쌓인 바윗길이 걱정되어 보조 자일을 사용할까 고민했지만, 오를 때는 거추장스러워 필요 없다고 판단해 하산길에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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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돌덩어리’라는 뜻의 ‘그랑 사소’가 웅장하게 솟았다. 거의 800m에 이르는 수직벽이며 전체 벽의 넓이가 3㎞나 된다. 봄의 길목이라 눈이 녹으면서 초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에 미친 아빠와 명석한 딸

눈이 깊은 바위로 된 쿨와르를 조심스럽게 올라 비아페라타의 출발지점인 쇠사다리에 닿았다. 유리는 당황하기보다 벽의 눈을 손과 발로 치우며 점점 경사가 급해지는 돌로미테의 벽 등반을 즐기고 있었다. 대견한 딸을 보는 아빠의 즐거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대학에서 여러 운동을 하였기에 매우 날렵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빨랐다. 영국 케임브리지 의대에 재학 중인 딸은 하루 10~12시간 병원과 학교를 오가는 엄청난 수업을 소화하면서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운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영국 정부에서 학비의 절반 이상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엘리트반이라 학업의 강도가 셀 수밖에 없었다. 케임브리지 의대 6년 과정을 4년 만에 마치는 엘리트반은 720명 재학생 중에서 20명만 뽑는 최상위 클래스다.

딸은 아마추어 조정팀 학교 대표선수인데, 주 3회 합동 운동을 하고 주말이면 학교를 끼고 도는 좁은 운하에서 시합을 한단다. 유럽 어느 곳을 출장 가더라도 트렁크에 각종 장비와 기구를 싣고 다니며 이 산 저 산으로 튈 기회만 엿보는 아빠의 피를 조금이나마 이어받은 게 분명했다.

진득한 나이가 되었어도 가끔은 거짓말로 출장 간다고 하고산으로 튀는 일도 있어 가족에겐 미안하지만 산에 대한 정신병적 열망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다. 아직 현역처럼 산에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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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티나산군의 파노라마.

날씨를 걱정하는 사이 벌써 벽 상단에 진입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날씨 걱정은 안 하기로 했다. 이제는 나빠진다고 해도 정상에 올랐다가 빨리 하산하는 길만이 유일한 탈출로다. 하늘은 걱정만 하는 내가 불쌍했는지 정상에 오르자 해가 잠시 나타나 비추었다. 여유 만만한 유리는 어린 아이처럼 재잘거린다. 나중에 아빠와 함께했던 이 순간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공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나를 안 닮았지만 고집과 집념, 굳은 의지, 그리고 신들린 듯 노는 것 하나만은 나를 쏙 빼닮았다. 발아래 펼쳐진 파소 가르데나의 파노라마를 넘어 솟은 산이 한라산이란 상상을 한다. ‘거대한 돌덩어리’라는 뜻의 그랑 사소 뒤에는 울산바위가 보이고, 셀라산군 파노라마 뒤로는 설악의 크고 작은 준봉들과 지난 가을 악우회원들과 같이 오른 ‘한 편의 시를 위한 길’과 장군봉도 보인다.

반대편으로는 발 푸네스계곡과 돌로미테 달력 사진과 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오들러산군이 펼쳐진다. 더 멀리 트레 치메 라바레도산군의 명봉 펠모와 토파나와 친퀘토리도 보인다. 뒤로는 장미 공원 로젠가르덴산군이 펼쳐진다. 넓은 돌로미테의 산줄기 뒤로 산에만 미쳐서 세상만사를 제치고 살았던 나의 지난 세월이 보이는 것 같다.
등반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간만의 산행이 재미있어서인지 아니면 아빠에게 효도를 해서인지 딸은 신이 나서 재잘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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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정상에 오른 부녀. 부녀지간이라 설명하지 않아도 닮아 있다. (사진 아래)눈 덮인 벽을 따라 내려서는 하산길. 멀리 푸네스계곡의 오들러 벽이 보인다. 라인홀트 매스너가 유년시절 등반을 배웠던 곳이다.

“아빠, 90세까지 지금처럼 등반하면서 살아야 해.”

“엉? 왜?”

“내가 아빠 90세 생일 선물로 커다란 상을 받아서 줄 거야.”

“뭐? 나는 빨리 치매 걸려서 네 시험 대상이 되려고 했는데?”

“안 돼. 아빠 말고도 연구할 치매 환자들은 너무 많아. 아빠는 그냥 지금처럼 산에 열심히 다니고, 스키 타고, 스노보드 타고, 클라이밍만 열심히 하면 치매도 안 걸리고 90세까지 살 수 있어.”

이제부터는 무조건 길고 가늘게 살아야 한다. 조금 비겁하고 비굴하게 살더라도 무조건 90세가 넘도록 길게 살아야 한다. ‘남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지 나만의 품위를 지킬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속으로 되뇌며 집으로 돌아간다.
출처 | 월간산 582호
등록일 : 2018-04-16 09:31   |  수정일 : 2018-04-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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