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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에코 트레일, 유불선 3교에 성모 마고신앙까지 간직

글 | 박정원 월간산 편집장

샤머니즘도 품은 복합문화 형성지… 각종 신화 전설 수두룩
 
지리산은 두말 할 나위없는 한국 최고의 명산이다. 일부 풍수지리전문가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의 안산(앞산의 개념)이 백두산이고, 백두산의 안산이 지리산이다”라고 말한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지리산은 백두대간이 멈추는 천하의 대명당’이라 설명했다. ‘古語曰 天下名山 僧占多고어왈 천하명산 승점다천하의 명산을 승려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은 모든 역사서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고대로부터 아주 중요한 산악숭배대상지였다. 뿐만 아니라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의 교차지점으로서, 지리산만의 독특한 문화도 형성했다. 지리산문화는 한국인의 기상과 관련될 정도로 폭 넓고 깊다.
 
지리산의 옛 이름인 두류산頭流山에 관해서는 <동국여지승람>에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곳이라고 하여 두류라고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른바 백두대간으로서의 지리산인 것이다. 조선 선비들이 남긴 숱한 유산록에 두류산이라 지칭한 것이 80% 이상이나 된다. 유교적 색채를 띤 이름인 것이다. 지리산의 한자인 ‘智異山’은 세상과는 다른 지혜로운 사람이 산다는 의미인데, 이는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또한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은 도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겠다. 지리산의 다양한 이름만큼 다양한 문화에 유불선 3교의 종합문화를 낳고 키웠다. 
 
첫 출발지인 천왕봉 정상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라고 쓴 정상비석이 있다. 이 내용은 전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닌 듯하다. 옛날에는 ‘萬古 天王峰 天鳴猶不鳴만고 천왕봉 천명유불명’이라 새겨진 청석표주와 지리산 산신령을 봉안하는 성모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명의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뜻을 그대로 쓴 것이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지리 8경’ 중의 으뜸인 ‘천왕일출’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광경이다.
 
천왕봉 유래를 알려면 성모신앙부터 파악해야 한다. 성모신앙은 천왕 성모라 하고, 마고麻姑 때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천왕성모는 천지창조의 주인인 율려이고, 이 율려에 의해 우주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마고가 탄생한다. 이 마고신화가 바로 우리 민족의 탄생신화인 것이다. 환인·환웅·단군 이전의 이야기다.
 
마고성모는 지리산 천왕할매로 알려져 있는 천왕성모로, 마고 시절부터 우리 민족을 보호해 온 수호신이다. 따라서 우주창조의 어머니인 마고성모가 내려온 자리가 바로 천왕봉이고, 그 이름은 노고단에 남아 있다. 노고老姑는 늙은 할멈을 의미하고, 마고와 일맥상통한다. 노고단은 그래서 마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천왕성모는 박혁거세 낳은 성모설
 
이 외에도 천왕성모는 박혁거세를 낳은 성모라는 설과 고려 태조 왕건을 낳은 위숙황후라는 설도 있으나, 이는 지리산 마고성모보다는 훨씬 이후의 이야기다. 어쨌든 지리산 천왕봉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있게 한 산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지리산 천왕봉에 고려 태조 왕건은 1,000년 전에 성모사라는 사당을 세우고, 성모석상을 봉안해 제사를 받들었다. 노고단에는 신라시대부터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다. 성모는 나라의 수호신이었고, 매년 봄·가을에 국태민안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후대에 성모사의 성모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로 신앙되었고, 남악사의 성모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신앙되었다. 지리산은 결국 신라와 고려의 시조를 잉태한 산인 셈이다.
 
성모는 나라의 시조를 낳은 것만 아니라 불교 승려와 만나면서 무당을 낳았다. 무당의 시조 전설에 함양의 지리산 암천사에 법우화상이라는 승려가 천왕봉의 성모천왕과 혼인한다. 그는 8명의 딸을 낳아 무술을 가르쳐 8도에 한 명씩 보내어 무업을 행했다고 전한다.
 
천왕봉에서 내려오면 통천문通天門이 나온다.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문이다. 동굴 입구에 옛날 필적으로 ‘通天門’이란 대각자가 보인다. 예로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 한다는 전설도 있다. 
 
천왕봉과 가장 가까우면서 자매봉으로 알려진 제석봉(1,808m)이 우뚝 솟아 있다. 제왕이 자리했다는 제석봉이다. 제왕이 성모천왕을 지키는 듯한 느낌이다.
 
조금 내려가면 장터목이다.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산청 시천 주민과 함양 북쪽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 장場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데서 이름 붙여진 장터목이다.
 
봉우리들은 연하봉~삼신봉~촛대봉으로 이어진다. 연하봉(1,730m)은 구름이 노는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뜻으로 ‘지리 8경’ 중의 하나다. 삼신봉은 세 명의 신이 놀았던 봉우리며, 촛대봉(1,703.7m)은 한 여인이 산신령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촛대를 켜고 천왕봉을 향해 빌다가 돌로 굳어버린 모습이라고 전한다.
 
촛대봉을 지나서 한국의 3대 고원평원 중에 가장 넓은 세석평전에 도달한다. 세석평원은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 그 주위가 12㎢가 되고, 면적이 무려 30여만 평에 달해 남녘의 개마고원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에 한국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도 자생하고 있으며, 세석대피소도 있다. 이어 낙남정맥의 분기점이 되는 영신봉(1,651.9m)이 나온다. 영신봉은 신령스런 봉우리라는 의미다.
 
칠선봉(1,558m)이 영신봉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봉우리 자체가 암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일곱 개의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서 정상을 이룬 모습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형상과 같다고 해서 칠선봉이라 불린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비경의 암봉들이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돋운다. 이어 정상부가 각이 지지 않고 평평한 것이 덕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덕평봉(1,521.9m)을 지난다.
 
벽소령대피소가 서서히 보인다. 벽소령(1,350m)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의 허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 즉 지리산의 남북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대표적인 곳이다. 벽소령에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碧宵嶺’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곧 이어 나오는 형제봉은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비슷한 모습이라 해서 명명됐다. 언뜻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石像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옛날 지리산에 두 형제가 수도하고 있을 때 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간곡한 유혹을 받았으나 형제가 다 같이 이를 물리치고 도통성불하고,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산녀의 유혹을 경계해 도신道身을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두 개의 석상이 됐다고 전한다.
 
이윽고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다. 연하천은 높은 지대에도 불구하고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烟霞泉’이라 했다고 한다.
 
1,500m가 넘는 지리산의 이 높은 봉우리들은 북쪽과 남쪽의 기온차를 매우 심하게 만들 뿐 아니라 지역성 강우와 폭설을 내리게 하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자주 변하는 기후 조건은 불교보다는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기는 마고할미와 같은 민간신앙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함양남원 등지가 변강쇠전흥부전춘향전 등 민중소설의 배경이 된 것도 이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지리산의 장승은 변강쇠의 모티프가 되었고, 신선사상은 흥부전의 강남제비와 박씨를 낳는 계기를 가져다 줬다.
 
지리산은 민간신앙인 샤머니즘과 불교뿐만 아니라 많은 사상을 품은 산실로서 구실을 했다.
출처 | 월간산 582호
등록일 : 2018-04-1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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