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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여행, 영하 30℃의 바이칼호수와 몽골

글·사진 | 이원규 시인

오랫동안 광각의 풍경을 보다가 아주 작은 변산바람꽃을 초접사로 찍어봤다. 맨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꽃의 디테일을 보여 줬다. 한국 특산종인 변산아씨의 연분홍빛 흰 잎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꽃받침 안쪽에 노란 꽃잎들이 관처럼 입을 내밀고 있다. 그 안쪽의 연보랏빛이 수술, 중앙의 연초록이 암술이다. 지난겨울의 혹한 때문인지 꽃빛이 더 선명했다.

요즘 노안老眼으로 초접사를 공부한다. 나이 들면서 수정체의 탄력성이 떨어지니 먼 거리는 잘 보이고, 가까운 곳은 흐리게 보인다. 초점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은 디테일의 문제다. 노안은 가까운 내가 나를 잘 못 보고, 좀더 먼 곳, 다른 사람을 더 잘 보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허물은 안 보이고 남의 허물만 더 잘 보게 된다는 뜻이다. 갈수록 지혜로워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의심이 많거나 속 좁은 좀팽이가 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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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빙판 위에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그동안 살아온 것만으로 통계를 내듯이 마구 사람들을 재단해 온 날들을 반성한다.

우리들의 시력은 좋아야 2.0이다. 몽골 사람들은 매와 독수리처럼 시력 8.0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먼 곳, 인생이라는 것은 구도의 문제이며, 가까운 곳, 인생지사 오감은 디테일의 문제다. 한쪽에만 깊이 빠지지 않고 미시와 거시, 광각과 접사의 세계를 잘 넘나드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먼 곳에도 꽃은 피고, 가까운 곳에도 봄꽃은 피어나기 때문이다.

모처럼 그 산 그 숲속에 들어갔더니 너도바람꽃이 막바지 꽃빛을 보여 주고, 만주바람꽃들이 바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이윽고 섬진강에도 넉넉하게 봄비가 오시니 지난해보다 한참 늦었지만 매화 산수유꽃들이 달음박질치며 북상하기 시작했다. 섬진강을 찾아온 검독수리도 조만간 몽골 초원이나 시베리아로 돌아갈 것이다.

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1주일 동안 바이칼호수와 몽골을 다녀왔다. 난생 처음 설날 새 아침을 머나먼 땅 바이칼호수 알혼섬에서 맞은 것이다. 신성한 샤먼바위  ‘부르한’ 앞에 바이칼 보드카 한 병을 올리고 새해 큰절을 올렸다. 일행들이 둥글게 모여 서로 맞절을 하고는 바이칼호수에서 바이칼 보드카로 음복을 했다.

이번 대륙여행의 이동경로는 인천공항-몽골-이르쿠츠크-바이칼호수-국제열차(이르쿠츠크-울란우데-몽골 울란바토르)-테를지 코스였다. 서울의 ‘왕언니’ 최정희 누님의 무한 배려로 영하 30℃를 넘나드는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도 오히려 덥다 못해 땀띠가 날 정도로 행복했다. 동행자 7명의 ‘얼떨결에 복 받은 연맹원들’(얼복연맹)은 최정희, 이원규(시인), 김영우(셰프), 김의현(시인), 박정호(전기엔지니어), 김명지(시인), 신희지(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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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수 알혼섬의 설경.

시베리아에서 만난 몽유운무화

비행기를 타고 몽골을 거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첫날밤은 앙가라 강변의 노스시호텔에서 잤다. 얼복연맹원들과 유쾌하게 술을 마시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영하 30℃의 앙가라 강변을 어슬렁거렸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강, 앙가라강에 물안개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겨울 시베리아에서 ‘몽유운무화’를 만난 것이다. 섬진강과 춘천 소양호 아래에서 보았던 우리나라 물안개의 안부를 물으며 바이칼호수 알혼섬과 연결된 앙가라강의 전설을 되새겼다.

바이칼호수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은 예니세이강과 합류할 때까지 중앙시베리아 평원 1,779km를 가로지른다. 영하 50℃에도 앙가라강은 얼지 않는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 버전의 전설로 내려오는데 강과 주변 지역의 명칭과 일맥상통한다.

한 전설에 따르면 바이칼 신의 아름다운 고명딸인 앙가라가 이웃 청년 이르쿠트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했다고 한다.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사랑한 앙가라가 야반도주하자 분노한 바이칼 신이 거대한 바위를 던졌다는데 그 바위에 깔려 죽은 자리가 바로 알혼섬의 샤먼바위(부르한)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예니세이를 잊지 못해 흘린 앙가라의 눈물이 마침내 강을 이뤘으며, 앙가라강이라 이름 붙은 그 눈물의 강은 지금도 얼지 않고 흐른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과 연애는 국경이 없고, 아버지든 신이든 그 누구도 억지로 조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눈물이 얼지 않는다는 것은 다만 전설 속의 이야기일 뿐 ‘눈물도 얼 수 있다’는 것을 앙가라 강변에서 절감했다. 일찍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한겨울 교회 마룻바닥을 닦다가 누군가의 얼어붙은 눈물을 보고는 ‘하느님의 눈물’이라 명명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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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게르의 연기와 칭기즈칸 기마상.

유속이 빠른 앙가라강이 얼지 않듯이 어쩌면 우리들의 슬픔도 계속 빠르게 흐른다면 울 틈도 없고, 눈물마저 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지사 슬픔이 잠시라도 멈추는 순간 눈물도 얼 수도 있다는 역설이 생긴다. 하지만 그 누가 지속적인 슬픔을 꿈꾸겠는가. 얼지 않는 앙가라강에서 누군가의 한숨처럼, 슬픔의 맞불처럼 오래도록 새벽 물안개가 차올랐다. 겨울 대륙여행의 출발부터 예감이 좋았다.

울란우데 출신인 브리야트족 현지 가이드, 25세의 착하고 어여쁜 아가다 페트로바와 함께 16년 만에 다시 바이칼호수 알혼섬에 가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인 국제열차를 탔다.

6박7일 동안 시베리아와 몽골의 길을 달리고 달렸다. 승합차 앞자리에 앉는 특혜를 누리며 울퉁불퉁 하염없이 출렁거리며 대륙의 길을 줄였다 늘였다 사진을 찍었다. 때로는 삼각대를 세우고 제대로 찍고 싶었지만 워낙 먼 길이라 자주 세울 수 없으니 언감생심이었다. 나도 흔들리고 길도 흔들리면서 바이칼호수와 알혼섬, 그리고 몽골의 테를지 등 겨울 대륙의 길들이 기록으로 남았다. 아무리 춥고 험하더라도 길이라면 이쯤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겨울 시베리아와 몽골에서 내 몸과 마음속의 지도에 지워져 있던 길들을 하나 둘 새겨 넣었다.

길은 발자국들의 화석이다. 자주 가면 길이 되고, 그 누구도 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하지만 대륙의 길은 온통 열려 있었다. 길 밖에도 길이 있었다. 눈 덮인 몽골 초원 그 모두가 길이요, 바이칼호수도 얼어붙으면 그 자체가 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38선에 몸통이 잘린 채 그 아랫도리 섬나라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이미 정해진 길만 따라 다녀야했다. 상상력마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한반도 종단열차의 기적소리가 그립고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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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검독수리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도 참매와 말똥가리를 키운 적이 있다.

대륙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별사진

아무래도 겨울 대륙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별사진’이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일정을 잡을 때도 ‘왕언니’ 최정희 누님과 함께 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음력 그믐날을 낀 설 연휴로 잡았다. 출발하기 전부터 시베리아와 몽골 날씨를 체크했다.

그런데 여행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해졌다. 흐린 날씨 예보가 자주 이어지는 것이었다. 첫날의 몽골 테를지의 날씨만 맑을 뿐 남은 일정은 거의 모두 흐린 날씨로 예보되었다.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하늘의 뜻을 어찌하랴. 그런데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여행사의 일정이 통보도 없이 바뀌었다. 몽골 테를지는 나중에 가고 먼저 바이칼호수부터 간다는 것이었다. 일기예보로는 최악의 경로였다. 단 하룻밤 주어진 테를지의 별사진도 허탕인데다, 바이칼호수의 날씨는 아예 포기 수준의 예보였기 때문이다. 더없이 맑은 몽골을 지나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니 저녁 날씨가 점점 더 흐려지고 내 마음 한구석 또한 흐려지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이른 새벽에 앙가라강으로 나갔더니 영하 30℃의 혹한 속에서 물안개가 오르고 있었다. 아, 예감이 너무 좋았다. 물안개가 오른다는 것은 반드시 날씨가 맑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5시간을 달려 바이칼호수 얼음판 위를 지나 알혼섬에 도착하니 저녁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후지르마을에 짐을 풀자마자 별들의 야상곡이 울려 퍼졌다. 몽골 테를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한구석에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예보와는 확연히 다르게 구름 한 점 없는 대륙의 겨울 별들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정말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 대륙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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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7℃에서도 일을 하는 시베리아 사람.

잘 보이는 하늘의 별, 사진 찍으면 시원찮아

바이칼호수와 알혼섬, 그리고 몽골에서는 밤이면 세상의 절반이 온통 별빛이었다. 굳이 눈을 감았다 뜨지 않더라도 별빛들이 눈동자 속으로 우르르 빨려 들어왔다. 사실 출발하기 전에 알혼섬과 몽골의 별 사진을 구글로 검색해 보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사진을 찾아보았지만 막상 멋진 사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은하수가 흐려지는 겨울 사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네팔 히말라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따금 전문가들의 세계적인 사진도 있었지만 포토샵의 흔적이 너무 많거나 노이즈 투성이였다. 별은 너무도 선명하게 잘 보이는데 사진은 왜 잘 안 나오는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그 이유를 이번 겨울여행에서 나름대로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어디서나 별은 많이 보이는데 막상 찍으려 하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잘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려 180도 그 모든 곳에 별들이 보이지만 주피사체인 별들과 잘 어울리는 구도가 마땅치 않았다. 그야말로 바닷가 수평선에서 별 사진을 찍는 것처럼 단조로움 그 자체였다. 천문사진 찍기에는 너무 좋겠지만 구도와 디테일에 문제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들이 잘 안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잘 찍히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오밀조밀 산들이 적당한 높이로 서있으니 오지의 포인트만 잘 잡은 뒤 그 산이나 나무를 배경으로 하늘 방향으로 상향 조준하면 별들이 잘 나왔다. 별을 한눈에 더 많이 보려면 시베리아나 몽골 초원에 가거나 우리나라의 산정에 올라가면 되지만 많이 보인다고 더 잘 찍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밤하늘의 지평선 가까운 3분의 1은 그 어디서나 별빛이 희미하므로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바이칼호수 알혼섬이나 몽골 또한 어느새 빛 공해(광해)가 심해졌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약하지만 문제는 지평선의 불빛들이 훨씬 더 멀리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통나무집이나 게르 등의 약한 불빛도 별을 찍는 데 아주 큰 장애가 되는 것이다. 한 예로 4km 이상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의 칭기즈칸 동상을 비추는 조명이 마치 밤하늘의 서치라이트처럼 너무 밝아보였다. 겨울 남쪽하늘의 백미인 다이아몬드 별빛들을 여지없이 뭉개버리는 것이었다. 유목민들을 찾아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빛 공해를 피하기 어려웠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골짜기 오지로 숨어들면 반경 40km 바깥의 도시 불빛들은 겹겹이 둘러싼 산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세 번째, 겨울철 사진은 너무 추워 카메라 오작동의 문제가 생긴다. 여름철엔 은하수 사진의 강점이 있지만 바이칼호수와 몽골 여행의 성수기이다 보니 그만큼 빛공해가 더 심해진다는 큰 약점이 있다. 다행히 겨울철에는 비성수기이니 빛 공해가 잦아들지만 혹한의 추위가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한다. 영하 30℃ 이상에서는 카메라가 잘 작동하지 않고 배터리 또한 금방 닳아버린다. 릴리즈나 삼각대 또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체감온도 영하 40℃ 이상에서는 카메라에 핫팩을 붙이는 등 별짓을 다 해봐도 도저히 30분 이상 촬영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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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알혼섬의 후지르마을에서 찍은 별나무 사진. 눈밭의 소나무 위로 별들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큼 추워도 밤새 촬영할 수 있었다. 금방 뼈가 시릴 정도로 추운 몸도 몸이지만 두꺼운 장갑을 낄 수 없는 손가락도 굳어 수동 조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마스크를 끼면 그 입김이 눈썹에 달라붙어 두 눈이 쩍쩍 달라붙어버릴 정도였다.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으면 코털이 서릿발처럼 일어섰다. 릴리즈가 제 맘대로 작동해 카메라가 의도와 다르게 마구 찍어대기도 했다. 결국 릴리즈 등 모든 장치를 제거하고 핫팩을 5개 이상 붙이고 수건 등으로 카메라를 돌돌 감싸야 했다.

겨우 한 장을 찍고 다 풀어헤친 뒤에 수동으로 초점과 감도, 셔터속도를 조절해 고정한 뒤 다시 핫팩을 붙이고 촬영을 시도했다. 눈밭에서 30분 정도 혹한을 견뎌봐야 겨우 몇 장 정도밖에 찍을 수 없었다. 일단 철수해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카메라와 몸을 녹이고 배터리를 갈아 끼운 뒤에 다시 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얼었던 카메라와 삼각대는 숙소의 따뜻한 공기를 만나 성에가 끼었다 녹으면서 물이 줄줄 흘렀다. 한 시간 이상 물기를 제거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평원의 눈밭을 아무리 걸어가 봐야 거기가 거기일 뿐이니 숙소와 멀리 떨어진 출사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바이칼과 몽골의 겨울 별사진은 극한 극기 훈련과 다를 바 없었다.

네 번째, 별사진 교과서에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캄캄한 밤에 초점을 잡는 법 등 강단의 이론은 현장에서 여지없이 깨질 수밖에 없다. 무한반복의 실전만이 카메라와 렌즈의 특성을 이해하고 한밤중 별사진의 디테일을 살려낼 수 있다.

어찌됐든 바이칼호수 알혼섬의 후지르마을, 이 마을에서 첫 번째 별 사진 한 장을 건졌다. 16년 만에 다시 가본 마을은 예전보다 너무 밝아졌지만 그래도 별빛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여했다. 후지르마을 불빛 너머 우리나라 쪽으로 오리온자리와 삼태성이 선명했다. 겨울의 대삼각형(시리우스-베텔게우스-프로키온)과 남쪽 하늘의 백미인 겨울철 다이아몬드는 시리우스(큰개자리)-리겔-알데바란(황소자리)-카펠라(마차부)-플룩스(쌍둥이자리)-프로키온(작은개자리)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이칼호수에서 나의 ‘별나무 사진’ 시리즈도 돌소나무와 소나무 두어 장 추가하고, 몽골 게르 별사진을 찍은 기쁨 또한 감출 수 없다. 고맙고 고마운 겨울 대륙여행의 별맛, 마침내 ‘바이칼 스타’의 별미를 맛보았다. 섬진강에 봄기운 완연해지자 시베리아의 밤에 얼었던 뼈가 이제야 녹는 듯하다.
출처 | 월간산 582호
등록일 : 2018-04-10 09:32   |  수정일 : 2018-04-1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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