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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면 부추굴짬뽕의 시간이…

글 |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 겨울철 진미 부추굴짬뽕
연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맛에도 타이밍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지인은 매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되기로 1~2위를 다투는 중국집, 대방동 ‘대성관’의 부추굴짬뽕 개시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추위가 더디 찾아와 개시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전화로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차가운 바닷속에서 굴이 여물고 부추도 찬바람을 맞아야 부추굴짬뽕의 맛이 제대로 나는 법!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대성관의 주인장 정대용(72)씨는 빨리 부추굴짬뽕을 먹고 싶다는 손님들의 요청이 쇄도해도 묵묵히 기다린다. 마침내 때가 와야 진짜배기 겨울 진미를 내놓는 것이다.
   
   봄이 오기 전에 부추굴짬뽕을 한 그릇 더 즐기자는 지인의 손에 이끌려 대성관을 찾았다. 오래된 단층집, 힘 있는 필체의 옥호가 걸린 외관에서 세월의 포스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된 전통의 노포 화상중국집이다. 정씨의 조부는 중국 산둥성 사람이었는데 ‘펄 벅’의 ‘대지’에처럼 엄청난 메뚜기떼가 들판을 휩쓸어 농사를 망쳤다. 살길이 막막해진 조부는 식솔을 거느리고 우리나라 함경도 원산으로 왔다고 한다. 부친과 삼촌이 먼저 지금의 대성관 근처로 내려와 호떡과 꽈배기 장사를 하여 돈을 모아 대성관을 차린 뒤 원산의 식솔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그때가 남북한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1947년이었으니 이 집 업력이 어느덧 7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아기 때부터 살아온 대방동이 제 삶의 터전이자 고향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기억 속에 대방동은 이웃집에서 돼지와 닭을 흔히 키우던 조용한 시골 동네였다. 그는 공군본부 뜰에서 뛰어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곳에서 줄곧 성장해 아내 왕수아(71)씨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아버지 곁에서 중국 음식을 배운 정씨는 직접 배달을 하고 웍을 흔들며 짜장도 곧잘 볶아냈다. 1980년부터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대를 이어 부부가 함께 오랫동안 대성관을 지켜왔다.
   
   1970년대 후반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한 이곳은 인근에 있던 공군본부와 해군본부의 군무원들이 귀빈을 모실 때 찾는 고급 중식당이었다. 특히 고 박정희 대통령이 순시를 나올 때면 이 집을 단골로 찾곤 했다.
   
   반세기 전 트렌디했던 인테리어는 이제 골동품마냥 예스럽고 정겹다. 소박한 동네 중국집의 모습 그대로랄까! 긴 세월에 주변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이곳의 음식은 여전히 미식가들을 사로잡는다. 특히 겨울 별미, 뜨끈한 부추굴짬뽕의 인기가 자자하다. 주문을 하면 따뜻하게 데운 그릇에 굴과 부추를 듬뿍 올린 하얀짬뽕을 푸짐하게 담아 내온다. 청양고추는 따로 곁들여 입맛대로 섞어 먹는 식이다. 굴 특유의 연한 회색이 살짝 도는 국물은 닭뼈 등으로 육수를 내지 않고 오로지 맹물에 굴로 승부할 만큼 생굴을 넉넉히 넣어 맛을 낸다.
   
   “굴짬뽕에 들어가는 굴은 매일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에 직접 가서 제일 신선한 것으로 골라 와요. 전화로 주문하면 간혹 안 좋은 것이 섞여 올 수도 있거든요.”
   
   주인장이 새벽장에서 정성껏 골라온 굴에 질 좋은 마늘을 탕탕 부숴 넣고 신선한 호부추를 볶아 끓여 내니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기가 막히다. 탱글한 굴의 감칠맛과 호부추의 산뜻함, 쫄깃한 면발이 어우러져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크리미한 질감의 부드러운 국물은 시원한 해장국처럼 속을 편안하게 풀어준다.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아까울 맛이다.
   
   면발은 미끈거리지 않으면서도 탄력이 있다. 반죽의 농도와 삶는 시간을 절묘하게 맞추기 때문이다. “비록 기계로 면을 뽑기는 하지만 남들이 10번 치대면 우린 20번 이상을 치대요.” 덕분에 첨가제를 넣지 않아도 면발의 탄력이 좋은 편이다. 사실 많은 중국집에서 배달하는 동안 면이 부는 걸 막고 탄탄한 면발을 유지하도록 반죽에 첨가제를 넣는다. 그런데 이 집은 배달용 메뉴에도 첨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소스와 국물 맛이 면발에 쏙쏙 배어들어 훨씬 맛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만 배달이 가능하다.
   
   
▲ 대표 정대용씨

   짜장면에서 생강향
   
   대성관의 짜장면도 꼭 먹어봐야 할 메뉴다. 살짝 생강향이 감도는 이 집 짜장면은 1970~1980년대에 먹던 옛날 맛 그대로다. 들어가는 재료는 수십 년 동안 양파와 양배추, 그리고 돼지고기가 전부인데 짜장면 맛은 아주 깊고 풍부하다. “짜장면은 춘장을 잘 볶아야 맛있어요!” 아버지께 춘장 볶는 기술을 제대로 전수받아 불맛이 쏙 배어들도록 볶은 춘장은 짜장면의 풍미를 한껏 돋운다. 소금과 설탕을 많이 넣지 않고 양파와 양배추를 충분히 넣어 단맛을 내기에 인위적으로 달지 않고 짜지 않다. 화학조미료도 채소의 씁쓸한 맛을 잡아줄 수 있는 최소량만 넣기 때문에 먹고 나서 입이 텁텁하지 않다. 이 역시 선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요리로는 난자완스가 유명하다. 다른 집에 비해 완자를 큼직하고 좀 얇은 듯하게 빚는다. 기름에 튀기듯 익혀내어 까슬까슬한 표면엔 마늘향이 짙게 밴 소스가 스며들어 있는데 고기가 잡내 하나 없이 구수하게 씹힌다. “돼지고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도 많지만 우리집은 신선하고 질 좋은 국내산 농협 것만 써요.”
   
   탕수육도 튀김기름을 여러 번 사용하지 않아 튀김옷 표면이 깨끗하고 소스의 당도와 점도도 적당하다. 너무 달지도 않고 묽지도 되지도 않다. 대책 없이 달기만 한 요즘 소스에 비하면 새콤달콤한 예전의 탕수육 바로 그 소스 맛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식사는 물론 정성 어린 요리까지 즐길 수 있는 노포 대성관. 실내는 넓지 않은 편이지만 안쪽에는 20~30명이 앉을 수 있을 만한 온돌방이 마련돼 있어 단체모임도 가능하다. 명절 연휴와 매달 첫째, 셋째 화요일엔 쉰다.
   
   주인장의 초심이 그대로 멈춰 있는 대성관은 오랜 역사만큼 이야기도 다채롭다. 반세기 동안 우정을 이어온 동창생들이 ‘대성관’에서 옛추억을 찾는가 하면, 수십 년 전 돈이 없어 짜장면 값을 치르지 않고 줄행랑 쳤던 고등학생들이 지금은 손자를 데리고 와 짜장면을 먹고 그때 내지 못한 음식 값이라며 수표를 쥐여주기도 한다. 오랜 세월, 장사에 부침이 있어 고되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언젠가는 방송에 나가 몇 년간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었다. 그간 수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주인장 정씨에게 대성관은 언제나 자부심으로 지켜내는 소중한 가업이다. “외국으로 이민 가셨던 분들이 우리 집 오실 때면 대성관이 아직 있다고 고맙다고들 하셔요. 고추장이나 된장을 가져다주는 손님들도 계시고요. 제가 대성관을 계속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등록일 : 2018-02-13 13:30   |  수정일 : 2018-02-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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