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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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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린 천마산, 구름 속에서 하늘을 만지다

글 | 윤제학 동화작가·월간山 기획위원

눈 ‘내린’ 산과 눈 ‘내리는’ 산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단순히 시간 선상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차이가 아니다. 눈 내린 산의 기둥이 ‘숲’이라면, 눈 내리는 산의 기둥은 ‘나무’다.

눈이 내린 다음 햇살이 숲으로 비껴들 때, 빛과 숲과 그림자는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에 비해 눈이 내리는 숲의 나무들은 한 그루 한 그루가 자기주장을 한다. 물론 그 주장은 목에 핏대를 세운 주장이 아니다. 깊고 부드러운 침묵 속에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데서 나오는 주장이다.

눈 내린 숲의 아름다움이 원경과 전경의 형태로 존재한다면, 눈 내리는 숲의 아름다움은 근경과 부분의 형태로 존재한다. 내린 눈이 원근감을 극대화시킨다면, 내리는 눈은 원근감을 지운다.

눈 내린 숲을 걸을 때의 느낌이 초대받은 손님 같다면, 눈 내리는 숲을 걸을 때는 손님으로서의 거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산이라 할지라도 눈이 내린 다음과 눈이 내리는 때는 다른 산으로 느껴진다. 눈 내린 산에 드는 즐거움이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라면, 눈 내리는 산에 드는 즐거움은 산과의 일체감에 젖어드는 것이다. 그 일체감은, 역설적이게도, 긴장감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줄을 타는 광대가 외줄을 몸의 일부로 삼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조금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의도한 바 없는 몰입감. 눈 내리는 산을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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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정상 직전 북쪽 능선의 노송. 바람이 불면 바람으로, 구름 속에서는 구름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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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북쪽 능선의 동쪽 기슭.

단순함의 즐거움, 눈이 내려주는 축복

천마산(812m)으로 가는 날,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교통 혼잡, 위험한 도로 사정이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속을 흐르는 공기에는 함박웃음이 강아지처럼 뛴다. 눈은 사람을 단순하게 한다. 첨단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눈길에서는 썰매보다 무능하다는 사실을 고소해 하면서도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천마산은 봄이면 꽃 산행객으로 붐비는 산이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들꽃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산이다. 산괴불주머니, 꿩의바람꽃, 매화말발도리, 산괭이눈 같은 흔한 봄꽃은 물론 얼레지 군락은 강원도 깊은 산골을 옮겨 놓은 듯하다. 더욱이 광릉요강꽃 같은 멸종위기 야생 식물 1급의 식물, 우리나라 몇몇 산에서만 자라는 점현호색 같은 희귀식물을 서울에서 전철이나 시내버스를 타고 와서 볼 수 있으니 가히 들꽃의 성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좀 부족하다. 으레 그렇듯이 성지에는 광신도도 있는 법이다. 일부 들꽃 사진 애호가들이 좋은 개체를 찍고 나서 바로 꺾어 버리는 짓으로 성지의 요건을 충족시킨다.

천마산은 산꼭대기에서 능선이 바큇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어 어디서나 정상을 볼 수 있는 특이한 산세, 풍부한 식물상으로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선정됐다. 꽃산행이 이루어지는 호평동 들머리를 비롯한 서남쪽은 등산로가 완만하지만 북동쪽은 비탈이 상당히 급하다.

눈 내리는 산을 오르는 일은 꽃산행과는 성격이 다르다. 마땅히 산세가 험한 북동쪽에서 오르는 것이 제격이다. 가곡리(가오실) 보광사 골짜기에서 북쪽 능선으로 올라 정상으로 향하는 행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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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릉에서 정상 오르는 길. 한 몸을 이룬 구름과 나무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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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남쪽 기슭. 천마산 스키장이 보인다.

화도읍을 지나 가곡리에 이르렀을 때 눈발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보광사를 지날 때부터 함박눈으로 바뀐다. 함박눈이 내린다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첫째, 날씨가 매섭게 춥지는 않을 것이다. 함박눈은 비교적 무거운 무게로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다른 눈과 만나 덩치를 키우게 되는데,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씨라야 가능한 일이다. 다음은 구름이 산 아래까지 낮게 깔리게 되므로 조망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광사는 고려 광종(949~975) 때 혜거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이 절 아랫마을인 가오실(가곡리)에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이 살았는데 그가 이 절을 중창했다. 거부였던 이유원은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의 초석을 놓은 이회영 형제의 둘째 이석영의 양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석영은 이유원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해 신흥무관학교의 자금을 마련했다.

일제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폐사가 되다시피 한 보광사는 1984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천마산이 남양주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1983년이다. 천마산과 보광사는 운명적으로 한 몸이다.

산길과 계곡, 나무는 눈은 덮고 있다. 발목에 살짝 닿을 정도로 쌓인 눈이 산을 원초적인 상태로 돌려놓았다. 이것이 눈의 매력 혹은 마력이다. 도심에 쌓인 눈이 사람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든다면, 산속의 눈은 산을 태초의 상태로 ‘리셋’시킨다.

잎을 깨끗이 내려놓은 활엽수림 사이로 잎을 그대로 매단 채 말라버린 단풍나무 위에 쌓인 눈꽃이 곱다. 눈이 빛이라면 잎은 그림자다. 그림자까지 몸체에 새겨 넣은 겨울나무. 나무는 자신의 모든 카르마를 온전히 책임지며 산다. 해탈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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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서쪽 기슭에 앉은 보광사. 고려시대 때 창건된 고찰이다.

단풍나무 눈꽃 터널을 무시로 지난다. 가을이면 이 골짜기가 얼마나 찬란할지를 일러 주는 모습이다. 산마루는 구름 속이다. 산은 물러나고 숲은 지워지고 나무는 일어선다. 우람한 참나무에서부터 가녀린 싸리나무까지 한 그루 한 그루가 산과 숲을 대표한다. 나는 모든 나무와 1:1의 관계로 조응한다.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되기를 꿈꾼다.

임도를 가로지르면서부터 비탈이 허리를 세우기 시작한다. 천마산 정상 북쪽 능선이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눈이 그쳤다. 큰키나무의 우듬지에는 눈꽃 대신 상고대가 맺혀 있다. 갑자기 눈보라가 인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바람에 미끄럼을 타는 것이다. 바람의 올이 팽팽하다. 등성마루에 섰다. 북쪽으로 철마산, 주금산을 지나 한북정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천마산 정상은 이곳에서 남쪽을 향한다.

그런데 능선의 이정표는 현 위치를 ‘괄아리고개’라고 말한다.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 괄아리고개는 이곳에서 북쪽 철마산 남쪽에 걸린 고개로 능선 서쪽의 남양주시 오남읍 팔현리와 수동면의 수산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팔현리에 ‘과라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세종 2년 9월 8일에 ‘상왕(태종)이 풍양 북촌 괘라리掛羅里의 산골에서 놀이하고 작은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인다. 그 괘라리를 사람들은 ‘과라리’라 부른다.

오늘 한나절 나는 이 산에서 한 그루 나무처럼 살았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지도상으로 보면 남쪽으로 말끔히 이어지는데 실제는 끝없이 구불거리며 파도치고, 군데군데 바위가 도사린 능선이다. 옛날 이 마을 사람들이 소박맞은 산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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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정상 직전 북릉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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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정상 남쪽 능선의 소나무.

눈과 안개가 지워버린 길을 조심스럽게 더듬어나간다. 몇 번 길을 잃어 가던 길을 되짚었다. 그렇게 산과 나의 내밀한 관계가 깊어지더니 홀연히 소나무가 선경을 이룬 능선에 이른다. 구름이 놀다 가기 좋은 곳이다. 구름과 동무하며 소나무를 지나자 정상이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낼 때 언뜻 백봉(587m)이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좋다면 동남쪽으로 곡달산·용문산·유명산, 남쪽으로 운길산·검단산·예봉산, 북쪽으로 주금산·운악산·서리산, 서쪽으로 수락산·불암산·도봉산·북한산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천마산의 정상은 눈 아래로 거칠 것이 없이 조망이 빼어난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천마산 언저리를 지나다가 산이 매우 높아 보이자 지나가는 촌부에게 산 이름을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혼잣말로 이르기를, “가는 곳마다 청산은 많지만 이 산은 매우 높아 푸른 하늘에 홀忽을 꽂은 것 같아, 손이 석자만 길었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고 했다. 하여 산의 이름이 천마산天摩山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는 이 산의 이름이 ‘天馬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 지명 전설은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나는 이성계보다 형편이 낫다. 손을 들지 않아도 하늘을 만질 수 있다. 구름이 하늘을 데리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뿐 아니라 모든 산은 하늘과 맞닿았다. 동네 뒷산도 에베레스트도 그런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우리가 의식을 하든 그렇지 않든 산을 오르는 행위는 하늘에 몸을 두는 일이다. ‘나’라는 물건이 짊어진 ‘카르마’의 무게를 가늠하는 일인 것이다.

먼 하늘이 개기 시작하자 햇살이 나무 아래에 걸린다. 벌써 해거름이다. 눈길을 헤매다가 시간이 지체된 까닭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묵현리에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 걱정이 되지만 조바심을 치지는 않는다. 오늘 한나절 나는 이 산에서 한 그루 나무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출처 | 월간산 579호
등록일 : 2018-01-12 17:01   |  수정일 : 2018-01-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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